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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흥미로운 책이다. 일본에서의 원서도 같은 식으로 디자인이 되어져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잉크번진 것 같은 얼룩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파본인가, 인쇄 미스인가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는 도중에 가서야, 감이 잡혔다. 소설의 주인공 직업은 때쟁이이다. 무슨 직업인고 하니, 영화 미술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소품들에 랜더링(먼지나 얼룩, 갈라진 흔적)을 하는 일이다. 나카야마 미호처럼 끝내주게 아름다운 미인을 아내로 둔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는 이 멋없는 직업에 대해 정말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수사를 붙였다. 가짜인 영화 소품들은 그의 손을 거칠 때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탄 진짜가 된다. 생활 현상에 있는 진짜 물건들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해, 현실세계에서는 완벽한 무언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흠이 있을 때만이 만물은, 혹은 만인은 진짜가 된다. 바로 주인공이 때쟁이(도장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책에도 군데군데 잉크 자국이 번진, 특이한 무늬가 무늬랍시고 출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이 사랑을 할 때 고민하게 되는 그 사람의 과거, 혹은 나의 과거, 혹은 나의 흠결 혹은 상대의 흠결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히토나리가 자기 부인의 얼굴에 생기는 주름들을 보고 '아 이건 세월의 흔적이야. 나의 이상적인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진짜가 되어가는 군.'하고 성숙되게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다.) 주인공 형은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그 여자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자기와는 품격이 다른 인품에 부담을 느끼고 그녀를 버린다. 소설에서는 '빛의 사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빛이 죽은 시체. 형은 위대한 존재가 되길, 그림자가 없는 존재가 되길 꿈꿨지만 사실 된 것은 그림자 뿐이었다. 자기 안에 있는 어둠. 자기가 자기 자신이 되게 만든 시간의 흔적,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밀어낸다. 불쌍하게도. 주인공은 형이 사랑한 여자를 사랑한다. 그가 싸워야할 대상, 흠, 시간의 흔적, 때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형의 모습이다. 밀어내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이 책에는 또 하나의 인물이 나온다. 이노우에 감독이다. 이 감독은 싸워할 것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자기가 이뤄낸 경력과도 싸워야 하고, 또 가장 그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연인, 그러나 자신이 질투로 죽게 만들었던 연인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 연인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사랑과 가책은 노쇠했진 그를 계속 해서 덮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참 일본 소설가들은 글을 잘쓴다. 이런 내면적인 괴로움을 미학적으로 형상화 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또하나의 역사적 층위를 이 위에 입혀놓는다. 난징 대학살과, 히로시마 핵폭탄이다. 일본인의 죄악, 그리고 미국의 죄악, 시간이 흐르면서 별수 없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흉폭한 인간성. 그것도 때이다. 히토나리는 이 소설의 때쟁이로서 구석구석 안팎으로 훌륭히 때를 입체적으로 겹쳐놓았다.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소설의 한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lose my memory. (중략) "안고 살아가자. 그게 남겨진 자의 몫이야."
우리는 기억을 없앨 수는 없다. 살아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기억들의 매듭짓기 이다.
어떻게 매듭을 질 수 있을까.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이지만,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을 경우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묻지를 않는다던가. 아니면 쿨 한척하고 완전히 듣고 넘어가주든가. 나라면 전자를 택해야겠다. 루즈 마이 메모리라는 약을 삼키고 재기했던 노감독처럼 세상에는 아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과거, 오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니까.
이 책을 읽고 다짐한 것은 그것이었다. 나의 과거,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과거,에 대해 함부러 '다 털어놔','내가 이해해줄께.'라고 말하는 오만은 부리지 말자. 라는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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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씨의 책은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접했다. 그 때 어떤 친구가 냉정과 열정사이 rosso와 blu를 가져와서 반 아이들끼리 모두 돌려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츠지 히토나리씨가 쓴 blu보다는 rosso가 더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여자 입장에서의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는 쪽을 더 몰입해서 읽었다. 냉정과 열정사이가 나에게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츠지 히토나리의 책을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동기녀석이 책을 하나 들고있기에, 너 다보고 나 빌려줘, 했더니 선뜻 '그래' 한다. 알고봤더니 츠지 히토나리의 책.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냉정과 열정사이와는 많이 다른 책이었고 밤 새워 책을 읽은 다음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그 날 하루종일 붕 떠 다녔다.
태양을 기다리며. 이 책 한권에는 세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적 1930년대의 난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히로시마, 그리고 지금의 도쿄. 난징에서는 이노우에 하지메씨의 훼이팡 이야기, 히로시마에서는 크레이그씨의 레이코 이야기, 마지막으로 도쿄에서는 시로와 도모코의 이야기. 하나 하나의 스토리를 떼어놔도 훌륭한 이야기거리가 되지만 시로의 형인 지로의 영혼을 이용해 작가는 세개의 스토리를 하나로 만든다. 식물인간이 된 지로의 영혼이 자기 안에 있는 세계를 시공간을 초월하며 돌아다닌다. 혼란스러울 법도 한 구성이지만 나는 이게 맘에 들었다. 물론 한번씩 이전 이야기와 연결이 잘 안되서 앞뒤를 왔다갔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기도 했지만. 시계에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맞춰나가면서 내가 마치 이야기를 구성하는 양 재미있어했다.
세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지로의 영혼뿐이 아니다. 작가는 사랑과 빛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한다.
먼저 사랑. 책중에서 도모코가 '죽음의 반대는 삶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만인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로맨스를 담고 있지는 않다. 난징에서는 자신의 동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적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훼이팡과 이노우에의 사랑. 히로시마에서는 원폭 투하하기 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크레이그는 레이코를 사랑하고 열망한다. 소멸직전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그리고 결실을 맺는다. 도쿄에서는 지로의 예전 애인인 도모코가 있고 그의 동생 시로가 있다. 둘 다 지로가 도모코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지로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사랑하기로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의 사랑이 아닌, 극단에서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도 같이. 난징의 사랑과 히로시마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도쿄의 사랑이 다른 점은 남겨진 자로서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 사랑하기로 그렇게 결정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빛. 빛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빛으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를 알게 하기도 한다. 난징과 히로시마의 빛은 오히려 그림자다. 난징의 타는 듯한 태양은 그 당시 전쟁의 피폐함과 잔혹함을 드러내주고 있고 히로시마 원폭의 빛은 소멸을 말하고 있다. 둘 다 전쟁이라는 폭력 앞에 무방비로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재 도쿄의 태양은 과거 난징의 태양을 담고자 하지만 그때를 재현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을 잊지 말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속죄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희망이다. 과거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 이노우에의 마지막영화를 찍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영화 찍는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결정적 희망이 바로 태양으로 나타난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처음에 도저히 찍을 수 없었던 태양을 다른 모든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에 남겨놓은 뒤 이제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모두 힘내서 태양을 찍는 신을 촬영하는 것으로 끝이다.
지나간 과거의 전쟁과 사랑은 슬픈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의 도쿄는 희망이 현재진행중이다. 나는 전쟁과 사랑을 이렇게 흥미롭게 엮어놓은 책을 보지 못했다. 너무 뻔한 류의 전쟁통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전쟁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게 하는 사랑 이야기로 와 닿았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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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두꺼워서,, 평소보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재미있게 잘 봤어요. 뭔가.. 예전에 봤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 생각도 나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힘든 기억, 상처, 아픔..등을 어쨌든 받아들이고, 표현해내고, 부딪히면서 해소해가는, 그 아픔을 넘어서는 그런 과정들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도 되구요.
아픈 기억들, 스스로 쉽게 놓으면 그런 아픔쯤 쉽사리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결국은,, 어떤 기억이건, 그 기억마다 아플만큼 아프고 난 다음에야,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어떤 아픔의 과정이랄까,, 그런 게 있는것 같아요. 그 과정을, 긴 이야기를 통해서 서술해 놓은 책이구요.
내용 중에 등장인물 모두가 옛 기억들, 과거의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한 사람만이(이름이 시로였나 지로였나..) 새것을 옛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런 일을 직업으로 갖는(뗏일이라고 표현된) 사람의 등장이.. 좋더라구요.. 결국,, 아픈것에 대한 부정과 회피가 아니라 그 기억에도, 생명력이 있고, 그런 기억과 경험들로인해 현재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존재.
뭔가.. 아픈 것들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묵묵히 붙잡아주는듯한 그런 역할의 사람이요.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예요..
태양을.. 기다리는 과정을 그 어둠의 시간들을 멋지게 잘 견뎌내면 분명, 어둠뒤의 태양은 더 환희에 가득찰 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목의 기다린다는 말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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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어? 하며 놀라게 됐다. 츠지 히토나리는 나에게 약간 감성적이고, 뭔가 속에 더 깊은것이 있는 느낌의 작가로 인식 되어 있는데, 이 책은 하루키다운 소설이랄까? 물론 나쁜쪽은 아니고, 이렇듯 문체에 변화를 줄수 있을 정도의 작가라는 점에서 놀라웠을 뿐...
시대와의 타협을 주제로 써 내려간 이번작품을 보며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이 작품의 인물들은 서로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각자의 나라도 대변하며, 서로가 라이벌 이기도 하다. 주인공 시로는 뇌사상태의 형 지로의 세상과의 연결 통로로서 무의식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지로의 분신역활인 동시에 한여자를 사랑하는 라이벌이며, 서로가 서로의 의지처인 것이다. 도모코는 지로의 연인이며 훼이팡의 분신이며, 모든 문제의 열쇠를 쥐고있는 인물... 이렇듯 한명 한명이 동시에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보니 인물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고, 국가를 인물에 투영해 2차대전 당시의 갈등을 표면화 시킨 역량도 놀라울 뿐...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라는... 모든걸 포용한채 이제는 새로운 태양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작가의 세계가 잘 담겨있는 소설 입니다.
* 다 읽고 책 뒤를 보니 일본 문학자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동시대성이 느껴진다~ 라고 써 놨더군요. 음~ 역시 하루키 스럽다는 느낌은 다들 받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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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시로는 영화사 미술부 staff이다. 난징의 태양인 가 하는 영화제작에 참여중이다. 한때 형인 지로와 잠깐 사귀엇던 도모코와 함께. 형은 현재 식물인간상태. 동네 양아치인 형은 마약판매에 손을 댓다가 총에 맞았다. 후지사와란 미군혼열아가 시로를 계속 협박하면서 란도샐, 배낭인가 를 내놓으라고 한다.그 안에 신종 마약이.시로는 러시아제 소총이라고 생각햇다가 마약을 알게 된다.그 이후론 후지사와란 사람의 배경, 감독 이노우에가 대동아전쟁때 난징에서 전쟁홍보를 찍었던 과거에 대한, 한 중국소녀 훼이팡을 회상하는 대한 장황한 스토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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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꼭 지우고 싶은 기억 한 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그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꿈 꿔보는게 아닐까? 이 책은 이처럼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특이한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시대도 장소도 전혀 다르지만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묘하게 얽혀있음을 알수 있다. 1937년의 난징, 1945년의 히로시마, 1970년의 도쿄, 세기말의 신주쿠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훼이팡, 이노우에 하지메, 크레이그 부샤르, 레이코, 후지사와, 도모코, 시로 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서 진행되고 있다. 전혀 관계 없을 듯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마약 밀매업을 하다 총격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를 통해 얽히듯 하나하나 풀어져 나가는 방식이 특이하고도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원폭 투하나 난징학살처럼 무거운 주제를 작가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가고 있다. 지로의 눈과 입을통해...
이리저리 얽힌 이야기들을 따라가느라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다. 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겹치는 등.. 하지만 '란도셀'이라든지 '루즈 마이 메모리' 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매게로서의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난 책을 읽을 때 작가를 먼저 보는 편이다. 그리고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챙겨 읽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츠지 히토나리'의 책들도 여러편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에 내가 작가에게서 느꼈던 매력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기쁘다. 언제나 같은 느낌의 책 보다는 다른 느낌 다른 매력으로 만날수 있음이 좋다. '츠지 히토나리'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이 책 읽기를 마무리 한다.
“억지로 잊어버리려 하지 않아도 돼. 기억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p.264)
안녕, 레이코. 고마워, 레이코.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바쁘게 달려온 이 인생의 맨 마지막에, 이만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걸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를까. 빛은 다름 아닌 절망 속에 존재하는 법. 격렬한 흥분 속에 무한한 감동이 끓어올라, 나는 울었다. 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다. (p.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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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미치 긴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듯하다. 현대의 일본, 1945년의 히로시마,그리고 난징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인물들은 서로 엮이고 얽혀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닮은 또 다른 여자, 엇갈린 사랑, 배신과 복수, 후회와 아픔,태양과 구름이 조각처럼 맞추어지는 듯 말 듯,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지로의 세계와 크레이그 부샤르의 이야기, 그리고 훼이팡의 비극, 루즈 마이 메모리...모든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끊임없이 기다리게 되고 그 때 그 때 빠져들게 된다.
1940년대의 모습과 사람사는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을 찾아다니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서 행복해 하다가 이별하고 복수하고, 후회하면서 잊지 못한다. 훼이팡과 이노우에 하지메의 사랑이 지로와 도모코의 사랑과 닮은 듯, 안 닮은 듯, 세대를 초월하는 마음 찡해지는 사랑이야기이다.
이노우에가 찾는 태양은 훼이팡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뭔가 나올 듯 한 분위기가 애타게 만든다. 결국 후반부에 훼이팡의 사랑, 크레이크 부샤르의 사랑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안타까움만 더해질 뿐이다. 어느 시대에 살든 사랑은 어렵고 솜털같은 것인가 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더 아름답고, 가질 수 없는 상대를 더 질기게 잊지 못하는 걸 보면 사랑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구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련함이 밀려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를 대신할 상대를 찾아 헤매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점점 생생해지면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운명에 놓인다.도모코라는 인물이 아주 흥미로웠다. 훼이팡과 닮은 외모를 가진 여인, 묘한 분위기와 지적인 능숙함과 요염함을 한 몸에 갖춘 아름다운 여자.사랑하던 지로를 잃고 더이상 잠들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그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짙어진다. 시로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그를 통해 또 다른 사랑을 꿈 꾸고 있을 뿐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남녀가 사랑하는 과정을 아주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옆에서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현실 속의 생생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태양을 기다리며' 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 때쟁이 시로의 삶, 남정네들의 몸과 마음을 쏙 빼앗아 가버린 아름다운 여인네들, 어둠 속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지로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비참한 최후, 대서시사와도 같은 웅장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신을 쏙 빼앗긴 채 읽다가 마지막 스무 페이지 정도에서 살짝 산만해진다. 너무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지나쳤다. 그냥 여운으로 남겨두었으면 더 좋았을 듯. 태양이 매일 끊임없이 떠오르 듯 우리네 인생도 계속 흐르고 또 흘러간다. 모두가 닮은 채, 서로를 미워하고 그리워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만 같던 세상은 나를 외롭게 하고 가끔은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그런 외로움과 맞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이다. 잘 견뎌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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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JOURNEY TOWARDS THE GUIDING LIGHT. (유랑하는 우리를 빛이 늘 인도하리.)
츠지 히토나리의 태양을 기다리며는 누구라 찝어 얘기할 수 없는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훼이팡에 대한 사랑, 훼이팡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평생 자유롭지 못한 노장 영화감독 '이노우에 하지메', 총격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진 형 '지로', 란도셀의 행방을 찾는 ''후지사와', 형의 연인인 잠을 잃은 '도코모', 형의 옛 애인을 사랑하는 동생 '시로', 히로시마 운명의 날을 앞둔 미군 포로 '크레이크 부샤르', 국책 영화에 동원된 중국인 소녀 '훼이팡', 수수께끼의 마약 '루즈 마이 메모리'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 생생히 그려내는 그들만의 이야기는 조금은 복잡하고,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난해하지만, 초반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부분을 조금만 뛰어넘는다면 그들만의 간절한 '소망' 그들이 바라는 작은 소망에 가슴이 저릿해져올 것이다. 깨알같은 글씨로 쓰인 오백여페이지에 벗어나자마자 우리들이 갖고 있는 온갖 고민들이 정말 하찮게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루즈 마이 메모리]에서는 『태양을 기다리며』라는 영화 촬영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지로의 세계]에서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지로의 머릿속 세계를 보여준다. [후지사와의 과거수첩]에서는 후지사와가 그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털어놓고,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는 미군 파일럿이었던 후지사와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엮은 것으로, [훼이팡의 비극]에서는 젊은 시절의 이노우에가 1937년 난징에서 국책 홍보 영화 촬영을 하면서 훼이팡과 사랑에 빠졌다 무너지기까지의 모든 모습을, [빛의 사체]에서는 시로와 도모코가 공유하는, 지로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기억을 보여준다.
후지사와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됐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하게 뒤섞인 큐브가 색깔별로 가지런히 정리될때의 그 짜릿한 기분이 느껴져 이런게 책을 읽을때의 느낌이지 싶어 최고였던 것 같다. 깨달음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깨달으려 마음먹는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했다. 책속 주인공들이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을 발견하고 그 것을 향해 나아갈때. 크레이그 부샤르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보낸 편지의 글귀가 저절로 떠오르더라.
제한된 삶을 제한 없이 살아가려면, 지금을 소중히 하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멋진 추억의 거목이 되어 해마다 너의 인생에 아름다운 녹색 잎을 무성하게 피워낼테니. 언젠가 찾아올 죽음 직전에, 너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인생이란 마지막의 마지막, 가혹의 끝에, 고난의 끝에, 환희와 깨달음이 있단다. 그것은 헤쳐나온 자만이 볼 수 있는 빛, 태양이겠지. . . . 가혹한 운명이라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면 그 끝에 반드시 행복의 빛이 있을 거다. LIFE IS A JOURNEY TOWARDS THE GUIDING LIGHT.(유랑하는 우리를 빛이 늘 인도하리.) 신을 믿거라. 어떤 신앙이라도 상관없다. 존귀한 자의 존귀한 눈빛을 마음에 새기거라. 그곳에 태양이 있다는 것은, 존귀한 분이 항상 널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이다. 빛은 사랑, 너의 행복을 기원하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자신의 분신인 그의 아들에게, 츠지 히토나리가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내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들려주고픈 글이 아닐까 싶다. 적당한 무게감 있는 글들이 자꾸만 나를 이 책으로 끌어들이고 밀쳐내기도 한다. 한 두장 읽어 내려가다 책장을 덮고 또 덮으면서도 또 책을 펼치고 펼칠 수 밖에 없었던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 5 -(p.332~333) 페이지의 이야기는 죽음을 생각할때마다 내가 했던 고민들. 그 부분들이 고스란히 활자화되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 여러모로 참 놀라운 이야기가 한가득인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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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닿을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미덕이 사라져 버렸다. 33p
주인공 시로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범죄와 마약도 넘쳐나는 세상... 이 책은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에 대한 책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깨나 알려진 냉정과 열정사이, 안녕. 언젠가 등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은 몇 권 읽어 보았다. 저 책들을 읽으면서 역시 딱 일본작가의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태양을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츠지 히토나리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무척 많은 나라와 인물, 시간 사이를 오갑니다.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으나 계속 읽다보면 몽롱한 꿈속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신기한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아픈 기억들이 있겠지요. 이 책의 인물들도 무척 아픈 기억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여인 몇 십 년 전 죽은 연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 자신을 괴롭히며 살고 있는 노감독... 그리고 잊고 싶은 기억을 잊게 해주는 약 루즈 마이 메모리... 아픈 기억을 잊는 다고 행복해 질까? 난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현실에서도 루즈 마이 메모리가 있다면.. 나는 당장 한 알 툭 털어 넣고 싶을 만큼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아픈 기억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망각이 아니라 시간뿐이라고 그 아픈 기억은 감출 수 있을 뿐 영원히 지울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책 속의 노감독은 루즈 마이 메모리를 먹게 되고 그 약을 먹은 사람들은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는데 여든의 몸으로 여러 사람이 붙잡아도 멈추지 못할 만큼 격렬하게 몸을 흔들면서 ‘불가사의하게도 그는 즐거운 듯 하늘을 우러러 미소 짓고 있었다.’501p 이 장면을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속의 이미지로 인해 이렇게 강렬한 임팩트를 느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다 읽었지만 아직 이 책의 매력은 반밖에 느끼질 못한 것 같습니다. 책 속의 인물들에 대해 아직 궁금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었는데 무척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