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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택배로 이 책이 도착했을 때 초록색 해바라기(?) 위에 한 농부가 즐거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배경은 모두 파란색, 그리고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라는 부제. 책이 서점에서 봤던 대로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목이 ‘피어라,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건 ‘치유’라는 의미에서 였다. 다른이들은 어떻게 자기자신을 치유 하고 있을까, ‘웰빙’이 거부할 수 없는 키워드가 되어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을 돌보는 ‘치유’도 많이 이슈가 되어 있었기에 이 책을 고민없이 고를 수 있었다. 작가는 학교 선생님을 하던, 어떻게 생각하면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다. 그러나 늘 세상에서 유리되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고, 이 작가의 그 전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책 속에서 자신의 많은 책들이 언급이 되었다.) 농촌에 들어가 자신을 완전히 찾게 되었던 듯 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소위 ‘소심, 예민’한 한 사람으로서(이 책의 첫챕터에서 소심, 예민했다는 말이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을 내 성격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해왔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그래 내가 이랬지, 이랬었어 라는 생각에 쉽게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무기력한 생활,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옳은건지도 쉽사리 생각해 보기 어렵게 만드는 이 세상.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며 ‘그래, 내가 해 왔던 고민이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많은 물음들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저자는 많은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고 있었다. 삶의 문제, 자기치유, 공동체 생활, 인간관계 등등의 많은 주제들을 자신만의 생각을 틀로 잘 정리하고 있었다. 앞부분에선 이 책의 저자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치유를 위해 가족을 희생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는 가족까지 행복하게, 다시 제자리를 찾는 치유가 아닌가 할 만큼, 가족들도 다들 좋아지는 듯 했다. 오히려 도시의 삶이 편리가 아닌 상처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당장에 농촌으로 떠나자, 또는 귀농을 결심하자는 등의 결심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나는 무언가 따뜻함, 그리고 느림. 내 삶에 큰 울림 하나를 받은 듯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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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기 힘들다. 이렇게 느끼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경중의 차이가 있겠지만 요즘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살 것이다.
이런 살기 힘들다는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 여유를 없애고 있고 그자리에 강박증과 조급증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친구들로 채워놨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고 있다.
피어라 남자의 저자인 김광화씨도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에는 이러한 마음이있었다. 부족한 가장, 부족한 남편, 부족한 아버지, 부족한 사회구성원.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나쁘게 했다. 결국 견딜 수 없게된 저자는 모든걸 버리고 자신이 자란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유한다. 그리고 점점 사람답게 사는거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아 간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고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때 귀농에 관한 도서인가 했다. 그리고 왠지 신선놀음 같은 건강법이며 치유이야기는 나와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컨셉에서 와닿았던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에서의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그러나 투박하기까지 한 저자의 서체에서 순박함과 진심이 배워나는 글이 점점 내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책 중반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치유에서 자신을 가진 저자의 아내와의 관계를 위한 부부연애를 말하는 순간 내가 아내에게 진정 얼마나 연애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연애기법이라고나 할까. 후후..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났을때 기운이 솟았다. 어느덧 내 몸은 아니였지만 마음은 치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의 볼거리라면 단연 부부연애를 권하는 세번째 체트를 권하고 싶다. 앞에서 말하는 몸살림보다 백배는 실전적이라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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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집의 벤처 삶을 살아가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삶이 따로 있다. 어느 길을 간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길이 있어 그 길을 갈 수도 있고 길이 없는 곳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갈 수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정해진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P21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벤처라고 해야 할까. 도시를 떠나고 또 무리를 떠난다는 게 현대사회에서는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하지만 좋게 보자면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한 또 한 번의 모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나답게 살기 위한 외고집의 벤처. 일자리를 남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창출하고자 땅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도시에서 빈민 운동을 하다 무주에 자리 잡은 허병섭 선생과 인연이 닿아, 이곳 무주에서 마음에 드는 논을 찾았다. 그리고 '말뚝 박는 기분'으로 그 땅을 샀다. 마을 아저씨는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까?'하는 안쓰러움으로 빈집을 소개해 주셨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게 아니다. 돈을 안 쓰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한 고민 끝에 나락 거두는 일에 홀태를 쓰게 되었다. 돈 안 들이는 농사에 자신감이 붙자 이번에는 돈 안 쓰는 삶을 실험했다. 가마솥에 군불을 지펴 밥을 하고,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강가로 달려갔다. 승용차도 한동안 몰지 않았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은 욕구가 어디서 오는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몇 달 동안 밤에 전등불조차 켜지 않고 지내보았다. 그러자 그 과정에서 내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비 욕구도 달라졌다. 남과 견주어 자신을 고사하고자 하는 겉치레 소비는 점점 멀어졌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그러니 이를 잘할 때 오는 행복감은 다른 어떤 것보다 '원초적인 행복'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에서 오는 행복은 모든 행복의 근간이 된다. 설사 외부의 영향 때문에 행복이 조금 흔들리더라고 그 근본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원초적으로 행복하다면 삶에서 어떤 불행을 겪더라도 쉽게 치유되지 않겠나! 낯선 산에 오를 때는 온몸의 감각을 열어두어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발끝을 살피고, 몸에 닿는 나뭇가지 느낌까지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 자칫 교만하게 굴면 곧바로 그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반면 나를 낮추고 온전히 열어두면 산은 나에게 더 없는 풍요를 가져다준다. 더불어 나는 산에서 배운다. 야성은 진정한 겸손이며, 참된 겸손은 야성의 또 다른 이름임을.
자기 사랑을 잘하자면 스스로를 많이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어야 하리라. 무조건 최선을 다하려고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설사 기준에, 좀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한 거야.' 또한 내 안의 어둡고 부정적인 심리보다 밝고 긍정적인 의식을 더 많이 일깨울 필요가 있다. 아내의 나쁜 점을 고치려 하기보다 좋은 점을 닮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치심보다는 당당함을, 자괴감보다는 자존감을, 미움보다 사랑을, 갈등보다 평화를 더 많이 일깨워야 하지 않겠나. 때를 알수록 삶의 여유도 함께 찾게 된다. 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흐름의 순간들이다.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흐름은 정해진 게 아니고 무르익어 가는 과정이다. 도끼질이라면 틈이 벌어질수록 일이 쉽다. 그만큼 여유도 늘어난다. 많고 많은 기회 가운데 가장 무르익은 때야말로 온전한 기회이자 여유가 된다. 돈이 나오는 근본 바탕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돈을 주는 신이라 하겠다. 내가 농사짓는다고 땅을 박박 기고 있을 때 이웃 한 사람은 산에서 고사리를 꺾어 돈을 벌었다. 그것도 내가 넉 달 동안 논농사를 지어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고사리 채취는 봄철에 잠깐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농사와 달리 채집하는 일이기에 투자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물론 정년이 없기에 마을 할머니들이 즐겨 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피어라, 남자(김광화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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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라 박용범 독서작가(2022)
이 시대에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용감무쌍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 1996년 봄, 저자는 서울을 떠났다.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뿐. 그동안 추구해왔던 이념도, 몇십 년 맺어온 인연도 접어두었다. 1996년 겨울 취직을 했다. 그렇게 23여 년간 꾸역꾸역 일상을 이어왔다. 그리고 52세, 새로운 도시 안동으로 이사를 감행한다. 농촌에서는 뼈빠지게 일해도 그해 가을걷이 전까지는 돈 구경하기가 어렵다. 농촌은 생산자 사회이다. 소비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농촌의 삶은 요원할 따름이다. 밥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고 손수 밥을 짓는다. 돈을 벌어서 쌀을 사는 건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손수 짓는 건 하기 나름이다. 돈 벌 능력이 없으면 돈을 안 쓰고 사는 능력을 기르면 되지 않을까. 돈 안 들이는 농사에 자신감이 붙자, 이번에는 돈 안 쓰는 삶을 실험했다. 가마솥에 군불을 지펴 밥을 하고,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강가로 달려갔다. 승용차도 한동안 몰지 않았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은 욕구가 어디서 오는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몇 달 동안 밤에 전등불조차 켜지 않고 지내보았다. 그러자 그 과정에서 내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닌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비 욕구도 달라졌다. 남과 견주어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겉치레 소비는 점점 멀어졌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그러니 이를 잘할 때오는 행복감은 다른 어떤 것보다 '원초적인 행복'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에서 오는 행복은 모든 행복의 근간이 된다. 설사 외부의 영향 때문에 행복이 조금 흔들리더라도 그 근본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원초적으로 행복하다면 삶에서 어떤 불행을 겪더라도 쉽게 치유되지 않겠나. 삶 자체가 기쁨이자 설렘이라면 굳이 알코올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아침이 그리워지는 저녁을 맞이하자. 바로바로 눈을 뜨고 오늘 할 일에 가슴 부풀어 열정적으로 그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도끼질을 쉽게 하자면 때를 기다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세상살이 역시 때를 알고 때에 맞출 수 있다면 흐름대로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오늘은 수행 정진 공부에 매진할 때이다. 지금 이 순간 글 쓰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달려온 시간이 오십여 년 세월이다. 내공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지금 현재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때를 알수록 삶의 여유도 찾게 된다. 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흐름의 순간들이다.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흐름은 정해진 게 아니고 무르익어 가는 과정이다. 도끼질이라면 틈이 벌어질수록 일이 쉽다. 그만큼 여유도 늘어난다. 많고 많은 기회 가운데 가장 무르익은 때야말로 온전한 기회이자 여유가 된다.
P194~195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건 자칫 기만이기 쉽다. 이를테면 식구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고 하면, 나 아닌 식구 누가 그 희생에 동의하겠는가. 함께 행복하고, 함께 나아지기를 바라야 하리라. 자기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남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없다.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게 얼마나 큰 자기모순인가. 남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자기 사랑을 잘하자면 스스로를 많이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어야 하리라. 무조건 최선을 다하려고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설사 기준에 좀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준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 한 거야.' 또한 내 안의 어둡고 부정적인 심리보다 밝고 긍정적인 의식을 더 많이 일깨울 필요가 있다. 아내의 나쁜 점을 고치려 하기보다 좋은 점을 닮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치심보다는 당당함을, 자괴감보다는 자존감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갈등보다 평화를 더 많이 일깨워야 하지 않겠나.
《피어라, 남자(김광화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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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저자 김광화/출판 이루/발매 2009.01.12.
30대의 나이에 귀농을 한다는 것은 삶의 근거를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따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에 종속되어가는 세상에서의 탈출기가 농사를 짓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도 결국에는 물질주의의 경향에서 탈피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귀농을 하려면은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 자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쳐야 한다.
P21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벤처라고 해야 할까. 외고집의 벤처. 도시를 떠나고 또 무리를 떠난다는 게 현대사회에서는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하지만 좋게 보자면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한 또 한 번의 모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나답게 살기 위한 외고집의 벤처. 일자를 남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창출하고자 땅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도시에서 빈민 운동을 하다 무주에 자리 잡은 허병섭 선생과 인연이 닿아, 이곳 무주에서 마음에 드는 논을 찾았다. 그리고 '말뚝 박는 기분'으로 그 땅을 샀다. 마을 아저씨는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까?' 하는 안쓰러움으로 빈집을 소개해 주었다.
P75 내 수행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건 절구질이다. 절구질은 절구와 나무 공이를 이용해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아주 원시적인 일이다. 끔찍하리만큼 고행에 가까운 이 일을 자그마치 2년 가까이했다. 치열했던 만큼 사연도 길다.
우리는 자급자족 농사를 중요하게 생각해 벼는 물론이고 기장, 수수 따위의 잡곡도 골고루 농사짓는다. 하지만 잡곡을 탈곡하기는 어려웠다. 요즈음은 웬만한 방앗간에서는 잡곡을 취급하지 않는다. 잡곡 농사가 돈이 안 되니 관련 기계도 덩달아 밀려난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실을 갔다가, 이웃 하나가 기장을 절구질해서 먹는다는 걸 알았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호기심에 나도 절구질을 해보았다. 기장을 한 움큼 절구에 넣고 찧었다. 껍질이 벗겨지며 나온 노란 알이 아주 예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무절구와 공이를 만들었다. 기장이나 수수는 잠깐만 찧으면 일주일 정도 먹을 양이 나왔다.
P129 정농회 큰 어른이셨던 김영원 선생이 예전에 "손수 집 짓기는 세 가지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세 가지는 수평과 수직을 볼 줄 알고, 기둥이 지붕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이 세 가지만 충실하면 적어도 집이 무너질 위험은 없으리라.
P146 톰 브라운과 주디 브라운이 함께 지은 『여우처럼 걸어라』에는 '동물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밟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대로 따라 해보니 나는 어림도 없다. 내 몸이 야성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소름 끼칠 정도로 느낀다. '몸은 웅크리고, 동작은 느리면서도 물 흐르듯, 소리는 안 나게….'사실 이런 움직임은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던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능력이다.
낯선 산에 오를 때 온몸의 감각을 열어두어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발끝을 살피고, 몸에 닿는 나뭇가지 느낌까지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 자칫 교만하게 굴면 곧바로 그 대가를 치르고 만다. 반면 나를 낮추고 온전히 열어두면 산은 나에게 더없는 풍요를 가져다준다. 더불어 나는 산에서 배운다. 야생은 진정한 겸손이며, 참된 겸손은 야성의 또 다른 이름임을.
P239 돈이 나오는 근본 바탕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돈을 주는 신이라 하겠다. 내가 농사짓는다고 땅을 박박 기고 있을 때 이웃 한 사람은 산에서 고사리를 꺾어 돈을 벌었다. 그것도 내가 넉 달 동안 논농사를 지어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고사리 채취는 봄철에 잠깐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농사와 달리 채집하는 일이기에 투자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물론 정년이 없기에 마을 할머니들이 즐겨 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P242~243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관련 일거리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된다. 또한 올잡스All jobs는 처한 조건에 따라 머리가 꼬리가 되기도 하고, 꼬리였던 게 머리가 되기도 한다. 꼬리가 길어질수록 머리와의 구분도 점차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드는 생활비가 많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내 손에 들어오는 과정에 감사했기에 이 돈을 쓰면서도 역시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또한 사치가 아닌 필요에 따른 소비를 하기에 그 만족감은 한결 크고 오래가는 것 같다.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릇 하나, 책 한 권…. 그 모두가 우리네 삶을 이어주고 풍요롭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들이 아닌가.
《피어라, 남자(김광화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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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잔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일상 속의 상대평가는 은근히 피를 말린다. 애정 어린 관심과 걱정이란 옷을 걸친 채 등장한다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엄친아나 엄친딸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상대평가는 아이들만의 일도 아니다. 이젠 부모자격증까지 언급되고 있다. 사람이건 예술이건 상품이건 간에 모든 게 비교되고 분류되고 평가되고 점수가 매겨지는 요즘이다. 대중매체는 연일 쇼크독트린의 공포바이러스를 퍼트리며 우릴 혼미백산케하고, 자나깨나 눈 앞의 무한경쟁의 밀림숲을 유념하라 충고한다. 밀림은 인간이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기를 명령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몰이해와 무감각을 양산한다. 탐욕스럽고 삭막한 도시정글 속에서 현대인은 모두 늙은 아기가 된다. 늙은 아기는 지나친 자의식, 무기력, 소심, 삐침, 우울증, 서투름, 울컥 등의 특징을 보인다. 심신이 모두 피폐한 현대인은 치료가 필요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아니다. 치료의 으뜸은 무엇보다도 자기치료이고 자연치료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가이아의 품으로 돌아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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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부제가 선뜻 가슴에 와 닿았다.
몸, 마음을 살리고 치유한다...이 말때문에...
그리고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는 저자 스스로 말하기를 평균 남자들 기준에도 못 미치고, 뼈대는 가늘고 몸은 말랐고 쪼금만 무리해도 몸이 고장나는 남자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이상한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말 할 수없는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어떻게 저렇게 빈약한데 결혼해서 애도 낳고 또 직장생활, 공부를 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아...하는 생각과 자본, 물질만능의 세대에서 어쩜 그럴수도있겠구나하는 동정심과 이해를 했다고 표현해야하나? 남자라서 이해한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이해가되었다.
때론 남자이기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강한 남성, 그리고 암묵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우는거라는둥... 여러 남성상을 강요받는것처럼 여성도 여성으로 태어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현모양처, 그리고 여성은 약하다는 강한 세뇌아닌 세뇌와 악습을 요구받고 자란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김광화씨가 어떠했을지 죽음까지 생각한 저자의 마음이 한층 더 헤아려지고, 지금의 삶을 자급자족하면서도 여유로운 행복과 사랑을 찾은 모습에 더욱 기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망가진 몸,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보듬어가는 과정에서 '해야하는 일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 을 담았다.
2부는 몸과 마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서 '몸이 아프지 않으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그냥 흘러 보내기 쉽지만,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일상의 충만함' 을 발견한다.
3부는 부부연애라는 새로운 트렌드?? 불륜이 아닌 처음 그 설레임 그대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4부는 더 넓은 세상과 관계맺기를 통해 사람관계의 어려움을 호소, 소외되지않으면서 '나' 라는 동심원에서 뻗어나가는 고리로 '자신을 열어두는만큼 세상은 자신에게 다가온다' 고한다.
이 책을 통해 치유와 살림의 의미,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가슴속에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 남을 위한 사랑은 내가 지치고 힘들면 바닥이 드러나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보상을 받으려고한다. 자기사랑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사랑이다.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자면 그 이전에 자신에 대한 사랑, 설렘이 있어야한다. 자신에 대해 설렐수 있을때 내게 다가오는 인연에 대해서도 설레는 마음이 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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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잃은 중년의 남자, 그의 다시 시작하는 삶 이야기.'
서평 이벤트에 여러번 참여해 따끈따끈한 신간을 공짜로 얻고, 내가 쓴 서평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는 기회를 여러번 가졌다. 이미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르네상스의 서평 이벤트. 그 중에서도 '농부' 김광화의 피어라, 남자는 이제껏 지나 온 어느 이벤트의 도서보다 더 욕심이 났다.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린 얼마나 경쟁을 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애를 쓰는가. 김광화는 그 중에서도 제법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에 속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일류대학(물론 국내에서만)을 나와 직장을 구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토끼같은 자식도 둘이나 두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생활이 길어질 수록, 점점 사람들과의 괴리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 끝없는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밖에서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떨쳐야 했고, 집에서는 든든한 아버지와 다정한 남편의 역할과 이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평범한 중년의 그.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 이 사회, 세상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점점 잊게 된 것이다. '김광화'였던 남자는 온데 간데 없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때론 친구이자 동료라는 이름으로 많은 '복제자아'를 갖게 된 사람. 결국 그는 사회생활을 견디지 못해 점점 집으로 숨어 들었고, 사회와 단절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의 그에겐 '집'이라는 안락한 공간 역시 사회의 한 조각이었다. 아내가 집 안과 밖으로 사회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록, 김광화는 점점 무력감에 빠져 자존감을 잃어 갔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초라한 내 모습을 보는 그 고통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우리도 모두 익히 느껴본 감정이 아니던가.
때때로 우리는 견딜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제법 잘 버티어 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과연 그것이 그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견디는 것인지, 혹은 스스로의 자리를 점점 인정해 가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는 사회와 타인이 요구하는 타이틀보다 내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며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내세우며 모든 것들을 버리고 시골로, 흙으로 돌아 간다. 자신은 흙을 밟고 섰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최대한 조직이나 이익집단을 피해 본인과 아내, 아이들 그 개개인이 각자의 색깔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정착한 곳은 스스로 밭을 일궈 하루 양식을 하루의 노동으로 벌어야 하는 곳. 그곳에서 김광화는 잊고 있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아내와의 소원해진 관계도 '부부 연애'라는 이름까지 붙여 이젠 다른 부부들에게 조언까지 해주는 잉꼬부부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까지도 학업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고 같이 고민하는, 이제야 진짜 '나다운 아버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흙이라는 요소가 그에게서 사라진 생명력을 다시 불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그를 바쁜 현대사회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주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재해석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해 진다는 걸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행복한 삶, 진실한 삶, 후회되지 않는 삶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냐고,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끝없이 되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정답을 듣지 못했던 묻혀버린 의문들.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기에 우린 걱정할 것도, 불안한 것들도 너무나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우리는 늘 걱정하며 살아야 하나. 과거는 지났기에 중요치 않고,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아 알 수 없는데 그럼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 우린 모두 지금의 행복을 단지 미래에 안위를 위해 유예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스스로 지칠 때까지 자문하고 답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모든 걸 훌훌 털고 흙으로 돌아 가도 좋고, 지금 그 자리에서 투혼을 발휘해 모든 걸 걸어도 좋다. 우린 매 순간을 행복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럴 권리가 아니라, 우린 그래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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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크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을 때는 몸과 마음도 같이 피폐해져 그동안 잘 유지하였던 주변과의 관계들도 무너지고 자기 자신의 중심도 무너져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지 몰라 제2의 사춘기처럼 심한 자괴감과 두려움에 빠져든다. 마치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넓은 사막에 사나운 모래바람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턱까지 올라온 모래구덩이에 빠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상황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건 여자건 남자건 삶의 어느 한 순간 반드시 겪어야 할 필연적인 수순인 것처럼 나의 부모님도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있으셨고 나 또한 한차례 호된 홍역처럼 심하게 겪어야만 했었다. 그땐 나 자신을 내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떻게 다독거려야 할지 몰라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랐건만 불행히도 나의 곁에는 아무도 없음을 그때 처음 깨달았었다. 인생에 진정한 친구 세 명이라도 아니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성공적인 삶이라고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 같았는데 나에겐 사방에 친구라고 느꼈던 그들조차도 나에겐 친구가 아니었던 것을 그때 난 깨달았던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많은 문제가 있음을 그때 난 깨달아야 했었고 뼈저린 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상황이 나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게도 한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그 상황에 빠졌을 땐 어둠의 긴 터널에 갇혀있는 듯이 한 치의 조그만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던 막막한 시간들이었었다. 『피어라, 남자』를 쓴 저자 또한 평균 남자들 기준에 못 미치는, 소심하고 약한 자신에 대해서 끝없는 절망과 자괴감에 빠져 아침에 해가 솟아나는 게 두렵고 내가 흔적 없이 사라지듯 세상도 그러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저주스러울 만큼 심하게 나약하게 병들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가족에게 조차 거추장스런 짐이 되어 있다는 생각에 힘겨워하다가 병명도 없는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고 술을 먹고 죽으려고 한강에 갔다가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 한 번만 하고 죽자고 다짐하고 남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고통에서 밑바닥을 차고 올라오게 되었고 평균 남자들 기준보다는 못하지만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믿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게 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장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하고 그 모든 것들을 '한 남성의 자기 치유와 자아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정리된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그래, 흙으로 돌아가자. 나를 아무 조건 없이 키워주고 받아주던 흙에서 한 번이라도 실컷 뒹굴어보자. 가난한 이도 병든 이도,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말없이 받아주는 흙." 자자는 말한다. 자신을 부단하게 계발하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일 수도 있지만 끝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건 또 다른 억압이 되기 쉬워 껍데기를 확장하는 자기 계발보다 '알맹이를 보듬는 자기 사랑'이 먼저라고. 그렇게 저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스스로를 고쳐가기 시작하면서 당당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도시를 떠나 경남 산청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어느 공동체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이념만 그럴싸한 산청 공동체에서의 삶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하던 저자는 2년 만에 그곳을 떠나 무주에 마음에 드는 논을 사 정착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유를 누리고 기쁘게 자신을 바꾸어 나아가고 또한 가족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연애기술은커녕 그동안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에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듯 부부싸움 할 에너지를 아내와 다시 연애하는 사랑의 에너지로 키우기 시작하는 연애 전도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차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도 넓어진다. 하나의 선택이 삶을 송두리째 바꿀 때 이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선택의 빅뱅'이란 말이 나왔다. 한 번의 선택이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난 폭발을 가져와 삶을 근본부터 바꾸는 현상. 일상에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선택의 빅뱅은 다르다. 고정된 틀이 탁 깨지면서 갑자기 대폭발에 가까운 다양한 선택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빅뱅에 가까운 일은 뭘까? 흙으로 돌아온 일이다. 병든 나를 받아주고 치유해주며, 더 나아가 자신을 실현하게 해주는 생명 근원의 자리, 흙. 그 흙이 내 삶에 빅뱅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에겐 저마다 일어나는 빅뱅의 양상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의 선택이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난 폭발을 가져와 삶을 근본부터 바꾸는 현상'인 그 빅뱅이 나에겐 찾아온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그것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되물었다. 어쩌면 찾아 왔었는데 혹시 내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욕심 부려 놓친 건 아닐까? 갑자기 조급증이 나를 휘몰았다. 하지만 저자는 나에게 다독거려준다. "억지는 부자연스럽다. 악착같이 하는 건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시간, 그도 아니면 자기 욕심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앞날을 위해 비축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끼에 열 그릇을 먹을 수는 없다. 억지로 먹다가는 탈이 난다. 마음 역시 그렇다. 마음도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먹어야지, 그렇지 않고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탈이 난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