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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정과 민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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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요지를 말하자면 2세기 전제정을 이끌어낸 분별없는 열정을 지닌, 전제 애호 사상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1장에서는 마르틴 하이데거를 들면서 그가 순수하게 나치정권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흥미롭고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2장에서는 발터 벤야민을, 3장에서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코제브라는 헤겔주의자를 소개하고 있고 4장에서는 미셸푸코를 마지막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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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요지를 말하자면

2세기 전제정을 이끌어낸 분별없는 열정을 지닌,

전제 애호 사상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1장에서는 마르틴 하이데거를 들면서

그가 순수하게 나치정권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흥미롭고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2장에서는 발터 벤야민을, 3장에서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코제브라는 헤겔주의자를 소개하고 있고 4장에서는 미셸푸코를 마지막장에서는 자크 데리다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번역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와 교환한 질의응답이 있고,

번역자 나름대로 저자와의 견해차에서 설득력있는 결론을 보여주며 끝마무리하고 있는 부분인데, 책의 어떤 다른 부분보다도 깊이 있는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솔직히 마크릴라라는 이 저자는 전제정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를 보여주면서 그 스스로도 전제애호 사상가들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데, 이와 같은 전제정에 대한 뿌리깊은 그의 정치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러한 전제 애호에 빠져든 것은 애석한 일이라는 듯이 말하면서 그 원인을 메시아주의 등의 같은 그릇된 신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내 주장은 그의 정치적 색깔과 달라서 근본적인 전제정의 회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므로 어떻게보면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죽은 플라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제정이란 속성은 인간이 공동체를 이룬 이래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굳이 메시아주의나 계몽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제 애호에 관한 다른 그럴듯한 원인이 주변에 널려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그들 중에 대부분은 전제정의 전제자였다. 그리고 그들이 전제자였다고 해서 그들이 이룬 업적이 폄하되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현대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삼권분립으로 나뉘어 균형을 유지하는 민주국가지만, 대부분의 민주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대통령의 사면권이나 특별법 제정과 같은 행정상, 군사상의 특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통치행위라는 이름아래 입법, 사법의 다른 권한의 침해로부터 보호된다. 즉, 어느정도의 전제적 속성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다시 저자의 논점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하이데거가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이 일어나도록 도운 것과 마찬가지이며,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무책임하게 전제정을 지지하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서 그들의 살인에 명분을 제공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저자가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떻게 이성을 무기로 한 철학자가 비이성적인 전제정에 찬동하게 된 것일까. 사상가들이 정치에 매료되는 까닭은 무엇일까하는 것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미래를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들의 뜻대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서 그가 언급했던 미래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등장하는 코제브의 경우는 다르다. 헤겔주의자였지만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하는 코제브의 경우는 그의 철학과는 상관없이 실제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논문은 경제적 유럽연합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한다는 주장이 주가되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그의 영향력이 미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선견지명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민주정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책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만약 세상이 뒤집어져서 전제정이 도래한다면 철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효율적이고도 실질적인 비전을 가진 행정가가 전제자가 되어서 권력을 나누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민주정이 최선책일 수밖에.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것. 미셸푸코는 니체의 탕아였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는 영화로 각색해도 될 정도로 극적인 상황에서 쓰여졌고 전해졌다. 그리고 데리다는 데리다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고 확신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하이데거 이 망할 나치놈은 명줄 긴 천재가 맞는 것 같다.   

 

 

 

 

a*****a 2010.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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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 민주와 전제, 그리고 분별과 열정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민주와 전제, 그리고 분별과 열정 사이에서..." 내용보기
저자 마크 릴라는 20세기의 다양한 저항 이데올로기들 - 공산주의, 파시즘, 제3세계 및 여성 해방운동 등 - 을 (근대 자유주의의 '건전한' 전통을 와해시키는) '전제-애호 성향'이라고 통칭하고, 이 경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전통적 설명방식은 대체로 사상사적 방법이나 지식사회사적 방법이 있었다. 전자의 방법에는 이샤야 벌린의 비정한 합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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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크 릴라는 20세기의 다양한 저항 이데올로기들 - 공산주의, 파시즘, 제3세계 및 여성 해방운동 등 - 을 (근대 자유주의의 '건전한' 전통을 와해시키는) '전제-애호 성향'이라고 통칭하고, 이 경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전통적 설명방식은 대체로 사상사적 방법이나 지식사회사적 방법이 있었다. 전자의 방법에는 이샤야 벌린의 비정한 합리주의 운동 비판이나 야콥 탈몬드의 종교적이며 비합리적 열정 비판, 후자의 방법으로는 하버마스의 독일 지식 사회의 정치적 미숙성에 대한 비판이나 레이몽 아롱의 프랑스 지식 사회의 정치종속적 경향 비판이 있었다. 반면 마크 릴라가 선택한 것은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레오 스트라우스의 추종자답게) 고전적 전범을 통한 방법이었다. 그는 플라톤, 디온, 그리고 디오니소스 2세의 고전적 이야기에 기대어서 20세기 전제-애호 경향의 지적 흐름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플라톤이 디오니소스 2세라는 '유사 철인왕'을 <전제-애호>로부터 구해내는 덕목은 '중용'과 '절제'다. 디오니소스 2세는 '자기 자신을 잡아늘이려는' 심리적 열정에 사로잡혀서 분별력을 절제를 상실했고 중용은 깨어졌으며, 그의 정치는 전제정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이 상정한 고전적 인간 모델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 양 방향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생산'하고자 하는데(이를 Eros라고 부른다), 이 염원의 현실화 과정에서 고귀한 것과 천박한 것을 구별해내는 '통제력'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 통제력을 상실한 자는 '지상에 가장 가까운' 전제자의 영혼으로 타락하게 되고, 그것을 지킨 자는 '천상에 가장 가까운' 철학자와 시인의 영혼으로 고양된다고 본다. '사랑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바 - 영원한 진리, 정의, 미, 지혜 -를 얻고자 하는 희망을 담은 통제된 에로스의 삶'이 저자 마크 릴라가 제안하는, '분별없는 열정'에 대한 대안이다. 그가 20세기로부터 추출한 전제-애호 경향의 철학자들은 이런 고전적 전범에 의거해서 선별, 비판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김형찬씨의 서평 참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접근법이 얼마나 호소력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고전적 전범에 의거한 심리적 유형론이랄까? 훈고학 냄새가 짙게 나는 이런 식의 설명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 릴라가 선별한 이 철학자들을 역사적 맥락과 심리적 맥락에 함께 엮어넣어 살펴보는 것이 전혀 무용한 일인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그의 '세속주의적 이성'을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분별과 열정의 긴장, 민주정과 전제정의 유혹 등의 문제는 지금도 많은 지식인들을 사상적, 정치적, 사회적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는 문제들이다. '열정적으로 사유'하면서도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균형감각에만 너무 몰두하다가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한국의 노련한(?) 정치가 '김종필'과 같은 사람이 되어있음을 알게 되는 당혹감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