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역사를 배울때, '인물'보다는 '업적'에 치중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종대왕'에 대해서 배우면서..'한글창제','4군6진',',자격루','혼천의','해시계','측우기'등등.. 그의 '업적'들을 배우며 대단하시다 말하는데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은...'세종대왕'께서 이루신것도 대단하지만.. 한편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셨을까? ...그 업적들에 '왜'라는 이유를 붙여보면.. 결국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했는지를 알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는데..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항상 사랑하고 생각했기에.. 그들에게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다보니.. 결국 수많은 업적으로 돌아온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가 문무에 치우치지 않고...정말 다양한 분야에...'업적'들을 보여주심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정말 다양한 분야에....이루신 일들을 보니 말입니다. 마지막권인 3권은 드디어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한글창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현재 한반도의 영토를 완성시킨 4군 6진의 개척장면이 나오는데요.. 4군은 '최윤덕'이 6진은 '김종서'가 확보한지역입니다.. 북방지역은 끊임없이 오랑캐들의 괴롭힘을 당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던 '세종대왕'이시기에...북방의 국경을 확정지으려고 하고 이에 '김종서'와 '최윤덕'을 포함한 장수들이 군대를 이끌고 북진합니다 2권에 나왔던 '홍득희'의 활약이 다시 시작되는데요.. 그리고 천민이라 안된다는 '장영실'을 '호군'에 봉하고.. 그에 의해 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지는데요.. 특히 '자격루'(물시계)는 지금 봐도 정밀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편 드디어 '세자빈'이 아기를 낳는데요.. 며느리 문제로 속을 썩이던 '세종대왕'에겐 경사였지요 그러나 아이를 낳다가 '세자빈 권씨'는 죽게 되니.. 그녀가 낳은 아이가 바로 '단종'입니다..ㅠㅠ 당시에는 경사였지만, 사실 비극의 씨앗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드디어 문자를 만드려는 결심을 가지는 '세종대왕' '한글창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만든건지..아니면 '집현전'학자들에게 시켜서 만든건지...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종대왕'께서 혼자서 만드셨다는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더라구요 우야동동...'세종대왕'은 '문자'를 만드는데 집중하기 위해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자신은 '정음청'을 만들어 집현전 학자들과 '진양(수양)대군'과 '안평대군'들과 작업에 착수하지요 그러나 사대주의에 빠진 신하들은 왜 '한자'를 두고 야비하고 상스러운 글을 만드냐고 ...저항하는데요 '세종대왕'의 의지는 꺽을수 없고 '최만리'등은 의금부에 하옥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훈민정음' 반포.. 그러나 돌아온것은 ... 참 '성리학자'들은...보면 '성리학'말고는 다 '이단'으로 취급을 합니다.. 그렇다보니 정말 고리타분한데 말이지요...현재도 이런사람들 많지요... '유생'들의 동맹휴학...그리고 연이은 상소에서도..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았고 죽기직전 최고의 업적을 이룩하시는데요.. 죽으면서도 '고려사'를 완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심이.. 지금 보면 워커홀릭 같으시단 생각도.. 정말..3권의 '세종대왕 이도'를 읽으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의 마음이 보였는데요..... 현재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사랑하기는 커녕....자기 배불리기에만 급급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국민들을 섬기기보다는 벼슬로 보고...국민들을 깔보는데 말입니다. '세종대왕'은 인재를 보는눈이 있었으나.. 현재의 정치인들은 인재를 보는눈도 없고 말이지요.. 측근비리들을 보면..어찌 주위에 저런 사람들만 있는가 싶은데.. 언제 다시 '세종대왕'같은 위대한 군주가 나올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우리나라에 필요할때인데 말입니다.ㅠㅠ
|
|
세종대왕의 업적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를 댈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글과 자격루같은 진일보한 과학기술, 북방으로의 영토 확장을 위한 4군 6진을 떠올릴텐테요. 세종대왕 이도 3편 [하늘과 땅과 사람]에서도 신하들의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 창제와 국토 확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세종의 23년이라는 재위 기간, 그리고 그의 업적이 어땠는가를 보면 신하들이 무조건 그의 말이라면 찬성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것이 타당한 이유인가 싶게 신하들은 매번 그의 의견을 반대하고 나섭니다.
신하들 반대하지 않는 일, 같이 웃으며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을 위한 일들을 끈질기게 기다리며 밀고 나갔기에 세종대왕이 여전히 우리에게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어 있는 걸텐데요. 모든 백성이 편하게 읽고 쓰면서 존중받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길 바랐던 그의 마음과 양반이나 천민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능력있는 이를 쓰겠다 라는 그의 정책은 파격적이였기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두려워했을 양반들의 반대가 어땠을지는 상상만 해도 알게되지 않을까 합니다.
실록을 정독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했다는 저자 이 상우님의 이야기처럼 세종이라면 당연히 이러 이러한 삶을 살 것이다 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에게도 개인사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겠구나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건 세종대왕이나 다른 왕들도 떠올리면 곤룡포에 익선관으로 단정히 앉아있는 모습만 떠올리기 때문일텐데요.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희노애락, 세종대왕 역시 자기 마음같지 않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자식과 운명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인간적인 고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건만 아버지의 죽음 후 자신이 왕이 되겠다며 마음을 바꾸는 왕의 형제들을 많이 봤기에 몸이 약한 세자와 나이 어린 세손의 불안한 앞날, 그래도 진양이라는 이름을 수양으로 바꿔주며 그가 왕실을 지켜주길 바랐을 세종의 믿거니 하는 아버지로서의 마음, 부부이나 왕과 왕비라는 자리에 묶여 이래 저래 일이 많았던 소헌왕후와의 일, 왕의 같은 의견에 반대와 찬성을 번갈아 하는 신하들 틈에서 답답했을 한 사람으로서의 일생은 어땠을까 비로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젊은 날의 이도에서 세종까지, 왕관뒤 한 사람으로서의 일생은 대략만 생각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더 복잡했겠다 싶은데요.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누가 됐건 아는 이가 있다면 찾아가 물어보고 결심이 섰다면 실행해 옮길 줄 아는 왕으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 그가 더 위대한 이였구나 하게 됩니다. 소설이였지만 우리가 왜 그를 역사속에서 진정한 지도자로 기억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지 않을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