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대권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 그의 책 "야생초편지"를 읽으면서도 엽서를 쓴 날짜를 일일이 확인하며, 그래 그때는 내가 아들을 낳았었지, 그래 그때는 내가 그런 일을 겪고 있었지 하는 추억들을 떠올리면 읽어 내려갔다. 내가 세상에서 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부도덕했던 정권이, 그리고 세월이 그에게 강요했던 그 억울함을 그리도 담담히 가슴에 묻고 야생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적어나가고 있는 그의 필체들을 확인할때 마다, 가슴에는 늘 그를 가두어 두고 나만이 편한 생활을 해온 것은 아닌지 늘 미안한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왔던 나보다 훨씬 거인으로 살아왔으며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수확하며 살았음을 이 책으로 인하여 확인 하였다. 자유속에서도 자신을 가꾸지 못했던 수 많은 민초들보다 그의 삶이 더 아름다웠다는 이유가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 땅에는 참으로 많은 야생초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다. 서울을 벋어나 지방의 산과들을 지날때면 그저 초록이구나 하는 느낌, 초록의 싱그러움으로만 느껴졌던 그 색깔들 속에 하나 하나의 이름이 있으며, 하나 하나의 의미가 있고 그 각각의 하나 하나마다 생존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다. 시원스럽게 각진 농토들, 잡초하나 없이 잘 정돈된 산소들이 좋게 보였던 나에게는 내가 벌초를 한다는 이유로 뽑아 버렸던 많은 야생초들이 그렇듯 각각의 심오한 생명력과 의미있는 삶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회색에 익숙해지고 작은 생명에 소홀했던 내 삶이 황대권으로 하여금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낀다. 책을 읽고 나서 아내에게 부탁하여 잘 마시지도 않던 향기좋은 국화차 한 잔을 부탁하여 황대권이 감옥속에서 향을 음미하며 즐기던 그 맛을 함께 느껴 보았다. 그가 보너스로 제공해준 맛스러운 그림들과 잡초가 아닌 야초들에 대한 작지 않은 지식들을 소중히 받았다. 아마 내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나면 한 번쯤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권해줄것 같다.그의 앞으로의 삶에 더욱 큰 보답같은 은총이 함께 하길 빈다 [인상깊은구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 --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인가.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
|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는 책 제목 그대로 편지체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는 1985년,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갇혀 지내면서 야생초에 관한 글을 봉함엽서에 적어 동생에게 보낸 것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작가의 전공인 농업과 미대를 지망했던 데생 솜씨, 미국에서 수학했던 정치학적 지식, 여기에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숨쉬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들풀들, 논밭에 피어나는 이름모를 풀들, 그것을 우리는 잡초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히 야생초라 부르며, 야생초는 아직 그 가치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야생초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야생초에 대한 그의 지식과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토종적 사고의 뿌리들을 읽을 수 있다. 그 단편적인 예 몇 가지를 본다.
채소밭에 뿌릴 토종 씨앗을 구하기 위해 무척 어려움을 겪는데, 토종 씨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을 알고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며 그는 비통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딱지 꽃에 대한 관찰기에서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소박한 야생초로부터의 배움을 이야기한다. 늘 평화롭게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분에게 사람들이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시겠다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는 물 아래에서 얼마나 열심히 두 발을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묵내뢰(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면서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말이다. 교도서 한 구석에 마련한 화단 구석에 수줍은 듯 얌전히 피어 있는 주름잎 꽃을 보며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해 화단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서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해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그는 생각해 내곤 한다.
야생초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글은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행사에서 했던 강연 내용인 '뿌리내리기'라는 글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심은 것은 작물이고, 내가 길러 먹을 것 또한 작물이다. 너(잡초, 야생초)는 내가 길러 먹을 작물의 영양을 빼앗아 먹고, 재배하는 데 방해만 되니 하등 쓸모 없는 풀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이해와는 상반되는 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너는 모조리 죽어 주어야겠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제3세계 민중들이 어떻게 대우를 받는지에 현상에 대한 시각이며, 또 그들이 어떻게 해야 자주적으로 자립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야생초 편지』는 저자가 야생초를 통해 본 사회상이기도 하고, 야생초가 저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세계관이기도 하며, 한 권의 야생화 도감이기도 하다. 중간 중간 저자가 직접 그려낸 야생화 그림은 참으로 현실감 넘치는 정밀화로 글 읽는 맛을 더해 주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화개반 주미취(花開半 酒微醉)란 말 들어 보았는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기분이 좋다."란 뜻인데, 나는 황금꽃을 관찰하면서 이 한자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
|
처음엔 자신의 만성 기관지염을 고 보려고 풀을 뜯어 먹다가 이내 야생초에 반해서 야생초 연구가가 된 사람! 감옥에서 어렵게 씨를 구해 각종 야생화를 정성껏 가꾸며 삶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는 초록빛 들풀 향기가 가득합니다. 소박하고 겸손한 풀들이 ‘옥중 동지’였다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그의 글들엔 감옥 생활의 애환도 가득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그것이 아무리 하찮아 보일지라도 이 우주에 하나뿐이라는 생명의 동질성과 소중함을 읽어주길 바란다. |
![]()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야생초 관찰일기지만, 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을 읽으며 바보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 읽을 땐 웬만해서 잘 울지 않는데 책도 읽기 전에 책 앞뒤날개에 실린 글과 서문을 읽고 왈칵 눈물이 나오다니! 야생초 같은 처지가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13년 2개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저자가 가여워서였을까.
황대권이란 사람은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갇힌 자는 아니었다. 1955년 서울생.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고 한다.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사회단체의 사면운동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 책은 그의 옥중일기인 셈이다. 그는 1985년 서른 살부터 1998년 마흔네 살까지 교도소에서 생활했는데, 여기 실린 글은 1992년~1997년까지 안동, 대구, 대전교도소 내에서 야생초 화단을 가꾸며 살아온 6년간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감옥에서는 자기 글을 써서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나갈 때 다 빼앗기기 때문에 그는 편지형식으로 기록해서 밖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형식은 편지글이지만 내용은 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야생초의 섬세한 그림과 설명이 담겨있어 마치 식물도감을 보는 듯하다.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내 눈이 호강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76쪽)
어쩜 이리도 그림을 잘 그릴까. 자유스럽지 못한 공간에서도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다니 놀랍고도 놀랍다. 미대 지망생이었던 저자가 그린 섬세한 그림까지 곁들여 읽는 맛이란 그야말로 일품이다. 며느리밑씻개, 스타펠리아, 달개비, 제비꽃, 강아지풀, 오이 덩굴, 닭의 덩굴, 딱지꽃, 녹두, 주름잎, 방가지똥, 여뀌, 루드베키아, 황금, 까마중, 매듭풀, 땅빈대, 수까치깨, 돌콩, 왕고들빼기, 마, 괭이밥, 쇠비름, 중대가리풀, 비름, 명아주, 박주가리 덩굴, 산국, 수크령…. 아는 것 몇 개를 제외하곤 그림을 봐도 대부분 낯선 것들이다. 저자는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명아주를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로 꼽았다. 이 땅에 가장 흔하면서도 모두가 식용으로,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게 그의 추천 이유다. 참비름과 질경이는 어릴 적 흔하게 먹고 자랐는데 쇠비름과 명아주를 먹는다는 건 처음 알았다. 우리 엄마도 아마 모르셨던 모양이다.
쇠비름
![]() 명아주 나는 유년시절에 흙을 장난감 삼아 시골에서 자랐었다. 시골 할머니 집에 방학 때 놀러 가면 호미로 김도 매곤 했었다. 허리가 뻐근하도록 뽑아내고 뽑아내도 징하게 잘 살아남던 것들이 쇠비름이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이렇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은데 도시가 고향인 사람이나 요즘 젊은 애들은 저런 걸 보고 자라지도 못했겠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잡초 같은 이들에게도 고유한 이름이 있었구나.', '그냥 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먹을 수도 있다니 놀라워라.',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라고 불러줘야 하는구나.' 책을 읽으며 많은 걸 배우고 깨닫게 된다. 주변에서 흔하게 많이 보았던 방가지똥, 여뀌, 까마중, 괭이밥, 쇠비름, 명아주를 보니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어찌나 반갑던지. 그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옆에 있는 동생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우리 어릴 적에 이거 많이 따먹었잖아. 이게 까마중이래. 그리고 이것도 우리 많이 봤었지. 이름이 여뀌래." 동생도 무척 반가운 눈치다.
![]() 까마중
![]()
이 책이 좋았던 건 단지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기보단 야생초를 향한 그의 땀과 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풀과 벌레를 키우고 관찰하며 그가 누렸을 즐거움은 우리네 사치스런 취미와는 다르다. 교도소 내에서 만성 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풀을 뜯어 먹다가 5만 원의 거금을 주고 산 식물도감으로 독학을 하고 여러 책을 읽으며 야생초에 대한 지식을 쌓아간다. 출소한 사람들에게 부탁해 씨앗을 하나 둘 모으고,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사회참관 시간에는 야생초를 캐느라 정신없었던 그 사람. 매일 한 시간의 운동시간에도 그는 화단에 물과 거름을 주고 그렇게 애지중지 야생초를 키웠다고 한다. 들풀모듬에 모듬풀 물김치, 십전대보잼을 손수 만들어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의 꼼꼼하고 여성스런 글씨체만큼이나 보기 좋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학식이나 용모, 혈통 등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는 마음은 교(驕)인데 반해, 만(慢)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 낫다고 느끼는 본능적 심성이라는 점이다. (중략)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만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 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야생초에는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화사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가만히 십 분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해 보일 수가 없다. 자연 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거든. (101~102쪽)
야생초 그림만큼이나 인상깊었던 건 맨 뒷장에 부록처럼 담겨있는 기념강연 내용이었다.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모임'에서 '뿌리내리기'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이다. 우리 인간들의 관점에서 잡초란 그저 '잡스러운 풀', '원치않는 장소에 난 모든 풀들',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로 정의하는데, 이건 다수가 잘못 아는 상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머슨 학자의 말을 빌리면 '잡초란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 한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은 약 35만여 종이며 그 중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는 것은 겨우 3천 종가량 정도가 된다고 한다. '녹색혁명'으로 인해 키우기 쉬운 다수확품종만이 살아남은 게 현실이다. '생태학적 제국주의'에 휩쓸려 그 가치가 인정받기도 전에 지구 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마는 토종 풀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토종 풀들이 사라지고 생태계가 균형을 잃어간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심각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큰 문제겠지만 말이다. 책 읽는 내내 자꾸만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잡초라고 여기며 뽑아버렸던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였다. 화분 옆에 자라던 작은 풀을 열심히 뽑아버리곤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괭이밥이었다. 우리가 야생초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자연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효능으로 보답할 거라 믿는다. 땅이 식물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 울림이 노함으로 바뀌지 않게.
2009/12/10 Written by Dasom |
| 아직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야생초들.. 이제 정말 조금 일부분만 알았을뿐인데, 야생초가 좋아진다. 그 강인함이.. 지금까지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은 잡초라고 불렀었다. 그냥 잡초일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그 풀들에도 예쁜 이름이 있었고, 그리고 생명이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고 미안하다. 작가는 감옥 수감중에 이 편지들을 썼다.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 그런 점에서 참 많이 본받고 싶기도 했다. 힘들고 지겨운 생활속에서 땅에 피어난 여러 야생초들이 그에게 가지는 의미는 참 많이 달랐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잡초로밖에 보이지 않아 뽑히는 풀이 그 사람에게는 화단에 고이고이 심어두고 애지중지 가꾸는 소중한 식물이라니..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하다. 야생초를 좋아하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착한 마음으로 소중히 대하는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것이다. 화려한 모습 예쁜 모습으로 사랑받고 주목받는 꽃, 나무들에비해서 화려하지 않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의 그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야생초, 야생화에 왠지모를 정이갔다.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야생초같은 사람이 되고싶다. 야생초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
|
나는 ‘의미’나 ‘뜻’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이 두 단어가 확실히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한자와 순수 우리말의 차이인가? 사전을 찾아봐도 거의 동의어로 나오지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 나와 있지는 않다. 어쨌든 내가 이 두 단어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삶을 사는 것, 즉 의미 있는 삶 혹은 뜻 있게 하는 행동들은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암담하더라도 혹은 실패했더라도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충분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자신을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 그런 의미를 갖고 사는 사람이나 뜻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을 보통 사람이라 부르기보다 이렇게 삶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보통 사람이라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드러나지 않고 나타나지 않더라도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 있어 이 책의 저자 황대권씨는 그 특별한 사람 중 하나이며 삶에 있어 의미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난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내가 처해 있는 환경과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연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알뜰하게 살고 있는가? 황대권씨의 삶을 보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13년 이상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절대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며 내게 주어진 자유와 공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게 보냈는지 반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작은 사물 또 내가 숨 쉬고 살면서 그리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작은 풀 하나에 담겨 있는 소중한 의미들, 그가 아니었으면 쉽게 배우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쇼생크 탈출’이다. 그 중 생각나는 장면하나가 있는데, 교도소 내에서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아내를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온 주인공이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레드라는 흑인 죄수는 그런 마음은 지금 처해 있는 자신들의 상황에서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주인공은 자신의 희망을 이루게 되고 더불어 그 희망 속에 아무런 미래도 없던 친구 레드까지 초대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며 저자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 역시도 갇혀 지내던 그곳에서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를 그 희망 안으로 초대하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감옥에 지내면서도 그는 항상 그 다음을 생각하며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거대한 담벼락에 둘러싸인 교도소지만 그는 그 넘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준비의 모습이 감옥을 나왔을 때, 그가 삶을 다시금 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영화 주인공처럼 꿈같은 미래를 준비하며 우리를 초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를 희망적 삶 안으로 초대한다. 거창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많은 야생초들,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다양성과 특징들을 모를 뿐이지 그들은 모두 각 자만의 의미를 지닌 삶을 살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그 중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고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그들 모두 각 자 만의 독특한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이 현대화되어 개성이 말살되어져 가는 사회 속에 저자는 야생초들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의미에 대해 깨닫게 해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 우리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만지면 느낄 수 있고 슬프면 눈물이 나는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회라는 틀 안에서 그런 가치 있는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는 꼭 수도자가 되어 어렵게 삶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저자는 우리에게 아주 쉽게 해결책을 말하고 있다. 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른 사물에 대한 의미를 하나씩 찾아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작은 미물 그리고 나, 비교해 나갈수록 가치가 지닌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안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충분한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절대 악적인 그의 조건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 속에 있지 않은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오늘 지나가다 허름한 골목길 구석에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았다. 민들레가 내게 묻는다. “내게는 무슨 향기가 나니?” |
| 경비교도대를 아는지 잘 모르겠지만 육군에 지원했다가 후반기 배치 받을때 법무부로 넘어가며 교정시설에서 경비나, 계호, 감시대 근무 등을 하는 건데 지금 나는 경비교도대로 군 복무중이다. 그렇다 보니 재소자들과 접하고 있는데 이 책을 보니 재소자가 쓴거라 왠지 끌렸다 해야할까.. 지금은 고참쯤에 속하지만.. 신병일때 많이 높은 고참중 하나가 카스테라 빵 나온걸 가지고 중대에서 혼자 구멍뚫고 우유부어 먹기도 하고 그사람이랑 순찰 돌면 길가의 잡초들을 보면 이름도 자주 물어보곤 했는데 내가 이 책을 얼마전 접하곤 그사람도 이책을 보고 그렇게 행동 했구나 싶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잡초. 책을 말을 빌자면 길가,, 들가의 야생초들에 한번더 눈이 가게 되고 이쁜 야생초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그렇다. 실제로 아주 많은 야생초들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나는 쫌 시골이라 볼수 있는 교정시설에 근무중인데 거기 나온게 실제로 많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느낌표를 안본지 오래된 관계로 느낌표 추천책인지 그런건 잘 몰랐었는데 추천할 만한거 같다. 인간적인 면으로도 솔직히 내가 밖에선 재소자들에 대해 잘 몰라서 만약 밖에서 이 책을 봤다면 덜 끌렸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독거 생활같은 것도 보고 다양한 생활을 본 입장이 되서 그런지 작가의 수감생활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자연에 대해 또는 소홀히 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갖기 바란다. |
|
사랑의 빛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사랑의 빛이 충만한 얼굴은 보면 볼수록 정이 듭니다. 사랑의 빛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랄 때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오는 빛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왜 남을 닮으려고 안달을 하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타고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민들레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 황대권 |
|
이름 모를 들풀, 잡초 같은 인생.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감옥에서 비로소 야생초와 만난 황대권 씨는 그렇게 보면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잡초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들풀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이제껏 내가 바라봤던, 그리고 안타깝게 여겼던 이름 모를 들풀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주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서로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일.
이제 나의 삶도 그렇게 바뀌길 소망한다. 잡초라는 이름이,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그의 글은 그래서 더욱 감동이 간다.
참으로 들풀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이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고들빼기며 개망초며 명아주며 여러 풀들 이름을 익히고 그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내 삶도 새로워지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
| 미국에서 제3세계정치학을 공부하다 '구미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13년 2개월을 복역한 저자는 기관지염을 고쳐보기 위하여 야생초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키워보고 요리를 하고 연구하다가 야생초 전문가가 되었다고한다. 동생에게 봉함엽서로 쓴 편지글을 모아서 출판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속에 수채화로 야생초의 생김생김을 세밀하게 그려 넣었는데 어렸을 때에 보고 자라고 캐다가 나물을 만들어 먹었던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보는 야생초를 화단에 심고 생장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야생초들도 감정이 있고 넝쿨은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 아주 심오한 진리들을 깨우친 것 같다. 이 책에는 야생초들의 약재로서의 효험들도 자세히 나와 있어 실 생활에 적용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렸을때에 질경이를 캐대가 어머니께 드리면 물에 데쳐서 갖은 양념을 넣고 무쳐 기름에 볶아 먹으면 그 맛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둘째애를 임신했을때 갑자기 질경이 나물이 먹고 싶어서 어머니께 부탁하여 나물을 만들어 먹은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과천 아파트단지에는 잔디밭과 녹지대가 많은데 자세히 보니 질경이와 돌나물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봄이 되면 가끔 캐어다가 나물과 돌나물김치를 해먹었는데 그런 야생초들이 밭에서 인공적으로 키운 야채보다 훨씬 효능과 건강에 좋은 것을 이 책을 보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사기전에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림을 보고자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물론 그림도 좋았지만 그 내용도 알찼다. 나는 지난 12월에 이 책을 구입하여 읽었는데 며칠전 MBC T.V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된 것을 보았다. 야생초 이야기뿐아니라 거미의 먹이 잡는 모습, 사마귀의 교미과정, 청개구리의 먹이를 먹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글들은 시골 생활을 해보지 못한 분에게는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다. 이 책을 펼치기전에 그의 억울한 감옥살이의 한탄등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야생초를 알고 난 뒤부터 그는 감옥생활을 오히려 즐기는 듯이 비춰졌다. 아주 많은 시간들을 오히려 야생초 연구로 인하여 보람있게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다. 출옥시에는 자신의 글을 가지고 나올 수 없어 봉함편지로 외부로 보내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제 아파트 단지 곳곳에 나 있는 여러 야생초들 민들레, 질경이, 쇠비름, 돌나물, 참비름나물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지가 않을 것 같다. 이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오면 새콤 달콤한 야생초로 샐러리도 만들고 나물도 무쳐 먹고 쑥과 냉이로는 된장국을 끓여 먹야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노라니 왠지 올봄은 산뜻하게 우리 앞으로 금방 다가올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