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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승효상(承孝相, 1952 ~ )은 한국 현대 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거목(巨木) 가운데 하나인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그는 학연을 지양하고 한국 건축의 새로운 담론을 요구하는 젊은 건축가 14명의 모임인 ‘4.3그룹’을 결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그가 1996년 출간한 <빈자(貧者)의 미학(美學)>은 그의 건축철학이 담겨있는 삶의 선언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가 민현식(閔賢植, 1946~ )은 ‘빈자의 미학’을 “물리적으로 빈한(貧寒)한 자의 어쩌지 못하는 퇴행적 미학이라기보다 스스로 빈자(貧者)이고자 하는 자의 실천적 미학” [p. 101]이라고 했다. 청빈(淸貧)을 미덕으로 삼아,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추구했던 진짜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인지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을 떠올렸다. 물질 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에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一致)하진 않는다”는 말처럼 올곧은 건축철학을 얘기하는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가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살아보세’라는 주문(呪文)에 끌려 왜 잘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잘사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 없이 달려가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생각해보면 <빈자의 미학>이라는 저자의 선언은 우리 세대의 ‘화두(話頭)’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자. 오늘날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물질적인 부유함만 쫓다 보니 ‘졸부(猝富)’를 추구하게 되고, 오로지 ‘돈’만 남는 황금만능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남의 떡’만 바라보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쓰레기통에 버렸으니……
건축가인 저자는 이를 건축이라는 틀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시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당연히 비추어야 하는 거울이라는 거인데, 이를 위해서는 마땅히 우리 시대에 어떠한 건축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사려가 필요하다.” [p. 19] 그리고 나서 이러한 우리 시대의 건축에 대한 사려가 배제된, 건축철학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짧게 언급하고 있다. “60년대에 들어서 우리 강토에 휘몰아친 ‘잘 살아보세’라는 편향된 가치 추구가, 왜 잘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분별력 없는 구호가 파행적 정치 모습인 군사독재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내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뭉뚱그려진 전체 속에서 박제된 껍데기를 가지고 서로의 영역만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허무의 모습으로 이 시대를 지탱하고 있다. 이것은 이 시대의 위기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p. 31]
이제 와서 옛 전통을 찾으려고 해도 이미 박제되어 있고, 그 정체성도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온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근원으로 되돌아가, 시대에 맞는 새 전통을 세우면 되지 않을까? 저자가 선언한 ‘빈자의 미학’에서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지 않는 옛 선비의 정신을 그린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물론 여기서 말한 선비는 꽉 막힌 ‘유교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p. 59].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도시가 다양한 삶의 집합체라면, 건축 역시 그 삶의 한 공동체이다. 그 삶이 단속(斷續)적이지 않은 것과 같이 건축 역시 도시에 대해 닫혀있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영역의 담을 허는 것, 남겨진 공간을 도시에 내어주는 것, 그 속으로 도시의 길을 연장시키는 것 등등은 그러한 열려진 삶을 이루는 첫 번째 방법이다.” [p. 79]
왜냐하면, “목적을 가진 공간은 그것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지난 후 그 공간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게 되며,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삶과 전혀 관계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딱히 쓸모없어 이름짓기조차 어려운 그런 공간은 건축의 생명력을 길게 하며, 정해진 규율로 제시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든다. 쓸모없는 공간, 예를 들어 우리네 ‘마당’은 참 좋은 예가 된다. 우리의 마당은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사고의 중심이며,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를 발견케 하는 의식의 공간” [pp. 83~85]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비움과 여백은 어쩌면 장자가 얘기하는 ‘무용(無用)의 용(用)’이 극대화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저자와 다른 거장들의 작품이 친절하게 실려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짧고 불친절한 책이지만, 덕분에 떠먹여주는 밥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챙겨 먹는 밥을 먹은 듯하다. 10년, 아니 20년이 지나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 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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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문명시민 강좌에서 승효상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좌 신청때 부터 얼마나 기다렸던 강연이었는지 모른다. 강연에 앞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받아적으려 했으나 괜시리 연필을 놀리다 선생님의 말을 놓칠까 싶은 노파심에 아둔한 머리로 가만히 외워 두었던 문장을 복기해 본다.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비슷은 할 것이며 그 뜻을 훼손치 않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학자는 자신이 본것과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이나, 작가란 자신의 믿음과 느낌을 표현하는 자 입니다.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편애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자일 것입니다.' 이 뒤로 작가에 대한 단상을 좀 더 이야기 하셨는데 너무나 강열하고 담백하며 선언적이라 그저 마음을 쏙 빼앗기고 말았다. 특히나 작가란 아집과 편견 자신의 편애에 사로잡힌 자라는 말은 첫 번의 강의 김훈의 나는 다만 나의 편견과 편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을 생각케 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 끼리는 통하는 구나 싶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자기 나름의 사유함의 과정 속에서 찾은 자기 철학이 확고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빈자의 미학이라는 이 전설의 책을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 어떻게 읽었는지는 어렴풋한 기억의 단상으로만 남아 있는데, 아마 어딘가의 혹은 누군가의 책장에서 무심한 손길로 잡아 들었던 책을 정신 없이 한번에 읽어버리고선 책을 스리슬적 집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 잡혔던 느낌만이 오롯이 남아있을 뿐이다.(충동질을 잘 참았 던 요량으로 이리 개정판을 만나 저자 싸인 까지 받았으니 역시 세상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만난 개정판은 정말이지 감개무량의 감동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작디 작은 책의 중고 거래가격이 10만원을 호가 한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 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 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 Beauty of Poverty Here, it is more important to Use than to have to Share than to add to empty than to fill 이 네 줄 짜리 문장의 강열함이라니. 이것은 단순 책의 서문이 아니라 건축가 승효상의 선언이며, 그의 건축의 정수이자 소울이라 감히 말하겠다. 심지어 작가 후기에서도 본인의 선언으로 인한 발목 잡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 선언으로 인해 이 선언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건축을 사유해 왔는지를 설명하는데, 이번 강연에서 선생님이 보여주신 자신의 건축물들과 설계들의 설명들을 듣자니 저 선언안에서 자유로웠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더랬다. 땅위에서 자연과 숨쉬기를 갈망하며 삶의 터전을 지어왔던 우리네 건축과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요즈음의 철학이 사라진 삶이 없는 칸막이로서만 존재하는 건축을 꼬집는 통렬함이 좋았고, 우리시대가 이런 건축가를 가지고 있음에 다행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강의 말미에 선생님께선 어느 청중의 질문에 대해 나는 내가 죽었을 때 나의 건축물도 모두 소멸하길 바라는 바램이 있다고 하셨다. DMZ에 지어질 건축물을 설계한 도면과 화면을 보여주셨는데(현재 서울역에서 1:1 모형이 전시중이라고 하셨다. 아 보고싶다.ㅜ_ㅜ) 인간이 아닌 새의 시점으로 만들어진 영상에서 선생님의 지금 우리의 실력으론 그곳을 건드리면 안된다라는 말씀을 강력히 주장 하셨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영상말미에 건물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없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청중들 모두가 숨죽여 와~ 소리를 낼 정도 였으니까. 정말 좋은 강연이었고 정말 좋은 책이다. 책의 에필로그에 선생님이 이 책의 만듬새에 얼마나 많은 주장을 담아 냈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다시쓸 요량을 하시고 계시다는 말씀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읽으시라 그럼 느낄테니. 좋은 문장들이 무척이나 많고 영문으로 동시에 씌여 있어 나는 역으로 영문을 한글로 번역할때 어찌 번역하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기분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벌써 3번이나 읽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다시금 종종 꺼내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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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에서는 승효상의 철학이 반영된 초기 건축 11점을 만날 수 있다. “건축학도들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유홍준 교수의 집 ‘수졸당’부터 ‘돌마루 공소’, ‘웰콤 시티’ 등 승효상의 스케치와 설계도가 책을 보는 기쁨을 더한다. 또한 이 책의 독창적인 특징은, 동서고금을 아우른 위대한 사유와 고귀한 예술작품, 아름다운 건축들이 승효상의 안목으로 엄선되어 담겨있다는 것이다.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제의 ‘라 뚜레뜨 수도원’부터 우리네 ‘달동네’와 ‘종묘’까지, 자코메티의 조각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몬드리안과 김환기의 그림 등이 승효상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주석과 함께 매 페이지마다 독립적으로 펼쳐진다. |
| 책은 얇고 건축책인만큼 당연히 사진도 꽤 많다. 영어도 같이 실려있어서 생각보다 책은 금방 다 읽어버렸다. 책 한권을 다 읽는데 이렇게 시간이 별로 소요되지 않는다는 것이 좀 의아했지만 어쩌면 이 또한 빈자의 미학과도 연관되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승효상의 건축물처럼 군더더기나 허황된 과장과 가식이 없는 압축된 텍스트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승효상의 묵상이 훨씬 마음에 들지만 오늘날의 승효상을 있게 한 자기선언으로서의 빈자의 미학 또한 그 울림이 큰 책이었다. 그런데 사진은 좀 더 컸으면 좋지 않았을까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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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이 다목적이든 단일목적이든 그러한 목적을 가진 공간은 그것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지난 후 그 공간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게 되며,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삶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딱히 쓸모없어 이름짓기조차 어려운 그런 공간은 건축의 생명력을 길게 하며, 정해진 규율로 제시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