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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편에 선다면 결코 패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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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세계 곳곳의 소식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접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식들이 있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일어난 일이, 또 그것이 세계 각지로 돌아다니는 뉴스일지라도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국내언론이 애써서 외면하기 때문이다. 신속, 정확한 보도를 생명으로 삼는다는 언론은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의적으로 판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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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세계 곳곳의 소식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접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식들이 있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일어난 일이, 또 그것이 세계 각지로 돌아다니는 뉴스일지라도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국내언론이 애써서 외면하기 때문이다. 신속, 정확한 보도를 생명으로 삼는다는 언론은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여 자신들, 아니 자신과 한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전한다. 최근에 불거진 최모 여인의 파문만 보더라도 그렇다. 국민들 대부분이 의문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영방송이라는 방송사는 물론 국내언론 어느 누구도 감싸기에만 급급했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한 종편 방송이 끝까지 파헤치지 않았다면 아마 그저 그런 설로만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수십년 전에도 이랬다. 해외에서 일어난 일, 아니 국내에서 일어난 일조차도 전해지지 않았다. 정권이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면 보도될 수 없었고, 설사 전해진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편집하여 내보냈다. 아무리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불과 수십년의 시차를 두고 정확히 반복되는 모습에 아연해질 뿐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한 사람의 권력을 위해서 그랬고, 지금은 권력과 자본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 뿐이다.

 

  뜬금없이 왠 언론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있는 저자가 두 사회에서 일어나는 퇴행들을 바라보며 쓴 글들이 두 사회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면 프랑스에서는 테러로 인한 비극이 있었다. 양쪽 정부의 대응은 얼추 비슷하다. 한쪽에서는 배와 함께 가라앉는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건져내지 않고 거짓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빴고, 다른 한쪽에서는 군사적 보복을 천명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에 바빴다. 한쪽에서는 유족들을 조롱하고, 추모하는 시민들을 종북, 좌빨로 몰기에 혈안이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테러를 당했음에도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를 거부한다'며 들고 일어났고, 테러는 IS의 머릿속에서 싹튼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과 비참함에서 비롯되었다며, 공습과 무기판매를 반대했다. 저자의 글 한 단락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역사 앞에서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 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맛 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6) 한쪽은 해방이 되면서 친일반역자들이 사회의 주류로 둔갑했고, 다른 한쪽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에 협력했던 자들을 빠짐없이 단죄했다.

 

  양쪽 모두 신자유주의에 대한 추종은 계속된다. 한쪽에서는 노동법 개악에 대한 반대시위 도중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숨졌다. 사인을 알기 위해 부검을 하겠다는 공권력, 그들에게 반성과 사죄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 직권으로 노동법을 개악했다. 시민들은 공화국 광장에 모여 밤샘시위를 했다. 밤샘시위 포스터 '' '일어서다' 사이에 '다시는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이란 말을 집어넣어 '다시는 무릎 꿇지 않기 위해 보내는 밤'이란 슬로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

 

  양쪽 사회를 다 경험한 저자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일상의 가치와 시대정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는다. 내 삶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한국사회에서 시작하여 유럽사회로, 부정의한 요구에 결코 무릎 꿇지 말라고 한다. 오늘 밤도 어느 곳에선가는 아무도 무릎 꿇지 않고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진실의 편에 서 있다면 결코 패자가 아니라는 그녀의 말이 맴돈다.

 

시험문제의 정답과 삶에서 만나는 정답이 다른 세상은 가치가 분열된 사회다. 우린 바로 그 전복되고 분열된 가치의 시대를 지르밟으며 가고 잇다. 깨져서 산산조각이 난 가치들을 밟아야 하는 우리의 발바닥에는 피가 맺힌다. (132)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고 불렀다. (240)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1 2016.10.27.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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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내용보기
에세이는 무겁지 않아서 좋다. 때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끼며 동질감에 친근함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고, 때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을 하기도 한다. 특히 저자의 관심과 시선이 머무는 곳이 나와 같다면 더욱더 빠져들며 읽게 되는 것이 에세이라는 생각을 한다.목수정의 에세이는 머나먼 프랑스에 살면서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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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무겁지 않아서 좋다. 때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끼며 동질감에 친근함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고, 때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을 하기도 한다. 특히 저자의 관심과 시선이 머무는 곳이 나와 같다면 더욱더 빠져들며 읽게 되는 것이 에세이라는 생각을 한다.

목수정의 에세이는 머나먼 프랑스에 살면서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지만, 또 많은 이야기가 현재라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시공간을 넘어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의미는 퇴색한 것이 아니기에 한꼭지 한꼭지씩 쓱쓱 읽다보니 책 한권을 금세 다 읽어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이 책을 첫장부터 차근히 잘 읽어내려간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무심결에 책장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읽었던 꼭지는 '학교, 권위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다'였다. 저자의 글쓰기가 어떤지 알아채기도 전에, 소제목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심결에 저자의 딸이 황급히 엄마를 부르며 '교복'을 입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단박에 나의 시선을 끌었다. 프랑스 학교에서 교복입기라니 뭔가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다보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만우절 거짓말을 할수도 있으며 - 그뿐인가. 부모들에게 직접 가정통신문을 보내기까지 하지 않는가 - 그 만우절의 거짓말이 단순한 속이기의 일화가 아니라 그안에 숨어있는 뜻, 저자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획일화 교육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는 훈련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이 에세이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깨닫게 되는 자각과 시대에 대한 성찰과 사유이다. 이미 한번쯤 생각해봤던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고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튀어나와 과거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해 그럴때는 좀 더 주의깊게 글을 읽게 되기도 했다. 언젠가 친구가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을 도와주는 현명하고 용감한 조연 - 아니 조연급에도 못미치는 스치는 인물들 중에 흑인이 많은거 아냐고 말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에 흑인을 포진해놓음으로 인해 인종차별을 피해가기도 한다는 것이었는데 정말 한동안은 영화를 볼때마다 생각이 났었다. 절대 주인공 자리는 내주지 않으면서 주변에만 맴돌게 하는 것, 어쩌면 대놓고 하는 차별보다 더 무서운 은폐의 기술. 아니, 모든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필요는 없겠지만 이 에세이의 한 꼭지에서 디에이치엘의 횡포에 대항한 글을 읽다보니 새삼 또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약한 자들끼리 싸우게 하고, 그사이 점잖게 돈을 챙겨가는 자본 혹은 그들을 호위하는 지배권력의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 청년이 복종 이외의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를 바란다'며, 두달 가까이 그 건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힘이없는 이민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자본권력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새삼 '분노의 화살이 겨누는 곳은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실의 편에 선다는 것이 고난의 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목숨을 거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희망의 밤은 언제 올까....싶어진다. 특히 요즘 정의와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승리하게 되었음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풍기는 악취에 괜히 기운을 잃어가는 듯 해 몸서리치게 된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 그날이 오면 몸치인 나도 더덩실 춤을 추게 되려나.....

 

 

 

 

 

 

 

 

 

 

이달의 사락 r***2 2016.11.04.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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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 잘하는 예쁜 언니의 날카로운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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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의 신작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은 2013년부터 2016년 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의 자녀는 부쩍 성장하여 열 살의 꼬마숙녀가 되어 있었다. 날카롭고 예민한 표현들은 여전하셨지만 한 아이를 기른 어머니로서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파리에서 프랑스 남자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분명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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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의 신작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2013년부터 2016년 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의 자녀는 부쩍 성장하여 열 살의 꼬마숙녀가 되어 있었다. 날카롭고 예민한 표현들은 여전하셨지만 한 아이를 기른 어머니로서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파리에서 프랑스 남자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분명 한국에서 아내와 엄마로 사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며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엄마로서의 바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삐딱하다거나 뾰족뾰족한 느낌이 많이 동글동글해진 느낌이었다.^^ 

예전에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공적인 일을 하였던 걸로 아는데 현재는 그냥 작가로만 활동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뼈아픈 일침과 통찰은 여전하다. 형형했다.

아울러서 프랑스 사회에 대해서 더욱 깊어진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 정권의 문제점들도 조목조목 지적한다.

완벽히 파리지앵이 되신 듯한 느낌도 한층 더했다. 파리지앵은 투덜이들이다. 각 분야에서 파업과 집회가 유럽 가운데도 활발하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미국에 대해 특히 미국의 대기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 프랑스어를 비롯해 자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서 배타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투덜대며 고집스런 파리지앵들. 하지만 그들이 얄밉지많은 않은 이유도 목수정의 글들을 통해 빠져들 수 있었다.

프랑스가 예전보다 국력이 감퇴하였고 특히 IS와의 전쟁을 겪으며 사회는 혼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오래고 유서깊은 프랑스인들의 전통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현재 이룬 것은 어느 것 하나 투쟁 없이 얻은 것이 없음을 목수정은 강조한다. 프랑스인들은 그러한 과거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긴다 이는 유형 무형의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로 구체화된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일갈은 책이 놀랍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저 멀리 유럽 대륙에서 쓴 글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용감함에 리스펙트를 보내게 된다.

아마 국내에서 였다면 청와대에서 정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들었을 것 같다.

일찍이 2013년 가을부터 박근혜 사퇴하라는 구호를 에펠탑 앞에서 외쳤던 교민들은 얼마나 앞서갔는가.

실제로 그 집회 때 목수정씨는 (악명높은) 일베에서 이른바 신상털기를 당하기도 했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 유럽방문단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목수정은 가족분들을 수행하는 일을 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사상과 노동운동 파트는 내가 이해하기에 조금 버거운 부분이었다. 유럽에, 파리에 살지 않기에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다.

앞으로 계속 읽으면서 유럽의 현재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파리는 혁명의 도시라는 걸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을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현 정권은 비록 보수화, 신자유주의 노선을 향하고 있으나, 절대다수의 노동자와 시민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복종하지 않을 것임을 작가는 힘주어 전하고 있다.

 

명품과 예술의 도시인 파리는 역사와 정치, 철학과 민주주의의 도시이기도 함을

작가는 때론 나지막이 때론 목청높여 외치고 있다.

 

 

책에서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240쪽 에서)

 

 

절망하지 않고, 일베처럼 비틀린 괴물이 되어 세상에 토악질하지도 않고, 세상일 나 몰라라 하며 스펙쌓기의 허무한 경주에만 머리 들이밀지 않고, 대자보의 릴레이를 이어가며, 그리고 기어이 거리로 나가 서툰 함성을 내지르는 젊은이들.

 

부정한 공권력 개입으로 권력을 얻은 박근혜 정권의 오물로 세상이 끝없이 뒤덮이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지혜와 용기, 감동을 만나고 있다.

이것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싸움이다.

(261쪽 에서)

YES마니아 : 로얄 b********5 2018.05.2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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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내용보기
캄캄한 밤이 되면 우리는 고단한 하루를 보냈던 몸을 잠자리에 뉘인다. 밤동안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바쁜 시간동안 돌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그제야 돌보게 되는 시간을 얻는다. 어쩌면 밤이 되어서야 우리의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이 되어서야 나 자신 뿐 아니라 남도 생각할 줄 아는 여유가 생기는 지도 모른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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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이 되면 우리는 고단한 하루를 보냈던 몸을 잠자리에 뉘인다. 밤동안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바쁜 시간동안 돌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그제야 돌보게 되는 시간을 얻는다. 어쩌면 밤이 되어서야 우리의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이 되어서야 나 자신 뿐 아니라 남도 생각할 줄 아는 여유가 생기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밤은 고마운 시간이다.

 

이 책의 제목 '밤'이란 글자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얘기에서 한국 사회와 프랑스 사회를 비교하기도 하고, 각각의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이슈와 문제들을 놓고 날카롭게 때로는 과격하게 메스를 들이대기도 한다. 

 

언젠가는 담을 뛰어넘기를 포기할 날이 올 거다. 그때부터 난 팍 늙을지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더는 무엇도 새롭지 않고, 낯선 도전이나 경험을 거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16~17p

 

꼭 나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어쩌면 난 늙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선 도전이나 경험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뒷걸음질만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고 삶의 반경을 축소하여 정해진 틀과 정해진 규칙 안에서만 살려고 한다. 내 삶의 반경을 넓히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거울을 들여다 보면 팍 늙어버린 것 같아 보인다.

 

파업은 인간성을 심각히 훼손당한 현대사회가 그나마 덜 미쳐 돌아가게 하도록 노동자들이 기꺼이 밟아주는 '브레이크'다. 그 브레이크마저 없다면 자본이라는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기계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23p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파업에 대한 소식들은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일 경우에는 더 그랬다. 그 사람들이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알아보고 공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편리함이 더 중요했다. 저자는 이어서 말한다. 파업의 목적은 '노동자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자본주의가 훼손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쉼 없이 계속 돌아가는 기계는 어느 순간 과부하가 되고 결국에는 고장나버린다.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점검이 필요하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도록 해야하듯이,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자본주의 또한 점검이 필요하고 쉼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곧 파업이라면 무조건 나쁘게 볼 것 만은은 아닌 것 같다.

 

우린 지금 울고 있지만, 결코 패자가 아니란다. 우린 함께 진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삶에 드리울 수 있는 거대한 축복이며, 인생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강렬한 휘장이다. 우린 그걸 갖고 있다. 143p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도 벌써 2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고, 배의 인양작업은 더디고 감감 무소식이다. 급기야 이제 다시 인양방식을 변경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서 떠나간 친구들에게 바치는 편지를 읽는 생존학생의 눈물에 저자는 말한다. 진실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잘 사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갖은 손해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쯤 우리나라는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공화국 광장에서 진행되어온 밤샘 시위의 슬로건은 진화했다. '밤'과 '일어서다' 사이에 "다시는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이 들어가 있다. 복종을 거부하는 시민들 앞에서 재선을 위해 기어이 그들을 밟고 가겠다는 지도자. 행진하던 시민이 외친 구호처럼, "국가 비상사태는 어쩌면 너희들"(사회당 정부)인지 모르겠다. 302p

 

올해 초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정부의 노동법 개악 시도에 대한 시위 장면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고,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및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오늘도 열렸다. 프랑스의 밤샘 시위 포스터 '다시는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서서 보내는 밤'처럼, 오늘밤도 진실과 정의가 아닌 거짓과 부정부패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며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서서 밤을 밝히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회의 부조리를 맞이할때 마다 안타까움과 때로는 분노를 느꼈고, 프랑스 사회의 우리보다 앞선 민주주의를 접할 때면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자의 생각에 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내 삶을 보다 의미있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진실의 편에 서는 것,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잃어버린 일상의 가치와 회복해야 할 시대정신에 공감하고 연대해보고자 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p*****s 2016.11.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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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나는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내용보기
처음엔 그냥 담백한 작가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고.   글의 요지는 이거다.학교가 나서서 권위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고,테러의 공포에 맞서기 위해 걷던 길 곳곳에 붙어있는 문장처럼,누구에게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다.볼테르는 말했단다.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말을 할 권
"나는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내용보기

처음엔 그냥 담백한 작가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고.

 

 

 

글의 요지는 이거다.
학교가 나서서 권위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고,
테러의 공포에 맞서기 위해 걷던 길 곳곳에 붙어있는 문장처럼,
누구에게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볼테르는 말했단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통치 불가능해지자' 말하기도 한다.

 

 

말을 못 한다면, 울기라도 해야 한다.
아니다.
정말 울어야 할 일 앞에서 눈물을 참지 말아야 한다.
'요구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이 사진처럼
목소리를 내라고 보호해주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날지 모른다.
사진 속의 한국인 몇이 프랑스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했고,
그것을 한국 대사관이 불허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자기네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요청을 기각하고,
오히려 프랑스 경찰들의 보호 속에 집회를 마쳤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선하기만 하다.

 

 

그러나 돕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를 돕고자 결심했을 때는,
내 옷자락이 젖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점점 포기하다보면,
점점 단절될 것이다.
점점 단절되다보면,
누군가가 외로이 죽어갈 것이다.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점점 희미해져가는 인간존중의 가치를 되새기려는 것이다.
점점 상실해가는 인간적인 마음을 되찾자는 것이다.

진부한 것 같지만,
이런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이 인간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이유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거기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s******2 2016.10.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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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 가져오는 변화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 가져오는 변화" 내용보기
하루 종일 뉴스를 보게 만드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촛불시위를 떠올리게 하듯 지금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2015년 프랑스의 노동법 개악으로부터 시작된 '밤샘 시위(La Nuit Debout)'슬로건에서 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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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뉴스를 보게 만드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촛불시위를 떠올리게 하듯 지금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2015년 프랑스의 노동법 개악으로부터 시작된 '밤샘 시위(La Nuit Debout)'슬로건에서 따온 제목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부당함에 대항해 행동하라고 외치고 있다.



            “공화국 광장에서 진행되어온 밤샘 시위의 슬로건은 진화했다. 

            밤(nuit)’과 ‘일어서다(debout)’ 사이에 “다시는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Plus jamais

            a genoux)”이 들어가 있다.”(p.302)


 프랑스에 거주하며 꾸준히 우리사회와 프랑스에 대한 책을 써오고 있는 저자 목수정은 이 책에서 일상

에서 시작해서 예술,한국사회,유럽 나아가서 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항해의 목적은 안전하게 돌아오는 데 있지 않다. 항해의 목적은 더 멀리 항해하는 것에 있다.

            (…) 나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손잡고 오래오래 월越담하고 월담하기를.”(p.18)



 외형적인 성장과 경쟁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정신은 안정불감증을 낳았고,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대를 위해 소는 과감히 배제된다(...)심지어는 텔레비전의 오락프로그램까지 경쟁 구도가 

           아니면 만들어지지 않는다."(p.30)


 반면에 프랑스인들은 '부드럽게'(두스망)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인생은 즐기는 거고 나는 내 인생을 즐기는 중이야라고 말하는 듯자신의 삶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의 리듬으로 삶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에는 어떤 타협도 거부한다." (p.31)



 이렇게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한국과 프랑스에서의 삶을 다른 모습으로 만들게 된다.

항상 뛰어 다니고,어디에 가든 '빨리'를 외치는 우리사회의 모습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기다림의 여유를 잃은 불안한 모습이다.


 저자가 바라본 한국사회는 진실은 묻혀지고,사회안에서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진실을 계속 덮고 거대한 거짓의 산 위에 축조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더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그런 사회에서 진실은 힘을 잃고,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바보들의 고집스러운 선택            으로 남겨지고 만다." (p.106) 


 

 이 문제들이 곪아 터져서 나온 것이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다.


 한국 뿐 아니라 유럽의 사정도 그리 다를 것은 없는데,위치만 다르지 너무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유럽은 철저히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무자비한 대륙이다.(...)만인의 만인을 

            위한 무한경쟁의 유럽으로 변질되어 갔다.공공부분 축소,대량 해고,긴축재정,기업을 위한

            규제 철폐,금융 자본가의 천국 이것이 지난 10여 년 동안 유럽연합이 견인해온 유럽의 모습

            이다."(p.228) 


 

 프랑스에서 영업을 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여러 미국 대기업들의 이야기나 좌파 정권이지만 차기 재집권을 위해 노동법을 개악한 올랑드 대통령을 보면 우리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대부분은 우리가 한 번쯤은 돌아봐야할 문제들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어느 때보다도 행동이 필요한 지금,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y******5 2016.1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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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아하게 단호한...
"이렇게 우아하게 단호한..."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저자의 첫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몇 년을 가지고 있어도 읽지 않고 있어 이건 나와 인연이 없는 책인가 보다고 생각해서 중고샵에 훌꺽 넘겨버렸다. 이렇게 우아하게 단호한 책인 줄 알았더라면 그 책도 이참에 읽는 건데 후회가 드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잘 아는 대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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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니 저자의 첫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몇 년을 가지고 있어도 읽지 않고 있어 이건 나와 인연이 없는 책인가 보다고 생각해서 중고샵에 훌꺽 넘겨버렸다. 이렇게 우아하게 단호한 책인 줄 알았더라면 그 책도 이참에 읽는 건데 후회가 드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잘 아는 대로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은 주로 우리나라 사회나 정치 문제를 바라보거나 페미니즘을 다루었지만, 그 가운데 우리나라와 프랑스를 비교하는 글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책에 대한 프랑스식 불친절이 눈에 띄기도 한다. 프랑스 책들을 사 보면 책날개에 저자의 얼굴은커녕 이름 말고는 소개 한 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이것은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책 자체로만 봐달라는 작가의 주문이며, 독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유명인사에 대한 추천사 한 줄 없다고(23p). 이 부분을 읽으니 그 나라가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찔리기도 했다. 나는 지난여름 책을 내면서, 나의 전공이 무엇이며 무엇을 했는지를 시시콜콜 다 털어놓고 말았다. 안 그래도 없는 이력을 탈탈 털어내 책날개에 실은 것이다. 그래야 좀 봐 줄 것 같아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스펙 사회 아닌가. 과연 그것이 책 판매나 작가로서의 나를 알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뭐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책을 즐겨 읽는 민족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나라만큼 책의 회전률이 빠르고 짧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막 새로 출간됐을 때 반짝 알리지 않으면 사장되거나 사람들에게 잊히니 그럴 수밖에. 프랑스는 실제로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즌이 아니어도 몇 년을 두고라도 한두 권씩 꾸준히 팔려나가기만 한다면 정말 작가가 온전히 책으로만 승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가 좌파긴 좌파란 생각이 든다. 아니 서양에서는 이미 좌파니 우파니 하는 구분이 없다고 하니 그냥 진보적이라고 해두자. 그녀는 책에서 세상의 모든 파업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것은 달리는 전동차를 멈춰 세우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거부하는 일은 반역이다. 파업을 하는 그 반역의 시간, 우린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왜 지금까지 열차를 움직여온 건지, 이 열차는 어디로 가는 건지, 우리가 인간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열차를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나사에 불과한 건지. 그 과정에서 우린 조금이나마 인간성을 회복한다. ...... 파업은 인간성을 심각히 훼손당한 현대사회가 그나마 덜 미쳐 돌아가게 하도록 노동자들이 기꺼이 밟아주는 브레이크이다. 그 브레이크마저 없다면 자본이라는 기계 속으로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기계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123p).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현대 사회는 거대 자본주의로 돌아가지 않는가? 조금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해도 되는데 뭐든지 많이 만들고 그것을 쓰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 가운데 인간은 자본주의의 부속품이 된다. 가끔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을 할라치면 손실비용을 따지곤 하는데 그것은 자본가 즉 고용주들이 몫이고, 그들도 자본주의라고 하는 큰 그림에서는 생산자이기 보단 중간책임자 격이고 보면 신용에 금이 가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자본의 크기를 결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그 크기를 맘대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그것을 채워야 할 사람들이므로 노동자를 닦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는 무조건 바쁘게 돌아가는 이 거대자본주의의 희생양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냐를 늘 생각해야 한다.

 

난 가끔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자국에만 머무르면 우리나라가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나쁘면 얼마나 나쁜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시야가 좁은 것이다. 외국에 나가 자국과 비교하며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글은 너무 프랑스에 경도되어 쓴 글도 보여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마치 프랑스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우리나라는 문제가 많다는 조의 글이 간간히 보이기도 하는데 예전에 우리는 무조건 서양의 사고방식이 좋다고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국력을 갖고부터는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난 이런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어떤 면에선 충실한 프랑스 통신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체적으로 좋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m****9 2016.11.0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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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저항으로부터 비롯된다
"희망은 저항으로부터 비롯된다" 내용보기
너무 다른 두 세계.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됐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무어란 말인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점은 동일한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역사가 차이를 빚어낸 것이리라.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제 막 시작했다 말해도 될 정도로 짧다. 그에 비한다면 프랑스는 서구 사회 중에서도 앞선 편이다. 적잖은 나라들이 굴곡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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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른 두 세계.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됐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무어란 말인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점은 동일한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역사가 차이를 빚어낸 것이리라.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제 막 시작했다 말해도 될 정도로 짧다. 그에 비한다면 프랑스는 서구 사회 중에서도 앞선 편이다. 적잖은 나라들이 굴곡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혁명’이라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본보기라 칭해도 될 정도다. 그러니 단순 비교를 일삼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아도 될 듯. 그런 프랑스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톨레랑스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반이민 정서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는 경기 침체가 전 세계에 미친 영향 중 하나인데,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극우 세력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점점 더 사람들을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케 만드는 분위기가 프랑스 사회에서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상적인 사회는 없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워 보이는 점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분위기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훗날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국가가 추진하는 바에 “네, 알겠습니다”라며 무작정 긍정하진 않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희망을 느낀다.

2016년 10월. 비교적 최근이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다.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테러다. 150만 인파로 하여금 “우리는 샤를리다”를 외치게 만들었던 사건을 떠올려본다. 표현의 자유. 이는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절실해진 바다. 많은 사람들은 두려웠음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바를 지켜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도로를 함께 걷는 집단적 경험. 우리 또한 최근 이를 통해 연대의 위력을 실감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소신을 실천하는 개개인이 모였을 때 가능하다는 점을 프랑스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2015년 11월, 페이스북 등 SNS 의 타이틀에 많은 이들은 “Pray for Paris"란 글귀를 걸었다. 또다시 테러.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총성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이민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조건을 형성하는 일에 일조하지 않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동시에, 국교를 지니지 않은 세속국가인 프랑스를 위해 기도해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기도는 어쩌면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사람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할 수도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성립 시점부터 이미 존재했던 붕괴의 조짐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며 버텨 왔다. 어이 없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던 것은 지난날 자신들이 행한 그릇된 선택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정작 기도를 필요로 하는 우리 자신을 외면했던 것 또한 그래서였을 것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저자는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던 바로 그 날 베이루트에서도 테러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다분히 서구 중심적인 사고에 익숙한 우리는 주목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베이루트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언론은 이를 다루지 않았고, 다루었더라도 단신 처리 했을 것이다. 사람들 또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와는 하등의 관련도 없는 제3 세계에 속한 일이라는 식으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인식을 만일 프랑스 사람들이 안다면 어떤 평을 할지, 물리적 거리가 먼 것 이상으로 사고 체계 또한 차이가 있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씁쓸했다.

물론 그들(!)도 전적으로 옳진 않았다. 이제는 ‘전임’이 된 한국의 대통령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도 잘못은 있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프랑스 또한 전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판매한 일은 어쩌면 IS의 파리를 타깃으로 한 테러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역으로 우리라 하여 하없이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언제나 실패했다 하여도 사람들은 역사에 반하는 행동을 용감하게도 취해왔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을 향해, 인간다움을 앗아가는 신자유주의를 향해 거침없는 싸움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도 참 많다. 건강한 사회,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세상을 향해 우린 분명 나아가고 있다.

 

이달의 사락 q*****2 2017.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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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밤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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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책들을 사 보면, 책날개에 저자의 얼굴은커녕 이름말고는 소개 한 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프랑스식 불친절은 책에 대한 존중이며, 결국 독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도 없이 책과 직접 대면하라는 주문이다.” 목수정이라는 작가이름을 처음 접한 건 경향신문 칼럼에서였다. 특이한 목씨. 이름은 흔하지만 성씨가 특이하다보니 잘 잊히지 않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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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책들을 사 보면, 책날개에 저자의 얼굴은커녕 이름말고는 소개 한 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프랑스식 불친절은 책에 대한 존중이며, 결국 독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도 없이 책과 직접 대면하라는 주문이다.”

 

목수정이라는 작가이름을 처음 접한 건 경향신문 칼럼에서였다. 특이한 목씨. 이름은 흔하지만 성씨가 특이하다보니 잘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내 성이 김씨에서 그런지 특이한 성씨에 눈길이 간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쓰는 칼럼은 흥미로웠다. 당시 어느 칼럼에선가 현 정부가 너무 무섭다고, 약간 공포 섞인 어조로 썼던 게 기억난다. 아마 정부 초기였을 것이다. 경향신문도 그렇고 그녀의 논설 어조가 좌파쪽이긴 했는데 어떤 탄압이 있나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공포심을 느낄까 했다. 책을 읽다보니 프랑스에서 저자가 참가한 집회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고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이 떴을 때 주저없이 구매했다. 제목도 맘에 든다. 난 은근히 프랑스에서의 낭만적인 생활이 가미된 에세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프랑스의 낭만이 담겨 있다. 자유로움과 개방성!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는 국가에서만 가능한 건가 싶다.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아직도 많은 규제가 있는 한국의 학교, 직장, 가족 제도와는 너무 다르다. 인종차별만 없다면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자신과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모든 것에서 흔들리기 싶다, 저자는 자기의 직관을 믿는 태도를 강조한다.

자식이 맞이해야 할 역경과 고난을 부모가 대신 맞아주지 말 것.남의 인생을 결코 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71쪽

자식 인생을 대신하려는 부모 밑에서 자랄 경우 역효과가 무엇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일절의 간섭도 거부하며 타인에게 필요한 도움도 전혀 구하지 않고, 가족 간에 도움도 거부하고 무심해진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적절한 도움도 요청하고 가족 간에 서로 도와가는 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됐다.

 

 

책표지의 파리 저녁 풍경에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이라는 제목이 별처럼 박혀 있다. 그런 밤을 맞이하려면 누구나가 평등한 사회여야 할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사회, 일보다 휴식이 먼저인 사회가 되길.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작은 행동으로라도 옮겨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게으름과 용기 부족 때문일 터. 이 책은 좋은 자극제가 되어 줄 것이다.

 

 

 

c******i 2017.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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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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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 목수정 / 생각정원 -대학교에 들어와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그것은 '대자보'였다.중국어를 그대로 차용해와서 불어로는 '다지바오'로 불린단다.그 새로운 세상을 흘낏 보고 지나친 사람과 매일 읽으며 세상을 확장시킨 사람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비슷한 나이임에도 단단하면서도 너른 눈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삶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책을 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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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

- 목수정 / 생각정원 -

대학교에 들어와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것은 '대자보'였다.
중국어를 그대로 차용해와서 불어로는 '다지바오'로 불린단다.
그 새로운 세상을 흘낏 보고 지나친 사람과 매일 읽으며 세상을 확장시킨 사람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비슷한 나이임에도 단단하면서도 너른 눈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삶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책을 읽으며 곳곳에 피어 있는 '혁명'의 꽃을 본다.
그것은 거칠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삶을 바르고 정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 같다.
때로는 용감하게 깃발을 들고 뛰어가지만 때로는 앉은 자리에서 흙을 파내어 더 깊숙하게 자신을 심는다.
글은 두세 쪽 분량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그 짧은 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개인에서 사회와 역사까지 아우르면서도 그것이 너무 멀어보이거나 막연한 느낌은 없다.
'지금 여기'가 너무 뚜렷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국을 택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사는 이유를 들으며, 우리는 아직도 혁명의 꽃이 화병에 꽂혀 있을 뿐 들판에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기엔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수동적이지 않다.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을 숱하게 밝히고 걸어가야 얻게 되는 기다림이다.
읽고 난 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긴 여운으로 남는 책.


"울어라.우리 모두 함께 울자.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함이고, 솔직함이다. 이토록 큰 슬픔 앞에서 우리 함께 목 놓아 울고, 그리고 진실을 역사 속에 남기기 위해 다시 싸우자."

"모든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다. 모든 개인적 고통이 사회적 고통이듯. 나의 고통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 남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되고, 그 안에서 개인이 치유될 때 비로소 역사는 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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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인생을 결코 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남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 결국 상대의 자존을 빼앗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p71)
- 시험 문제의 정답과 삶에서 만나는 정답이 다른 세상은 가치가 분열된 사회다. 우린 바로 그 전복되고 분열된 가치의 시대를 '지르밟으며' 가고 있다.(p132)
- (이희세)선생은 말씀하셨다. 정의로운 길을 택하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승리라고. 그 길에 서 있어야만 기쁘고 당당하게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를 찾으라고. 한 사람이면 족하다고.(p184)
- 세상의 모든 문명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어둠과 빛을 조율해내는 방식이 그 문명이 축적해온 문화적 역량일 터이다.(p198)
- 여성이 마침내 가부장제가 채워준 족쇄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류로서 세상을 함께 보듬어 나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 '여성 해방'이라면, 이를 위해 남성은 '남성 기득권'으로서의 가부장제를, 여성은 '남성이 허락해준 피난처'로서의 가부장제를 허물어야 한다.(p268)
l******8 2017.02.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