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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제 인생 최고의 책 중 하나입니다(서부전선 이상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P세대, 의심스러운 싸움, 기적의 시대, 눈 뜬 자들의 도시와 아울러). 주제 사라마구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대화와 저자의 간섭으로 긴 글들이 이어지면서 그 가운데 해학과 풍자, 그리고 유머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어느 날 이 나라에서는 ‘죽음의 여신’이 7개월간 작업을 중지해서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종교업계, 장례업계, 병원 등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국경만 넘으면 사람이 죽는 현상을 이용하여 마피아가 정부의 옹호로 이권에 개입하는 현상까지 벌어집니다. 그 와중에 죽음이라는 공포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종교업계가 검은 속내를 드러내면서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앗아간 악마의 소행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달라는 아이러니한 기도 행진을 벌이기도 합니다. 수개월간의 죽음 없는 혼란이 계속되자 ‘죽음의 여신’은 마음을 바꿔 우아한 보라색 편지로 일 주일간의 유예 기간을 통지하는 것으로 갑작스러운 죽음 형태를 대체하고자 합니다. 이 역시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을 주기는 하지만 종교계와 장례 업계는 안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죽음 예고 편지가 수령되지 않는 한 중년 첼리스트를 발견하게 되고, 거듭되는 이 첼리스트에 대한 편지 반송 사태를 직접 해결하고자 ‘죽음의 여신’은 직접 첼리스트에게 편지를 건네주려는 계획을 짜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있는 인간 여성으로 변신한 ‘죽음의 여신’은 첼리스트를 찾아가 편지를 건네주고자 하지만 첼리스트의 음악실에 펼쳐진 바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번 D장조(BWV1012번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에서는 1010번으로 나오더군요) 악보를 보면서 깊은 감동에 젖고, 편지를 전해주려는 계획을 며칠 미루다가 첼리스트가 출연하는 연주회를 찾아가 직접 말을 걸게 됩니다. 그 후 짧고 짜릿한 만남을 거치고,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위 곡을 들으면서 죽음을 예고하는 편지를 스스로 불사른 뒤 첼리스트와 사랑에 빠집니다. 결국 첼리스트와 죽음의 여신 둘 다 생명을 얻게 된다는 흐뭇한 결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요소 요소에 들어간 해학과,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바하 무반주 첼로모음곡 중 6번의 프렐류드를 ‘죽음의 여신’을 감동으로 떨리게 만드는 소도구로 활용한 이 작품이 매우 감동적이고, 또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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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현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야기가 비추고 담아내는 세상은 그야말로 현실 그 자체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이 둘이 만나 발생하는 시너지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개성 있는 분위기를 이야기에 선사한다.
스타일. 간결하지만 깊고 묵직한 문체, 아슬아슬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꼬리를 물고 늘어지지만 느슨할 틈 없는 문장들 등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 주제 사라마구만의 독특한 문체, 즉 스타일이 이 책의 또 한 가지 매력으로 다가온다.
매력적이다. 매력적인 스토리, 그리고 매력적인 스타일, 이 둘의 조합 덕에 이 한 편의 이야기는 이야기 이상의 매력을 발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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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중지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걸까? 中止, 하던일을 그만둔다는 뜻일까? 아니면 衆志, 여러사람의 생각이나 의지를 뜻하는 걸까? 원제를 보면 분명해 진다. death with interruptions 말 그대로 멈춘다는 뜻이다. 죽음이 멈춘다. 자. 다음 날부터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잠깐만,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사라마구는 이러한 불가사의한 상황을 두고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에서도 그의 전매특허인 환상적 리얼리티즘이 빛을 발한다. 죽음이란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좋게 봐도 밝은 느낌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죽음이란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치 꽃이피고 지듯이 생명이 있다면 태어나고 죽게 된다. 그래야만 한다. 죽음 자체는 부정도 아니오 긍적도 아니다. 그냥 삶과 함께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 멈춘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말자. 원인은 개나 줘버리자. 이 노작가가 하는 말이 있다. 새들은 노래하지만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른다고. 때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음이 멈췄다. 먼저 장례업계가 난리 날테고, 병원은 더 이상 죽지 않는 환자들로 인해 병실이며, 병동이며 남아 나질 않을 것이다. 계속 늙기만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들, 아 이들을 어찌 해야 할까. 자식들은 부양 문제로 그야말로 미궁에 빠져든다. 보험업계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에서는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으면 교회도 없다고 역설한다. 신에게 기도하자. 우리에게 빼앗간 죽음을 돌려다라고.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자. 이와중에 죽음을 바라는 자들을 위해 지하조직이 생긴다. 그들은 의뢰를 받아 국경으로 이동시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다시 유가족에게 시신을 돌려보낸다. 놀랍게도 죽음이 멈춘 나라는 포르투갈 뿐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조직 이름은 마피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죄조직 마피아와는 다르니 혼돈하지 말자. 영원은 없다. 죽음이 멈추고 칠개월이 지났다. 죽지않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또다른 변화가 생긴다. 죽음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죽음이 중지 된 것도, 영원하지는 않나보다. 어느날 방송국 사장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죽음이 보낸 편지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죽음을 행하는 자, 다시말해 신과 비슷한 존재로 죽음을 관할하는 자다. 여하튼 죽음은 방송을 통해 자신이 다시 돌아왔음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방송된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 자정 이후로 죽음이 돌아 온다,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죽음이 도착하기 일주일 전 미리 암시를 할테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유족들과 인사도 하고 유언도 남기고 생을 마무리할 여유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참 친절하기도 하다. 잘은 몰라도 지금쯤 죽음은 스스로를 뿌듯해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연하게도 죽음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장례업계는 화색이 돌았고, 교회는 자신들의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이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칠개월동안 죽지 않은 육만여명이 동시에 죽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건 학살과도 다름 없었다. ?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찾아나선다. 이제 사람들은 죽음의 편지를 받는데도 익숙해 진다. 편지를 받는자는 일주일 후 죽게된다. 심플하다. 복잡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알수없는 일이 일어난다.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반송된 것이다. 그것도 동일인에게 두번이나. 죽음은 직접 원인을 찾아 나선다. 죽음의 카드에 적힌 사람은 오십세의 독신남이고 직업은 첼로리스트다. 나중에 이야기가 끝날쯤에 나오겠지만, 그의 이름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이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니, 그가 첼로리스트 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죽음은 그의 사생활을 염탐한다. 그리고 여자로 변장 후 그를 만난다. 어떤 모습이든 변장이 가능하다면, 당연하게도 매력적인 젊은 여자를 선택 할 것이다. 둘은 만난다. 만난 그들은 서로의 대화속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죽음은 그에게 전달하려 했던 편지를 끝내 전달하지 못 한다. 설익은 나의 판단이지만 죽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탓 같다. 그리고 소설은 시작과 동일한 마지막 문장,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로 끝이 난다. 끝내주는 결말이다. ? 별점: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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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죽음의 중지 - 지은이 : 주제 사라마구 - 옮긴이 : 정영목 - 어느날 죽음이 중지된 상태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죽음이라는것은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면서 반드시 도달하는 마지막 종착역이다. 다면 그날을 알수 없기에 생명체는 영생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알지못하는 때에 죽는다. 또 죽음은 언제나 생명체 주위에 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사람들이 죽는 기사가 넘쳐 난다. 그렇지만 모두 자신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지나간다.또 죽음이 있어서 생명체가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고 언제나 적정한 건강상태를 유지한다. 즉 갓태어난 생명체와,중간 생명체, 죽음을 앞둔 생명체들이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어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 중지되면 세상은 죽음을 앞둔 생명체들이 계속해서 쌓여 가기만 하고 사라지지 않게 되어 사회를 이상한 상태를 맞게 된다. 즉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인간과 마찬가지의 상태로 되는것이다.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지만 살아있는 인구를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한다. 특히 일거리를 잃어버린 장의사들은 갑자기 동물들의 장례식을 유치하여 자신들이 잃은 이익을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씁씁한 모습이지만 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죽음이 중지됨으로서 죽음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해오던 단체들의 모습이 부각되었는데 특히 종교단체의 모습은 장의사 단체 못지 않게 씁쓸함을 남긴다. 종교라는 것은 죽음이라는 인간이 알지못하는 영역을 통해서 인간의 믿음을 끌어와서 유지되는 단체이다. 죽음이 중지되면 사후세계가 없기 때문에 종교는 그 기반을 잃게 된다는 것은 현재의 종교가 어떤 형태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고 얼마후에 상황이 종료되는 식은 눈먼자들의 도시와 비슷한 구조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