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이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차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은 결국 인간 자신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여기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은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녀의 모습에 나를 비추어 보면서 나는 과연 이 시점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듯한 문장으로 처음에는 다소 난해한 듯도 했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깨지고 변해나가는 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강력추천"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고, 오랜만에 읽어나가면서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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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인생에서 사랑의 의미란 무엇일까? '모독'은 책의 표지에 적힌 글 처럼 한 여자가 타락해 가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한 남자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책의 촛점은 주인공 야아라와 아리에의 사랑에 맞추어져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철저히 '혼자'의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람은 철저히 혼자이다. 특히 아리에는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 혼자만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에게 사랑은 일종의 유희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고 어떤 것도 그 중심을 흔들 수 없다. 야아라는 서른이 넘은 유부녀이지만 아직 미숙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을 평생 사랑하겠다고 맹세한'남자와 결혼했다. 그녀에게 결혼 생활은 집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기는 하지만 그 돌봐줌으로 자신을 더욱 나약하게 만드는 남편, 야아라에게 결혼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문제는 그녀 자신이 가진 자신에 대한 공허감이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모든 것이 불확실한, 불안한 상태이다. 야아라의 의기소침한 아버지의 친구이며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차가운 아리에를 보고, 야아라는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아리에는 야아라를 지배하는, 모든 것이 제멋대로인 오만한 남자였으며 야아라는 위험을 느끼면서도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사랑이 소유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야아라는 자신을 의탁할 남자가 아닌 그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작가는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모욕감'이었다. 아리에와 야아라는 수없이 섹스를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의 의사소통으로 보이지 않았다. 몇몇 변태적인 장면을 떠나서도, 아리에가 아내 조세핀을 젊은 시절 내내 자신의 인생관-사랑은 유희다-으로 괴롭힌 것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그의 사랑이라는 것에 모욕당한 느낌이었다. 사랑은 서로에게 모든 것을 주고 서로를 위해주는 것이 아닌 철저히 이기적인 것이다. 아리에는 당당하게 야아라에게 '자신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신을 찾는다'는 것의 결과인 아리에 자신은 어떤가? 그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아내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었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사랑이 아닌 소유욕뿐인 사랑을 한게 아닌가? 야아라에게 모든 것을 풀어놓으라고 말하는 자신은 정작 자기애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게 아닌가? 그의 '철저히 혼자의 사랑'방식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공허한 유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유라는 이름하에 그 자신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야아라는 지독한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리에라는 극단의 도피구을 택한다. 그의 사랑을 받고,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과 가족과 남편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그녀는 결국 제 3의 길로 보이는 길을 택한다. 그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오던 그녀 자신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리에와의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사랑은 아리에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체루야 살레브는 그것이 서로 대화하는 과정이 아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은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소설 속 야아라가 한 것은 '사랑'이었다기 보다는 '자신을 찾기위한 기나긴 여정'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둘이라, 그건 두 사람이 혼자 있다는 거야. 너한테 비밀 하나를 말해주지. 셋이라는 건 세 사람이 혼자 있다는 거야. 넷, 다섯도 다 이런 식이야 |
| 이 소설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달콤하고 설레이며, 가슴 두근거리는 핑크빛 사랑이 아니라 모 아니면 도식(?)의 죽자사자 광기 어린 열정이 가득하다. 그 사람과 함께 일 때, 그녀는 딸도, 아내도, 박사 논문을 앞두고 있는 학생도 아니고, 그저 그의 몸짓, 말씨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랑의 노예일뿐이다. 사랑은 미침병의 한 증세라고 하지만 모두들 사랑쯤은 우습게 여기며, 사랑에 빠져 자신의 일에 등한시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나 역시 어디 한 군데에 빠지면, 그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성향의 인간인지라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의 고저와 자신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과 후회를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남편을 버리고 어머니의 옛사랑이기도 한 60대 남자에게 빠져버린 야아라. 서구 어느 소설가의 소설보다 에로틱하고 격정적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의 쓸쓸함과 열정 뒤에 남는 것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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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대개의 외국 문학작품들이 영미와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작가 중심으로 번역되어 출간됩니다. 그외의 다른 국가의 작품들을 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작가의 작품이라니, 읽기 전부터 웬지 설레더군요. 읽고 난 후 내 나름대로 부제를 붙여보았습니다. '서른 살 먹은 여자의 뒤늦은 성장기'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친구와의 사랑이라는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소재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다만 별다른 불만 없이 살고 있던 한 여성이 갑자기 찾아온 독약과도 같은 사랑에 몸을 내맡겨버린다는 점. 그리고 결국은 이로 인해 안정적으로 보이던 현재까지의 삶에 작별을 고한다는 내용. 무엇보다도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작가의 문체가 상당히 독특합니다. 도저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군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너무나 평화로웠던 지금까지의 일상이 조금만 세게 쥐면 바스라질 것처럼 얇은 파이 껍질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주인공 야아라는 결국 알아버립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읽기를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내 머리 속은 온통 여주인공 생각으로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비롯한 모든 이의 삶이 야아라의 그것처럼, 너무나 가볍고 얇아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한 겹의 막으로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책의 내용은 좋았지만 글씨가 너무 크고 행간이 넓어서 집중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요즘 나오는 책들은 왜 그리도 글씨가 크고 행간들이 넓은 건지..... 궁시렁궁시렁......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루지 못했어도 누군가를 사랑한 것이 더 나았다. |
|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스라엘 작가의 책은 <나의 미카엘="">이었다. 잘 나가는 남편을 둔 아내의 소외를 다룬 작품이었다. 그대의 느낌은 다분히 사적인 소설이구나라는 것이었다. 우리와 같이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소설이 유행하다니... ... <모독> 또한 전형적인 사적인 소설이다. 등장인물도 몇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 또한 단순하다. 전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저술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매력적이다. 뭐랄까?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누르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이런 자유분방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모독>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