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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우의 <철학 콘서트 2>에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에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까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사상가 10인의 위대한 생각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선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10인의 면면을 살펴보자. 피타고라스,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무하마드, 세종대왕, 뉴턴, 공자(시경) 이렇게 10명이다. 먼저 이런 의문이 든다. 철학 이야기를 한다면서 왜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의 이름이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일이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도 위대한 철학자로 볼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의 의미를 좀 더 넓게 정의하고 있다.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규명'하는 학문 분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지혜를 찾는 사람인 소피아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자연의 숨은 질서를 찾아 나선 자연철학자는 물론 사회혁명의 주역으로서 모든 권위를 물리치고 진리만을 탐구한 사상의 혁명가들을 위대한 철학자의 범주에 포함하여 소개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을 균형있게 담아낸 <철학 콘서트>의 두번째 이야기도 첫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이론이나 지루한 설명 대신, 다양한 사상가들을 삶을 통해 위대한 생각들을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젠 철학이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한 부분으로 콘서트처럼 부담없이 대하는 즐길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철학 콘서트 2>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상의 혁명을 이끈 사람들이다. 플라톤이 만든 '이데아의 세계'에 반기를 든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천년 이상을 지배해온 아르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 세계관을 뒤집은 근대 과학혁명 3인방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뉴톤의 사상과 삶이 저자의 걸죽한 입담으로 재미있게 소개된다. 물론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물론 기득권층인 동시대인으로부터 많은 배척과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악전고투의 과정을 겪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자연철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를 바꾸려는 사회혁명가들이 소개된다. 과학을 선도한 사람들이 서양인 중심이었다면 사회와 인간의 정신의 변화를 강조한 인물중에는 동양의 사회철학자들이 많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 인의예지와 역성혁명을 주장한 공자와 맹자,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경우는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범위를 벗어나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 주인공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철학에서 나온다는 가르침일 것 같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설이라고 생각되어 당연히 받아들여진 것들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끈질긴 탐구와 노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갔던 사상가들이다. 철학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로의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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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콘서트2를 시작하면서 책표지에 아쉬움이 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처럼 배열한것보다 첫권의 커리컬쳐가 훨씬 더 맘에 들기 때문인데..그래도 책속에 남아 있는 삽화와 모여라꿈동산인형같은 현자들의 모습이 철학이 생활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뭐 철학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 보다는 원래 존재하는 것을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찾아내는 숨은 그림이 아닌가한다. 자연은 원래 그렇듯..과학, 이성, 논리적 활동을 통해서..특히 마지막 시경편은 철학이 무구한 역사와 사람의 삶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음을 알려주는게 아닌가하다. 피타고라스하면 한참 a,b,c변의 길이에 면적을 계산하는 증명으로 공식을 입증하던 생각이 난다. 꼭 누나, 형들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알아야지 하는데..막상배워보면 별거 아니던데..그렇게만 알던이가 철학자라니..하기 옛 수학자들의 대부분이 철학자이고 증명등이 논리의 과정이니 당연한것이지만...반면 호메로스는 아침에 보다가 한참 꿈속에서 이분과 대화를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는 그리스쪽으로만 가면...뭐가 잘 안되는게..아마 그래서 오딧세이도 이렇게 끝났는데 아쉽다..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머리속에 쏙 들어온다. 특히 책속에서 말하는 행복을 주제로 설명하는 장은 저자의 경험때문에도 그렇겠지만, 행복을 좀더 확장하고자 하는 마음도 느껴진다. 아마 샌들이 벤담, 밀, 칸트..로크를 거쳐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가돌아가는 시대를 건너뛰는 변증법을 펼치는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철학자이자 시대정신의 지표인지 알수 있지 않을까한다. 나는 대부분의 철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창조한다기 보다는 세월속에 전해지던것에 why라는 질문과 그 해결을 찾기위해서 다시 고전을 보고, 현재를 돌아봐 how라는 답을 찾는게 아닌가한다. 사실 살면서 6하원칙 아무리 좋아해봐야, 일상생활에서는 why를 통해 핵심을 파악하고, how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아닌가한다. 가끔 이렇게 요령만 피는게 문제가 되긴하지만.. 맹자를 통해서는 유교가 다시금 통치의 철학임을 더 굳게 생각하게 한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란 사서의 공부과정에 대한 대한 도올선생의 말씀이 다시 한번 다가오는것 같다. 하지만 맹자나 공자가 그리 삶으로써는 평탄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아마 세상이 굴러가는 두 바퀴가 권력과 자본에 있기 때문이고, 그 두 바퀴에 걸리적 거리면 "닥쳐"라는 피박받고..도움이되면 갖다 쓰기만 하지..원작자를 치자로 세우지 않는게 현실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아무렴..권좌는 한명의 것이니까..그래도 공부하고 깨닫고 하는 것만 봐도..유학자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부분이라 세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까..? 무함마드의 장에서는 두바이출장도 가보고, 중동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을 좀더 더 알수 있겠된다. 또 저자가 지적하는 사촌간인지, 형제간인지.. 격렬한 싸움은 사실 이해하기 힘든면도 많다. 종교적인 부분보다 또 문명의 발상지로써 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더 밝혀져야하지 않을까한다. 단지 꾸란과 무함마드로 설명하기엔 이곳의 역사와 문명, 철학의 깊이가 나에겐 아직도 참 멀게 느껴진다. 반면 세종, 뉴턴편은 좀더 쉽게 볼수 있는 것 같다. 세종이 인민을 사랑하는 정신을 부각하는 것과 세계최초로 글자 해설서를 갖은 위대한 문자를 창조한 언어학자라고 봐야하나..하여튼 우리국민에겐 큰 선물이 아닐수 없다. 이 두장은 철학에 대한 논의보다는 철학자에 대해서 더 많이 기술된듯하고 좀더 인간적이다. 그래도 이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마지막 편이아닌가한다. 많은 철학적 사유와 논리적 깨달음 성취라는 것이 위에서도 이야기하지만 모두 우리내 삶속에 있고, 이성적 분석이란 복잡한 과정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한다. 마치 사랑이 이성적으로 기승전결, 육하원칙, 서론본론결론 이렇게 사랑을 하는게 아닌다음에야...그래서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닌가합니다..하여튼 1편보다는 더 정감이 있는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철학책을 고른다면 더 난이도가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그냥 요책정도로 평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해야할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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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한가하게 책을 읽을수 있는 시기이다. 앞으로 3~4개월동안 읽을 책들이 기대된다. ‘철학’ 어렵다. 어찌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철학’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고 플라톤이 호레로스를 왜 미워하고, 세종은 신하들의 눈을 피해 한글을 만들었는지등의 이유를 알수있다. 읽다 보니 책속에 소개되어진 것들이 더 읽고 싶어진다.
[맹자의 즐거움은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건강하면 첫째 즐거움이란다.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之.” 참 쉽다.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언제라도 뵙고 효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즐거움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실감하게 된다.
“우러러보아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 仰不傀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之”이라 했다. 나의 이익만을 돌보도록 강제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이며 물질의 풍요만 누리는 영혼은 공허하다고 하였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선비는 어려서 공부하고 자라서 나라 일을 돌보고 늙어서 제자들을 키우는 것을 인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세 명의 왕을 모시며 재상을 지낸 한명회보다 도산서원에서 제자교육에 매진한 퇴계의 삶을 후손들은 존경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보다 공자와 맹자를 더욱 존경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마지막으로 맹자는 젊은이들에게 호연지기 浩然之氣를 가르쳤다. 나의 이익보다 모두의 대의를 생각하는 사람, 고통받는 이웃들과 동고동락하는 사람,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사는 사람이라 하며, 호연지기야말로 맹자가 젊은이들에게 준 영혼의 선물일것이다. 서양의 지식이 사물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적 지식이라면 동양의 지혜는 인격 수양을 위한 밑거름이다. 호연지기로 가득 찬 젊은이는 누구에게도 굴함이 없다.]
철학이란 단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철학콘서트를 읽고 그도 힘들다면 한명한명 선택하여 읽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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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은 말한다. 철학서를 읽어라. 사람들은 말한다. 철학이 대체 뭔데? 철학콘서트 1을 접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철학콘서트2를 집어들었다. 아마 요즘따라 무슨 책을 읽어야하나 방황하고 있었던 나에게 철학콘서트 1일 접했을 때와 같은 기분좋음을 선사해줄 그런 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철학콘서트1을 접한 후 상당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책 리뷰를 작성하거나 하지는 않았기때문에 정확히 그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은 나로하여금 철학이 어렵고 고상하고 말같지도 않은 한문을 늘어놓는 학문이 아니라, Phillosophia. 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해주었다. 철학이 어려운건 솔직히 상당부분 해석의 잘못에서 기인한다. 시중의 많은 철학책은 독일어 그대로를 해석하기 보다는 독일어가 일본어로, 혹은 중국어로, 해석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그러다보니 한문도 많고 완전 어려운 내용만 가득 -_-.. 인 경우가 많다. 어쨌든 철학콘서트1 이후에 난 몇몇의 철학서적을 읽었고, 심지어 성격을 읽는 관점과 생각도 완전하게 바뀌어있었다. 철학에대한 나의 궁금증은 세계철학사와 같은 책을 읽게하였고 그 후로도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문답법과 같은 몇몇 철학서적을 읽기도 하였다. 아. 플라톤의 국가도 읽었다. 나의 반발을 참 많이 불렀던 책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난 철학콘서트 1에서 소개받은 철학서들을 하나씩 읽었었다. 철학콘서트1의 가장 신선한 충격이 예수와 부타였다면, 철학콘서트 2의 가장 신선한 충격은 세종과 호메루스였다. 아니.. 한글을 창제한 왕이 왜 철학가이며, 소설가인 호메루스가 왜 철학가란 말이던가 -_-.. 하지만 난 저자의 글솜씨에 반해버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글은 오로지 세종이 창제한 글이며, 한글 안에는 음양오행이 담겨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던 철인 그 자체가 세종이기도 하다. 이데아에서 존재하던 군주가 대한민국의 역사 조선에 있었다니. 하하. 거기에 호메루스는 한술 더떠서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철학가들 조차도 어릴때부터 줄줄 외며 그의 작품을 읽고,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사람이다. 그래. 사람이 무엇을 하는 존재이고.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하여 그는 신화라는 이야기로 가장 훌륭하게 풀어 쓴 사람인 것이다. 철학콘서트2. 한마디로 위대한 책들과 인물들을 간단하게 보여주며, 소개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부디 이 책을 읽고서 '아 이런거구나'하며 책을 덮는 것에 그치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고서 오는 첫번째 느낌은 "나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1"와 같아야한다. 난 이미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기로 마음먹었고, 논어를 다시금 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있다. 책을 통하여 간단하게 소개받은 이 사람들의 생각 논리는 아. 정말 배워야 할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콘서트2를 그저 위인전을 읽듯이 읽기보다는, 철학서적에 대한 궁금증과 열정을 가지고 읽었으면 좋겠다. 철학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피타고라스. 중학교 때 삼각형 대각선 변의 길이를 아는 방법 중 하나로 배웠던 피타고라스정리가 떠오를 것이다. 근데 그는 철학가다. 호메로스. 영화 300을 본 사람들은 트로이 목마 사건을 알 것이다. 혹은 신화를 접한 사람도 알 것이다. 그 이야기의 저자가 바로 호메로스이다. 설마 신화라고 하여 저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기를.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한마디로 현자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과학 발전을 가장 가로 막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다들 알다시피 플라톤의 제자이고, 모든 수학 경제학 물리학 천문학 등등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리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궁금증을 가졌던. 최고의 철학가이다. 맹자. 그는 절대로 바른말을 하는데 두려워 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와 같은 동양의 철학가이다. 코페르니쿠스. 흔히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으로 공통과학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사람 역시, 세상의 것을 궁금해하고 진리를 탐구하던 철학가이다. 갈릴레이와 뉴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무함마드. 예수와 부타가 철학가이듯이. 그 역시 철학가이다. 사람이 살아야 할 방법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잠깐 여기서.. 난 이슬람교가 대충 유대교에 뿌리를 두는 것은 알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것처럼 이단이라고 보기에는 그저 기독교의 또다른 형태라는 식으로 이 책을 읽은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기회가되면 꾸란도 한번 읽어볼 요량이다.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된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철학가는 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혜를 사랑하고 만물의 이치를 궁금해하여 자신의 열정을 쏟아붇던 사람들이다. 5살 어린아이들도 책을 읽으며 '엄마. 행복이 뭐야?'라는 질문을 하지 않던가?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콘서트를 읽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철학가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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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피타고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김예슬이란 학생이 대자보에 쓴 글이 떠 올랐다. 지성의 향기가 사라진지 너무도 오래된 대학의 풍경들... 피타고라스가 세웠다는 철학공동체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지혜를 사랑하기 위한 그의 마음가짐과,그런 태도에서 진정한 학문이 나올 수 있는 것임을,또한 대학은 그것을 가장 열정적으로 지향해야 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년 전 ,<철학콘서트>를 읽었다.고전의 매력 속으로 빠지고픈 유혹으로 충만했던 책이라 생각했었다.그런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곧 읽으마 했던 ,<철학콘서트2>를 이제서야 읽었다. 그러나,지금이라도 읽은 것은 다행이지 아닐까? 왜? 다시 철학서를 찾아 기웃하는 지는 모르겠으나,그 속에 답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이 책은 무겁지 않다. 한사람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지도 않는다.당연히 그의 사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읽는 독자에게 더 많은 것은 당신 스스로 찾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호기심을 자극해 줄 뿐이다. 놀라운 것은 학교다니던 시절,지구과학이라고 하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내가 코페르니쿠스의 저서<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궁금해졌다는 사실이다.국내에는 아직도 완역본이 없다는 설명에 맥이 빠질정도였다. 도대체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였길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궁금해졌을까? 그 답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을 읽어야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서로 연관이 있는 학자들도 아니었고,친절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책엔 숨은 매력이 분명 있나 보다. 하긴,콘서트란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감상 후 흥얼거리는 여운과 두고 두고 기억하고 찾아보고 싶은 유혹~ 어느 누구를 꼭 읽고 알아야 한다가 아니였다. 소개된 면면의 학자들을 만나면서 당신에게 손짓하는 이들부터 만나기를 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나는 덥썩 코페르니쿠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물었다. 자발적으로 철학과 친해지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지 않을까? 깊은 철학서를 원하는 이들은 피해야 할 책이겠지만,어렵다는 생각에 망설이는 이들에겐 철학콘서트1이든 철학콘서트2든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 보시라,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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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혁명론에서 뉴턴의 만유인력까지 세상을 바꾼 사상가 10인의 위대한 생각들 동 · 서양의 철학을 균형있게 담아낸 철학 교양서 『철학 콘서트』의 두번째 이야기. 딱딱한 이론이나 지루한 설명 대신, 다양한 사상가들을 삶을 통해 위대한 생각들을 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 같은 전통 철학자들은 물론, 갈릴레이와 뉴턴, 세종과 호메로스 등 기존의 철학 범위를 뛰어넘는 인물들이 함께 철학의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며 ‘철학은 곧 혁명’임을 주장한다. 서양정신의 원형을 만든 호메로스와 과학적 사고의 시작을 알린 피타고라스, 과학혁명을 완수한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뉴턴,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한글을 만들어낸 세종과, 가장 결속력 강한 종교를 만들어낸 무함마드 등, 지적 혁명을 일으킨 사상가들을 통해 철학은 그저 세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세상을 크게 바꾸어왔음을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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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철학은 어렵고 실제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10명의 사상가를 통해 그들이 이룩한 업적을 통해 시대가 변화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철학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시인 호메로스나 과학자로 알고 있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도 철학자로 얘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칸트의 <순수 이성비판>에서 전개되는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규명하는 철학’ 즉 학문의 분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피타고라스가 “나는 성자나 현인이 아니라 다만 지혜를 찾는 사람일 뿐”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을 때 사용한 지혜 즉 ‘소피아 sophia' 로서의 철학이다.” 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 과학도 하나의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수학자나 철학자의 구분이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하다. 수학을 모르고서는 이 세상을 알 수 없다고 했으니. 과학자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혁명을 이룩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 이상적 세계에 대해 반기를 든 아리스토텔레스, 이슬람교를 만든 무함마드 등이 있다. 그들에 대해서 재미있게 말하고 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쉽게 설명을 해주며 미국적인 시각에서만 보기를 강요한 이슬람의 무함마드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 준다. 유학의 선구자 공자도 고리타분한 학문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시경>이라는 노래가사를 정리한 사람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만 말한다는 것에 반기를 든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인물들을 살펴서 그와 관련된 책을 읽는 다면 더 재미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일리아스>를 읽는 어려움을 말하였다. 나 역시 그러한 어려움을 겪었기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났을 때의 뿌듯함과 재미를 저자를 통해 확인을 하니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서 다시 읽어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곳으로 여행을 가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책을 재미있게 쓰는 작가이다. 지겹고 어려울 수 있는 것을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어슬프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생략되어가는 지금의 책읽기를 반성해야겠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한 공자님 말씀을 새겨들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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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콘서트 주인공이 다시 바뀌었다. 2009년 올해, 제 2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1권도 감명 깊게 읽었는데, 2권은 전편 보다 더더더더더더더 좋다. 이 책은 속편이 전편보다 더 재미없다는 속설을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밀려오는 감동이란, 끝까지 읽은 사람만 느낄 수 있으리라.
철학콘서트1 보다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나로서는 너무 좋았다. 제 2권에는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이 등장하는데, 과학자로 알려진 이들이 인문학을 다루는 책에서 ‘철학자’의 모습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동양 철학에 무지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철학콘서트 2>> 덕 좀 봤다. 책 속에서 맹자와 세종과 공자의 '시경'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맹자편이 인상깊었다.
‘맹자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맹자는 천하에 세가지 즐거운 일이 있는데, 왕 노릇 하는 것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세 가지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건강하면,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란다. 참, 쉽다. 그런데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언제라도 뵙고 효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즐거움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실감하게 된다. 역설적인 진리다. 맹자는 “우러러보아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중략) 나의 이익만을 돌보도록 강제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다. “불의한 부富와 귀貴는 나에게 뜬구름”이라고 공자는 가르쳐주었건만, 우리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제 한 몸의 영화榮華만을 노리는 무서운 경쟁 사회를 살고 있다. ...... 맹자는 말한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p.96
인생을 즐겁게 사는 일은 참 간단해 보인다. 위의 세 가지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면 참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또 목숨을 걸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사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1800년동안 지켜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을 조심스레 반박하는 코페르니쿠스. 소신있게 교회를 향해 외치는 그 말이 참 외롭다. “사실은 지구가 태양 중심을 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성적 사유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 다다른 정직한 결론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상은 시간에 따라 축적되고, 연단되어 더 고급스러운 사유로 발전하게 된다. 옛 현인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의 아우라가 사라지지 않는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던 시절. 서양과 동양을 오가기 어려웠던 시절. 지금의 상황과 전혀 다른 시대에서 쓰인 책이지만 여전히 그 중심은 ‘인간’을 다루기에 계속해서 책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철학 콘서트2>>는 1편보다 한껏 꾸민 흔적이 없다. 책의 서평과 에필로그를 통해서 황광우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정직한 비판과 고전을 통한 진지한 사유. 10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는 그의 책에서 나는 황광우의 생각도 같이 읽을 수 있었다. 그의 고전 철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독자에게 큰 자극을 준다. 그의 에필로그를 복사 해 두었다.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