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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취미, 책 읽기. 한국인에게 취미를 물으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독서”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인은 책을 안 읽기로도 유명하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어쨌든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나 ‘다른 재미난 것이 있어서’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대학생 대상의 한 설문조사는 뜻밖의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바로 대상자 451명 가운데 44.9%나 ‘책을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를 그 이유로 꼽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16.7%)나 ‘독서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더 많아서(14.1%)’도 제시1)되었지만, 그 비중은 예상보다 낮았다. 또한 ‘곁다리 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저명한 서평가인 로쟈(이현우 한림대 교수)가 이와 비슷한 “책읽기가 정말로 재미난가? 다른 재미난 것은 없는가 2)”라는 질문에 “독서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재미난 것도 많을 테지만 무엇이 가장 지속적인 거냐고 묻는다면 단연 책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이나 아름다운 풍경도 30분만 바라보면 심심하다. 하지만 책은 몇 시간씩이라도 얼마든지 몰입할 수 있다. 이만한 강적을 알지 못한다.3)”라고 답한 것도 고려한다면, 한국인의 취미는 “독서”이지만, 취미생활을 즐길 여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 선택이 아닌 필수 책 읽는 습관이 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리학(性理學)의 뿌리가 시작된 송(宋)나라 진종(眞宗)때에는, 황제인 진종(眞宗)이 직접 나서서 책 읽기를 유도했다. 꽉 막힌 도덕군자들만 살 것 같은 송(宋)나라답지 않게, 노골적으로 물질적 이익으로 독서를 권장하는 “권학가(勸學歌)4)”를 만들고 배포해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를 권유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저 <권학가(勸學歌)>을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는 여전히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저자인 이진성은 “고전은 천재들의 저작이므로 고전을 읽는 일은 천재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천재들에게 ‘개인지도’를 받는 일이다. (물론) 고전읽기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의 체험적 고백에 따르면 “재미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난 서양철학 고전들 같은 경우는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판독 불가능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고전은 읽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두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주는 책은 인문 고전밖에 없고, 그렇게 뇌가 변화할 때만 우리는 생존5)”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 사회적 행위 만약, 고전읽기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것에만 만족하다면 책 읽기는 개인적 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책 읽기를 통해 자주적이고 행복하고 능동적인 인간이 되어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까지 주도한다면, 독서는 더 이상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가 된다. 일종의 양질전화(良質轉化)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신만의 독서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돈이 있어도 책이 없어서 볼 수 없었던 조선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클릭 몇 번이면 바다 건너에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새 책을 손 안에 쥘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책 읽기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제대로 책 읽기를 하려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책들의 홍수를 헤쳐나가기 위한 나침반이 필요하다. 만약 아무런 준비도 없이 책의 바다에 무작정 뛰어든다면 어김없이 익사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서평집을 통한 간접적 경험이 의미가 있다. 다시 한번 로쟈의 말을 빌려 보자. “사람들은 종종 (진정한) 앎과 아는 척을 구분하는데, 아는 척도 중요해요. 어떤 책에 대해, 서평이라도 읽었다면 일단 대화가 가능하잖아요? 독서 경험에 대한 공유가 가능해지는 거죠. 세상엔 책이 너무 많고, 그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저(로쟈)만 해도 가지고 있는 책이 만 권이 넘는데, 한 개인이 읽을 수는 없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서평이 그 불균형을 좁혀줄 수 있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하는 거죠.5)” 그런 의미에서 로쟈의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는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신만의 독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민의 여정은 그러한 여정을 통해 길러지고 단련될 것이다.6)”(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 <정의란 무엇인가>), “새해 예산안을 단독으로 강행처리한 뒤에 여당 원내대표는 그것이 ‘국가를 위한 정의’라고 말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서 이제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를 따져보자는 제안으로도 들린다.7)”(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 <왜 도덕인가?>), “자녀의 성공이 부모의 노력 덕분만이 아니라 행운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은 ‘똑 같은 부모’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고 서로 연대감을 갖도록 해줄 것이다. 더불어 성공에 뒤따르는 사회적 혜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부모 뜻대로 안 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8)”(부모 뜻대로 안 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 -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국가의 활동 영역이 후퇴한다고 해서 저절로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경험이 말해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 자유를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공적 문제로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와 공공성의 연계로 주장을 전개해나가는 저자의 결론은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9)”(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 <자유란 무엇인가>) 등 에서 볼 수 있듯이, 차가운 머리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뜨거운 심장을 가동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많아야 한 번뿐일 기회를 헛되이 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는다. 살아가기 위해서.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
1) “책 안 읽는 대학생들, 인터넷에는……”, <New Times> 2011년 11월 4일 2) 이현우,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 (현암사, 2012), p. 355 3) 위의 책 4) 진종(眞宗)의 권학가(勸學歌) 富家不用買良田 (집을 부(富)하게 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마라) 書中自有千鍾粟 (책 속에 본래 많은 곡식/봉록(俸祿)이 있다.) 安居不用架高堂 (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큰 집을 짓지 마라) 書中自有黃金屋 (책 속에 본래 황금 집이 있다.) 出門莫恨無人隨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이 없다고 한(恨)하지 마라.) 書中車馬多如簇 (책 속에 수레와 말이 무리 지어 있다.) 聚妻莫恨無良媒 (아내를 맞이함에 좋은 중매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書中有女顔如玉 (책 속에 얼굴이 옥(玉)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男兒欲遂平生志 (사나이가 평생의 뜻 이루고자 한다면) 六經勤向窓前讀 (창(窓) 앞에 육경(六經)펴고 부지런히 읽어라.) 5) 이현우, 앞의 책, pp. 80~81 5) 이현우, 앞의 책, p. 493 6) 이현우, 앞의 책, p. 333 7) 이현우, 앞의 책, pp. 337~338 8) 이현우, 앞의 책, p. 348 9) 이현우, 앞의 책, p. 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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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궁금증을 미리 상당 부분 해소시켜주는 서평꾼이 있다. 서평꾼이라는 어감은 이상하지만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현우는 이름에 걸맞는 서평 및 글들을 내주고 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책을 읽을 자유>,<그리고 책읽기는 계속 된다>는 그의 서평집들이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지 얼마 안되지만 서평을 모은 저자가 책을 내는 일은 이 사람이 최소한 책으로 남길만한 글들을 내보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로쟈 이외에 서평이 궁금한 사람은 장정일이다. 나중에 꼭 읽어보고 비교하는 재미도 생길 것 같다)
그의 첫 번째 서평집은 나에게는 좀 충격이었다. 책을 마구 사들이는 관계롤 최소한의 구매를 지향했던 나에게 서문만으로 바로 책을 구매하게 만들었다. 클래식이라는 말의 어원과 진정한 클래식의 의미를 그가 가진 지식과 일본의 어느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들려주는 고전의 다시 읽기의 묘미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서문에 끌려서 나머지 부분을 읽었지만 솔직히 쉽게 읽히지 않았다. 대중서적은 거의 없으며 지젝이나 러시아 문학작품을 열거하며 영화까지 나오니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야말로 험준한 산을 등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전 도서에 비해 상당히 쉽게 잘 읽히는 이번 서평집의 특징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 동안 나의 독서력이 조금 향상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그가 꿈꾸는 독서력을 가진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여 150권 읽기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보다 그거 써내는 글들은 타인에게 읽히기 위해서 친절해졌다. 주제는 역시 인문학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루며 인문학, 정치, 정의, 삶, 책 중독자 등 주제에 관한 글로 분류가 깔끔하게 되었다. 이 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그의 또 다른 저작인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는 이러한 서평이 따로 문학이라는 주제로서 분권된 느낌이다. 철학자의 서재에 관해서나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통해 좋은 입문서를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소개 때문에 곧 읽을 예정인 이런 책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오프라 윈프리가 그녀의 TV쇼를 통해 소개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다면, 그의 책 소개는 나의 구매욕과 독서욕을 자극한다. 그의 서평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지식의 정확한 전달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서평 스타일이 강한 사람도 좋지만 담백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영향력이 크다. 그리고 번역서를 넘나들며 꼼꼼하게 오류를 찾아내는 끊이지 않는 독서습관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도대체 시간을 얼마나 들여서 책을 읽어내는 지 궁금하다. 다양한 책들과 그에 더하여 일반 현상과 개념을 설명하는 솜씨 때문에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적어야했다. 어떤 책은 빌려보다가 너무 내가 얻고 싶은 지식의 밀도가 높아서 결국 사버리게 되는데 이 책도 아마 그럴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것과 비슷하게 알았던 것을 확인하며 쉼없이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해 동안 화제를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의 다른 저서에 대한 소개와 정의론에 대한 간략한 글 역시 추천하고 싶다. <닥치고 정치> 역시 나도 읽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역시 시차를 느끼게 해준다. 올 한해의 책으로(당시로서는 2011년) 꼽았던 닥치고 정치와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역시 내가 스쳐지나갔던 책들이라서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책을 많이 읽는 도인의 이미지라 그런지 책에 관한 질문들을 유독 많이 받을텐데 한 장의 끝이나 시작 부분에 첨가된 인터뷰의 내용 역시 늘 궁금했던 것이다. 답변 역시 인상적이라 챙겨보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지젝 전도사라 할 수 있는 그의 지젝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인상 깊다. 굴광성과 지젝에 대한 선호의 비유라니 색다르다. 지젝의 강연도 다녀왔지만 참신한 비유를 드는 그의 답변과 당뇨와 틱 장애가 있는 걸로 아는데 꽤 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태도 이외에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로쟈의 지젝에 대한 열광에 선뜻 손을 들 수가 없다. 지젝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봐야겠다. 서평꾼의 책을 읽고나면 거의 모든 서평 대상이 줄줄이 나를 괴롭힌다.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인데 또 다른 산을 만났다. 그래도 수 만 가지의 책이 나오는 때 신뢰할만한 안목을 갖춘 서평가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