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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우연히 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됐다. 책 선물이란다. 집에 도착한 국16절보다 작은 크기의 소박한 디자인.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 작가의 소설이었다. 공짜로 받는 책선물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아지즈 네신, 정부와 맞짱 뜨고 유배복권에 당첨되다'라는 카피로 책 표지를 장식하며,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긴다.
나, 아지즈 네신 나도 모르는 '불온' 문서를 찍다가 현장에서 체포됨 나와 엮일까 봐 멀리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친구들, 자기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틈에서 유배 생활 중 아는 사람들은 나를 피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 한다. 허기에 지쳐 금니까지 팔아치우고, 흥건히 시에 취해도 보고 딱 한번 가본 온천에서 죽도록 빨래만 하다 쓰러졌다.
터키 문학을 처음 접했다. 읽는 내내 터키의 어두웠던 과거와 거기에 더해지는 작가의 유배생활의 피폐함이 처절한 아픔이기보다 유쾌한 일상으로 치환된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어른판이라고나 할까?
재미있다.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유머러스하다. 유배생활의 철저한 고립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담담하게 일상을 그리며, 희망이라기보단 그 생활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버나드 쇼의 비문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줄 알았어'라는 유쾌함이 이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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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터키문학사에서 '신화적 존재'로 인정받는 작가 '아지즈 네신(Aziz Nesin)'의 유배기를 기록한 자전소설로,
흔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추앙받는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라고 하면, 겸손하며 지혜롭고 경거망동하지 않는 모습 일것 같아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소심,나약,비굴한 다양한 인물들이 있기에, 거리감&거부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읽을 수 있음과 동시에 요절복통엉망진창인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더 넓게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웃과 현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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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라는 책 제목은 나에게 "이대로 왔다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힘들어 하며 갈 수는 없다. (작가 서문인용)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좀더 생각학고, 사랑하고,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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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겪은 일 중에는 이 책에 미처 쓰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배지에서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라고 울분을 토하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나 그 생각을 입 밖에 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요. 우리 역사에는 유배지나 감옥에서 말로 다하지 못할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제가 유배지에서 겪은 일들은 관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 조국과 국민의 편에 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투쟁한 역사상의 모든 유배자들을 기리며 마음 깊숙이 존경을 표합니다. 생각학고, 사랑하고, 웃는 것. 삶의 진실이란 이것이 전부가 아닐까요? 인간에게 있어 이것 이외는 모두 거짓말 입니다.
- 아지즈 네신
※ 서평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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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서 나오려는데 소장이 내 등에 대고 말했다.
※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하는 법 "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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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유형의 속임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기꾼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 바로 이런 속임수다. 계속, 끝없이 약속을 남발한다. 그들은 비양심적으로 무정하게 약속을 거듭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결국은 이런 속임수에 빠져 넘어간다. 아니, 속아 넘어 갈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속임수가 난무하는 속칭 '감방 학교'출신이다. 그러니까 교도소 말이다.
※ 인연이 아닌가 보다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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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격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 차렷해야지! "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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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때때로 보답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은혜를 입는 경우가 생긴다. 갚으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받은 은혜를 그대로 되돌려 갚을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몹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 아주 작은 은혜를 베풀어 우리를 구해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은혜는 천 배로 되돌려주려고해도 딱히 갚을 방법이 없다. 우리가 겪은 어려운 상황이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똑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받은 은혜는 어쩌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내가 모르는 사람을 돕는다고 하면, 다들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 내가 받은 갚기 힘든 은혜 때문에 몸둘 바 몰라 하기보다는,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 그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딱히 마음씨가 비단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받았던 은혜를 되갚는 것뿐이다.
※ 희망이 거세된 시간들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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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누군가를 존경하고 선망하면 그 사람의 결점을 보지 못하고, 그가 하는 말은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나도 당시 내가 '선생'이라고 불렀던 이 유배 동지에 대해 비슷한 감점을 품었다. 그래서 그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 한밤의 배신 "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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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작가의 작품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아닐까... 안타깝지만 그의 이 책은 읽지 못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신문광고를 통해 익숙해진 제목같다. 아지즈 네신. 터어키의 국민작가. 정치적 격변기를 살면서 정당한 발언을 일삼는(?) 바람에 유배를 밥먹듯이 했다는 작가, 하지만 그래서 체제가 바뀐 뒤에 국민적 추앙의 위치를 얻게된 모양이다. 이 책은 그가 비교적 젊은 시기에 어린아이들과 아내를 이스탄불에 두고 홀로 터키 북서부의 도시인 부르사에 유배되어 와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로 만든 글이다. 말하자면 유배회고록이다. 유배경험뒤에 쓰여졌다가 나중에 노년에 재판되면서 등장인물의 뒷이야기도 첨부되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찌나 힘든 유배지의 경험들인지, 유배된 자가 아니라면 그 현실적 어려움(배고픔)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는 어느정도 유머러스함으로 덧칠을 하고 있지만 내밀한 통증은 독자에게 슬그머니 전달되고 똑같이 그 시절과 그 상황을 겪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는 서두의 작가의 글에서 삶이란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는 것,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세가지가 충족되면 그 인생은 잘 산 인생이 될까. 그가 전해주는 이 에피그람은 그의 이야기 곳곳에서 작은 방울소리를 내며 우리를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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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수많은 책의 모음집 같고 제 기억에서 지울수가 없네요, 웃고,울고, 화나고, 속상하고 ,불쌍하네요.실화여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진심으로 강추합니다. 몇년전에 읽었는데 오늘 독후감을 쓰면서 또 읽고 싶네요^^
이런 체제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은 얼마나 얼마나 힘들겠나요
터키나라 작가 아지즈 네신의 자기 나라에서 있는 실화를 쓴 책입니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독후감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주민등록을 잘 못해준 정부는 개인탓으로 돌리고 다시 수도 정못하고
아지느 네신 작가는 정말 유배당하고 항상 배고파서 힘들었고~
이 저자의 풍자적인 글을 읽으면서 저를 웃게하고 화나게도 하네요~~
그나라 사람들의 직접 당한 황당한 사실들을 읽으면서 참 그 정부는 어처구니 없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하였어요~ 강추합니다. 재미있고 후회없는 책이고 기억에 항상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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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 책 제목과는 다르게 표지 속에 있는 3명의 남자들은 걸어가면서 고민하는 듯하고, 앉아서도 고민하는 하면서 결국 우스꽝스럽게 도망가는 모습들이 이 책을 말해주는 듯하다. 제목은 얼마나 진지하고 철학적인지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만큼 내 가슴을 치는 제목이다. 이 제목은 나를 오랫동안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들어 왔다. ‘어찌 살아왔기에 갈 때는 이렇게 갈 수 없다고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리뷰를 보고 책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 책은 무겁거나 너무 진지한 책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가벼워 보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혼자 ‘푸하하’하고 많이 웃기도 했다.
겉표지 속의 남자가 나에게는 고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재미있고, 유쾌하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자기 나라와 당시의 현실에 대한 작가 아지즈 네신의 고민과 생각의 흔적들을 그리고 비판과 비수들을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을 글로 표출하는 작가로서의 신념을 지켰고, 그것 때문에 유배를 당해야 했던 그는 유배생활에서 자신의 삶은 쓰리고 아픔에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당시의 나라꼴을 눈으로 새기고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를 흘리며 싸우거나, 부시며 대항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얼마나 배가 고팠고 얼마나 추웠을지 그래서 유배생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악몽이었을지 보다 그의 가족과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그래서 몇 시간 몰래 유배지를 도망가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다시 돌아와야 했던 그를 생각하면 왜 모든 권력은 어느 나라에서나 나쁜 쪽으로만 더 힘이 센지 궁금해진다. 암담하고 비참했던 이야기들을 작은 에피소드와 같은 형식으로 바꿔 재미있게 풀어 놓은 그의 글들이 좋다. 낯선 그의 다른 책들 몇 권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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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수는 없다'는 터키의 국민작가라 일컬어 지는 터키 풍자 문학의 거장 아지즈 네신이 쓴 작품 이다. 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했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개가 남긴 한 마디』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터키 문학의 거장 아지즈 네신은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풍자 작가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로 실제 자신의 유배 생활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60여 년 전 터키의 소도시에 유배된 한 지식인의 기록을 담았다. 당시 일당제인 공화인민당(CHP) 정권하에서 터키 이스탄불은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였고, 정부의 심기를 거스른 사람은 누구라도 유배지로 보내지던 상황이었다. 그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고독하고 무거운 공간이 아닌 사람들과 자기가 유명한 소설가라는것에 대한 특권 의식도 없었다..터키 문학에 유례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모순, 현학적인 자기만족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특히 성숙한 자기비판적인 시선으로 사회 시스템-정치구조, 생계수단, 남녀의 권력 구조, 도시 이주민 문제 등-에서부터 일반 대중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삶까지 전방위적으로 문제 삼는다.
계엄을 선포한 정부는 그동안 별다른 재판도 없이, 죄목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무고한 사람들을 좌익 ‘사회주의자’로 몰아 아나톨리아 고원 곳곳으로 유배를 보냈다.....왜 유배당하는지 명확한 이유나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 목덜미를 잡힌 사람은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이름이 당첨되면 무조건 어이 없이 당해야 하는 불행 복권과 비슷했다. (p 119-120)
지금 이 글이 나의 회고록이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주인공은 청년이 두고 간 돈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청년이 두고 간 돈이 얼마인지 세어보았다. 십 리라. 그 돈으로 내가 맨 먼저 뭘 했냐고? 냉기 어린 방에 불을 피웠다. (P52 중에서) 소설은 암울하던 터키를 잠식하던 상황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작가 아지즈 네신이 체포되어 소도시 부르사로 유배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저자가 유배지 부르사에서 맞닥뜨린 인간 군상은 하나같이 비굴하며, 시대의 폭력 앞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기에 급급한 소시민들이다. 그를 뜨거운 감자처럼 서로 자기관활에서만 내몰려는 파출소 소장들, ‘원칙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주인공의 돈을 가로채려는 겉만 바른생활 사나이인 교활한 화가, 저자가 유배되어 왔다는 소식에 안면 몰수하고 사라지는 여러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 이런 인간 군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세밀한 심리묘사와 풍자를 섞어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흔적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편의 소설형식을 빌린 어려웠던 시절의 회고록으로 다가와 개인 적인 느낌은 풍자 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의 어려움을 잘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터키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상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불완전한 모든 것을 개선시킬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양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빈 들판에 소나무 씨앗을 심어 숲을 조성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거짓말쟁이의 혀와 도둑의 팔을 자르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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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결연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제목과, 왔다갔다 고민과 번뇌를 반복하고 있는 듯한 표지 그림 속의 남자.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 작가와의 만남을 무척 기대되게 해주었다. 터키 문학은 몇 권 접해보지 않아서 당연히 이 책이 이 작가와의 첫 만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작가 소개를 읽고서야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의 저자라는 걸 알았다. 한창 도서관을 드나들 때는 누가 쓴 책인지 신경 쓰지 않고 손 가는대로 빌려다가 읽었는데, 그때 이미 이 터키 문학의 거장을 만났던 거다. <튤슈...>는 그 내용보다는 예쁜 그림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 풍자 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다. 이 책은 작가가 부르사로 유배 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유배 시절 회고록,쯤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그 당시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겠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었다.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게 미안하다, 이 책은. 말했다시피 작가의 유배 시절 이야긴데, 그런 고통을 '푸하하' 웃으면서 읽는다는 게 말이다.(정말 중간중간 '푸하하' 터지는 웃음때문에, 유배 중인 주인공에게 미안한 마음도...) 하지만 정말 재밌는 걸 어쩌리. 솔직히 그간 접했던 (몇 권 되지 않는) 터키 소설들이 다 심오하고 무거웠던지라, 이 책도 다소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띠지에 실려 있는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 찬 성대한 만찬'이라는 오르한 파묵의 추천평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른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환영 인파 속으로 뛰쳐들어가 아주 거창하게 '부르사 입성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 도시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굶주림, 사람들의 외면, 자존심과의 싸움, 어이없는 가짜 '진실'... 지금이야 작가 본인도 웃으며 회고할 수 있고, 이렇게 유쾌한 필체로 풀어내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정말 그 당시 본인의 심정은 피가 마르고 또 마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왜인지 잘 모르겠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체포되어(공식적인 이유는 '불온 문서 출판'이었지만)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인생의 오점이나 상처로 기억하지 않고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이 글을 보며, 왜 아지즈 네신이 터키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작가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아지즈 네신의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
정말 정말 유쾌한 책이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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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는 조선시대에 주로 정치범들이 받는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유배하면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낸 조선 중기 시인 고산 윤선도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전남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은 조선시가에서 정철과 쌍벽을 이룬 윤선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외국의 경우는 워털루전투에서 패하여 영국에 항복하고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은 나폴레옹이 떠오른다. 나폴레옹은 군사와 정치적인 면에서 천재로 평가되며 알렉산드로스대황 카이사르와 비견되는 인물이다.
불운하고 한많거나 격동의 삶을 살다간 이들의 사연을 간직한 유배지는 그곳을 찾는 이에게 유배자의 외로움과 그리움까지 안겨준다. 유배지에서 그들이 얼마나 모질고 혹독한 시련을 견뎠는지, 얼나마 고독하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했는지를 느끼며 자기 자신을 다진다면 다른 관광지보다 값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내가 만난 유배자와 유배지는 이제까지 알아왔고 보아왔던 유배의 개념과 확실하게 다르다. 우선 유배자가 호텔에서 묵을 수 있고, 밥을 식당에서 사먹을 수 있으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호텔도 자기가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직업을 갖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창녀촌까지 드나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단, 아침 저녁으로 파출소에 가서 유배지역을 탈출하지 않았다는 서명을 반드시 해야 된다. 이런 식의 유배라면 얼마든지(?) 즐기고 누리며 기쁘게 생활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우리 조상들이 외부와 단절된 고통스럽고 외롭고 비극적인 유배 생활과 너무 비교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터키의 대표작가 아지즈 네신이 1947년 터키 부르사에서의 유배 생활 이야기를 엮은 자전소설이다. 그는 계엄령 하에서도 정권의 언론 탄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국민 작가이다. 네신은 현대판 제국주의가 터키를 장식하는 시점에서 시민을 각성시키기 위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제작했다가 인쇄소를 급습한 경찰에 체포되어 교도소로 보내진다. 교도소의 형기를 마친 뒤 네신의 유배 생활이 시작 되는데, 소도시 부르사에서 그는 소심하고 비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난다.
네신이 만난 인간 군상들은 비겁한 겁쟁이에서부터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약삭빠른 시인 사장까지 골고루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가보다 더 감동적인 소설을 쓰는 화류계 여인들, 자칭 원칙주의자인 교활한 화가, 네신을 보고 도망가는 옛친구들 등이 엮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전한다. 배고프고 춥고 가난한 유배 생활이지만 네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보다 네신이 더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임을 확인했다. 최소한 네신은 비굴하지 않으며, 남을 속이거나, 남의 돈을 가로채지 않으며, 책임 때문에 안간힘 쓰지 않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안면 몰수를 안 해도 되었다. 비록 죄인(?)의 몸이지만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유머가 배어있고 여유와 도량이 묻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넓고 큰 남자이며 신념이 강하고 긍정적인 작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작가를 떠나 한 남자로도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기분 좋다. 궁핍하고 초라한 유배의 일상을 재치 있는 위트와 날카로운 풍자로 독자에게 웃음을 주는 저자가 근사하다. 그러나 네신은 그 웃음 끝의 씁쓸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아니 독자들이 그것을 발견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씁쓸한 웃음을 거둬내고 활짝 웃는 세상을 우리가 일궈가도록 저자가 유도하는 장치인것 같다. 그 지름길을 저자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에서 찾도록 알려준다. 요즘 우리에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생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는 것을 저자는 아주 오래 전에 간파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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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에 실린 글은 제가 상상하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물론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글 속에도 어느 정도는 제 개성과 어투가 배어 있기는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유배 생활에 대한 회고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시절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던 시절도 세월이 흘러 추억으로 회고될 때는 조금은 달콤하게 떠오르는 법이지요. 마치 오랫동안 가지 끝에 매달려 인고의 시간을 보낸 열매들이 달콤한 과일로 익는 것처럼 말이죠. -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저자의 말이 없었다면 그저 이 책을 읽으면서 풍자 가득한 소설이려니...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저자의 유배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건 실제가 아닌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생각되어져 버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한참을 키득키득거리다가 문득, 지금 이렇게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의 실제 유배생활은 어땠을까..싶은 생각에 잠시 웃음을 거두고 책읽기를 멈추기도 하곤 했다. 돈이 없어 이틀동안 꼬박 굶고서는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 두개로 무얼할까 고민에 빠져든 아지즈 네신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몸을 녹여줄 차 한잔을 마실까, 허기를 달래 줄 빵을 사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친구를 보고 기쁜 마음에 달려들지만 결국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인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친구도 놓쳐버리고, 뭘 할까 고민에 빠져들새도 없이 그나마 있던 동전도 잃어버리고 허기도 달래지 못하고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 모습이... 처음엔 재밌어서 마구 웃다가도 순간 그 현실적인 고통을 떠올리게 되면 도무지 웃을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말로 이루 다 할 수없는 고초를 겪은이들에 비하면 자신의 유배생활은 관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고통은 고통도 아닌 듯 이야기하고 있다. 유배시절의 고단함이 어찌 관광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그는 그렇게 유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 찬 성대한 만찬,이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이 책을 표현한 것이라고 백퍼센트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전형적인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고 분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당사자인 아지즈 네신은 감정의 표현없이 그 상황 자체만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웃음을 던져주고 그 웃음뒤에 가만히 인간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버린다. 우리도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겪었고, 나는 그러한 칼날같은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정치적 유배자인 친구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그 당사자라면 결코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대범하게 지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생활비가 없어 며칠을 굶고 지내야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알고 지내던 모든 친구가 외면을 한다면... 그러나 그는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는 것, 삶의 진실이란 이것이 전부이며 인간에게 있어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거짓이다 라고 말하는 이지즈 네신의 유배생활기는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속이 확 뚫리는 소화제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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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개가 되지는 말아야지요. 개가 된 다음에야 미국 개가 되든 러시아 개가 되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누가 더 먹이를 잘 주느냐에 따라 그의 개가 되는 것이니까요." (215page 저자후기 중)
최고다,최고. 어디있다가 이제야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본인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미 작가는 죽었지만 작품의 모든 인세는 고아를 위해 작가 자신이 세운 재단 앞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어렵게 살아본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고, 제대로 실천하는 지식인이 없는 이 시대에 정말 인생까지도 본받고 싶은 인격의 소유자다. 현대판 제국주의에 휘말린 터키에서 신문을 만들던 아지즈 네신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글을 팜플릿으로 제작하던 중 잡혀간다. 원조라는 가면아래 터키를 착취하고 있던 미국에게 가한 글의 일격이 국가 이익에 위배되었다는 혐의로 오랜 심문과 재판과정을 거쳐 유배를 가게 된 것. 그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처음 시작부터, 저자후기, 역자후기 마침표까지 멋지고 재미있는 책이다. 버릴곳이 하나도 없는 책을 만나다니! 그런데 이렇게 유치하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밉다. 자신의 신념을 지켰지만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하는 작가의 궁핍함이나 처지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보다는 작가의 시선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유머러스함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어 온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웃음이 고이고, 한 챕터 지날때마다 절절함이 쌓이고, 어느새 내 마음 속에는 풍자와 해학에 대한 기대치와 만족보다는 작가를 닮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다, 는 지금의 내 환경과 작가의 시대와 차이가 있는 말이겠지만 괜히 그런 다짐을 하게 만든다. 나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한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느껴진 페이소스는 벌써부터 그의 또다른 작품들을 찾아다니게 만든다. 불쌍한 사람은 유배자인 작가가 아니라 피해다니고, 비굴함을 감추고 점잖은 척 하는 위선자들, 하나같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에, 책임을 떠 넘기는 것에 급급한 주변인물이었다.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소심하고 무기력한 군상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작가의 그릇,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현실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없을 때 절망스러워지는 것이다. 희망이 거세되었던 시간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최고봉, 정말 강추다.(소제목들만 봐도 끝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