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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혔던 그들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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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하는 신문은 따로 없지만 토요일 아침이면 자주 한국일보를 사보고는 한다. 토요일에 실리는 가만한 당신 코너를 읽기 위해서이다. 매번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난 어떤 이가 살아낸 이력을 보는 일이 주말의 아침 상태를 꽤 괜찮게 만들어주고는 한다. 이것은 그렇게 신문에 실린 이들의 이야기가 묶여 나온 두 권의 책 중 두 번째이다.   ‘가만하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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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하는 신문은 따로 없지만 토요일 아침이면 자주 한국일보를 사보고는 한다. 토요일에 실리는 가만한 당신 코너를 읽기 위해서이다. 매번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난 어떤 이가 살아낸 이력을 보는 일이 주말의 아침 상태를 꽤 괜찮게 만들어주고는 한다. 이것은 그렇게 신문에 실린 이들의 이야기가 묶여 나온 두 권의 책 중 두 번째이다.

 

가만하다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다,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 등으로 그 뜻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 실린 이들이 세상에 알려진 명성의 정도로 보면 가만한 당신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오래 전에 읽은 신문이나 책자 등에서 이들의 이름을 본 적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모두가 낯설게 느껴지는 내게는 타당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썼기 때문에 그래 보이는 것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다 실제로 그랬던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우나 그들은 시대와 사회에 대해 때로는 표시 나게 또 때로는 묵묵히 맞서 저항하거나 적어도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미 스캇처럼 저항, 반항과는 다르게 다가온 경우도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종종 글쓴이가 가만히 서있는 나에게 오늘, 안녕하십니까?’라고 가슴을 찌르는 듯 던지는 질문을 듣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냥 이런 인생이 있었구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네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곱씹어 보고 반추해봄으로써 내 남은 인생을 가치 있게 꾸려나가야겠다는 진동을 느끼게도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글 속에 맛깔스럽게 녹여낸 글 솜씨로 인해 읽어내는 재미가 있음은 책의 장점이다. 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매주 이 정도 분량과 깊이로 부고 기사를 써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제공하는 글쓴이의 노력과 애씀에 작은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구입하면 같이 오는 번외 편에 실린 7명의 인물들에 대한 글쓴이의 평가는 번외 편 표지에 나오는 그늘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이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이들 중 일부는 범죄자였거나 범죄자에 가까운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만 생각하자면 권세를 휘두르고 부를 즐기다 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과 같은 자들은 지금도 이 세상에 넉넉하니까. 다만 야루젤스키나 마약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가만한 것은 누구일까? 이 책에 나오는 35명일까, 아니면 여전히 침묵하고 누군가의 선의와 투쟁에 묻어가는 나와 당신들일까 

 

P.S. 교정 상의 에러라고 볼 수 있는 게 눈에 띄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2세를 P.210, P.220 등에서 바오로 2세라고만 표시하고 있는데 요한 바오로 2세라고 쓰는 게 맞겠다. 바오로 2세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같은 쪽에서도 요한 바오로 2세와 바오로 2세를 같이 쓰는 실수가 있다. 현 교황의 이름도 P.214에서는 프란시스로 했다가 P.224에서는 프란치스코로 명기하는데 프란치스코라고 하는 게 타당하겠다. P.221의 성 이그나티우스도 가톨릭의 성인 이름이므로 한국 천주교에서 쓰는 성 이냐시오라고 해두었더라면 좋았을 표기이다.

a******9 2016.11.07.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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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가만하지 않은'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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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에 이어 『함께 가만한 당신』을 연이어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봤다.  1.우선은 기자로서 매주 부고(訃告) 하나씩을 공들여 쓰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매주, 아니 매일 누군가는 이 세상을 뜬다. 그 중 한 사람을 ‘편파적으로’ 골라 그의 생애를 추적하는 일이 바로 이 부고 쓰기다. 원고지 60매 분량. 그 안에 그 사람의 생애와 그가 살다간 시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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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에 이어 『함께 가만한 당신』을 연이어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봤다.

 

1.

우선은 기자로서 매주 부고(訃告) 하나씩을 공들여 쓰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매주, 아니 매일 누군가는 이 세상을 뜬다. 그 중 한 사람을 편파적으로골라 그의 생애를 추적하는 일이 바로 이 부고 쓰기다. 원고지 60매 분량. 그 안에 그 사람의 생애와 그가 살다간 시대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과, 맞부딪혀만 했던 현실 등등을 담아야 한다. 어떤 한 분야의 인물도 아니다. 사회 운동가도 있고, 작가도 있고, 과학자도 있고, 음악가도 있으며, 누명을 쓴 범죄자도 있다. 어떻게 그들을 알아내는 걸까?

 

2.

그리고 매주 죽음을 대하는 기자는 조금 우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러나 곧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글에는 죽음에 관한 기록보다는 그들의 삶에 관한 기록이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기자는 매주 죽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활동적이었던 인물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실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더 활력이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3.

대학 시절 신문에서 정운영 선생의 칼럼과 고종석 기자의 글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관점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그들의 글을 기다렸다. 그 후로 어떤 기자의 기사나 칼럼을 을 읽기 위해 찾아 읽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최윤필 기자의 을 읽기 위해 한국일보 홈페이지를 기웃거릴 것 같은 느낌이다.

 

4.

모두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2014년부터 2016년 어느 시점까지의 글들이니 그들이 살아간 시대, 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20세기 중, 후반이다. 말하자면 당대에 관한 기록인 셈이다. 위인이라고 할 수는 없으되,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은 아닌, 그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려 했고, 세상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기록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활동과 평가에 관한 것이지만, 그들에 관한 기록은 앞으로도 덧붙여질 것이다. 그들이 세상을 수동적으로 살다 가지 않았기에 그들 삶의 흔적은 이어질 것이다. 그 흔적은 점점 희미해지며, 또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따지자면 그들은 아직 가만한이들은 아닌 셈이 아닌가 싶다.

 

5.

다시 나의 부고를 생각하게 된다.

내 죽음 이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에 대한 기억은 얼마나 지속될까?

그러나 그런 질문은 부질없다. 소용없다. 의미가 있지도 않다.

이 부고집(訃告集)에서도 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자신을 보지 않았다. 죽음 이후를 생각했다면, 아마도 자신이 아니라 사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록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17.01.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