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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내 기준에 의해 누군가를 재단하거나,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시하거나,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반응에 당황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결국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관계로부터 배우는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한 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나 스스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허튼 기대로 인해 짧은 만남과 그로 인한 상실의 고통만 경험하는 건 아닌지 조용히 뒤돌아보게 됩니다.
새벽까지 달이 밝았습니다. 푸르게 쏟아지는 달빛에 의지하여 산길을 오르노라면 달빛에 비친 어룽어룽한 나무 그림자와 고즈넉한 새벽 숲의 고요가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합니다. 내가 즐겨 찾는 이 자연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 숱하디숱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기는커녕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고 미워하고 내 속을 박박 긁는, 그야말로 아수라의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운이 좋았던 셈이지요.
"요컨대 온전한 정신의 끝은 어디며, 정신이상의 시작은 어디인가? 우리 중에서는 운 좋게도 스스로 혹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 내에서 인생의 난관을 용케 잘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성공했다'고 규정한다. 반면 우리 중에는 계속 부인하거나 자신의 불운을 투사할 대상을 찾아냄으로써 문제에 대응하는 이들도 있다." (p.429)
타냐 바이런이 쓴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우리는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심리 상담 사례집입니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로 25년간의 임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저자는 실습생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나는 정신분석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정신 분석가들이 그렇게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않았다면 나도 정신분석 이론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신분석가들은 세상에서 자기들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있었고 오로지 자신들만이 정신 건강의 바이블을 읽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삶의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는 쥐고 있지만 정작 그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 이론은 언제나 지나치게 종교적인 느낌이었다." (p.85)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이라는 의미의 '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이 원제인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았던, 그렇지만 내가 아닌 '너'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호모 속의 호모 사피엔스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타냐의 목에 흉기를 들이댔던 소시오패스, 어린 시절 계부로부터의 성추행을 경험했던 소녀가 연못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않게 된 사연, 결혼을 앞두고 성적으로 무관심해진 커플, 좋은 집안과 개인의 재능을 모두 갖추었지만 거식증에 걸린 소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중 자신조차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아버지, 인생의 말년에 알게 된 친딸의 생존 소식과 만남을 거부한 모녀, 약물중독과 HIV 환자 등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웃의 사연을 저자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자세히 들려줍니다.
"자, 이제부턴 솔직해지자. 어떤 아이의 인생을 180도 좋은 방향으로 바꿔놓아 이제 그 아이가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아이를 죽고 싶게 만든 이 거지 같은 세상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면그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되는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내 보호 본능을 재단하기 전에 당신들의 보호 본능부터 들여다보길 바란다." (p.114)
어렸을 적에 계부로부터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경험했던 이모젠은 자신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연못에 빠진 여동생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습니다. 계부와 친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모젠에게는 계부이자 여동생에게는 친아버지인 그 사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이모젠이 상담을 통하여 좋아졌으므로 다시 사회로 네보내진다고 할 때 저자는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분노합니다.
"해럴드 할아버지는 너무나 신사다운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 점을 대놓고 지적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침묵은 내게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절대로 잊지 않는 교훈을 한 가지 깨우쳐주었다. 인간인 우리는 대개 중대한 일에 진땀을 빼지만 가장 큰 의미를 지니며 가장 큰 절망을 초래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럴드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할머니한테 책임지고 감을 사다줄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그랬다." (p.225)
해럴드 할아버지의 사연은 이모젠보다 더 기구합니다.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였던 해럴드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는 자식도 없이 온전히 두 부부만 서로를 의지한 채 살다가 아내가 치매에 걸려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되자 해럴드 할아버지는 아내를 살뜰히 돌봅니다. 그러다 자신마저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큰 절망을 초래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해럴드 할아버지에게는 아내가 좋아하는 감을 사다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체육공원 트랙을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을 헐떡인다든가, 가볍게 지면에 닿을 줄 알고 높지도 않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수리까지 찌르르 전해오는 울림을 감지할 때 그 절망감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행복이란 아주 사소한 일을 오늘이고 내일이고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큰 일을 성취했을 때의 일시적인 행복만 쳐다볼 뿐 정작 사소한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은 눈에 띄지 않는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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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 바이런(Tanya Byron: 1967 - )은 자신의 할머니가 임신한 젊은 헤로인 중독자가 휘두른 강철봉에 머리를 강타당해 목숨을 빼앗긴 사건을 겪고 인간의 (병리적) 전두엽에 관심을 가지고 임상 심리학자가 된 영국의 저자이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저자가 임상심리사가 되는 과정에서 치른 실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만난 환자들은 공황 발작 환자,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인 열두 살 소녀, 생모를 거부하는 여자 등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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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
이 책의 원제입니다.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라는 제목은 매우 노골적입니다.
어떤 제목이냐에 따라 독자의 선택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일단 이 책을 펼쳐든다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
소설 혹은 드라마, 영화같은 이야기라서...
환자에 대한 비밀 보장 의무를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과 정황 등을 가공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된 사례들은 전부 허구입니다.
저자 타냐 바이런은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로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자신이 임상 심리학자가 되기 전 실습생 시절의 경험담, 그때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서툴고 미숙하던 실습생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냈을까요.
그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정신 건강 분야 종사자들이 자신들이 직접 다룬 사례라며 내놓은 책을 수없이 많이 읽어보았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퍼뜩드는 생각은 스포트라이트가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만 집중되고 그 치료를 맡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접근법은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만 있다는 아주 위험하고도 보편적인 믿음을 조장하는 듯하다.
또한 정신 건강 분야 종사자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유리한 위치에서 관찰하고 평가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우리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요컨대 온전한 정신의 끝은 어디며, 정신이상의 시작은 어디인가?
우리는 그런 부분을 그들의 문제로 돌리고는 '환자'라는 꼬리표 뒤에, 문제가 있는 건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착각 뒤에 숨는 것이다.
... 안타깝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 그들의 일부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에필로그 중에서)
우선 이 책을 쓴 타냐 바이런의 솔직함에 감탄했습니다. 치료를 하는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혼돈에서 질서를 향하여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그려냈습니다. 조금은 미숙해도, 환자에게 전이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조차도 인간적이라서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돕고 싶어하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25년 간 심리치료를 하면서 자신이 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를 갖게 된 건 그들 덕분이라는 말에 감동했습니다.
누구나 각자 나름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전혀 모르는 불안증이나 강박증일 수도 있고, 치료를 필요로 하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 해결하느냐 아니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건강합니까?
우리 몸의 건강을 체크하듯이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컨디션이 최상일 때도 있지만 너무 안좋아서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정신 건강에 문제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두려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내면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숨기고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굉장히 심각한 경우지만 적어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물론 치료 결과가 모두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아플 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건 함께 해줄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고통과 불행을 겪은 아이들을 보면서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만 있었더라도 피할 수 있는 불행이 아니었을까요.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건 병원이 아니라, 결국 '사랑'이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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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음이 아픈 건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사람은 미쳤다 여기고 억지로 정신병원에 가두기도 했다. 정신병원이 생긴 뒤에 그렇게 했겠지. 어린이가 이상한 행동을 해도 미쳤다 여겼다. 종교 관계자는 그런 모습을 보고 악마가 들렸다 하고 악마를 쫓아낸다면서 이상한 의식을 했다. 그때 아이는 죽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그런 일 없을까.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악마(귀신)를 쫓아낸다면서 의식을 치르다 사람을 죽게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뇌를 다치거나 약물 때문에 환각을 보고 어떤 충격을 받고 이상해지기도 하겠지. 뇌를 다친 사람은 전처럼 돌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약으로 좀 낫게 할 수 있을까. 약물 중독은 약을 끊으면 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좀 나아질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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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때 임신한 마약중독자에 의해 머리를 난타당해 죽어가는 할머니를 목격한 후 인간의 전두엽에 마음을 뺏겨버린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의 저자 타냐 바이런은 그 때부터 임상심리학자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어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임상심리학자이다. 그녀가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들, 위기에 빠진 가족들, 성기능 장애, 불치병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소시오패스 등 초보 임상심리사였던 타냐가 3년간 했던 그녀의 임상 실습에서 만난 독특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첫 실습을 나간 병원에서 환자기록부를 받아 볼 때 그녀는 임상학부 동기들 사이에서 그들을 '환자'라고 불러야할지 여부를 두고 기나긴 논쟁을 벌였던 것을 생각한다. 처음에 타냐는 그들을 환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에 걸쳐 서서히 현장에 빠져들면서 부딪쳐보니 그 사람들은 환자도 고객도 아닌 그냥 '인간' 이라느 것을 느낀다. 삶과 사연이 있는, 연약하고 가끔씩 불행을 느끼고 흥미로운 면을 보이는 실재하는 인간 말이다. 그녀가 임상 실습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난 환자는 불안 장애와 공황 발작 증세의 레이라는 중년 남성이었다. 타냐는 레이의 페이스에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 그에게서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레이에게 공격을 당한다. 지그문트를 떠올리며 상황을 모면한 덕분에 다치지 않고 해결되었지만, 타냐는 레이를 전혀, 하나도 돕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두 번째로 만난 환자는 자해 성향이 있는 열 두살의 이모젠이었다. 이 어린 소녀의 다섯살짜리 동생이 물에 빠져 익사했고, 익사한 동생을 이모젠이 발견했다. 엄마는 아이의 양육보다는 자신의 일에 관심이 많았고, 패션 모델인 새 아빠도 아이의 양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타냐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이모젠의 마음을 헤아리며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열게 했고, 퇴원날짜를 잡을 만큼 회복시켰다. 하지만 타냐는 어딘가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연못에 있던 이모젠을 만난다. 언제나 이모젠이 들고 있던 인형을 그녀가 연못에 넣고 서서히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 것을 보고 타냐는 깨닫는다. 이모젠이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것을.
이모젠의 새아빠는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이모젠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모젠이 자라면서 성적 대상이 이모젠의 동생으로 옮겨가려 했고, 이모젠은 그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수영장에 빠진 동생의 머리를 발로 살짝 누른 것이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한 동생을 지키는 방법이 비극이었기에 이모젠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는 분노와 함께 이모젠이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다.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이 동생을 죽였다며 경찰한테 말해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가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모젠이 아닌 실제로 벌을 받아야할 이 아이의 새아빠는, 어린 소녀 두 명을 불행한 삶을 살게한 새 아빠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고는 있을까.
타냐는 주변 상황을 보며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케이스의 사연들도 외로움과 관련이 있다고 깨닫는다. 또한, 세상에는 구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슬프게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타냐는 자신의 어리숙했던 실습 때의 모습을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들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병을 완벽하게 완치했다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했던 임상심리사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같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타냐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들로 인해 감동을 받았고, 인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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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타냐 바이런 저 / 황금진 역 / 동양북스]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임상 심리학자인 이 책의 저자 타냐 바이런은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전문가로 특히 아동과 청소년 심리 상담 분야에 관해 영국 전역의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국가의 고문으로 활동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TV, 영화, 연극 연출가로 성공한 아버지와 가끔씩 모델 활동을 하는 수술실 수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타냐 바이런이 편안하고 지어야 할 책임도 가벼운 다른 무수한 일들을 마다하고 임상 심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녀가 열다섯 살 때 임신한 상태인 마약중독자에게 머리를 난타당해 죽은 할머니의 전두엽을 본 후였다. 할머니의 전두엽과 할머니를 살해한 여자의 전두엽, 그리고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침착하게 이성을 되찾은 자신의 전두엽까지 그녀의 마음은 전두엽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임상 심리학자를 향한 여정 중에서도 이 책은 그녀의 나이 20대 초반인 1989년에서 1992년까지 6개월 과정의 현장 실습을 여섯 번, 총 3년 동안의 임상 실습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심리 상담 전문가가 아니라 이제 막 실습을 시작하여 첫 진료실이 생긴 초짜 상담사인 타냐가 처음으로 만난 환자는 레이 로바즈라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의 증세는 불안 장애와 공황 발작이었는데 첫 만남부터 타냐는 기선을 제압하지 못했고 끌려다녔고 그래도 그에게서 그의 이야기들을 꺼내도록 만들고 무사히 잘 해냈다는 생각을 하며 방심했을 때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환자 레이가 잭나이프 칼을 꺼내 들고는 칼날을 타냐의 얼굴에 고정한 채 타냐의 예쁜 파란색 눈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눈동자를 도려내겠다며 칼을 내밀고 있는 이 남자에게 이내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든 타냐는 온갖 두려움과 공포로 울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순간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감지한 타냐는 지그문트를 떠올리고 레이를 안심시키고 순식간에 기회를 포착해 서둘러 비상 단추를 눌렀다. 이내 경비원들이 레이를 덮쳐 사건은 무사히 해결됐지만 첫 진료에서 죽을 뻔 했던 타냐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6개월 동안 이어질 2차 실습은 보안 수준 중급 정도인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아동을 위한 정신과 입원 병동이었다. 이번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이야기인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병원에 있던 열두 살의 이모젠은 죽으려고 목을 맨 채 대롱대롱 달려있었고 타냐는 사람들과 낑낑거리며 이모젠을 겨우 구해낸다. 이모젠은 화목한 가정 출신이라 사회복지사는 불필요했고 가족 치료사는 맡은 환자가 너무 많았고 해서 결국 죽지 못해 안달난 이 아이는 타냐가 담당해야만 했는데 이모젠의 입을 여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타냐는 이모젠의 목에 빙 둘러 생긴 새빨간 자국에 부아가 치밀었다. 나이도 어린 아이가 왜 이렇게나 죽고 싶어 안달인 것인지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이모젠의 친부는 게이로 집을 나갔고 이모젠은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엄마는 잘나가는 잡치 편집자로 패션 모델인 제이크와 재혼했다. 엄마와 제이크 사이에는 메이지라는 딸이 있었는데 메이지가 작년 다섯 살이라는 나이로 물에 빠져 익사했다. 이모젠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미리엄이란 가정부가 메이지가 익사한 후 해고될 때까지 아이의 양육자로 있었기에 어린 이모젠은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었다. 그리고 이모젠에게는 계부이지만 동생 메이지에게는 친부인 제이크는 이모젠의 병원에 올 때마다 내내 흐느껴 울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모젠은 강박적으로 줄넘기를 하고 숫자를 세고는 했는데 자해 성향이 있어 줄넘기도 금지되고 빼았겼다. 그리고 헝겊 인형을 입으로 빨기도 하고 항상 끼고 다녔는데 타냐는 다른 의사들과 생각을 좀 바꿔서 이모젠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줄넘기를 하게 만들면서 이모젠의 마음을 서서히 여는데.. 그렇게 이모젠의 증세는 나아져 갔고 이모젠의 엄마는 임신을 했고 우울했던 이 가족들도 점점 행복해졌고 이제 이모젠도 드디어 퇴원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타냐는 이모젠의 상처가 큰 만큼 뭔가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어야 하는데 왜 어떻게 회복이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무엇인가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타냐는 연못을 바라보던 이모젠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데 이모젠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헝겊 인형을 연못으로 던지고 인형에게 미안하지만 널 구해주진 않을 거라는 말을 한다. 인형을 구해주자는 타냐의 말에 이모젠은 인형을 수면 아래로 살살 밀어넣으며 다 괜찮아 질거라고 이제 안전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후에 이모젠에게 들은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이모젠에게 다섯 살이란 나이는 새아버지인 제이크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기 시작한 나이였고 자신이 언제나 즐길 수 있게 해주면 새아버지가 메이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모젠이 점점 자람에 따라 새아버지는 아주, 아주 어린 아이만을 원했고 이모젠은 새아버지의 성적 대상이 자신에서 어린 동생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열두 살의 이모젠은 다섯 살인 어린 동생 메이지가 집 안 수영장에 빠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머리 위를 발로 살짝 누른 것이다. 끔찍한 상처와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이모젠이 생각하기엔 그것만이 사랑하는 동생을 위한 최선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심리 상담 이야기들이 있는데 심리 관련 서적이라고 해서 결코 어렵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들이 아니라, 상담실 하나하나가 너무 흥미진진했고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술술 읽혔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각기 다른 삶들이 공존하는데 그중에서도 심리학자가 초창기에 실습하면서 만났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담고 있기에 상당히 흥미로웠고 푹 빠져서 몰입해서 보았다. 환자들과 상황에 따라 타냐와 함께 아찔하고 안타깝고 놀라고 흥분하는 등 왠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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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상담실에 들어가서 상담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례집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위협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어서 시선이 확끌려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약간은 허구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 정서에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들어있답니 뒤로 갈수록 읽기가 좀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녀는 왜 다섯살난 동생을 죽였는지에 대한 상담 내용에서는 중간중간 다른 상담이 섞여 있어서 헷갈리고 집중이 안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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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번 정도 들리는 동사무소 2층 작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직원과 30분 동안 이야기 했다. 말은 건 쪽은 내가 아니었고, 그 분이었다. 비가 와서 조용한 도서관, 성이 같다는 이유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 분도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뭔가 푼수를 잠시 떨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차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빌린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에 대해서 그 분은 무서워서 이런 책 어떻게 읽어요 하는데, 차마 답하지 못했다. 이 책은 잔인할 수 있는데, 그다지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반사회적 행동에 관한 이야기, 극단적인 형태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 그 원인에 대해 물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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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 혼돈에서 질서로 향하는 여정! "요컨대 온전한 정신의 끝은 어디며, 정신이상의 시작은 어디인가?"(429)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 동기 중 한 명이 어릴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랬구나' 정도로 지나가며 우리는 여전히 친한 친구였고 지금도 친한 친구이지만, 솔직히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마음에 희미한 '쿵' 소리가 들렸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친구에게 미안하다. 쿵 소리는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당황했다는 걸, 이유도 없이 희미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걸 상징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안에 숨은 그러한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이 책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심리 상담집'이다. 저자는 영국의 권위 있는 임상 심리학자로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전문가이다. 그런데 저자는 완전 '초짜'(임상심리사 실습생)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전문가로서의 능숙함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초짜시절 자기가 가졌던 두려움과 부족함을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그녀의 고군분투를 독자들이 지켜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429). 임상 실습은 1989년부터 1992년 사이에 3년 동안 이어졌는데, 6개월 단위로 병동을 옮기며 실습을 한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저자가 옮겨다닌 총 여섯 곳의 상담실(외래환자 정신과, 아동을 위한 정신과 입원 병동, 일반의 진료소, 노인 요양소, 식이장애 입원 병동, 약물중독 병원)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이루어진 상담 사례를 소개한다.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는 책"이라는 아마존 독자의 평가는 허언이 아니었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소시오패스와의 긴박한 순간, 살고 싶어하지 않는 열두 살 꼬마 안에 감추어진 무시무시한 폭력과 비밀, 아이 아버지와 한 침대를 쓰기 싫어 자기 딸과 한 침대를 쓰려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격리되어 시설형 인간이 되어버린 장기 입원 환자, 자신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노년의 여자, 치매 때문에 악몽보다 더 지독한 과거(홀로코스트)로 돌아가는 노인, 완벽해 보이는 가족을 지배하는 각본과 그 안에 갇혀 신음하는 식이장애 소녀의 비극,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최악을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고통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풀어집니다. 비밀 보장의 의무는 핵심 원칙이기 때문에 여기 등장인물과 정황 등 모든 내용이 허구라고 하지만, 여기 소개된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안에 엄연히 실재하는 이야기이다. 상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고,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임상심리사'로서 저자는 '이상행동'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는다. 발작을 겪는 환자라면, 발작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의 발작은 뭘 상징할까를 묻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일관된 내러티브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비정상, 정신이상이라고 말하는 이상행동이 환자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생존 모드)이며,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그러니 나의 의사소통 방식에 그들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그런 행동을 통해 환자가 우리에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리 상담집이지만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병증이나 이상행동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삶과 사연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과 분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그 아래 숨은 진짜 인간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슬픈지 알겠다고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432). "그들이 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들을 버리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433). 노희경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통해 '정신병'은 미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동일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기 전에, 부디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소리 없는 신음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자고 말이다. 인류는 '진화'한다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그토록 잔인한 학대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홀로 떨어져 고립된 삶을 사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혼자가 편하다고 위안해보지만, 사실은 모두가 사랑에 고프다는 걸, 그래서 아사 직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마음에 자꾸만 들러붙는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녀석이라는 걸 알려 준다. 매혹적인 책이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 속에 오싹한 경고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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