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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이탈리아 속담>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로 시작하는 젊음의 찬가를 기억하는가. 그대여, 그대여어어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 로 끝나는 그 노래를 생각하니 싱그러웠던 우리들의 시간이 떠오른다. 문득 젊음이 몸부림칠 때는 감히 나서지 못했던 길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같은 치기가 돈다. 할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실행에 옮겨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 젊지 않다는 것 말고 삶의 경험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괜찮아졌기에 다녀본 길이 아닌 서먹하고 낯선 길도 계획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티셔츠 한 장에 묻어나도 좋을 황금빛 태양이 만들어낸 땀방울과 느긋하게 늘어지는 사람들의 물결과 신화와 전설로 범벅이 된 섬, 시칠리아, 그곳에서 보내 온 대한민국 유명 작가의 사진과 글들은 꽤나 이국적이었다. 게으르다 못해 일상의 여유로 일부 포장한 현지인들의 거만한 나태도 요런 식으로 만나면 볼거리가 되고 안달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랑 시덥잖게 비교도 하면서 아~~~ 어디론가 멀리 멀리 떠나고만 싶구나..하는 부러움마저 생긴다. 뭐, 많이들 부러워하라고 만든 책처럼도 보인다.
작가 김 영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시기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소설가이다. 누구는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젊은 나이에 이미 다섯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펴낸 명실상부 부와 명예, 작가로써의 입지, 대중성에 부합하면서도 작품성에도 흠집을 내지 않는 한마디로 이 시대 잘 나가는 인물이다. 게다가 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여기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학교다)의 교수, 방송가에서도 상한가를 누리며 격하게 활동중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일상을 재정돈해야겠다는 의지를 발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사람의 용기와 마음속 성찰의 의지를 높이 사야만 하는데 평범한 일상인인 나는 당시 화가 무지 났다. 이 사람이 배가 불렀나, 그럼에도 여행중 짜증섞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여름으로 들어선 로마에 하필이면 왜 비가 오냐며 따지고 드는 옆사람하며, 여정의 어려움과 이탈리아 특유의 근성인 여유만만과 나몰라라스타일등 문화적 차이에 세련된 그만의 접근이 없었다. 이 사람이 그냥 평범해져 버리려나..하는 우려와 독자로써 기대가 반감되는 기분은 참 씁쓸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책을 들었는데 단숨에 읽었다. 재미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뻔하니까 단숨에 읽히는 거다.
세상에 쉽고도 잘 풀리는 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걸까. 서울에서의 일상을 정리하는 것, 예를 들면 각종 이체된 공공및 사적인 서류들을 해지하는 과정이랄지, 짐정리랄지, 문장 한 줄에 옮기기는 쉽지만 하루이틀해서 될 일이 아니기에 그 어려움은 절실하기만 하다. 시칠리아에 닿는 과정도 어렵고 이탈리아어도 어렵고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꾸려가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두어달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다. 비우고 버리는 동안 자기안의 잃어버린 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속을 헤아리는 정도로 이 책을 마무리했다.
거대한 세상속에 자유롭게 나를 풀어놓으면 내가 진정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먹고 노는 일말고 그들의 문화와 양식속으로 끼어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면 하찮은 일도 하찮지가 않고 작은 일도 작지가 않게 보인다. 끌려다니는 여행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질 않는다. 스쿠터를 몰고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며 마음에 맞는 장소에서 드러 눕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다. 시칠리아하면 <시네마 천국>의 토토의 마을이고 <대부> 돈 콜레오네의 고향이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비극적 사랑의 장소이다. 부츠모양의 이탈리아 국토만 보더라도 길지만 넓이는 별로인 그 나라에 길은 무척 험난하고 좁고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시칠리아는 그 부츠의 밑에 있는 섬이기에 교통편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보면 되고 마찬가지로 좁은 길들은 차보다 스쿠터가 훨씬 유용하게 보인다. 예전의 괴테는 이 곳을 어찌 다녀갔을까, 그의 여행기에는 가는 과정의 어려움보다는 팔레르모와 메시나에서의 일상의 탐구와 관찰을 한없이 보여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책을 두번 읽은 느낌은 여전히 불편하다. 여행에세이는 가볍되 여행에의 느낌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성찰의 산문이라고 광고를 하지만 그럴려면 차라리 깊이있게 파고 들었으면 훨씬 좋았겠다.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희화하지 말고... 화사한 이탈리아 남부를 사진에 담는데 왜 이렇게 흐릿하게 편집했을까하는 의구심은 여전했다. 한 편의 사진을 양페이지를 이어서 편집하는 수고로움이 나에게는 답답하게 보였다. 2012년 그의 소설이 새로 출간되었다고 들었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에세이는 글쎄...아직은 빠른 감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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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교수라는 그럴 듯한 직함과 문화예술 관련 라디오프로그램의 DJ까지..
강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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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나조차 통제할 수 없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독서에 대한 편향성이다. 일상이 바쁠 때에는 오히려 팍팍한 일상을 책에서나마 보상 받으려는 심산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소설이나 시 또는 신변잡기적인 수필에 매료되지만,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여지없이 철학에 빠져들곤 한다.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이러한 독서 습관이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졸업 무렵까지 장장 5년을 철학 서적에 묻혀 살았던 기억. 그에 따르는 행동의 편향성(금욕적 스토이즘에 가까운).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당시의 대학생들이 즐겨 출입하던 학사주점이나 당구장 또는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는 늘 '인간 쓰레기' 또는 '밥벌레들'로 치부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대부의 '돈 클레오네'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되어 나만의 세계에서 나와 배치되는 외부적 환경과 싸우곤 했다. 일단 그런 습관에 빠져들면 벗어나는 데만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었다. 그런 까닭에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그런 습관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애를 썼었다. 나는 어쩌면 선천적으로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동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심리학 관련 서적에 넋을 놓아, 나를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어느 여행기도 그렇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는 작가가 여행한 여행지의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보다는 내가 현 시점에서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 책을 읽으면서 맛보는 일상탈출의 짧은 휴식이 우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막상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결심한 순간에는 전문 웹사이트나 여행 전문서적을 뒤지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하기에 여행기는 일종의 성인들을 위한 동화와 같은 것이다. 큼직큼직한 총천연색 사진과 약간의 감상, 그곳의 역사적 배경을 적당한 지면에 할당하는 작업. 여행작가로서의 임무는 그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신영길이나 오다나처럼 아마추어 여행작가는 절제되지 않은 문체로 자신들의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전업작가에게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전업작가에게 여행기는 자신의 직업적 특권으로 누릴 수 있는 손쉬운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또는 그녀의) 명성과 역사적 지식을 배경으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또다른 기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나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계획할 무렵의 작가는 각종 문학상을 휩쓴 소설가로, 교수로, 방송인으로 또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었다. 소설가로서의 본업에 충실하고자 모든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1년을 보내기로 결심한 작가는 비어 있는 일정 동안 시칠리아 여행을 계획한다. 사실 여행이란 장소와 환경만 바뀐 또 다른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에 도착하여 시칠리아로 떠나는 여정에서의 혼란과 시칠리아 북쪽의 작은 화산섬 리파리에서의 평범한 일상.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에서 아그리젠토에 이르는 여러 도시들과 그곳의 사람들, 작가의 감상이 곁들여진 음식과 여행지의 역사적 배경. 절제되고 평이한 문체. 가끔 이러한 여행기를 읽을 때는 옆에서 이국의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주는 비서를 따로 두고 싶을 때가 있다. 낯선 지명이 나올 때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명을 찾고야 마는 내 성미가 독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보고 들은 진기한 것들'에 더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보태 적는다고 했다. 나는 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곰곰 생각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잃어버린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두에 잠깐 등장하는 자신의 과거였을까 아니면 많은 지면을 차지했던 여행지의 지난 과거였을까? 아무튼 나는 내가 바라는 소기의 목적이 이 책을 통하여 이루어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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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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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책은 김영하가 하는 특별한 여행기이다.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그가 들려주는 신화와 전설, 역사와 문학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고(간혹은 좀 지루할 때도 있다), 김영하의 시선으로 잡아낸 많은 풍광과 곳곳의 모습이 어떤 땐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어떤 땐 아름다움이 넘치고 또 어떤 땐 쓸쓸함이 느껴질 정도로 고적하다. 은밀히 기대했던 것처럼 그의 내밀한 고백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있는 그대로,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차분히 그려준 여행기였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토록 한심해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려” 그는 떠났고 이제 어디론가 다시 흘러간다. 이탈리아의 속담을 새기면서 말이다.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그래서 결론은 곧,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가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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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누구나 이루고 싶어 하는 지위와 편안한 일상들을 버리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탈리아의 시칠라 아 라는 섬으로... 만약 내가 작가님의 상황이었다면 교수라는 직함과 라디오 방송일 고정적인 수입들을 포기하고 자유를 찾아 떠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일상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숨이 막혀도 난 아마 질식할 때 까지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우선 이 책속엔 작가님이 직접 찍으신 사진들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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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문가가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자연 풍경들과 멋진 건축물들 그 나라의 일상적인 길거리 사진들도 매우 멋스럽게 담겨져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동화 속에서나 봤음직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아름다운 자연, 유명 명품,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품들로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끝이질 않고 그렇게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도 어마어마하지요. 다른 책과 영화, 여행 관련 TV프로에서도 많이 다뤄졌듯이 이탈리아의 대중교통은 OECD국가의 국민이라면 끔찍할 만큼 불편하다고 합니다. 연착은 기본이고 노선이 취소되는 사태는 일상인 듯합니다. 자국민들은 이미 익숙한 상황이라 큰 반발은 없지만 그 곳의 문화와 시스템에 낮선 여행자들에겐 끔찍한 경험일 수밖에 없겠지요. 이동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건 여행자나 자국민들에게도 불합리 할 텐데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좀 늦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는 여유인지, 대중교통이 불편해도 관광객은 온다는 식의 자신감인지... ![]()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나무가 울창한 시골길... 길게 뻗어있는 저 길의 끝에 내가 잃어버린 것이 있지 않을까...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법의 문 같은 분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그가 찾길 바랐던, 가슴속에 상처받기 쉬운 어린 예술가를 이 어행길에게 찾았을지... 나만의 상상으로 짐작해보았다. 찾았을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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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글이다. 김영하답다. 이래서 소설가가 쓴 기행문은 여느 기행문보다 느낌이 좋다. 문장이라는 도구가 기행문에서는 정말 빛을 발한다. 같은 풍경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다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이 나와 맞는 코드다. 서정적인 흐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역사적인 이야기꺼리가 풍부한 것. 그리고 시기적절한 분위기에 고양이가 발랑 드러누워 있는 장면을 놓치지않는 섬세함까지도. 여자분들이 많이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을 난 싫어하는 데 그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도 참 싫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풍경들을 순식간에 학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현학적인 문장 자체가 짜증이 났달까? 잘난 척은 좀 강당에서나 하라구!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아무튼 그건 단순히 성향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영하가 그리는 기행은 나와 잘 맞았다. 김영하가 간 곳은 시칠리아다.
나는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풍경과 나, 서로에게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풍경은 풍경대로 빈정이 상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그 조그만 앵글안에 갖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그들을, 그 풍경들을 기억으로 떠 올리는 게 더 좋았다. 그게 더 큰 행복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좀 달라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치는 못한 일이었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지쟈스!
그래서 난 생각한다. 좋은 모습을 좋은 글로 남기는 거. 그거 굉장히 매력있는 일이다. 물론, 김영하만큼의 풍부한 감성과 멋진 문장력이 뒷받침돼줘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런 능력이 없어도 글을 남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거다. 그러나 그건 일종에 뭐랄까, 풍미를 더해주는 가니쉬 같은 거? (이런 코딱지 같은 비유력하고는!)
뭐랄까, 뭐랄까,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보는 시각이 다를달까? 그리고 그 다른 시각을 독자가 함께 느낄수 있도록 푸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장력을 지녔다는 것도 소설가들이 쓴 기행문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책은 사진과 글로 구성돼 있고 사진은 김영하가 직접 찍은 것인가 보다. 나야 사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고 글은, 글은 참 좋다. 편안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작가의 감성적인 눈으로(감정이 막 오버되지 않은) 바라보는 풍경과 그 풍경이 가진 역사가 잘 조합돼 있다는 점이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중에서도 가장 격동의 시간을 많이 보낸 섬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아직도 자신들은 이탈리아 국민이기에 앞서 시칠리아 국민으로 생각한다고 알고 있다. 스페인 까딸로냐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그럴만한 역사적인 토대를 지닌 지중해의 섬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멋진 풍경속에 그들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는 동쪽 대륙보다 서쪽 대륙을 좋아한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제 아무리 경이로운 풍경이라도 역사의 손길이 묻어 있지 않으면 뭐랄까, 좀 야가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 기절 초풍할 지경이고 귀가 먹먹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그 뭔가가 있지는 않다. 그냥 시원하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문명이 묻어있는 곳이 좋다. 그 문명 안에 있는 자연이 더 좋다. 그래야 내 삶에 조금 더 실감이 난다. 이런 역사적인 사연이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3자 입장에서 화산호의 풍광을 비교하자면 후지산의 그것이 백두산의 천지보다 훨씬 더 장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난 천지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다. 지인이 말하기를 그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그냥 멍때리고 홍해를 보는 것보다 "저 자리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휘둘렀다지?"라며 보는 것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더 써봐야 계속 뻘소리만 할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결론만 딱 말하자면 시칠리아에서 머문 김영하의 편안함이 고스란히 문장을 타고 전해진다. 그래서 나 역시 지중해의 공기가 느껴지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좀 괜찮았다. 나도 이젠 어느 곳을 여행하면 이런 식의 기행문을 남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땐 노니라고 못했지만 이젠 그럴만한 상황이 된 것 같다. 마누라랑 같이 돌아다녔다는 게 젤 부럽다. 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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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부대의 중심은 영원한 이동이다. - 체 게바라
작년부터 모 출판사 까페에서 연재되던 김화영 선생님의 프랑스 여행 연재를 읽으면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게 실현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올 상반기까지는 그 일에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잘 된다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뭔가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의 내가 참 좋다. 미이라처럼 생기 없고 말라 비틀어진 인간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심장이 뛰는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20대는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이다. 그 때 온 삶을 지배하는 감정은 아마 ‘불안’일 것이다. 내가 무엇이 될지, 앞으로 뭘 하고 살지,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건지, 사회인이 된다는 건 또 어떤 건지,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삶을 온통 장악한다. 대학에 가며 부모와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사랑이나 결혼 같은 혼란한 감정들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정된 삶의 궤도에 진입하면서 산다는 건 루틴한 일이 되어 버린다. 물론 더 이상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져버린 사회에 살면서 언제 해고가 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상존한다. 언제라도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잃어버릴 수 있다. 내 노력 여하와 상관 없이. 그것 역시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불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인생은 ‘예측 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아주 단순한 삶. 연봉이 많건 적건 상관 없이, 100평짜리 집에 살건 원룸에 살건 상관없이, 비싼 외제차를 타든 국산 경차를 타든 상관없이 결국 산다는 건 뻔해진다. 하지만 삶이 이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은행빚 져 산 집, 할부로 산 차… 그 빚들을 갚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럴러면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뻔하고 단순한 답 때문에 꾸역 꾸역 밥벌이를 한다. 비슷한 나이에 똑같이 결혼하고, 비슷한 나이에 똑같이 애를 낳고, 비슷한 나이에 애들 사교육에, 이런 저런 비슷한 걱정, 걱정, 걱정들. 그래서 어느 순간 산다는 건 재미없고 따분한 일이 되어버린다. 참 단조롭고 빈약한 삶. 내일 당장 눈을 떠도, 내일 하루가 오늘도 똑같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달 뒤도, 일년 뒤도 딱히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러다 애들이 큰다면 애들 유학 때문에 가족이 찢어지기도 하는 거고. 뭐 그 정도의 작은 차이나 변화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게 현대인의 삶은 흘러간다. 그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권태' 정도가 될텐데, 이 '권태'라는 감정은 '불안'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어린 날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날, 건달의 세월을 견딜 줄 알았고 그 어떤 것도 함부로 계획하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 문득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새삼 깨닫고 놀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비슷한 옷을 입고 듣던 음악을 들으며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느새 그토록 한심해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애써 외면해왔을지도 모른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pp. 291-292) 여기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있다. 국립 예술대학의 교수이며,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이자,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이다. 결혼을 했고 서울에 자기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다.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그의 책들이 어깨를 맞댄 채 사이좋게 놓여 있다. 개중에 어떤 작품들은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도 되었을 뿐 아니라 몇 작품은 해외에서도 출판되었다. 밟으면 으르렁거리며 달려 나가는 힘 좋은 승용차도 있고 묵직한 오디오 시스템도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이 남자, 남보기엔 부럽기만 한 이 남자,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남자의 영혼은 젖은 비옷 같다. 그리고 그 균열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아내이다. 학교를 그만 둬. 방송도 때려치우고. 그해 겨울에 아내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지? 소설을 더 열심히 써. 소설은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어.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써. 소설가는 봉제공장 노동자가 아니야. 계속 일한다고 생산량이 늘지는 않아. 어쨌든 그만둬. 너무 힘들어 보여. 그리고 아직 젊을 때, 좀 더 소설에 집중해. 공무원 연급은 어떡하지? 건강보험은? 매달 나오는 월급은? 성과급은? 그리고 직장이 있기 때문에, 아니 교수이기 때문에 받는 이런저런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들은? 이를테면 이 아파트를 살 때 꾼 저리의 대출금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생활비를 줄이고 어떻게든 살아가면 돼. 신혼 때는 그런 것 없이도 잘만 살았잖아. 애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있어.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내가 당신을 알아. 당신은 눈앞에 있는 모두를 만족시켜야 되는 사람이야.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야? 왜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돼 학생들은 어차피 자기가 알아서 커나가게 돼 있어. 선생이 누구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안 그래? (pp. 22-23) 이런 배우자는 축복이다. 그래서 김영하는 다니던 대학에 사직서를 내고, 라디오 프로도 그만두고 정착민으로서의 모든 짐들을 처리한 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이 마흔에 이룬 모든 것들을 다 내려 놓은 채. 그리고 몇 개월의 빈 공백 동안 시칠리아로 떠난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면 여행기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결국 마흔의 자아 찾기, 정도가 될 수 있겠다. ‘네가 잃었던 것을 기억하라.’ 살면서 잊어버린 소중한 가치들, 소중한 사람들. 도둑맞았으면서도 그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던 삶의 기본적인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집과 차와 돈과 바꾸어버린 것들. 그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사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나는 어떤 것에서 보람과 기쁨과 즐거움을 얻던 사람이었더라?’ 뭐 그런 작고 소소하지만 귀한 것들. 소비하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던 내가 진짜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 벌 수 없다는 건 소비할 수 없다는 것, 소비할 수 없다는 건 낙오이자 인간 자체일 수 없는 것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짜 ‘나’를 대면할 수 있다. 달팽이처럼 이고다니던 무거운 짐들을 잠깐 내려 놓고 가볍게 떠난다. 그 곳에는 사람이 있고 그들의 삶이 있다. 산다는 것의 다양성, 사람 살이의 다종함을 목격하고 경험한다. 중년이 된 남자는 그 속에서 어린 예술가였던 자기 자신을 만난다. 물론 누구나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혹은 두려움 때문에. 그러나 때로는 멈출 필요도, 그 멈춘 자리에서 생각이라는 걸 해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올바른가? 이 길을 계속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을 살도록 추동하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 등등. 내가 가진 그 수많은, 그러나 한 번 들춰보지도 않은 DVD들, 듣지 않은 CD들, 먼지 쌓인 책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애썼던 것일까? 그냥 영화는 개봉할 때 보고, 혹시라도 그때 못 보면 나중에 빌려 볼 수 있었을텐데, 책도 도서관에 가서 읽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모든 것이 막힘없이 흘러갔다면 내 삶은 좀더 가벼워질 수 있었을텐데, 더 많은 것이 샘솟았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인생을 흘러가는 삶, 스트리밍 라이프streaming Life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p. 34)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지 말자. 돈과 권력, 가족과 지위, 사회적 성공 등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낡아버린 부르주아 신화일 따름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삶을 무겁게 만든다. 애벌레인 채로 같은 애벌레들을 짓밟고 짓이겨가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안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 공범자들처럼 침묵하고 있을 뿐. 진짜 행복하고 싶다면, 그걸 정말 누리고 싶다면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질적 변환(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 나비가 되자. 가볍게 유동하면서 순간순간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타인과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줄곧 올곧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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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소설가인데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다고 소감을 말하고 있으니.
살아가다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여유 시간이 두 달쯤 주어지고, 그 두 달 동안 지내고 싶은 곳에서 머물 수 있게 되는 그런 행운이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작가는 시칠리아를 택했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시칠리아섬. 지중해 역사 이야기나 읽을 때 만나게 되는 땅, 무수한 역사적 사건을 품고 있는 섬. 먼 섬.
유목민의 삶.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안정적인 것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심심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 테고, 심심함에 지쳐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떠돌 수밖에 없다. 역마살이라고 했던가. 일생이 역마살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끔씩 역마살에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때는 좋아 보였으나 이제는 짐작만으로도 피곤할 것 같은 유목민의 떠돎. 내게는 그 유전자가 적었나 보다.
시칠리아처럼 긴긴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축복이겠다. 자연이면 자연, 문화유산이면 문화유산, 부러운 일이다.
함께 실려 있는 사진, 보고 있으니 좀 설렌다. 섬을 향해 갖기 쉬운 막연한 동경, 불러일으켜 준다. 스쿠터를 타고 섬을 일주하든, 천천히 걸어서 일주하든, 동네 사람들과 낯을 익히면서 그들의 일상에 함께 젖어드는 짧은 삶.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새로 잊어도, 괜찮으리라 싶다. 두 달 정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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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이 된 소설가 김영하의 좌충우돌 시칠리아 생활기!
죽음을 예감한 어느 노인이 그동안 자신의 소원을 찾아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같은 병실에 있었던 또 다른 노인은 함께 대화한 죄(?)로 그 모험에 매료되어 둘은 함께 병원 문을 나선다. 지난 해 진한 감동을 남겨준 영화 <버킷 리스트>의 대강 내용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겨지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녹아드는 얼음 같은 보물이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할까나 적어놓은 리스트, 버킷 리스트는 마지막 소원의 목록들이다. 노인의 소원은 ‘여행’이었다. 이 나라에서 이걸 하고 싶고, 저 나라에서 저걸 하고 싶었다. ‘놀이같은 돈벌이’를 하던 노인과 ‘지겨운 밥벌이’를 하던 노인의 소원은 같았다. 비록 늙어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갔지만 그곳에선 청년이 되고 소년이 된다. 여행은 그런거다. 지금까지의 나를 확실하게 잊으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두려움, 경탄과 피로가 함께 하는 그곳에선 누구나 같은 조건의 사람이 된다. 내가 있는 이곳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저곳이 궁금해서다. 여행은 어쩌면 ‘각성’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는 세상을 깨닫고, 내 정체성을 깨닫고, 인생을 깨닫는다. 책을 살 때, 부모님께 용돈드릴 때, 내 사람을 즐겁게 해줄 때 등 돈 쓰임이 참으로 유용할 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또 하나는 여행이 아닐까? 젊어서는 다리는 튼튼한데 돈과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떠나고, 나이 들어서는 돈과 시간은 충분한데 다리가 부실해서 여행을 못떠난단다. 어중간한 시간과 돈을 가진 지금, 나는 왜 떠나지 못할까? 아직 필요를 모르는 걸까? 막연히 두려운 걸까? 큰 맘 먹고 떠나면 좋을 것을 가지 못하고 엄하게 ‘남의 다녀온 이야기’에만 침을 흘리고 듣는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워한다. 다른 것 아닌 그들의 여유와 용기를 부러워한다. 바보처럼... 오늘도 부러운 한사람의 여행이야기를 주워 들었다. 어느 날 어느 소설가가 ‘진정한 유목민’이 되기 위해 떠난다는 내용의 신문에서 읽었는데, 그가 바로 ‘김영하’다. 제 버릇 남 못준다 했던가? 그가 떠난 곳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하늘로 날려 책을 지었다. 제목도 멋지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이다. 부러운 사람의 더 부러운 이야기, 그 책을 읽고 만거다. 읽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손이 가 어쩔 수 없었다. 빌어먹을...
미치도록 글이 좋아 소설을 쓰던 남자가 학생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고, 남의 작품을 소개하고 인터뷰하는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있으니 왜 안답답했을까? 어느날 보장된 모든 생활을 접었다. 하던 일들도 때려치우고, 집도 팔아버린 후 그는 아내와 길을 떠난다. 이 책은 그가 이태리의 시칠리아에서 보낸 생활을 이야기한 책이다. 일종의 생활기. 이는 여행기와 엄연히 다르다. 여행기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둘러본 이야기 일테지만, 생활기는 긴 시간동안 짧은 무엇들과 함께 겪어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떠나려면 그처럼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생활을 쓰고 싶다. 김영하는 내가 하고픈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얄밉도록 그가 부러웠다. 타고 난 글쟁이의 솜씨는 예서도 돋보인다. 그가 그려내는 모든 풍경은 눈에 보이는 듯하고, 시칠리아의 바다냄새가 풍겼다. 시장을 이야기하면 왁짜지껄 소리가 났고, 와인을 이야기할 땐 시큼한 향도 났다. ‘안절부절’ 읽는 내내 떠나고픈 충동을 나타낸 한 단어다. 꼭 떠나보리라 마음속 깊이 다짐하게 했다. 내눈으로 보고 말리라.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서울을 떠날 때까지의 과정과 EBS 방송팀과 함께 촬영한 이야기, 그리고 아내와 단 둘이 처음으로 정착한 리파리에서의 이야기였다. 소설가인 그가 집을 팔면서 책을 정리한다. 작가의 방에 쌓인 책이야 쌀뒤주의 쌀알만큼 많지 않았을까? 책을 정리하면서 그것들을 떠나보내는 대목은 외우고 싶을 만큼 소중했다. “나를 감동시켰거나 즐겁게 해주었거나 아니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책들을 살아남았다. 그 세 가지 중에 단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책들은 다른 운명을 찾아 내 집을 떠났다(책을 헌책방으로 보낸 것은 그래야 책이 가장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느 정도는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에서 듣기로, 도서관에 기증한 책은 어딘가에서 분류조차 되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헌책방으로 간 책은 대부분 적당한 가치로 평가되 주인을 찾아간다고 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버리기는 정말 싫은 일이고, 헌책방에 팔아버림은 죽을 만큼 싫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사고의 전환’을 시켜준 대목이다. 지금껏 내게 필요없는 책은 적당한 이를 찾아 ‘거져’ 주었지만, 이 또한 그에게 혹 원하지 않던 것들이 넘겨져 부담을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헌책방은 진짜로 책을 원하고 책이 읽고픈 사람들이 찾아가는 공간이 아니던가? 얼마전 세계를 금융공포에 빠지게 한 모기지를 예를 들면 새책을 사는 책방이 프라임Prime 책방이라면, 헌책방은 서브프라임Sub-prime 책방인 셈이다. 난 책들을 헌책방에 보내며 찰진 모래에 손을 넣어 집을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처럼 ‘헌책 줄게 새책 다오’하면 될 것이다. 내게 필요없는 열 권의 책 대신 잔돈이 모여 한 권의 책값을 받는다면 열 한 권의 책에 생명을 넣어주는 일이 되는 셈이다. 언젠가 시간이 날 때 더 이상 내 손을 타지 않는 책을 추려보리라 마음먹었다.
좌충우돌의 EBS 시칠리아 기행 촬영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 여흥을 마저 즐기려고 일부러 홈페이지를 들어가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정도였다. 그 후에 읽는 시칠리아는 10미터는 더 가까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이 책을 읽는다면 <세계테마기행.080225.김영하가 만난 시칠리아 - 1,2,3부>를 꼭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의 백미는 리파리에서의 생활이야기. 내가 꿈에 그리는 외국생활이 아니던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집밖을 나오면 여행지요, 눈을 두는 모든 것들이 낯선 풍경들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 ‘놈팽이’가 되는 것. 이 생을 다하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몇 장의 멋들어진 사진들은 그가 찍었을 것이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그림은 이야기들이 곁들여져 한층 보는 맛을 더했다. <깜삐돌리오의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의 저자 오기사는 펜과 도화지를 가지고 세계를 돌며 건축물을 그려 자신의 세계여행을 이야기했고, 이야기꾼 김영하는 온전히 펜대로(아닌가? 키보든가?) 시칠리아를 써내려갔다. 나는 뭘로 세상을 볼까? 세상을 나가면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느껴질까? 그리고 내게 뭘 남겨올까? 까만 밤이 하얗게 새도록 온갖 상념을 남겨준 책이다. 내게 떠날 이유와 동기를 그득 안겨주었다. 작정하고 떠날 구실을 안겨주었다. 그가 본 시칠리아를 나도 핥아보리라. 소설가 김영하도 좋아졌다. 그를 만나야 겠다. 우선 소설들로 만나고, 다음은 직접 사람으로 만나야겠다.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방송을 보면 나레이션을 직접했다. 목소리? 한석규를 찜쪄먹는다)로 그가 본 세상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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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큐를 즐겨본다. 해외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아직 갈 여력도 안 되니 해외여행 다큐는 나에게 엄청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그 중에서도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테이프를 끊은 이가 김영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그리고 라이카로 찍은 것들을 책에 담았다.
다큐는 "저는 지금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길 위에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바로 그 길입니다"로 시작하고 책은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로 시작한다. 작가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다 가진 저자가 하나 하나 버려가면서 캐나다 벤쿠버로 떠날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고, 옷들을 정리하고 은행가서 자동이체 시켜 놓았던 요금들을 해지하고 정산한다. 이 많은 것들이 조금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을텐데 하나라도 계획에 맞지 않거나 부족하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다.
캐나다 가기 전 석달간의 시간이 남았고, 이전에 EBS에서 연락받았던 것을 생각하고 아내와 시칠리아로 떠난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섬인 시칠리아로 간다. 이탈리아 본토가 끝나는 지점에서 2-3량씩 분리해서 기차보다 몇 배나 큰 페리에 싣고 다시 배가 시칠리아에 도착하면 다시 기차를 합체하는 형식이다.
시칠리아는 태양과 올리브의 섬, 아몬드의 향기로운 꽃이 피고 오렌지 열매가 열리는 섬이라는 찬사를 받는 아름다운 섬이다. 최초로 이 섬에 온 사람들은 도시국가 조성을 위해 그리스 본토에서 온 고대 그리스인이었다. 대그리스권(마냐 크레차)의 일부를 형성하는 도시국가가 시칠리아의 여러 곳에 세워졌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기원전 8세기 섬 남동쪽에 하나의 커다란 도시국가를 구축한 시라쿠사다. 시라쿠사는 세 개소에 식민지를 소유하여 그 세력이 아테네에 필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밖에 신전의 계곡에서 유명한 아그리젠토나 타오르미나에 고대 그리스의 일대 유적이 남아 있다. 그 뒤로는 카르타고인, 아랍인, 그리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다. 그 후 프랑스 앙쥬가의 지배에 이어 13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스페인의 아라곤가家의 압정하에 놓이게 된다. 스페인 지배하에서는 일종의 식민지로서 재정적으로 수탈당했으며, 농민들의 반란과 봉기는 무력으로 억제되었다. 강권적인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의 마피아의 전통과 조직이 생겨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카메라 들고 여행 다니면서 책을 낸 적이 있다. 이번 책에서도 글로만 접하면 궁금할 시칠리아의 풍경과 풍경보다 더 의미있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친절함을 과시한다.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정착했을 때 그들은 고향에서 그랬듯이 극장을 만들고 신전을 짓고 연극을 올렸다. 마치 우리 교포들이 해외에 가면 소나무가 둘러진 곳에 집을 구입하듯이. 우리 나라 아파트 단지 하나보다 못한 인구 1만 8천명 밖에 안되는 곳에서 작가가 느낀 그곳은 훨씬 복잡하고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는 여행지였다. 우리는 TV보고 컴퓨터 하느라 집에 쳐박혀 꼼짝 안 해 거리가 한산하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떠든다. 그것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며칠을 같이 얼굴트고 지낸다면 예외일수 없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피곤하면 자고. 그래서 작가는 작은 마을을 떠나면서도 일일이 이별의 정을 나눈다.
책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곧잘 묻어난다. 아마 시골 깡촌 같은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정감어린 모습들이 비록 대도시에서 많이 자랐지만 오늘날 작가가 처한 환경의 이면에 있는 그리운 대상들을 불러들인게다. 큰 개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대대장이셨던 아버지 관사에서 키우던 깨돌이를 떠올린다. 원형경기장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운동장 근처에 살아 그곳이 낯설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시칠리아만이 줄 수 있는 추억도 묻어난다. 스페인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자연스레 굳어진 그들의 모습은 마피아라는 조직을 만들게 했고 그것이 영화 [대부]의 무대가 되게했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사랑테마가 흐르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자신의 극장에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 유명한 시네마천국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시칠리아다. 대부나 시네마천국은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힘든 인연들이다. 작가의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추억했듯이 이 책은 시칠리아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더불어 시칠리아 사람들처럼 아무계획없이 그냥 닥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맛있는 거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는 것을 반복하는 생활도 나쁘지는 않다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회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지브리]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리비아어이고 이탈리아어로는 시로코라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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