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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위해 그릇을 만들고 그릇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산진. 1959년 세상을 뜬 일본인이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그의 생에 대한 책을 도자기를 공부하는 한국인이 펴냈다. 일본에서는 이미 로산진이 활약하던 1920년대에 요리와 미식, 도자기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로산진의 공이 없지 않다. 서도, 회화, 도자기, 전각 모든 분야에 그의 타고난 재능이 맞물리면 화려한 성과를 나타내었지만, 역시 로산진을 기억할만한 것은 요리와 그릇이 예술로 만나 빚은 성과이다. 일본인들의 요리, 미식,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로산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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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박영봉 지음 | 진명출판사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백년 앞의 친구다.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단 하나는, 로산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졌다면 나는 만족한다. 로산진의 말이다. 이것은 로산진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서 로산진의 사후의 모습, 즉 현재의 모습을 다 담고 있는 예언적인 말 같기도 하다. 한 가지 특정한 단어로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다. 타인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적어도 불행에 더 가까웠으리라. 태어나기 전부터 그는 아버지를 잃고 세상에 태어나서도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도 못했다. 늘 솔직하고 직설적이면서 독설적인 말로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며 살았다. 안티 로산진이 참 많았으리라. 그런데 지금 일본은 그런 로산진에 열광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큰 액수에 거래가 되고, 그의 모조품조차도 거액에 거래가 될 정도이다. 일본 요리와 예술의 만남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로산진이 살았던 일본이, 로산진이 남긴 유산이 많은 일본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왜 도자기를 빚게 되었냐는 물음에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담기 위함’이라고 단호하게 말한 로산진.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신이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요리 재료를 구하는데 있어서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사람. 오늘 그의 요리가, 그가 만든 그릇에 담긴 그의 요리가 정말 먹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내용이 지루해서도,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로산진이라는 일본인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여러 모습을 겹쳐 보면서 나 스스로 로산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읽느라 시간이 더뎠다. 저자도 로산진을 유아독존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의 삶의 모습을 보면 분명 그는 유아독존그 자체였다. 하지만 저자는 로산진의 삶을 조명하며 그 부분을 그리 강조하고자 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읽는 나 역시 그 부분은 그저 읽고 스치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어려운 성장과정으로 인해 그런 성격이 생겼으리라 생각하며 덮어버리기에 충분하다. 일본 사람들이 왜 로산진에 열광하는지, 일본 요리가 왜 아름다운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릇으로써 요리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생각, 50년 전의 생각이라니 대단하기만 하다. 나의 삶에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플라스틱 그릇으로, 그냥 큰 양푼으로 그저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이 동물적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했다. 살아가면서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 중요한 일을 더 의미 있게 만든 인물이 바로 로산진이다. 그런 로산진의 마음을, 일본의 모습을 조금은 본받아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그렇게 로산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요리와 그 요리를 담는 그릇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작품사진과 함께 감상하면 더 좋을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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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상 최고의 미식가이자 도예가였던 기타오지 로산진의 일생과 철학의 이야기로 가득한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솔직히 로산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주인공의 낯선 이름때문이었는지.. 처음 들었던 느낌은 일본의 한 장인이 조선의 도자기에 열광했고, 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의 땅을 이곳저곳 답사하며 우리문화를 가져갔다는 내용을 읽고나선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이 가져간 우리의 도자기를 발판삼아 일본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자기의 나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씁쓸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으며, 힘없고 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우리 문화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원통함과 억울함이 들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울 만큼 왜장들은 우리의 사기장을 수도없이 끌고 갔으며, 그 덕분에 일본은 도자기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답답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만을 가지고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당시 백자의 종주국은 중국이었고, 조선도 이미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백자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사 상태에 빠져 있었고, 중국 또한 내분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나 무역, 문화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일본은 이렇게 해서 얻은 백자기술로 세계적인 무역을 통해 엄청난 국가적 부와 명성을 축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일본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모리쓰케가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모리스케란.. 요리를 그릇에 보기 좋고 먹음직스럽게 꾸미는 일을 말한다) 플라스틱과 멜라민 수지가 가득한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와 비교해 보면 조그만 식당의 식기 조차 대부분 도자기를 사용하는 일본의 모리스케 문화가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 기타오지 로산진이란 인물이 있었다. 기타오지 로산진.. 그는 절대 미각과 예술적 감각으로 일본의 모든 요리와 그릇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인물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한 사람이다.
1883년(메이지 16년) 교토의 가미가모 기타오지 거리에 한 집안의 유복자로 태어난 로산진은 너무나 가난했던 집안 형편으로 6살이 될 때까지 5~6번의 양자 생활로 떠돌며 자라게 된다. 그의 평생 학력은 소학교 4년이 전부였기 때문에 간단한 계산능력과 기초적인 한자 정도만 알고 자랐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돋보이기 시작한다. 한약방 보조원 생활을 하며 간판에 쓰인 한자들을 외우고, 신문에서 찾아 음을 익히며 스스로 공부했지만 15세에 서예대회에 응모를 해서 최고상을 받고, 많은 현상대회에 참가하며 실력을 기른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아는 것만큼 될 줄로 생각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안다는 것과 된다는 것은 전연 별개의 것이다. -로산진-
도자기, 서예, 그림, 시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받던 그는 호소노 엔다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요리와 도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눈을 뜨게 되고, 엔다이는 로산진의 운명을 바꿔 놓은 인물이라 칭할 정도로 로산진의 내면에서만 끓고 있던 예술적 재능을 끄집어 낸 장본인기도 하다. 이후 로산진의 인생은 도자기 연구와 미식이 전부가 된다. 책 중간중간 계속 로산진의 작품 사진과 설명이 나오는데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느낌은 천지차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수 있다. 요리와 그릇을 사랑한 진정한 예술의 장인이었던 로산진의 인생 철학은 쉽게 생각하고, 판단해버리는... 요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 줄것이다.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를 읽으며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히 일본에 그런 장인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의 자기를 발전시킨 무명의 수많은 장인들 역시 그 못지 않은 영향력과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로 조선의 도자기를 오늘날에 이르도록 평생을 살다가신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의 문화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흙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자연의 순리 그대로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훌륭하고 위대한 우리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줘야 할 것이며, 그 문화는 또 그대로 자손 대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인류 문명의 위대함을 또 한 번 느끼게 해준다. 또한, 우리의 것을 소중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주었고, 우리 에너지의 원천이라 말 할수 있는 흙의 소중함을 다시 배웠다는 뿌듯함으로 이 책을 읽기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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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와 관련된 책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는 일본 희대의 요리인이자 도예가인 로산진에 관한 책이다. 일본 도예가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한국도공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기본으로 둔다 하더라도 일본 도예계에서 로산진에 관한 평가는 살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로산진의 탄생에서부터 서도에서 이름을 높이고 전각과 조각을 거쳐 요리계에서 꽃피운 그의 재능이 도예에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로산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해온 어느 것도 한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다 그는 그가 해온 모든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이런 사람은 르네상스인이라고 하거나 천재라고 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 그의 예술세계만을 두고 본다면 일본 문부성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일명 인간국보로 지정하려고 했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대단한 세계인지를 알 수 있겠지만, 천재는 외로운 것일까. 일생을 독설과 오만으로 많은 적을 만들었고, 3번의 결혼과 이혼 등으로 사생활적으로는 그렇게 많이 행복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미국으로 그를 초대했던 록펠러 재단의 록펠러 3세 부인이 "당신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 작품만은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겠는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 일본의 요리는 입으로 맛을 보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이세키요리라고 해서 첫 상부터 순서대로 요리가 나오는 오늘날이 요정요리는 가히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다. 도자기로도 유명한 그가 도자기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요리와 그릇, 절대미각과 감각이라는 트라이앵글로 일본요리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인 것이다. 도자기를 만들 때 고민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자기를 빚는 작업의 출발은 '왜 하는가' 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확실히 한 사람이 로산진이라고 하겠다. 그는 도자기를 빚는 이유를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담기 위함'이라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간결하고 확실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마음에 남는 말이 되었다. 이유가 확실하다면 망설일 까닭이 없겠다. 나는 과연 내 삶에서 '왜 하는가' 라는 물음에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것이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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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칼럼을 통해서 이도다완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이도다완이 실은 우리의 것으로 원명이 [정호다완]이라는 글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그 맥이 끊겨 유물로만 전시되고 있는 그 그릇을 우리의 한 도예가가 살려냈다며 경남 어느 곳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기사이기도 했다. 그 이도다완에 대한 저서를 집필하신 적이 있는 신한균 선생의 감수로 만들어 진 책이라고 해서 눈길이 간 책이 바로 이 [요리, 그릇으로 말하다]이다. 엄마와 나는 같은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한 단면으로 엄마가 잘하는 것들은 나는 결코 넘어설 수가 없다. 피아노 연주, 공모전 글쓰기, 시낭송, 요리, 여성스러운 옷맵시, 등등.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엄마의 키높이를 벗어나듯 올라서야할 것들인데, 결코 그렇게 되지 못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라~!!는 현명한 누군가의 충고처럼 이미 엄마는 내 경쟁상대가 아닌 것을. 아주 오랜 후에야 깨닫는 것은 아마 내가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와 그릇을 좋아하는 딸은 그렇게 서로의 다른 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도 요리수첩을 몇권째 적고 계시는 엄마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맛나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지만, 예쁘거나 특이하거나 아예 심플하거나....다르게 말해서 어떤 그릇이라도 맘에 들면 좋아하는 딸은 어떻게하면 예쁘게 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엄마가 맛나게 만들고, 딸은 예쁘게 담고. 우리집 풍경은 그렇다.
이런 모녀가 눈독들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얼마전 엄마와 한 칼럼을 돌려 읽으면서 이도다완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엄마는 맛나는 요리를 담아내면 어떤 그릇도 예뻐 보인다고 주장하셨고, 나는 예쁜 그릇에 담겨야 요리도 더 맛깔스럽게 보인다고 주장하며 칼럼 하나로 다툰적이 있었다. 그런 모녀가 이 책에 눈길을 멈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가마쿠라 바닷가. 역시 나이탓인지 슬램덩크만 떠올려질뿐인 그 동네에 일본 최고의 미식가이자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이 살았다는 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1959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인데, 현재의 일본은 아직 그를 기억하고 있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백년 후의 사람들이다]라는 그의 명언은 후대 평가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일생은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유복자로 태어나 다른 집의 양자로 전전하지만 결국 짧은 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12세 무렵엔 한약방의 보조로, 15세 무렵엔 목판업을 업 으로 하고 살게 되었다. 그 후 각종 서예대전에서 입상하고 결혼도 하게 되지만 역시 그는 역마살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인 듯 했다. 로닝. 떠돌이나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를 지칭하는 말이라지만 그의 로닝의 방향은 놀랍게도 한국이었다. 조선의 서예와 전각, 도자기, 장롱, 김치에 맛들린 남자. 그는 아마 한국의 문화와 사랑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국적을 떠나서.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고집불통에 문제가 많았던 천재 로산진. 그는 일생에 문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독선에, 돈은 물쓰듯이 쓰고, 무엇이든 익히며 학습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어디로든 떠나고, 하지만 그의 생활과 달리 그가 이룩한 업적은 정말 국보급이었다. 그의 거절이 없었다면 로산진은 국보급 장인이나 무형 문화재로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예술가란 위계나 등급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았다는 데 "내가 없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만이다."라는 그가 남긴말이 한 인간의 독선이 아니라 명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바로 그의 신념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수다]를 보면서 가끔 느끼게 되는 일은 좌절감이었다. 가끔 한국인인 나보다 더 한국을 이해하고 아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때면 그러하다. 나는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 당연히 우리 것이니, 당연히 우리 땅이니....라고 생각했던 것에 후회가 밀려온다. 타인들도 아끼는 우리의 것을 왜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고 정작 아름다운 시선으로 봐 주질 못했을까. 라는 후회감.
후반부에 언급된 다른 한 사람, 아사카와 다쿠미의 일생은 짧게 덧붙여졌지만 아주 감동적이었다. 아마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한옥을 좋아하고, 조선의 도자기와 민속품에 관심을 두었고,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메우기 위해 청춘을 바치다가 한국에 묻힌 남자. 일본을 대신하여 사죄하며 살다간 한 일본인의 삶을 살펴보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몇몇 일본인들과 비교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맛나는 요리와 멋진 그릇의 궁합을 두고 금상첨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단 한 권의 책. 요리와 그릇이라. 기타오지 로산진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따라 여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양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미 가 버린 인물에 대해 우리는 좋은 것들만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가 남긴 것들의 위대함을 곱씹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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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맛의달인을 아십니까? 맛있는 요리대결과 자식과 아버지의 대결구도라는 ... 그리고 100권이 넘게 출간된 이 책. 맛의달인.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 책에서 자주 출몰하는 괴인이 있으니. 그 괴인의 이름은 로.산.진. 맛의달인에서 묘사되는 로산진은 괴짜라기 보단 하나의 선인으로 묘사됩니다. 고고한 하나의 학처럼.. 고매한 인격을 가진 하나의 인물로 묘사된 듯 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읽은 이 책.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를 읽어보니. 전혀~ 전혀 아니군요. 어떤 사물에 대해 몰입하고, 예술적 재능을 가진 것은 틀림없으나. 괴짜에다 독설가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 이 인물. 로산진. 20만여점의 도자기를 만든 이 인물의 도자기 1점의 가격은.. 현재 일본에서 적어도 200만원.. 1억 5천만원을 가볍게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도자기를 남긴 인물입니다. 희소성과는 큰 관계가 없이... 엄청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왜 이 인물의 작품은 이렇게 비쌀까요? 진정 명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자기의 명인이기도 했지만 요리의 명인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전문가 수준의 요리인이었으며, 미식가이기도 했으며, 서예가, 전각가였습니다. 도자기의 명인이라기 보단 식기의 명인이라는 이름이 더 맞을련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생활에 편리하게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면서도.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 것이죠... 전시회에서 남의 작품을 힐끗 보며 지팡이를 휘휘 저으며.. 내거 보다 나은 거 없네~~ 라며 냉소하는 그런 모습은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최고의 작품을 보면 뒤집어지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모습이 애기같다고 까지 표현하는 정도니까요.. 전 욕심이 많습니다. 능력이 되면 할 게 정말 많습니다. 로산진. 저와 닮은 점이 조금은 있기도 한 듯 싶기도 하구요.. 물론 비교를 하자면 턱도 없지만.. 요리를 좋아하지만, 명인 수준은 아니고 예술을 좋아하지만, 그림하나 제대로 못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미식가 정도도 아니고. 그렇지만, 또 하나의 욕심이 생기는군요. 여유가 된다면. 언제가 될련지. 알 수 없지만. 제가 만든 그릇에 제가 만든 요리를 담아서 맛있게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싶네요. 로산진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개나 고양이도 아닌데... 매일매일, 매 끼니 마다 똑같은 그릇에다 밥을 먹는 건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라고.. 공감할만한 부분은 절대 아니지만... 나름 멋진 개념을 탑재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오만하지만 존경합니다. 이 분 보다 조금 덜 오만해지길 기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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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미식가이자 도예가 로산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운이 좋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자랐지만 특별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거의 혼자서 공부하여 서예에서도 인정받고, 간판이나 글씨 새기는 것에서도 대가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요리 또한 마찬가지이며 그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가 공동으로 연 음식점 또한 호황을 맞는다. 진정한 요리의 세계에 빠지다 보니 그릇에도 관심이 많아져 직접 그릇도 만들게 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서 인정을 받아 서예가, 조각가, 전각가, 화가, 요리가, 도예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어떤 분야든 독학으로 이루어낸 로산진에게 스승이 없었다는 것은 얽매임이 없다는 의미이며,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다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로산진은 로닝과도 같은 식객생활을 통해서 아예 지존의 자질을 키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P66
이치고 이치에 일생에 단 한번의 인연이라는 의미로 최고의 정성으로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보통 일본 다도의 기본 정신이라고 하는데 이말이 로산진에게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로산진은 요리에도 이치고 이치에가 있다는 정신으로 음식에 최고의 정성을 쏟았다. 최고급 요리로 일본에서 명성을 떨친 로산진, 황족과 찰리 채플린까지 방문하였다고 하니 정말 최고의 요리집을 운영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전시회를 통해 예술가, 특히 도예가로서의 입지도 굳히고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일본 전통의 도자기들뿐만 아니라 조선, 중국의 것까지 소화 흡수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분청사기가 가진 오묘한 자연미나 청자의 깊은 맛은 중국의 그것이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쓰임에 어울리는 도자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P99
그의 도자기들은 자연스럽고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이 난다. 식물, 물고기 등 보고 있으면 친근하고생동감이 느껴진다. 조선의 도자기를 최고로 치고 특히나 계룡산 도자기를 최고로 쳤다는 일본 사람들. 로산진도 식민지시절의 한국을 방문하여 계룡산에 가서 도요지를 찾아본 적이 있다. 우리 도자기가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어찌 보면 도자기도 우리나라가 종주국인데 세계에서 알아주는 것은 일본 도자기이니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임진왜란 때 많이 끌려갔던 도공들, 그들의 후손이 일본에 많이 남아있어서일 수도 있고, 우리가 우리문화를 제대로 세계에 알리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문화가 일본을 앞서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로산진의 생에에도 많은 감탄을 했지만 도자기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고, 예쁜 도자기에 음식을 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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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것, 어떻게 하면 가장 예쁘게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뛰어난 미각의 소유자로서, 도예가로서 추구해온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로산진. 그는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느 하나 스승이라고 할 분을 모시지 않고 전각가, 서예가, 도예가, 요리사 등으로 많은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지금의 일본의 음식이 있기까지에는 로산진의 힘이 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요리의 미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차린 요정집에서 모든 요리를 담아낼 그릇을 일일히 주문하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은지 자신의 가마를 직접 박아서 손수 도자기를 생산해 냈을 정도이다. 주문 제작했던 도자기도 상당히 수준있는 작품이었지만 자신이 요리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그런 미가 제대로 나와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만들었던 것!!! 그만하면 대단한 고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대단한 신념 덕분에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어떤 분야에서나 천재이기에 독선적인 사람은 한두 명씩은 다 있는 듯 하다. 음악에서도 베토벤도 대단하지만 상당히 독선적이라 선배들에게 예를 갖추지도 않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작품 앞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감동하고 좋아하고 무릎 꿇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자신보다 대선배일 지라도 자신의 수준에 못 미치면 상당한 독설을 퍼부어 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요정집을 운영할 때도 대단한 요리사들을 달달 볶아댔었다고~ 그런 그였기에 서예가, 전각가, 도예가들 중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그런 그가 큰 코를 다친다. 로산진은 요리를 맡는다면 전체적인 경영을 맡았던 나카무라 다케시로에게서 완전 결별을 당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것은 인사권한이 없는 그가 요리사를 해고했다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그에겐 기회였다. 요정집에 신경을 쓰느라고 도예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이젠 전폭적인 노력을 들여 도예에만 시간을 쓸 수 있었으니... 그래서 그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도예가의 도자기로서는 도자기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라며, 도자기는 실용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던 그는 잘못 나왔던 도자기도 깨지않고 재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일본의 모든 도예가의 작품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단다. 우와~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의 존재가 없어서는 지금의 일본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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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는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돼. 늘 맛있는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으로 만들어 가지. (요코모리 리카의 소설 eat & love 중에서)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는 ‘그릇과 요리는 한 축의 양바퀴’라 생각하고 식기와 요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식 요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한 일본의 도예가이자 미식가, 요리사인 기타오지 로산진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며 쓴 에세이집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미식가이자 도예가인 그의 삶과 철학은 투박하지만 정감어린 도자기에 정성스럽게 혼을 담고 있었다. 시각적인 부분이 음식의 맛을 더욱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일본음식을 만날때면 많은부분 음식의 정갈함과 담아낸 그릇과의 조화가 아름답다고 느낀적이 많았었다.
장인에 대한 존경심이 살아있는 곳으로 일본을 꼽을 수가 있겠다. 얼마전 모tv의 다큐먼터리 프로에 소개된 내용을 소개해 보면 일본에는 100년이상 지속되는 기업이 10,000곳 이상 있다고 한다. 3대째 이어온 붕어빵 가게, 1800년대부터 지속된 기모노 집, 찻집 등을 꽤 볼 수 있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철저히 그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이런 정신,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철저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만드는 사람이 까다롭게 선택한 최고의 재료로, 수고와 시간을 아끼지 않고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면 고객은 비록 재료 선택과정이나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이사람이 만든 물건은 확실하다'는 믿음을 갖고 조금 비싸더라도 값을 지불하기 때문이다.이런 신뢰관계가 깨지면 몇대째 내려오던 기업은 문을 닫게 된다. 이것이 일본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장인에 대한 믿음이며 사회의 분위기인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일본에서 유서 깊은 전통 일식집에서 유통기한 위조등의 문제를 일으켜 큰 뉴스거리가 된적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게는 문을 닫았다.장인(匠人)을 우대하고 신뢰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음식에는 우리 민족정신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 그릇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우리의 그릇에 담아야 함은 자연스런 이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는 플라스틱이나 멜라민 수지가 만능이다. 물잔이 그렇고 술잔이나 국수그릇이 그렇다. 그리고 닳아빠진 알루미늄 양푼에다 갖가지 나물로 밥을 비벼 먹고는 배를 두드린다. 누가 뭐래도 든든한 게 최고라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스테인레스 밥그릇이 금속음을 내도 무관심이다. 매끈한 본차이나는 여유가 없고 차갑다. 우리의 그릇들은 어떤 것일까? 독, 항아리, 뚝배기로 우리의 식탁을 지켜 주었던 옹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놋그릇, 놋양푼 그리고 칠기 그릇들, 소박한 도자기 접시, 사발, 보시기들이 우리의 그릇이었다. ( p.173)
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일이 아닌것 같다. 요리를 담아내는 단순한 그릇에서 요리에 품격을 더하는 그릇의 가치에 일찍이 눈뜬 일본 최고의 도예가 로산진의 삶을 보면서 많은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음식과 그릇은 재료의 성질만 다를 뿐 한가지라고 한다. 음식을 담아낼때 천편일률적인 도자기에 담아내는것이 아니라 음식에 어울리는 질감과 색감의 도자기를 사용하는 것은 음식과의 조화까지 생각하는 격조높은 일본음식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