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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석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우석이는 관절이 굳는 병 때문에 다른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걷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엄마가 늘 우석이 곁에서 도와준다. 새로 담임이 된 김광명 선생님은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엄마 대신 반 친구들이 우석이의 도우미가 되게 한 것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 나는 당연히 우석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고 친구들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잠깐 우석이와 비슷한 처지가 된 적이 있다. 다리 인대가 끊어져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던 때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때 내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혼자서는 힘든 일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석이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을 보면서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특히 우석이가 실수로 오줌을 지렸을 때 친구들이 우석이를 씻겨 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나라면 친구들 앞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면 얼굴이 빨개지고 숨고 싶었을 것 같다. 우석이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우석이를 불쌍하다고 바라보기만 하지 않았다. 놀리기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함께 놀았다. 우석이는 친구들과 축구공도 차고, 찜질방에도 가고, 좋아하는 마리와 함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도와주는 친구와 도움받는 친구는 정말 따로 있는 걸까? 내 다리가 다치기 전에는 나도 내가 친구들의 도움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리를 다치자 상황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혼자 잘하던 나도 오늘은 친구의 손이 필요할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도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석이를 불쌍한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석이에게 친구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우석이가 필요했다. 우석이와 함께하면서 친구들은 조금 천천히 걷는 법을 알게 되고, 친구가 곤란한 순간에 어떻게 곁에 있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함께 웃고 놀고 장난치는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책 제목은 『펭귄 날다!』이다. 우석이는 걷는 모습 때문에 펭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나는 제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펭귄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런데도 제목은 ‘펭귄 날다!’이다. 어쩌면 우석이가 날게 된 것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 보게 된 것이 우석이에게는 나는 것과 같았을 것 같다. 나도 다리를 다쳤을 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는 내가 도움을 받는 쪽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친구 사이에는 언제든 자리가 바뀔 수 있다. 오늘은 내가 친구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고, 내일은 내가 그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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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펭귄 날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우석이가 축구를 하는 장면이다. 동명이가 축구를 하다가 골키퍼가 빠지자 우석이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우석이는 골키퍼가 되어 공을 막고 직접 공도 찬다. 몸이 불편한 우석이가 축구를 하는 모습도 멋졌지만, 나는 동명이가 우석이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자고 한 것이 더 좋았다. 두 번째로 좋았던 장면은 우석이가 마리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우석이가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우석이는 자전거를 탔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마리와 함께 탔다. 솔직히 나는 장애를 이겨 낸 것보다 좋아하는 아이와 자전거를 탄 것이 더 부러웠다. 우석이에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은 순간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생각난 것은 멋진 장면이 아니었다. 우석이가 오줌을 싼 장면이었다. 우석이는 축구를 한 뒤 근육이 놀라 학교를 이틀 동안 쉬게 된다.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오줌을 계속 참았고 결국 바지에 싸고 만다. 하필 그때 동명이와 마리가 찾아온다. 내가 우석이라면 정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을 것 같다. 특히 좋아하는 마리에게 그런 모습을 들켰으니 더 창피했을 것이다. ‘왜 조금만 일찍 화장실에 가지 않았을까?’ 하고 자기 자신이 미웠을 것 같다. 그런데 동명이와 마리는 우석이를 놀리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잔소리까지 했다. 나는 여기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축구할 때 같이 뛰어 주는 친구와 오줌을 싼 날 옆에 있어 주는 친구 중 어떤 친구가 더 좋은 친구일까? 축구장에서 우석이는 멋졌다. 골키퍼도 하고 공도 찼다. 자전거를 탈 때도 멋졌다. 좋아하는 마리와 함께 달렸다. 그런 우석이와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멋있을 수는 없다. 실수할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킬 때도 있다. 그때도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가 아닐까? 처음에는 동명이와 친구들이 우석이를 많이 도와주어서 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친구들은 우석이를 불쌍해서 도와준 것 같지 않다. 동명이는 우석이에게 축구를 하자고 했고, 친구들은 우석이와 장난치고 놀았다. 우석이가 오줌을 쌌을 때도 불쌍하다고 쳐다보기보다 씻는 것을 도와주고 잔소리를 했다. 그냥 자기 친구에게 하듯이 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펭귄 날다!』의 제목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펭귄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하지만 우석이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는 마리와 함께 달리면서 날아갈 만큼 신나는 순간을 만났다. 우석이를 날게 해 준 것은 혼자서 무엇이든 해내는 기적이 아니라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멋진 순간에 같이 웃어 주는 친구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가 가장 창피해서 숨고 싶은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어 줄 수 있을까? 동명이와 마리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친구가 더 어렵고,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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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황제펭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펭귄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황제펭귄은 키가 120센티미터쯤 되고 몸무게는 30킬로그램까지 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화면 속 황제펭귄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와도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황제펭귄은 알을 품는 방식이 조금 특별하다. 남극의 추운 바람 속에서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발등 위에 올려 품는데, 이때 엄마펭귄은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떠난다. 그러면 아빠펭귄은 혼자가 아니라 수백 마리의 다른 아빠펭귄들과 함께 알을 품는다. 서로 몸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며 천천히 둥글게 돌고, 바깥쪽에 있던 펭귄이 너무 추워지면 안쪽의 펭귄이 자리를 바꿔준다. 그렇게 수백 마리의 펭귄이 한 팀이 되어 동그란 허들을 만들고 새끼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기도한다. 나는 <펭귄 날다!>라는 책을 읽고 또 읽고 며칠을 반복하면서 어릴 때 보았던 황제펭귄의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즘 뉴스를 보면 단체 채팅방 같은 데서 친구들끼리 서로 나쁜 말을 하면서 놀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친구를 때리고 괴롭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속 5학년 친구들은 우석이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실수하지는 않을까,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으로 팀을 이루어 도우미가 되어 준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울컥 울컥하고 따뜻해졌다. 나는 펭귄이 날지 못하는 새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펭귄 날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땐 “무슨 말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펭귄도 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석이는 관절이 굳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 걷는 것도 힘들고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 청소 일을 하며 늘 곁에서 도와주는데, 새로 오신 김광명 선생님은 우석이 엄마에게 “학교에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왜 굳이 엄마를 떼어 놓으려고 할까? 하지만 선생님의 뜻은 우석이를 진짜로 혼자 서게 하려는 거였다. 혼자 두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뜻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도우미 친구 다섯 명을 뽑는다. 형민이, 동명이, 경진이, 현묵이, 재설이. 이 친구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석이를 도와준다. 운동을 같이 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간식도 나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우석이가 되었다. 내가 만약 우석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존심이 상했다가, 슬펐다가, 우울했다가, 화도 났을 것 같았다.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고맙지만 어떤 날에는 싫을 것 같은 마음. 게다가 김광명 선생님의 미션이 고맙지만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김광명 선생님이자 반 친구들이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우리 반의 우석이라는 알을 품어줄지 고민했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도우미가 되기로 한 친구들은 우석이와 많은 추억을 만든다. 특히 동명이는 함께 운동을 하자고 하는데 친구들은 우석이에게 골을 넣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볼보이를 맡아 달라고 했다. 아마 우석이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젝트 덕분에 우석이의 마음이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다시 운동장에 섰을 때, 이번엔 우석이가 골키퍼였다. 기회이자 위기였더. 비록 넘어지고 다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우석이는 친구들에게 있어 더 이상 병을 앓는 환자가 아니었다. 우리 팀 중 한 명의 선수였다. 그래서 나는 찜질방 장면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하루, 그건 우석이에게 뜨끈 뜨끈한 치유이고 아이스방 같은 짜릿함이었을 것이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배를 대고 엎드려서 행복하게 웃는 그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우석이 엄마처럼 ‘부처님, 하나님, 성모마리아님, 조상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결국 우석이는 수술을 받는다. 엑스레이 앞에서 긴장하고 의사 선생님 앞에서 움츠러들지만 우석이는 더 이상 겁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수술 후 학교를 다시 찾은 우석이에게 친구들은 황제펭귄처럼 다시 둘러서서 평범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덕분에 우석이는 ‘내 갈 길은 내가 만들며 달려갈 수 있다’는 다짐도 할 수 있게 된다. 그 마지막 한 마디의 말을 보는 순간, 나는 왠지 우석이에게 진짜 날개가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함께해 줄 친구가 있다면 펭귄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수 많은 황제펭귄의 알들이 걱정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