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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연히 길을 가다가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을 만났다. 당시에도 데면데면하던 터라 이름조차 가물가물했지만, 오랜만에 만났다고 괜히 친한티 팍팍 내며 안부를 묻게 되었다. 그녀는 얼마전에 결혼을 했다며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던 벽안의 남편을 소개해 주는데, 이름이 무슨무슨 프렌딕이었다. 어느새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마치 다 안다는 것처럼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한다. 헬로우로 받아친 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는 그 부부를 뒤로 한채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그 패밀리 네임의 출처를 생각해 내고자 기나긴 갑갑함의 터널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만에 어찌어찌 기억해 낸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이 작품을 꺼내 들었다. 예전 번역본은 번역이 좀 많이 아팠던 게 먼저 떠오른다.
'에드워드 프렌딕'의 회상으로 서사를 그려나가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악몽이다. 인간과 동물의 하이브리드가 현실화하고, 창조와 진화가 이리저리 뒤섞여 있으며, 사회와 종교의 복잡한 갈등 요소가 이 섬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의지가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된다고 믿는 듯한 모로 박사의 호기심과 실험 정신 앞에서 이 현실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난 웰스의 이런 상상이 참 많이 무서웠다. 모로 박사는 내내 두려웠으며, 고통의 집에서 들리는 비명과 신음을 혐오했고, 피비린내 나는 선악과의 비밀을 알게 된 섬주민들의 본능을 외면하고 싶었다. 웰스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훌쩍 넘어간 이 시간이 아무런 거리감 없이 바짝 곁에 다가와 있기에 한편으론 헛헛했다. 섬에서 탈출해 도시에서 삶을 꾸려가는 프렌딕의 고백은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머지않아 여기 섬나라 사람들(영국)의 퇴화가 대규모로 재연될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희망과 미래의 가능성은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뭐 진부하지만 할 수 없지 않을까. 책으로, 까만 별밤으로 무작정 도망쳐도 이렇게 누군가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사는 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말이다. 대답은 너무 뻔한, 그래서 읽을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미장센으로 가득차 있는 이 소설은 직관과 모험의 측면에선 인생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작품의 환상적인 색채 앞에선 그저 후달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때그때의 빛을 감사히 따라다니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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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인간에게 지성이 있기 때문일까? 이 외딴 섬에서 일어난 비극도 그렇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모로 박사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뚤어진 미치광이에 가깝지만 자신의 지성에는 충실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의 도덕성이란 것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 오만하다. 그 오만함이 동물들을 실험(고문에 가까운)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든다. 지성과 오만. 이 두가지가 인간을 가장 잔인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해보았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도 동물이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 역시 지성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오만해진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을 학대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 섬에서 모로 박사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인간이 되다 만 동물들은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원래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모로 박사에 의해 인간에 가깝게 개조된 이 동물들은 동물이라고 할 수도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인간과 동물은 가운데에 존재하는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체. 이 섬에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건 참으로 애매하다. 그 안에서 모로 박사는 인간이라기보단 신에 가까운 존재로 군림한다. 동물은 인간에 가까워지고 인간은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섬. 인간의 오만함이 극치에 달한 섬.
이 뒤틀린 섬은 결국 붕괴한다. 모로 박사가 죽고 인간에 가깝게 개조되었던 동물들은 지성을 잃고 평범한 동물들처럼 퇴화한다.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인가, 끊임없이 추구한 지성의 허무함인가, 그저 인간의 한계인가. 다만,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이 책은 어느 시대에 읽어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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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박사의섬 H.G. 웰스 저
일단 표지에서 시선을 확 끌었던 책이다. 과학과 관련된 소설이라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읽는내내 이책은 정말 영화로 만들어지면 볼만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끝부분을 읽어보니 영화로도 이미 몇번 제작되었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고 무분별한 과학실험에 대해 꾸짖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실제로 이책이 출간되면서 영국에서는 큰 파란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동물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조직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대채 모로박사의 섬에서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배가 난파로 인하여 주인공 프레딕이 조난을 당하게 되어 몽고베리라는 의사에게 겨우 목숨을 건지게된다. 그리고 그를 따라 어느 섬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 살고있는 모로박사를 소개받고, 그섬에서 인간이라 하기에도, 동물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생물체를 여럿보게 된다. 프레딕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들이 사람의 말을하고 사람의 행동을 하여 그냥 조금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사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후 퓨마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몇날몇일이 계속되고 모로박사의 실험실까지 살짝 보게 된 후 사람을 동물화하는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고 오해하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도망을 치면서도 동물도, 사람도 아닌 괴물들에게 위협을 느낀다. 결국 모로박사와 몽고베리가 나서서 그의 오해를 풀어준다. 사람을 동물화하는 실험이 아니라 동물을 사람화하는 실험이라는 것. 그렇게 프레딕은 사실을 알고 그 생명체들을 다시보니 동물의 습성이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모로박사는 자신을 신으로 칭하고 동물인간들에게 최면술까지 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동물인간들은 하나둘씩 동물의 본성으로 돌아오게 되어 모로박사는 결국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모로박사의 섬에서의 11개월 동안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역시 아무도 믿지 않아 주인공을 대신하여 조카가 책을 내었다고 에필로그를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인가, 또한 언젠가 벌어질 수도 있는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인간에게 감히 동물을 생체실험에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단한다 하더라도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동물들을 다스리려하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모로박사의 죽음으로 인하며 결국 우리 자신들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자연도, 동물도 그나름대로 그들의 삶이 있을 뿐더라 그모습 그대로 살아가는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이 든다. 이책은 지금 현재 우리사회에 대해 꾸짖고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앞만 보고 나아갔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자리에 멈춰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끔 만들준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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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닥터 모로의 DNA'라는 영화를 봤었다. 그때 당시에만 해도 주인공으로 나온 발 킬머는 꽃남이였다. 지금은 영화의 장면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느낌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 보면 조잡한 분장과 CG때문에 웃음밖에 나지는 않겠지만 그때 당시에만 해도 꽤 현실적이였던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 <모로 박사의 섬>이다. <모로 박사의 섬>은 '공상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H.G. 웰스의 소설로 과학만능주의와 인간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수작이다. 특히 이 책 <모로 박사의 섬>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96년도에 발표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유전자 조작과 인간의 윤리적 문제 등 지금 현재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니 H.G. 웰스의 혜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이 출간이 된후 영국의 과학자들은 동물 생체실험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게 되고 일부 사람들은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조직까지 구성했다고 하니 이 소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영국에서 잔인한 실험을 하고 추방을 당하고도 미지의 섬에서 동물을 이용한 생체실험을 계속하는 모로 박사의 잔인성은 현대 문명과 인류를 대변하는 모습은 아닐까. 결국 자신의 실험체에게 죽음을 당하는 모로 박사의 최후는 과학 만능주의가 팽배해져있는 이 사회에 던지는 저자의 메시지인듯 하다. 우리나라도 몇년 전 황우석 박사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반성과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다.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언젠가는 닥칠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인간 복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 조작 등 인간이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그때 모로 박사처럼 우리는 우리가 창조해낸 존재에게 죽음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 연장 혹은 질병 치료라는 목적하에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모로 박사와 같은 위험한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다. 천연 인간과 복제 인간으로 인류가 나뉘게 될 그날, 우리의 모습이 모로 박사와 다를것이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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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1개월 동안 실종됐다가 갑자기 나타난 에드워드 프렌딕의 기이한 모험담에서 시작한다. 서문을 프렌딕의 조카가 써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시작되는 액자 형식으로 표현해 마치 실존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여줘서 더 현실감이 넘쳤다. 남태평양에서 난파선을 탈출한 프렌딕이 우여곡절 끝에 발을 내디딘 섬에서의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고 결국 섬을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인 것이다.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하는~
모로 박사라는 인물은 영국에서 잔인한 실험을 한 대가로 추방을 당하고 미지의 섬에 정착해 생체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인간에겐 환상적인 실험이지만 그들에게는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는 실험.... 좀 더 편한 삶을 주기 위해서 인간처럼 두 발로 걷게 하거나 생체를 이식하여 인간의 말을 하게 만드는 잔인한 실험~~ 마치 영화에서 인간복제를 하기 위해 여러 잘못된 모양의 인간을 나열한 한 장면처럼... 나는 궁금했다. 그런 모양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결국 자신의 인생이라는 게 없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어떤 과학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모양(?)인간이 태어난 다면 그들의 행복은 누구에게 청구할 수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물론 인간에게 어떤 기술은 확실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듯이 자신의 복제가 있다면 내 장기 중 어느 것 하나가 고장이 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을 테니,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을 거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인간의 야심이 비상식적으로 커지면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린 적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치면 큰 화를 입는 법. 인간의 노예가 될 운명의 새로운 동물 종을 탄생시키려는 모로 박사의 야심이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그에 대한 반발 또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 섬에선 주인공 프렌딕만이 살아남아 그이야기를 널리 알렸으니 어쩌면 우리에게 알리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이 백 년 전에 나온 책이라지만 정말 흥미진진하고 짜임새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우주전쟁>의 원작도 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정말 선구적인 상상력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평소 웰스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고 싶어 했다던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이 아둔한 사람들아’ 라는 문구가 새삼스레 다가오는 작품이다.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무덤에서 땅을 치고 있겠군. 아무리 옛날에 나온 소설이라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백년 전보다 오늘날에 더 많이 하는 동물 생체실험에 대해서도 먼저 생각해보게 만드니~~ 신약을 개발한다고,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벌어지는 동물 생체실험은 동물이 받는 고통과 동물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이를 두고 동물보호론자들은 뭐라 말을 하지만, 당하는 동물들이 말을 못하니... 정말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위해 동물을 마구잡이로 사용해도 되는지 정말 생각해볼 일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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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H. G. 웰스는 1866년 영국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고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과학사범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취직, 글을 쓰다가 27세때 폐결핵에 걸려 요양 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해 과학 소설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자연과학과 상상력을 결합하여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머신], [모로박사의 섬] [투명인간][우주전쟁][달 세계 최초의 사람]등을 발표아고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요즘은 작가의 이력을 보는것도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도대체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이런 책을 쓰게되었는지 궁금하다. 작가 웰스는 과학의 오만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보니 작가 역시 그렇게 도덕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글쓰는 여성작가들과의 교류도 있었고 그로 인한 자녀가 있는 것을 볼때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887년 2월 1일 레이디베인호는 카야호를 출발한지 열흘째 되는 날에 남태평양에서 어떤 유기물과 충돌해 난파된다. 그로부터 열한 달 나흘 뒤 작은 보트를 타고 있던 프렌딕은 구조된다. 구조된후 프렌딕은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모로 박사의 섬이라는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조난당한 에드워드 프렌딕은 학계에서 추방당한 모로 박사가 생체실험을 벌이는 섬에 남겨지게 된다. 모로박사는 잔인한 생체실험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학계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진 모로박사는 아무도 모르는 섬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로박사는 몽고베리라는 과학자와 함께 동물들을 이용한 생체실험을 한다.
그곳에 조난된 프렌딕은 아주 혐오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들이 여기저기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프렌딕은 사람을 생체실험해서 괴이한 형태로 변하게 한줄 알고 자신도 그렇게 실험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동물을 사람화한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혐오감을 감추지 못한다. 모로박사의 잔인한 실험결과 생겨난 괴상한 인간들을 만나게 된 프랜딕은 동물들의 죽음과 나중에 퇴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의 섬에서 탈출하게 되지만 문명 세계로 돌아와서도 그 끔찍한 경험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게된다. 혹시라도 이들도 그러한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아닐까라는 공포에 휘감겨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소설 안에서 묘사된 동물에 대한 생체실험은 책이 출판되자 마자 영국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며 동물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단체까지 생길만큼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냈다.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은 여러가지 생각지도 못했던 실험들을 한다. 전쟁동안에도 사람들은 마루타라고 해서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서슴치 않고 하고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동물들에 대한 실험들이 자행되고 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생체실험으로 생겨난 동식물들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변형시켜놓고 있다. 그런것들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많은 환경단체들의 말에 더욱더 귀를 기울여야 할때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암담한 생각도 종종 드는 요즘에 이런 소설을 접하게 되니 오싹하고 두려운 마음을 감출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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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배에서 살아남는 프렌딕. 향간에 떠도는 이야기의 진실을 말하면서 프렌딕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구명보트에 탔던 4명은 죽었다는 얘기를 진짜 이야기로 만들 뻔한 프렌딕은 작은 무역선에 의해 구조된다. 그 배는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개와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흉측하게 생긴 이상한 사내와 퓨마와 토끼 등의 동물들. 동물만 있었다면 아마 그 정도까지 이상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프렌딕에게 또 한 번 바다를 표류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곧 같이 배에 탔던 몽고메리에 의해 그가 산다는 섬으로 당도한다. 모로박사와 함께 말이다. 배에서 풍겨오던 분위기는 약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더욱 요상하다. 그리고 들어오는 괴로운 소리. 배에서 보았던 바로 그 퓨마의 소리다! 낯설지 않은 모로라는 이름에 대해서 기억이 떠오르는 프렌딕! 모로박사와 몽고메리는 그 섬에서 동물들로 하여금 실험을 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고통의 소리는 프렌딕이 익숙해지기 전에는 프렌딕마저 소리가 들여오는 집에서 집 밖의 이상한 섬의 공간으로 내쫓기도 했다. 어둠이 점점 내려오는 섬은 또 얼마나 괴기스러운가! 동물을 합성해놓은 것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자신을 죽일 것만 같은 공포. 이게 단연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일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동물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희생 된다. 인간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법으로 금지된 사냥을 버젓이 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들의 아픔을 나몰라라하는 우리들. 그래서 길거리에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모로 박사의 실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조차 없어 보인다. 실험에 집착하는 모로 박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집착인 것만 같았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내가 실험용 쥐와 같은 동물들을 위해 한 수 읊을 수 있는 사람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로 박사의 섬’을 통해서 내가 처음 실험용 쥐를 보며 측은하게 생각했던 내가 다시 떠오른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우리는 공포의 대상일 거라는 사실이다. 엠링은 죽는다. 그도 흉측할 것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도 모로 박사의 손에서 태어난 기이한 생명체 중 하나다. 동물도 인간도 아닌 기이한 생명체. 엠링의 죽음이 애석했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으로밖에 알 수 없지만 엠링도 회귀 중이었을까? 결국 동물들은 회귀한다. 인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던 그들은 결국 다시 회귀한다. 그리고 몽고메리와 모로 박사도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에는 다시 돌아온 자신의 일들. 우리의 일들은 결국 그렇게 돌아오는가 보다. 무섭고 공포였으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 모로 박사의 섬이 지금 이 현실세계에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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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과학을 통한 복제와 인공수정,성전환등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것 같다. 인간으로 창조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는 인간자체로서의 삶을 추구하려 노력하고 동물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약간의 변형과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프렌딕. 그의 경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만난 선박과 선원들. 두려움보다는 살았다는 기쁨이 더 컷을 순간. 그 순간이 지나면서 프렌딕은 섬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어리둥절함과 공포를 느낀다. 늘 그렇듯 보이지 않는 그리고 왠지 나와는 다른 무엇인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다른 동물의 괴로운 울부짖음은 더욱 공포스럽게 느끼게 된다. 섬에서 일어나는 기인한 일들이 약간의 의심은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벗겨지는 비밀, 인간은 과학을 이용하여 얼마나 많이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을까? 신의 영역에서 벗어난 생명은 즐거움과 기쁨, 자기의 정체성 안에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인간은 자연을 장악하고 싶어하고 다스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게 있어 관리할 수 있는 능력만이 있는 것이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모로박사. 그는 자연의 모든것을 지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동물과 인간의 동일성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로를 도와 주어야 하는 몽고메리. 그들의 종말은 어떻게 될것인가? 섬을 탈출한 프렌딕은 인간과 동물의 외면적인 차이보다 내면의 일치를 생각하며 일상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한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인간. 동물과 동물.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로 박사의 섬에서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생명체의 삶의 형태는 그 생명체 자체로서 살아갈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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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우면서도 잠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 과학적인 발전은 제쳐두고서라도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유난히 반짝이는 내용이다. 특히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아주 쉬운 내용에 잘 스며들게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현재 만들어지는. 이 책의 이야기와 비슷한 영화나 소설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충분히 쉬우면서도 알찬 내용. 앞선 과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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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생명을 창조한다. 이것은 무척 오래된 소재다. <프랑켄슈타인>부터 <쥬라기 공원>까지 모두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창조가 실제로 가능한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건 아니건 그런 물질적인 육체를 만들어내더라도,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창조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은 어떨까. <타임머신>과 <투명인간>, <우주전쟁>으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 <모로 박사의 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작품의 무대는 남태평양의 외딴 섬이다. 1887년 2월, 주인공 에드워드 프렌딕은 여객선 레이디베인호에 승선하지만 곧 배가 침몰하면서 혼자 구명보트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술주정뱅이 몽고메리, 약간 정신이 나간듯한 과학자 모로 박사를 따라서 한 섬에 도착한다. 화산섬으로 초목이 무성한 야트막한 섬이다. 그 섬에 도착했을때 에드워드 프렌딕을 맞이해준 것은 기이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생김새가 너무 다른 종이다. 중키에 흑인같은 검은 얼굴, 입술이 거의 없는 커다란 입에 괴상하게 길고 유연한 팔, 길고 가느다란 발에 바깥으로 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상한 외모의 '인간'들이 섬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모로 박사에게 복종하고 그를 따른다.
섬에서 생체실험을 행하는 모로 박사
모로 박사는 영국의 생리학 대가로서 비범한 상상력과 비정한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지만, 그가 행했던 끔찍한 생체실험이 비난을 받으면서 어쩔 수없이 영국을 떠나야 했다.
이 섬은 그 모로 박사가 영국을 떠난 10년 전부터 몽고메리와 함께 모종의 실험을 하면서 살아오던 곳이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섬의 괴상한 인간들이다. 에드워드 프렌딕은 섬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모로 박사의 정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밤마다 들려오는 동물의 비명소리 속에서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 고문당하고 죽어갈지 모른다고 공포에 떤다.
그런 과정 속에서 프렌딕은 마침내 모로 박사와 맞서게 되지만, 오히려 모로 박사의 언변에 설득당한다. 모로 박사는 이 섬에서 벌이는 이상한 실험들을 낱낱이 프렌딕에게 알려주고 이해를 구한다. 프렌딕이 본 이상한 종족은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었던 적도 없다. 그들은 동물, 인간화된 동물이었다. 모로 박사가 이루어낸 생체해부술의 경이로운 개가였다.
모로 박사는 주장한다. 생체실험의 실현성은 단지 신체 변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돼지도 교육될 수 있다. 정신 구조는 신체구조보다 한결 유연한다. 기존 선천적 본능을 새로운 암시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망성을 나날이 발전하는 최면학이 보여준다. 유전된 고착관념을 이식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윤리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본능의 인위적 개조이자 왜곡에 다름 아니다. 호전성이 교육을 통해서 용감한 자기희생으로 바뀌고, 성욕이 종교 감정으로 억제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원숭이의 중대한 차이는 후두부에 있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후두부를 생체해부술을 통해서 변형시킨다면, 원숭이도 인간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모로 박사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체실험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고통도 사소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과학의 가르침에 올곧게 마음을 연 사람이라면 그 고통이 사소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런 고통은 모두 무시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10년을 보내온 것이다. 야생동물들을 변형시켜서 인간과 같은 이성적 개체로 만들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까지 몇십 년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까짓 시간이 대수일까. 인류가 만들어지는데는 10만 년이 걸렸는데.
시대를 앞서갔던 작가 조지 웰스
모로 박사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과학자의 전형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윤리나 상식을 모두 무시한채 앞으로만 나아간다. 죽은 사람의 뼈를 가지고 살아있는 괴물을 만들어낸 제네바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도 자신의 창조물을 놓고 고뇌한다. <쥬라기 공원>의 수학자는 혼돈이론을 바탕으로 공원의 미래는 부정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모로 박사는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10여년 동안 많은 실패를 해왔지만 그만큼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모로 박사는 외딴 섬의 창조주이자 지배자이면서 80여년 후에 태어난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다.
동물을 변형시켜서 이성을 주입시키고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동물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있을 야생의 본능은 어떻게 통제할까.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법이 없는 이상 모로 박사의 섬도 쥬라기 공원처럼 변해갈 것이다. 그때쯤에는 모로 박사도 자신의 시도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유전자조작과 인간복제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현대에 많이 발표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보니 <모로 박사의 섬>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던 조지 웰스의 목소리는 <모로 박사의 섬>에서도 여전하다. 그 이야기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작품 속 주인공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도 그런 희망 없이는 살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