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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하늘은 정선의 가을로 간다 -박정대 문득 하늘을 보면 세상의 10월 쪽빛 하늘은 모두 정선의 가을로 간다 여진(女眞) -박정대 문득 치어다본 하늘은 여진의 가을이다 구름들은 많아서 어디로들 흘러간다 하늘엔 가끔 말발굽 같은 것들도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진의 살내음새 불어온다 가을처럼 수염이 삐죽 돋아난 사내들 가랑잎처럼 거리를 떠돌다 호롱불, 꽃잎처럼 피어나는 밤이 오면 속수무책 구름의 방향으로 흩어질 것이다 어느 여진의 창가에 밤새 쌓일 것이다 여진 여진 쌓일 것이다 56억 7천만 년의 밤 -박정대 창가에 앉은 나, 56억 7천만 년 동안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박정대의 시를 읽는 밤은 길어집니다. 시간이 늘어나서 지구 밖을 떠돌고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오는 환상을 보곤 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세계가 나열된 시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좋은 것만 기억하며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의 시에서 말해지는 것들. 격렬비열도의 청춘과 아무르 강가의 음악이 한 시절과 만납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고 나면 나는 그리운 시간들을 호명 하며 아침을 묻어둡니다. 밤과 새벽, 아침을 연결하는 그의 긴 시들이 툭툭 다음 페이지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 합니다. 정선의 가을과 여진의 가을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푸른 눈동자를 상상합니다. 먼지 날리는 땅을 달리는 그 사내들의 거친 얼굴에 닿는 바람과 꽃잎들. 셀 수 없는 고독의 밤들로 시는 자꾸만 길어집니다. <예전에 쓴 박정대론의 일부 중에서> 박정대의 시 속에는 소설이 자주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변용시키기도 한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소설들은 소설이라는 형식에 갇히지 않은 문장이 아름다운 산문들이다. 자유롭고 단박에 간결한 언어로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다. 『아무르 기타』의 자서에 나오는 세풀베다에 대한 글을 살펴보자. 세풀베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을 읽는다 산티아고에서 사라진 집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조건은 청춘의 아득함과 순수함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한 줌의 슬픔이다, 그의 말처럼, 그때 우리는 행복이나 불행에 대하여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들 청춘의 어느 한때 -『아무르 기타』의 자서중에서 「산티아고에서 사라진 집」은 세풀베다의 『외면』이라는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이다. 열여덟살인 나는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이사벨이라는 매혹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 나는 그녀가 보여준 황홀한 신비를 맛보게 된다. 다음주 토요일날 다시 그녀와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게 된다. 다음주 토요일이 되기까지 손꼽아 기다린다. 마침내 그날이 되어 멋지게 차려 입고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그녀의 집은 사라지고 없다. 몇 번을 다시 찾아가 보지만 그녀의 집은 없다. 나는 비오는 날 우연히 들른 사진 전시회에서 사라진 그녀의 집을 찍은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를 분명 만났지만 사라진 그녀의 집 때문에 그녀라는 존재를 부정했던 나로서는 안도하기에 이른다. 무슨짓을 저질러도 젊음이라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청춘의 순간을 기억하게 되는나는 이제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녀의 집은 사라졌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집은 누군가의 카메라에 담겨 내게 다시 말을 걸고 있다. 박정대의 시가 청춘의 방황과 갈 곳 없이 배회하는 막무가내의 젊음을 노래하고 있다면 세풀베다의 소설은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추억의 아름다움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브라질의 열대 밀림에서 '연애소설 읽는 노인'도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 하는 대신 이젠 아무일도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살아온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어났으므로)살고 있는 것이다. 순간이 지나면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또렷하게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세풀베다의 문학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는 구성이 완벽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선명함이 아름다운 긴 시에 가깝다. 시인이 소설에 매혹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시는 아니지만 시처럼 간결하지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이야기는 압축된 아름다움이지만 소설에서의 이야기는 삶을 풀어서 보여주는 해체된 아름다움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꿈꾸던 호랑이는 그 크기를 줄여 개나 새로 보인다는 보르헤스의 글을 빌려, 시인은 삶이 주는 쓸쓸함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짧은 노래(시)를 부르기엔 인생은 길고 어디로든 떠나야 할 것 이기에 긴 노래(소설의 문장들)를 대신 불러 청춘을 꺼내 보는 것이다. 박정대의 시가 대책 없는 낭만을 노래하고 대책 없는 서정에 기대고 있는 것은 그 대책 없음으로 대책 없는 세상을살아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나직하게 길게 음악을 연주해 보는 것이다. (박정대 시를 좋아해서 그의 모든 시집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쓴 박정대론도 힘들게 찾아서 일부만 올려봅니다. 대책 없이 긴 진술의 시들이 좋았고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종이 위에 펼쳐져 있는 걸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가 꾸준히 시를 쓰고 혁명과 사랑과 청춘을 노래하는 서정을 한 번 더 만져봅니다. 그리운 시절과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는 평일의 저녁입니다. 시를 통해 나는 그 세계를 통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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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 Nick Cave & the Bad Seeds "From Her to Eternity(그녀에서 영원까지)"
평생 자신을 사로잡는 것들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것, 천사도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우린 삶에도 영원에도 묶인다. 먹고 자고 질투하며 자식을 낳는 우리 모습을 神에게 투영하기도 하면서. 오늘도 "말갈이나 숙신의 언어로 비가 내리고" (<그때 나는 여리고성에 있었다>) 셀 수 없는 비처럼 언어처럼 "여진(女眞), 여진(女眞)", "아무르, 아무르" 를 가만히 입안에서 굴린다.
이 시집의 첫 시는 <아무르>이다. 박정대 시인의 시를 꾸준히 읽어온 사람에겐 익숙한 단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언제나까지나 반복할 단어. Amour, 사랑. 이 시에는 짐 자무시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도 스며 있다. 그들이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영원성과 제약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에서 이 사랑의 속성은 같다. 모두 사라져도 사랑은 살아남아 존재(사람이 아니라도)의 사랑을 키울 것이다. 뱀파이어도, 천사도 벗어날 수 없어라.
"상처 입은 것들의 내면은 모두 한 채의 절"(<금각사>)이라고 했다. 같은 시에서 "상처 입은 것들의 표면은 모두 금각사"라는 말도 했다. 상처로 반짝이는 것이라면, 사람과 별과 부러진 칼의 차이는 없다. 비유는 때론 야멸차지. 반짝이기 때문에 가끔 서로 마주하지만 말은 건네지 않는 사이. 어두워서 마주하고 차가워서 마주하고 어떤 이유로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사이와 사이. 이유가 없는데도 따지면 이유가 있는 사이. 양자역학과 우주의 끝을 말하지 않아도 이유는 아주 쉽게 만들어지고는 한다. "인류를 구원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시인이란 존재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나는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속해 있기 때문에"를 되풀이해서 읽는다. 속해 있기 때문에, 속해 있기 때문에. 神은 인류에 속해 있는가. 인류의 기원이기에 구원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인가. 인과를 따질 때 나는 화가 나기보다 슬프지만 냉정해지려고 한다. 한참 생각 중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게 무엇을 더 해 주면 좋겠니. 아니오, 아니오. 결코 와 영영은 모두에게 아픈 말이다. 우리는 다른데 이토록 속해 있다. 뜨거운 차가 1도 정도 더 식고 밤이 더 깊어지고 비가 더 적셨다. 자네,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닌가. 시인은 말한다. '내면의 깊이를 획득한 말의 싱싱함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어쩌면 이런 것.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는 함께 잠들 수 있지만 아침이면 에메랄드는 에메랄드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깨어나야 한다"는 애정 공산주의의 수칙에 공감하면서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콜로이드 소노르Colloides sonores, 즉 교착적 음향의 사랑을 꿈꾸는 나는 어쩌면 애정 라이프니츠주의자에 가깝다 // 타자(他者)에 대한 영원한 동경 때문에 나는 삶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 고독과 분별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의기양양(계속 걷기 위한 삼중주>) "전직 천사"라 천진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세계를 배회하던 시의 날개를 접고 시인은 말한다. "삶이란 스스로 꿈꾸는 한 편의 시이다. 전직 천사는 날개 달린 발로 온 세계를 떠돌며 단 한 편의 시를 쓴다. 허공을 살다 영원으로 사라진다. 영원이라서 가능한 밤과 낮이 여기에 있다. 그럼 이만 총총" 이 순간 시를 쓰고 있는 사람, 시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 '시적 상상력'이란 쓸모없는 말. 그것은 설명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니피앙이자 시니피에. 그 조차 아직 반짝이고 있긴 한 걸까. 몇몇의 귀를 위해 말하려는 노력.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 구름은 몇 개나 뜰까. 확실한 건 내가 알 수 없는 만큼 존재하고 사라질 거라는 거. 짐 자무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4)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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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난해했던 것 같다 제대로 읽은건지 제대로 이해한건지 모르겠다 / 아무르 아무르 생각해봐도 어떤 아름다움이 인류를 구원한다 / 누군가는 아프게 생을 밀고 가는데 우리는 하염없이 밤을 탕진해도 되는 걸까 생각을 하면 두려웠지 두려워서 추웠지 그래서 동이 틀 때까지 너의 노래를 따라 불렀지 / 누군가 지상에 떨어진 낙엽의 책을 밤새 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