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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 서점에 갔다가 기현상을 발견했다. 같은 영화의 원작이 네 권이나 매대에 올라 있는 것이다. 영화로 먹고 사는 건 극장이나 TV 뿐만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는 난데 없는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이것도 <Q&A>라고 원작이 나와 있다.)에 밀려 아카데미를 향한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국내 개봉하면 어떨랑가. 초절정 눈물 쏟는 이야기인 듯하다는.
책은 네 권 중에서 김선형 번역의 문학동네 판을 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덕분에 이름이 익숙해서다. 만화 버전은 단편이 하나뿐이라서 굳이 살 만하지는 않는 것 같고, 나머지 버전들은 역자가 익숙치 않다.
그다음에 재밌었던 건 <낙타 엉덩이>. 파혼을 당하고 술에 취한 청년이 홧김에 낙타 의상을 차려입고 가장무도회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귀여운 이야기인데, 몇몇 장면에서는 대폭소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묘사. 낙타 옷을 입으려면 앞부분과 뒷부분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하는데, 앞부분에 들어간 청년이 뒷부분에 들어갈 사람을 ‘급섭외해서’ 함께 옷을 입어보는 대목.
뒷다리들이 앞으로 움직이자 거대한 고양이-낙타가 도약하려고 등을 구부리는 모양새가 됐다.
<메이데이>는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계급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러시아 혁명 직후, 미국에서 불거진 사회주의와 막대한 빈부 차에 대한 시각이 잘 살아 있는 스케치다. <개츠비>에 보면 피츠제럴드가 마냥 흥청망청하는 작가가 아님을 엿보게 하는, 날카롭지만 너무나 세련되어 눈치 채기 조차 쉽지 않은 몇몇 대목이 있는데, <메이데이>를 보고 나니 웬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머지 이야기들도 살구색 표지에 어울리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다. 피츠제럴드 단편을 읽은 건 <다시 찾은 바빌론> 이후 처음이라서, 흥청망청하는 이야기들이기만 할 줄 알았는데, 물론 흥청망청하는 이야기인 건 맞지만, 그래도 떠들썩하던 그 시대의 흥이 살아오르는 느낌이 있다. 피츠제럴드 장편도 문학동네에서 나온다는데 번역자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드디어 그 전설의 작품 <낙원의 이쪽>을 보게 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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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갈수록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더 젊어져간다는 아부의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린 한 번 멋적은 미소를 짓고 거기서 생각을 멈춘다. 그런데 정말 '나이들수록 젊어진다면 좋은 것일까?'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여기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는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나이 먹을수록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타고난 사나이 벤자민 버튼의 일생을 위대한 상상력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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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으로 태어나 점점 동안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일생이 그려져 있는 책이다. 이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현재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도 개봉되어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영화 속 주인공 ‘브래드 피트’의 연기에 힘입어 이 책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책을 보기 전 영화로 먼저 벤자민 버튼을 만나보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는 영화와 책을 오가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 것이다 보니 꽤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보다 나이 든 노인아기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출생의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귀여운 아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주름이 쭈글쭈글 진 노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에게는 모든 장난감도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아버지에게 맞춰주는 생활을 한다.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척, 식상해도 언제나 새로운 척.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노인의 지혜와 아량을 갖춘 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젊어지고 그러다 못해 어려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자신의 아들보다도 어려진 벤자민 버튼은 그토록 지루해했던 장난감들을 가까이하게 되고, 여느 아이들처럼 철이 없는 순간까지 변해간다. 다른 사람과는 거꾸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벤자민 버튼의 파란만장한 모험과 그의 사랑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인생을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미 <위대한 개츠비>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이 책에는 그의 여러 단편들이 함께 실려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역시 그렇지만, 다른 단편들의 제목 역시 매우 독특하다. <리츠 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라든지, <오 적갈색 머리카락의 마녀> 등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제목들이었다. 그리고 그 제목만큼이나 소재들 역시 각양각색에 흔치 않는 것들이어서 읽으면서 새로움을 실컷 맛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삶을 저자는 자신의 소재를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환상동화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유쾌하고 발랄한 로맨스를 읽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게 바로 글을 쓰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닐까싶다. 자신의 상상을 종이 위에 맘껏 그려나갈 수 있고, 어떤 것도 그의 상상을 막을 수 없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작품 역시 그의 상상력이 더없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춤과 파티, 꿈과 낭만, 빛과 화려함이 가득했던 재즈 시대의 대표작가라고도 할 수 있는 피츠제럴드의 글을 통해 그 시대의 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 피츠제럴드의 자기작품에 대한 짧은 언급도 만나볼 수 있으니,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그리고 상상이 가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이 책을 즐거이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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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원작인 그의 책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여러 출판사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을 모은 책들을 내놓았다. 나는 발랄한 느낌이 돋보이는 문학동네의 책을 선택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소재를 알았을 때 떠오르는 책이 한권 있었다. 관심목록으로 두고 있던 막스티볼리의 <고백>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 역시 70살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더 어려지는 막스의 기구한 인생을 다루고 있는데, 이 줄거리를 본다면 상당히 비슷한 책이다.
영화의 원작이라고 해서 장편소설을 생각했었는데, 40페이지가 조금 넘는 단편 소설이었다. 이 책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펴낸 11편의 단편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그 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기발함은 단연 돋보였다. 1860년 여름날,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로저 버튼 부부는 첫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보러 병원을 찾은 로저는 요람에 억지로 끼어 앉아 있는 것 같은, 백발에 수염이 난 일흔이 넘은 노인이 자신의 아이라는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심지어 갓 태어난 아이가 말도 하고 시가까지 피어댄다. 처음 상황은 황당하지만 그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 로저의 모습과 자신의 겉모습과 맞지 않게 아이의 생활을 해야하는 벤자민의 에피소드들이 재미를 더 한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외모로 태어나 부모보다 더 늙은 모습이었던 벤자민,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벤자민은 흰머리가 줄어들고 점점 더 젊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대학을 입학했으나 늙어보이는 외모로 쫓겨나가 된다거나 결혼을 하게 되는 등의 과정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젊어지고 멈출 수 없는 마지막을 향해 갈때, 그 재미가 이제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을 때쯤,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어서 인지, 남과 다르게 인생을 거꾸로 살면서, 나이에 맞지 않는 생활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누군지 그 기억조차 갖지 못한 그가 불쌍해서 인지, 살짝 눈물이 났다.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면, 이 독특한 주제로 다양한 에피소드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단편이다 보니 그 재미를 못 살린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날 때면 책에 대한 평이나 기대가 더 큰 편인데, 이 책은 영화가 더 기대되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많이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작가의 인생을 살펴보니 절박하게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고 한다.특히 "낙타엉덩이"는 하루만에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단편마다 어떤 것은 조금 가볍다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고,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지만, 뭔가 즐거운 듯 하며, 장난스럽다가 쓸쓸해지는 느낌을 내는 글들이 많았다. 벤자민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가 마지막이 너무나 쓸쓸히 다가왔듯이.. 그리고 이 책에는 없지만, 얼마전 만났던 김탁환님의 책에서 가을에 어울리는 작가로 만났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른 단편들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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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아마 그 언저리 어디쯤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위치하는 시공간의 배경은. 1900년과 1920년 사이쯤... 아마도 이 작가가 활동하던 시간대와 비슷한 그 시간대.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직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강한 힘이다. 우리는 그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수 없고, 그저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몸짓을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의 흐름속에 태어났다 자신의 젊음을 한껏 뽐내고, 활짝 핀 꽃이 시들듯이 시들며 사라져간다. 마치 흐르는 물결들이 서로의 몸과 부딪히며 소근대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우리들 사람들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존재에 대해서 아파하고 기뻐하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은 거대한 시대와 시간의 직진성이라는 흐름속에 존재하는 그저 물결소리같은 편린일 뿐이다.
그냥 막연히 피츠제럴드라고만 알고 있던 이 작가의 이름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은 이 책을 접하면서 부터였다. 유명한 장편소설과, 수많은 단편소설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 이 작가의 단편들은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이번에 나온 이 책과 오래전 출판된 다른 출판사의 단편집 한권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서점에서 구할수 없다. 130편에 이른다는 그의 단편들이 출간된 횟수도 적지만, 검색으로 찾을수 있는 번역 작품중 아쉬운 두권 가량이 절판되었기 떄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게츠비를 쓴 위대한 작가의 단편을 읽지 않고 어찌 그냥 지나칠수가 있겠는가. 사실 나는 단편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가의 단편집만은 꼭 읽고 싶었다. 국내에서 구할수 없다는 그 아쉬움이 이 책에 대한 반가움을 배이상은 더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통일감을 가진다. 그래서 한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긴 장편 한권을 다 읽고 난 것과 비슷한 서사감을 느낄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중의 백미는 이 책의 표재작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겠지만... 사람마다 좋아하는 가준은 다를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과는 상당히 멀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은 그 시간대. 그 시간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삶이라는 것과 젊음이라는 것의 아름다움과 구차함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바라본 작가의 시선을 잘 느낄수 있는 책이다. 책을 덥고 다시 표지를 본다. 그제서야 표지가 이해가 된다. 사람들이 춤을 추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이라는 것이 어떤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에 따라서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지구라는 같은 행성에 존재하는 우리들이 이 책을 통해 느끼는 느낌이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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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영화화 된 것을 아실겁니다. 읽을 때는 40여 페이지 밖에서.. 어떻게 이렇게 줄거리가 빠르게 전개 되는지.. 책의 나머지를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는지 궁금했는데 너무나 황망하게도 이야기를 짧게 끝나버리고 나머지는 다른 단편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로 태어나서.. 점차로 청년이 되고.. 또 점차로 청소년이 되고 아기가 되어가는..... 그리고 종내는 죽음 맞이하게 되는 이 소설은 경계도 한계도 없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작하여 비단처럼 매끄럽게 흘러가는 문장들.. 어우러진 단편이었습니다.
줄거리 위주의 책이 아니었나 싶고..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영화를 안 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어떻게 벤자민 버튼의 심리를 풀어냈을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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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위대한 캐츠비 작품만 읽어보았는데 이번 단편집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종합선물 세트랄까? 가볍게 피츠제럴드의 여러 단편들을 즐길 수 있다.
첫 단편을 만나는 순간 약간은 당황 스런 느낌이 들정도로 기발하고 엉뚱하고 한결 가벼운 이야기들이 먼저 다가온다. 그렇지만 단편들 속에 조금씩 비치는 시대상황들과, 사치와 향락속에서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 지루하고 나른한 인물들의 말투등은 책을 끝마칠 때 쯤에는 결코 가벼운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커버 앞뒤로 소개되는 피츠제럴드의 소개와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에서 피츠 제럴드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준다.
개인적으로 미리 이 정보를 읽고 보기를 더 추천하고 싶다.
사실 단편들만 읽으면 이 일관성없는 글들에 대해 어리둥절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하지만 단편집과 피츠제럴드의 배경에 대해 알게되면서 전체가 피츠 제럴드라는 한 괴짜 인물과의 만남이라는 환상적인 이벤트에 당첨된 기분이 든다.
약간은 가볍고 환상 적이고 거만하지만 이 단편들과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옮긴이의 말등에서 피츠제럴드라는 인간을 만날 수 있지 안을까 싶다.
처음에는 캐츠비 같은 정형화된 이야기속에 무언가를 찾아 읽었는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도자기와 분홍 등은 전혀 그런 곳에서 동떨어져 있었서 약간 당황했다. 톡톡튀는 때로는 어처구니 없기 까지한 상상과 짓궂은 장난들, 피츠 제럴드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글을 썼다는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각기 다른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었다. 재밌는 상상들, 어처구니 없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주인공의 행동들. 처음 예상과는 틀렸지만 그 나름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재미있고 이야기들은 순식간에 읽었다. 이런 또 다른 피츠 제럴드의 발견도 신선하고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또 생각이 바뀌었다. 다 읽었을 때 밀려오는 느낌은 역시 캐츠비를 쓴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라고는 없는 여자들. 그렇지만 단지 거기까지라고 말하기에는 그 기발한 상상들과 사치와 향락, 웃기지만 방종하고 사치스러운 상상들속에 진행되는 주인공들의 죽음 무가치한 행동속에 느껴오는 가치와 보람의 부재, 이것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목적과 가치의 부재를 달래기 위해 보석과 향락을 전전하게 된것은 아닐까? 이것은 마치 현재의 젊은 이들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산업화로 점점 생활은 편해지고 풍족해지지만 편함과 행복함, 마음의 풍족함은 함께 오지 않았다. 그시대와 마찬가지로 편리함과 부유함은 쉽게 이루어 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의 풍족함의 발전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제자리를 걷고 있다. 아니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그래왔을 지도 모른다. 어느시대에나 젊은이들의 방황은 계속되고 이것이 성장의 진통인지 발전 개선이 가능한 문제인지 판단하기 조차 어렵다.
피츠제럴드과 왜 재즈시대 당시 그렇게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것이 아니었을까?
사회의 환상과 화려함속에 반해있지만 마음 한켠에는 채울 수 없는 갈증으로 더 화려함과 즐거움을 찾게 되는 화려한 미디어와 광고와 산업화 소비시대속에 미아가된 젊은이들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시대는 틀리지만 현재 젊은 층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상황과 겹쳐져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속에 사회는 화려함과 즐거움의 상은 끊임없이 던져주지만 삶을 위한 지혜는 쉽게 던져주지 않는다. 눈과 귀와 입과 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던져주지만 마음을 심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상과 방법은 던져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는 것은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감각의 즐거움에 반해있고 쇠뇌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쉽지 않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환락의 시대를 살고 스스로도 방종과 화려함의 환상에 살았던 피츠제럴드는 그 환상속에서도 그 허무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벗어날 수 없었던 피츠제럴드는 삶속에서 영원한 젊음을 누렸던 것이 아닐까? 영원히 방황하는 젊은이, 늙어가면서 지혜를 배울 수도 벤자민 처럼 어려지면서 잊어 갈 수도 없었던.
마지막으로 책의 질은 좋은 편이다. 제본도 잘 돼있고, 겉표지도 질감도 부드러워서 좋다. 책 전체에 비해 무게는 상당히 가볍다. 책이 두꺼워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요즈음 책값에 비교한다면 가격대비 꽤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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