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고두고 오래 읽어야 할 ‘수’의 역사 책 [리뷰] 수학, 철학, 신학, 과학의 뿌리를 찾아서 『수의 황홀한 역사』(지식의숲, 2016) ![]()
이 책 『수의 황홀한 역사』는 정말 오래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아마 평생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 주제와 내용이 수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 더 나아가 신학에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자연에 존재하는 수, 즉 자연수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철학자들은 실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반면, 수학자들은 1, 2, 3... 개라는 수를 가정한다.
책에서는 실재의 문제를 대하는 철학자와 수학자의 태도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적었다. 나에게 책 1권이 있을 때, ‘1’이라는 수는 정말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1’과 나라는 사람 1명의 ‘1’은 같은 것일까.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분명한 건 수학은 “인간 정신의 활동만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버트란드 러셀은 “꿩 한 쌍과 이틀이 모두 둘이라는 수의 구체적 실례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는 분명코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철학이나 신학, 심지어 과학에서는 공간, 시간, 연속 등을 하나의 체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이성을 상정하는 것인데, 이로써 자연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수학자, 특히 형식주의 학파는 수학이라는 논리적 기초에 집중한다. 기호 언어를 사용해서 명징한 것만 밝혀내려 한다. 모호한 것들을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도) 물리치려고 한다. 왜냐하면 “수는 우주를 규율”하기 때문이다.
수학 대 철학, 신학의 대결 역사
수학의 특징은 언제나 ‘왜’보단 ‘어떻게’가 더욱 앞서 등장했다. 자연을 해석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호기심이 지배하는 것이다. 책에선 수에 대한 철학이 1870년대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우주를 규율하는 수가 “어떻게” 자연을 드러내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뉴턴 책 제목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인 것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수라는 것이 인간만의 고유한 이성적 능력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새는 자신의 둥지에서 두 개의 알을 빼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1개를 빼면 아무 눈치를 못 챘지만 말이다. 특히 문명인의 수 감각은 4를 좀처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피부로 느끼는 촉각에 의한 수 감각은 더욱 제한적이라고 하니 무한대까지 갈 필요조차 없다.
인간의 손가락 혹은 몇몇 동물들의 손가락이 5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손가락의 숫자는 무엇인가를 셀 수 있는 여지를 남겼고, 과학이 발달하도록 도왔다. 어떤 부족은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20진법으로 셈을 했다. 바로 마야족이다. 만약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해서 30개였다면 30진법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람의 몸은 수학에서 매우 중요했던 셈이다. 책에선 “사람들이 열을 단위로 셈을 하는 한, 자신의 열 손가락을 보면 인간 정신 활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사람의 몸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2진법에 매료됐다. 라이프니츠는 “무에서 삼라만상을 이끌어내기에 하나면 충분하다”라고 외쳤다. 라플라스는 라이프니츠가 이진법에서 창조의 모상을 보았다면서 신에게 의지하는 그를 비판했다. 1은 하나님, 0은 진공이라고 본 것이다. 현대사회가 0과 1이라는 디지털에 기반 해 있는 것을 보면 라이프니츠의 말도 그리 틀린 건 아닐 수 있다.
특정 숫자를 살펴보자. 우리는 일주일을 산다. 7을 그리스도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영화 <세븐> 역시 이에 착안을 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6, 7, 40이 예언적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아무튼 그리스도교에선 일곱 가지 대죄, 덕목, 하나님의 일곱 영,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환희,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쫓겨난 일곱 마귀 등 관련 내용이 많다.
여기서 퀴즈 하나! 220과 284는 어떤 관계일까? 284의 약수를 다 더해보자. 그리고 220의 약수도 다 더해보자. 뭔가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이러한 두 수를 친화수라고 불렀다. 그 당시에는 친화수를 100개 정도 밝혀냈다. 현대수학에서는 이러한 친화수가 10억 쌍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수라는 신비한 세계, 우린 무얼 알 수 있을까
책에선 “숫자는 아마도 사유재산제도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우리는 떨어지는 낙엽들의 숫자를 보면서 ‘수’를 계산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우리 마음 속에 수라는 것이 내재해 있었던 것일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만큼 ‘수’의 문제는 경험의 문제를 초월한다.
수학에서는 모든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스시대에 이미 수학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깊게 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제논의 역설’은 현대철학 혹은 수학에서도 계속해서 논의하는 한 주제다. 제논의 역설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한 것이 아닌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등에서 보여진다.
칸토어는 “자유가 바로 수학의 본질”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수학적 상상은 자유에 다름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다만, 좀 질서정연하게 상상해야 할 것이다. 복소수를 두고 책에선 “허구란 적절히 해석되기를 바라는 기다리는 하나의 형상”이라고 적었다. 상상을 하되, 일정한 원칙을 갖고 접근해보자. 알고자 하는 만큼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의 ‘황홀’한 역사이다. |
|
1. 개인적으로 책 텍스트에도 집중하지만 저자가 전달하려는 아이디어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기초과학에 일정 이상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그에 준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라면 단순히 <수數의 황홀한 역사>의 텍스트 뿐만아니라 저자 단치히 교수의 설명방식에 매료될 것이라 생각한다. |
|
학교 다닐때를 생각해보면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수없이 등장하는 공식들에 질려서 왜 그렇게 되는지 제대로 이해할 틈도 없이 공식을 적용해 문제 풀이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이렇게 공부한게 나중에 내가 사는데 어떤 도움이 되나 의문도 많이 들구요. 졸업을 하면 수학과는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도움이 되기도 하네요.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방식 말고 수학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궁금해서 가끔식 수학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합니다. 최근에 본 '수의 황홀한 역사' 도 인류의 탄생과 함께 수학이 어떻게 생겨나 발전해 왔으며 현대 수학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제는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 인데 한국어 제목은 약간 바뀌었네요. 그리고 책을 쓴 저자는 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기 때문에 최근의 현대 수학보다는 현대 수학의 기초를 이루는 정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수식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소설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네요. 처음에는 숫자를 어떻게 세는지부터 시작하는데 우리는 10진법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문화권에 따라서 20진법이 기본이 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5진법 또는 2진법을 쓰기도 했네요. 인간의 몸을 수를 셀 수 있는 단순한 방법으로 손가락, 발가락이 있는데 어디까지 이용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나봐요. 수 계산의 혁명 중 하나는 아라비아 숫자와 기호의 도입이네요. 지금은 0~9까지의 숫자로 수를 표현하고 계산하는게 당연하지만 예전에는 로마자 문자로 수를 표기하였고 어떤 계산을 해야하는지 말로 길게 표현했기 때문에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계산도 복잡했습니다. 이후 a, b, c, x, y, z 등을 도입하면서 추상화되기 시작했고 대수학도 빠르게 발전했네요. 이렇게 사람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수학을 다루다가 유리수로 표현되지 않는 무리수,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존재한다고 정의할 경우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허수의 도입, 무한의 개념, 그리고 e, pi 등을 사용하면서 수학은 여러 분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수학은 어려운 것 같지만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반박할 수 없도록 명료한 것 같아요. 무리수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모순을 보이면서 무리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특정 소수를 가장 큰 소수라고 했을때 그 소수보다 큰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아하게 보여주면서 소수의 무한성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수학은 엄밀한 논증 속에 발전하면서 수학 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그리고 컴퓨터의 이론적 배경 및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등 많은 곳에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고 있네요. 수학의 역사를 한권에 넣기에는 부족하지만 수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흐름을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
현재 중등 교육 과정에서 "말, 감성"이란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영역은 수학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삭막한 물리만 해도, "빛은 과연 파동이냐 입자냐, 혹은 아인슈타인이 답을 정해 준 방식을 과연 답이라고 할 수 있느냐"를 놓고 하염없는 상념에 잠길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걸 캐고캐다 보면 철학의 영역에 도달하고, 혹은 칸트, 헤겔, 마흐 철학만 깊게 파고들어도 꽤 소양 있는 수준의 물리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수학은 문제가 감춘 정답을 찾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모색하는 쾌감이 고작입니다. 이런 건 정적 속에서 깊은 상념에 잠기며 먼 궁극을 응시하는 겸손된 희열이 아니라, 말을 타고 사냥감을 쫓는 동적인 쾌감과 연결될 뿐입니다.
|
|
최근에 수학에 대해 다시 돌아 보는 중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공을 들이는 게 아니니 공부한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 왠지 문제 많이 풀고 암기를 해야 제대로 된 학습을 한 것같은 기분이다. 입시라는 길목에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정통법보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방법을 택해야 했다. 덕분에 입시를 마치고 머리에 남은 수학은 없었다. 당시에는 딱히 미련도 없었기에 다시 (강제로) 학습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저 즐거웠다. 그러나 요즘 드는 기분은 억울함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머리에 남는게 없다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일말의 의구심를 갖는 정도였다.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정한 수학 교과서 순서대로가 아니고, 수학의 역사대로 학습했다면 어땠을까? 0은 발명인지 발견인지, 왜 이런 수식을 배워야 하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 활용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말이다.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가 이 책의 원제다. 역사적이긴 하지만 수학의 발전은 인간의 역사처럼 진행되지 않으니 더 어울리는 것같다. 수학은 어짜피 과학과 함께 아니던가. 자연수에서 정수, 유리수에서 무리수로 넘어가는 그 과정은 학년이 올라가면 그저 배워야하는 것으로 인식할 뿐이다. <수의 황홀한 역사>는 그 과정을 알려준다. 수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상당시 어려운 책이고 수준도 높다. 그래도 한번쯤 수학을 되돌아보고 싶은 이에게는 참고서를 찾아서라도 읽어보고 싶은 자극제가 된다. 복소수는 도대체 왜 만들어서 괴롭히는지, 미분과 적분은 정녕 항아리 빚을 때와 깍두기 썰때 필요한 건지 활용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렵다. 설명이 쉽지가 않다. 문과로 수능과 동시에 수학과 안녕을 외쳤기에 머리속에 삭제되어 그럴 수도 있지만 설명이 참 어렵다. 번역서이고, 수학 자체의 용어문제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제발 유리수와 무리수는 용어를 좀 바꿔 달라고!!!
|
|
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그동안 쌓은 실력을 하루에 평가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지만 현실적으로 택한 방법이기에 온 나라가 들썩이며 시험을 치렀다. 이들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 수학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수의 황홀한 역사이다. 아마 몇 몇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제목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이 수에 아무런 흥미나 관심이 없다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명 수포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딱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저자를 통해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흥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우리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철전한 논리와 합리를 바탕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기하학을 제외하면 나머지 분야는 철저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것들이다. 지금도 수많은 수학자들이 무모할 정도로 실패를 거듭하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수학을 논할 수 는 없다. 저자는 수학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재료이며 소재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0진법과 컴퓨터의 발달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이진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계산하기에 유익한 이진법, 불편한 십진법 그리고 12진법을 향한 인간의 노력 등은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을 보여준다. 우리가 학창시절 가장 기본적으로 익히는 것이 수와 연산 그리고 함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다. 예를 들어 ‘모든 수’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시작하는 수는 1로 정해져 있는 데 ‘마지막 수’는 모른다. 또한 ‘무한대’라고 하면서 ‘수렴’이라는 단어도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수학적 귀납법(저자는 반복적 추론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이라는 것도 배웠다. 뭔가 모순된 것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이것들에 놀랐고 힘들어 했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는 기호를 배우면서 수많은 약속들을 익혀 나간다. 아마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수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 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알고자 할 때 기본적으로 ‘수’에 대해서만큼은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반세기를 넘어 한 세기가 다가오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고전으로 익혀 온 책이라고 한다. 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 계산에만 익숙한 우리의 수학에 대한 편견을 깨 주리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