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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서 중에서도 명저로 손꼽히는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가 드디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일본서기 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번역 소개된 바 있으나, 신황정통기가 정식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인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는 14세기 일본 남북조 시대를 살다 간 풍운아로, 그 유명한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에게 충성을 바친 공경公卿이다. 그러한 그의 역사 의식이 이 책에 짙게 배어나오고 있는데, 제목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신들과 천황의 정통 연대기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남북조 시대에 편찬된 역사서, 즉 사료로서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근본인 황국사상의 뿌리라는 사상적 의미이다. 무엇보다도 일반 역사서와는 달리 특별한 목적-황실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그에 대항하는 무사들을 토벌하기 위한다는-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때문에 역사서로서는 그다지 주관적이지 못한 부분이 상당히 눈에 띈다. 신화가 역사와 잘 구분되지 않는 점(물론 신이라는 말로 신황神皇의 시대를 서술하고는 있으나 치카후사는 이를 마치 실존 역사처럼 서술하였다)과 개인적 사관이 지나치게 개입되어 역사적 해석을 자의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순수 역사서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른 서적을 보며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문학적 관점에서는, 치카후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뛰어난 문장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저자가 살아간 시대가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였던 만큼, 그 당시의 역사가 다른 부부에 비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국사 교과서의 단원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분량이 많아지듯이, 신황정통기 역시 남북조 시대의 기술이 많다. 이 부분에 있어 특히 치카후사는 냉정한 사관의 시점이 아닌 시대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충신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 아키이에의 사망과 주군(고다이고 천황)의 붕어는 그에게 있어 '손이 떨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이 신황정통기를 명저로 남긴 것은 아닐까.
후자, 황국 사상의 면에 있어서는 이 책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 문장이 '대일본(오야마토大日本)는 카미노쿠니(신국神國)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이것만으로도 신황정통기의 사상적 기반을 파악할 수 있다. 상上에서는 신들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그에 이어지는 신공황후神功皇后 기사에서는 일본서기와 같이 삼한 정벌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 부분은 에도시대 국학자들 이래로 정한征韓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5세기 초반 이후 조공이 끊겼다는 기사도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이 오해로 신라 사신들을 박해하여 신라인들이 원한을 품고 공물 양을 줄였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서기의 특성상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기 때문이다(또한 한국 사료에서 일본에 정기적인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자가 천황들을 대부분 정통성을 가진 훌륭한 군주로서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정변으로 죽더라도 '우연한 일'또는 '어떤 사정이 있어'라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오해하기 좋도록 쓰여 있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그러나 다행히 이번에 출판된 신황정통기에는 관련 자료가 역주로 철저하게 달려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이는 곧 천황 중심의 국가관 확립에 영향을 미쳐 메이지明治 시대 왕정복고王政復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이후 크게 변질되어 천황이 사회적 구조의 최고위에 위치하는 일본 제국의 기형적 형태의 원인이 된다. 물론 치카후사는 무사 중심의 막부 정치에서 천황을 내세운 섭관 정치의 이상으로 돌아가고자 함이 그 목적이었겠지만, 오히려 그의 이상은 에도 막부 하의 국학자들에 의해 이용되고 이후 메이지를 거쳐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으로 변해 버렸다. 그가 유학적, 신도적 관점에서 바라본 성군으로서의 천황이 전범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마지막으로 눈여겨볼 것은, 바로 신황정통기의 서술 형식이다. 주로 인도나 중국의 설화나 제도를 비교하면서 일본의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인도와 중국과의 비교는 그 전통이 오래되었다. 일본인들은 고래로부터 세계의 주된 3개국을 일본, 중국, 인도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현대에 발간된 일본론의 명저인 '종적 사회의 구조'에서조차 같은 구도의 비교를 행하고 있는 점은 특기할 부분이다. 물론 이 역시 일본의 정치 구조나 천황의 계승 방식이 인도나 중국에는 유례가 없이 훌륭하다거나 끊어진 적이 없음을 치카후사가 인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분명 신황정통기는 순수한 사료로서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훌륭한 문장력과 치카후사만의 독자적인 사관이 결합된 명저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그 뛰어난 문장과 사관이 집약된 글이 거슬리지 않는 면이 없지 않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는 항상 상대적이다. 안중근이 일본에서 테러리스트이듯이, 신황정통기 역시 우리에게 있어서는 황국 사상의 근간이 된 책이라는 것 역사 하나의 사실이다. 물론 치카후사가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신황정통기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