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계필담》그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학자는 매우 드물다. 대개는 과학적 현상을 천 년 전의 지식인은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는지를 기록하는 박물지나 교양서의 성격으로 읽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의 과학적 상상력을 담은 보물상자로 간주하고 싶다. 하권에서 비교적 유명한 일화는 석유와 미확인비행물체에 관한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석유'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몽계필담》이기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석유에 관한 동양의 문헌기록 중 가장 이른 것은《주역》이고 반고의 《한서》<지리지>에 "고노(섬서 연안 일대)에는 불이 붙는 유수(洧水)가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그러나 '석유'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몽계필담》 24권 <잡지>편에서다.
【부연로 경내에는 석유가 있는데, 옛날에 고노현에 유지수가 생산되었다는 마리 바로 이것을 말한다. 그것은 물가의 모래돌에서 나오고 있는데, 샘물과 서로 혼합되어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메추리 깃으로 그것을 묻혀서 항아리에 모으는데 순수한 칠같으며, 그것을 태우면 마(麻) 같다. 그러나 연기가 매우 많이 나와 장막이 온통 검게 변하였다. 나는 그것의 연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재를 긁어서 먹을 만들면 검고 윤기가 있어 마치 옻칠 같았다. 송연묵도 그것에 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대규모로 제작하여 그 위에다 '연주석액'이라고 새긴 것이 바로 이 먹이다. 이 먹은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세상에 널리 유행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제안하여 만든 것이었다.석유가 무한정 많아 땅 아래에서 무궁무진하게 생산될 수 있기에 소나무처럼 언젠가는 고갈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권 114-5쪽) 【延境內有石油,舊說“高奴縣出脂水”,即此也。生於水際,沙石與泉水相雜,惘惘而出,土人以雉尾之,用採入缶中。頗似淳漆,然之如麻,但煙甚濃,所沾幄幕皆黑。余疑其煙可用,試掃其煤以為墨,黑光如漆,松墨不及也,遂大為之,其識文為“延川石液”者是也。此物後必大行於世,自余始為之。蓋石油至多,生於地中無窮,不若松木有時而竭.】(제24권)
이처럼 과학자로서 심괄은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석유의 수집과 사용방법을 기록했고 후세에 석유 에너지가 유행할 것을 예측했고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석유를 이용한 묵을 만들어 사용했다. 심괄 덕분에 중국은 세계역사상 제일 먼저 석유를 가공해 물건을 제조한 나라로 볼 수 있다.
천 년 전 송나라 사람들이 외계인이나 우주비행선을 상상하고 외계인과 지구인의 가상전쟁을 몽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도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목격되었다는 기록이 바로 《몽계필담》 21권 〈이사異事〉편에 남아 있다.
【가우 연간(1060년대), 양주에 커다란 진주조개 하나가 있었다. 날이 어둑하면 보이곤 했다. 처음에는 천장현 호숫가에 보이더니 벽사호로 이동했고 나중에는 신개호에 나타났다. 십여 년이나 부근 주민들과 행인들이 그것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내 친구의 서재가 바로 그 호수 부근에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그 진주조개가 매우 가까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천천히 껍데기를 벌렸는데 마치 옆으로 그어진 금줄 같은 빛이 틈새에서 새어나왔다. 잠시 후 갑자기 그 껍질을 벌렸는데 그 껍데기가 얼마나 컸던지 자리 반 장은 차지하였다. 그 안의 빛은 은자 같이 희었다. 그 안의 진주는 주먹 만한 크기였으며 광채가 찬란하여 두 눈으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십여 리 범위 밖의 숲도 빛그림자를 받았는데, 마치 처음 떠오르는 태양이 비추는 것 같았다. 멀리서 그것을 보면 하늘에 들불이 피어나는 듯 붉었으며, 잠시 후에는 그것이 멀리 사라지면서 나는 듯 수면에 떠오르는 모습이 태양과도 같았다. 옛날에 명월주가 있었지만 이 진주는 명월과 같은 색깔이 아니었다. 그것이 발하는 빛은 화염과도 같았으며 또 태양 빛이었다. 최백역은 <명주부>라는 작품을 하나 지은 적이 있다. 그는 고우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늘 그 진주를 보았을 것이다. 근년에 와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번량진은 진주조개가 잘 나타나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은 언제나 배를 묶고 몇 날 밤을 보내며 조개가 나타나길 기다리곤 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정자를 '완주'라고 이름지었다.】(하권 79-80쪽)
【嘉祐中,揚州有一珠甚大,天晦多見。初見於天長縣陂澤中,後轉入甓社湖,又後在新開湖中,凡十餘年,居民行人常見之。余友人書齋在湖上,一夜忽見其蚌甚近。初微開其房,光自吻中出。如橫一金線。俄頃忽張亮,其大如半席,殼中光如銀,珠大如拳,燦然不可正視。十餘里間林木皆有影,如初日所照;遠處但見天赤如野火;倏然遠去,其行如飛,浮於波中,杳杳如日。古有明月之珠,此珠色不類月,熒熒有芒焰,殆類日光。崔伯易嘗為《明珠賦》。伯易,高郵人,蓋常見之。近歳不復出,不知所往。樊良鎮正當珠往來處,行人至此,往往維船數宵以待現,名其亭為'玩珠'。】(제2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