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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프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가슴을 날이 선 칼로 찌르는 것마냥 너무 아픈 책이다. 만약 이 책을 읽으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것은 양심을 죽인 사람이던가 그 책 속에 예로 나온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발전을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 듯하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편안히 앉아 자판이나 두들기고 있을 수 있다. 현재 직업은 없어도 당장 내일 먹을 밥을 고민하지는 않고서 말이다. 그리고 한국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러나, 이러한 편안함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 아직도 한국에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기회의 땅에 발도 들여놓지 못 했다. 어떤 학생들은 아직도 점심을 굶어가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국을 벗어나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필요한 물을 공급받지 못 하는 수 많은 사람들. 당장 일하지 않으면 내일은 굶어야 하는, 아니 지금 일해도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 하고, 어떤 이들은 신체의 자유를 잃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우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불편한 진실을 그냥 눈 감아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불편한 진실에서 얻은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당장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로날드 사이더 목사님은 쉽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 시작은 무엇이며, 그 문제에 대해서 나의 죄는 무엇인지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침묵하지 말고 멈추지 말 것을 요청하신다.
이 책을 읽고 있다보면 우리의 눈이 얼마나 탐욕으로 멀어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주변의 이웃을 바라봐야 할 눈이 멀고 먼 황금송아지에 꽂혀있다는 점이다. 지금 다시 주변의 이웃을 돌아봐야겠다. 책을 놓고 주변의 이웃을 향해 걸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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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목만 보면 부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는 듯 보이지만 그보다 광범위하게 서구권 소위 선진국 중진국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지구를 살아가는 인구의 전제 경제적인 평균보다도 상당히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구권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 그룹이라 하더라도 다 넉넉하겠는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소유나 기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역시나 전세계 평균보다는 우월한 위치라는 변하지 않는 결과치가 나온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무비판적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의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거슬러 올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나누고 베품으로 생명을 살리고 세워주는 일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자원을 배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저자가 저술한 의도는 단순히 찔림을 느끼기를 바라는 바가 아니다 간혹 이 책을 읽고 그리 반응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찔림만 받고 안움직이면 소위 말하는 강남 좌파와 무엇이 다르겠나 그러한 감정적인 측면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는 측면에서 숙고와 행함을 하는 것이 올바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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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리스도인은 부유할까? 물론 이런 식의 일반진술로는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 교회 안에는 (특히 경제적으로도)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최근 수십 년 동안 새롭게 기독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지역인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이들의 비율은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는 부유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20세기 초중반까지 기독교가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주요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좀 더 부유해지는 것을 그들의 구원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니까.
물론 ‘부(wealth)’라는 것은 악하지 않다. 다만 부가 쌓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종종 이 차이는 각자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구조와 제도, 그리고 왜곡된 문화로 인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정의롭지 못한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로 여기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시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 이유는 이런 상황이 대개 억압적이고 비틀린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는 나누어져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더 편한 삶을 위해 과시적이고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건 회개해야 할 죄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 낸 다양한 경제학적 문제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적지 않은 분량에 걸친 분석에는 환경적, 정치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정의에 대한 고민 대신 더 많은 부유함에 대한 욕망만이 두드러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부유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더 검소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면서, 그렇게 절약된 물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후원이나 원조만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구조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그런 일들을 하는 기업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또한 가정재정의 십일조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의 중요하다는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빚을 탕감해 주는 등 국가와 국제정치적 차원에서의 방안도 함께 고민한다. 애초에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라면 해결책도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1978년 이 책이 처음 나왔던 그 때 이후로(내가 본 책은 2005년에 나온 증보판이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지구적 기근과 기아문제는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다양한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고, 그 중 일부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그 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좀 더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트럼프의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강대국들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구조는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 같고(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검사와 치료, 그리고 백신을 통한 면역의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쓰려져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이가 단지 최근의 몇 년에 국한된 특별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저자가 지적하듯, 다시 한 번 교회의 중요성,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교회는 아직 뭔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물론 많은 교회들이 훌륭한 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교회는 큰 건물을 짓거나, 많은 재산을 쌓거나, 지속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 구성원들 각각의 사회적 명성을 높이거나 신분상승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인 조직이 아니지 않은가. 죽음까지도 감당하며 다른 이들을 도우려 했던 분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였다. 과부와 고아들을 돕고, 병자들을 돌보고, 사회가 인간이 아니라고 가르쳤던 노예들도 기꺼이 집사로 세웠던 혁명적인 조직이었던 교회가 그들을 만들어준 복음의 원초적인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