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장한 작품에 대하여 강렬한 타격만을 기대하는 취향은 쇼스타코비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중적인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웅장하고 강렬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풍자적/조소적이기도 하거니와 고뇌하고 자성하는 면까지 땀구멍처럼 세세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보단 이런 면이 적기 때문에 열악한 모노음질의 푸르트뱅글러 연주반으로도 감동깊게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다르다. 최고의 명해석이라 할지라도 음질이 꽝이면 우리는 땀구멍없는 고무피부의 마네킹 여성과 데이트하는 셈이니 말이다. 하여간 일본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1973년 5월 26일 도쿄문화관 대강당에서 이 곡의 '초연자'이며 작곡가와 각별한 관계이기도 하였던 므라빈스키의 공연을 기막힌 음질로 녹음한 뒤에 "품질하면 일본"이라는 명성 그대로 티하나 없이 마스터링한 다음에 기품이 연연한 음반으로 포장한 뒤에 한국으로 팔아먹고 있지 않는가 ? 아니, 사실 이 정도의 음반이라면 수백장/수천장이라도 좋으니 외화유출 걱정하지말고 대량으로 팔려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고의 연주인 것은 그렇다 치고, 단순한(?) 라이브 연주를 섬세히 복각하여 감히 넘볼 수 없는 명반으로 만들어낸 일본인들의 두렵기까지한 장인정신을 본받자는 차원에서도 말이다. 므라빈스키는 "소비에트적인 해석"에 충실하다. 소비에트적 해석이 뭔지 알려면 본 작품의 탄생 배경부터 살펴봐야한다. 작품의 초연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근자에 발표한 작품들이 소비에트 당국으로부터 형식주의적인데에다가 소비에트 이념에 맞지않는다고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했으며 무엇보다 역사에서 손꼽힐 독재자인 스탈린의 진노를 샀기 때문이다. 교향곡 5번의 초연자인 '므라빈스키'는 벽에 세워질 것을 각오하고서 위기상태인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소리'로서 연주하였다. 생각 못한 반전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작품은 러시아 혁명을 상징하였고 그 견고한 형식미도 그렇거니와 청중들은 웅장한 사운드에 압도당하였다. 스탈린은 흡족해하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제정신을 차린 줄로 그들 일당은 생각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계속 '겉으로만' 위대하고 장엄한 교향곡들을 작곡하였다. 적어도 교향곡 "8"번까지는‥ 쇼스타코비치 마니아라면 알겠지만 "9"번부터는 다시 노골적으로 소비에트를 비웃는 기막힌 악상이 등장하며, "10"번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풍자까지 이어진다. 물론 이런 솔직한 작곡을 재시도할 시 스탈린은 지옥에 간 뒤였다. 이후 '증언'(볼코프 편역)에서도 나타났고 로스트로포비치의 증언 등에서도 밝혀졌지만, 소비에트가 찬탄하였던 쇼스타코비치의 중기 교향곡들은 (5번부터 8번까지) 본질적으로는 폭압적이고 강제적인 소비에트 비판을 일관데게 유지한 것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에서 혁명을 노래하였고 그 승리를 상징화시켰는데 과연 그건 스탈린의 승리였을까 ? 오히려 그런 승리의 적으로서 스탈린을 손꼽지 않았을까 ? 이런 해석이야 각자 자유라 쳐보자. 우선 작품을 들어보면 메탈음악을 듣는 듯한 강렬한 금속음의 난타, 마천루같이 웅장한 규모에 감상자는 흥분하기 일쑤이지만 계속 듣다보면 사이사이에 비밀쪽지처럼 끼워놓은 발랄하면서도 풍자적인 멜로디가 약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계속 듣다보면 이런 광대같은 '악상'들이야말로 교향곡의 '핵심주제'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1973년 5월 26일 므라빈스키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 그 실황 녹음의 가치는 이것이다. 작품의 초연자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해석도 돋보이거니와, 월등한 음질은 감상자에게 "작품의 본질이 무엇인가" 정확히 전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악기와 관악기의 소리가 합쳐서 뭉그러지거나 어정쩡한 동거를 하고 바이올린와 첼로 소리가 서로가 트렌스젠더인양 섞여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 (유감스럽지만 므라빈스키의 쇼스타코비치 연주 음반은 대부분 음질에서 약간씩 결함이 있다) 그러나 이 음반은 명성 그대로 거의 '완벽무결한' 음질을 자랑하고 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시베리아의 설원을 얼어붙은 마음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이다. ALTUS 일제음반이라 수입량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재고가 남아있는 즉시 구입하라. 이를 뛰어넘을 명연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이만한 레퍼런스 음반을 찾기도 어렵다. 아울러 yes24 측은 이 음반의 재고를 많이 확보해놓으시길 충고드린다. 서양고전음악 음반 수급의 문제는 꼭 명연일수록 초창기에는 그 가치를 몰라보는 사람이 많기에 곧 절판이 되어버려 나중에 찾는 사람들끼리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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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먼저 분의 리뷰가 모두 말하고 있어서 더 할말도 없습니다. 좋은 음반들이 있으니 다른 음반들도 좋겠어요. 우선은 곡을 들은후에 곡의 배경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읽어본 후 다시 들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을 한꺼번에는 안했어요. 옛날에 한번 듣고 작년에 음악회에서 들었고 올해 다시 들었는데 이쯤 되면 곡의 배경도 알고 싶어지지요. 먼저 분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중간 중간 언뜻 발랄한 멜로디가 재밌고 바람 같이 느껴지는 곳도 있고 재밌는 2악장, 3악장은 복잡한 심정이에요. 휘몰아치는 4악장은 멋져요. 전 4악장 첫 부분을 좋아했는데 2,3악장도 좋아요. 어쩌다 이 부분이라고 말하지만 다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에 꼭 이부분만 좋다고 할 순 없어요. 희망적으로 들리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곳을 꼭 억압에 항거해서 승리한다는 것으로만 듣고싶지 않습니다. 만약 작곡가의 작곡 의도였다 해도 그렇게만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음악만 들은후에 작곡가는 그랬구나 하면서 나만의 느낌이고 싶어요. 그러다가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작곡가의 의도가 다가올 날이 있을거에요. 그런데 처음 이 곡을 듣는다면 1악장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1악장만 20분에 가깝고 1악장 중간이 좀 듣기 힘들어요. 거기 지나면 1악장 마지막도 좋고 곡 끝 까지 잘 갑니다.^^ 끝나고 와~하는 환호 소리는 실황 음반의 즐거움이에요. 이 곡은 낭만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고 여러가지 곡의 배경도 알고 듣다보면 곡에 가까이 갈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