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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별로였던 사람이지만 만남이 더해지면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경우가 있다. 정말 많이 있지는 않지만 그런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자꾸 만나고 쉽고 기분도 좋아진다.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 행동, 말투 보다 생각이 더 멋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래서 갈수록 그 사람의 내면에 생각에 빠져 매력을 느낀다.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생소한 작가는 장르는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독서에 편식이 생긴다. 작가 편식, 취형 편식. 집에 사놓고 제대로 읽지 않고 있는 펭귄클래식100권이 나의 편식으로 인해 장식품으로 취급받고 있다. 검은색표지의 이책들은 무게는 가볍지만 내용은 무거움으로 가득찬 느낌을 나에게 끊임없이 뿜어낸다. 쉽게 책이 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의 소개글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중 눈에 가장 보인 문구가 ‘현대 연애소설 중 가장 비통한 소설’ 이다. 그래서 난 올해 처음 읽는 펭귄클래식을 ‘세월의 거품’으로 선택하였다. 연애소설이니 얼마나 가벼울까. ‘숨그네’에 허덕이면서 난 가벼운 책을 원했다. 하지만.... 매력적이고 부유한 한 남자 콜랭과 관능적으로 아름다운 한 여자 클로에가 서로 사랑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있는데 클로에가 아프다. “오른쪽 폐 속에서 수련이 피어요.” 클로에의 페에 수련이 피기 시작하였다. 콜랭은 클로에 병 치료를 위해(클로에의 폐 속에 자라는 수련이 무서워하는 꽃들을 주위에 가즉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돈을 다 쓰고, 일자리를 계속 구하지만 쉽지 않다. 밝던 콜랭과 햇빛으로 가득했던 집은 클로에의 병을 시작으로 사라졌다. 집은 빛을 피해 작아졌으며, 콜랭은 갑자기 늘어갔다. 이제는 그는 매일같이 사람들의 집에 올라가야만 한다. 명단을 넘겨받으면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 그 불행을 알리는 것이다……….(중략)………다음에 찾아가야 할 이름을 명단에서 찾던 그는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았다. 그러자 그는 모자를 집어 던진 채 길을 걷기 시작했고, 클로에가 내일 죽게 되리라는 걸 알게 된 그의 가슴은 납처럼 무겁기만 했다. 콜랭의 지극정성에서 불구하고 해피엔딩은 없었다. 클로에는 결국 죽었고 콜랭은 수련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수련이 나오길 기다리며 한없이 강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콜랭의 친구 생쥐는 고양이 입 속에 자신의 머리를 넣는다. 지금은 통속적인 이야기이지만 보리스 비앙의 상상력으로 흔하지 않은 연애소설이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난 책과 작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시작하였다. 2013년에 ‘무드 인디고’로 영화화 된 정보도 확인 하였다. 책을 덮으면서 그 상상력을 나의 눈으로 확인 할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지금의 해리포터와 견주어도 전혀 빠지지 않는 이 상상력의 책은 갈수록 매력이 더해진다. 물질의 탐닉에 빠진 시크,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에 이끌려 살아간 알리즈, 약을 만드는 토끼,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성당 사람들 등 시간이 갈수록 우리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내부에서 자신을 찾는게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며, 인간미는 사라진다. 1947년 보리스 비앙을 알았다. 미래에 이렇게 될거라는 걸,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거든요. 바뀌는 건 사물이지.” 사람은 이제 갈수록 기계와 비슷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물만 바뀔 뿐. 책을 덮고 생각이 구름처럼 뭉게뭉게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상상력에 감독의 상상력을 더한다. 새드앤딩이 책으로만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어져서 맘이 잘 잡히지 않았다. 친구의 슬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생쥐. 하지만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어 고영이의 입속에 얼굴을 넣는 생쥐. 고양이 입속에 얼굴을 놓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쥐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린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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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짜여 진 구조와 작중(作中) 인물들의 의식과 행동의 규정에서 이 작품의 탁월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은유와 상징 그리고 플롯들의 기막힌 질서 정연함, 주제와 주의(ism)의 완벽한 일체감까지 읽게 되면 탄성을 지르지 않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정교한 장치들과 재료들 - 쥐, 꽃(수련), 장 솔 파르트르, 기계와 공장 그리고 노동 - 과, 등장인물의 절묘한 대비 - 콜랭과 시크, 요리사와 의사 - 는 가히 이 작품의 노력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 경외를 느끼게 될 정도이다.
작가‘보리스 비앙’을 수식하는‘초현실주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한결 도움을 준다. 굳이 이 작품을 특정 사조(思潮)에 대입한다면 근대산업사회의 기계화, 자본주의 등 대상의 사물화로 인한 인간의 소외라는 근대(近代)를 비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간영역 쯤 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라캉’을 떠올리면 보다 쉬운 이해가 될 것 같다. 또한, ‘장 폴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노골적인 천대와 비난이 한 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의 사물화에 대한 극명한 반발로서 산업사회의 무한적 욕망과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해체한다. 재화에 구애됨 없이 사는 콜랭, 광적으로 파르트르(샤르트르를 상징)의 책과 관련 상품에 삶의 목적을 둔 시크, 요리사 니콜라, 콜랭의 연인에서 아내로 그리고 질병의 고통으로 생을 마감하는 클로에, 파르트르에 열광하는 시크를 사랑하는 알리즈, 이들의 언어와 의식,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이 작품을 읽는 재미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아내 클로에의 가슴속에 자라는 수련(암의 상징?)으로 인한 막대한 치료비, 매일 매일 아내의 침실을 온통 장식하는 꽃다발의 부담은 콜랭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저항의 신념 또한 무너뜨린다. 한편, 파르트르에 열광하지만 읽고 연구하는 대상이 아닌 단지 수집의 대상으로 집착하는 시크의 허위의식, 그리고 삶의 실재에 어떠한 유익성도 제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삶의 파괴자로서 기능과 자신의 실존만을 외쳐대는 파르트르를 살해하고, 불태우는 알리즈는 예정된 비극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세금징수를 위해 시크를 죽음으로 내모는 공권력의 잔인성까지 더해 인간 개체의 무력(無力)화를 선명하게 부각하고 확대한다. 재즈(Jazz)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낯익은 ‘듀크 엘링턴’「클로에; 늪의 노래」의 차용에서 이미 콜랭의 연인이자 아내인‘클로에’의 숙명적인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다. 음울한 비련의 선율처럼 작품의 주인공들은 도달하거나 극복해야 할 세상에서 희생된다. 아내를 묻고 돌아오는 길가의 늪에 피어난 수련을 바라보는 콜랭은 아마 악이 설쳐대는 세상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 같기만 하다. 지적이고 가끔은 몽환적인 이 작품의 무수한 의식들이 대변하는 근대의 비난과 저항,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의 지향이란 당 시대를 풍미했던 사조를 만끽하게 된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이야기에 담긴 진지한 근대의 성찰이 비관적으로 얽힌 걸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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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을 알기 전 <무드 인디고>라는 영화를 봤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였다. 프랑스어만 들으면 잠들어버리는 나는 화려한 영상미와 나긋한 프랑스어 속에 5번을 내리 잠들었고, 6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영화를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커졌다 작아졌다, 빨간색이었다가 파란색이었다가 하는 영화 장면들과 아름다운 꽃들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누구에겐 명작이라고 하는데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억울해서 책을 펼쳤다. 영화보단 더 많은 것들을 느끼길 원했다. 알록달록함을 넘어선 그 어떤 의미가 나에게 다가왔으면 했다.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해 읽다가 저자가 공대생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쩐지 그가 쓴 소재들이 심상치 않더라니! 칵테일 피아노를 시작으로 하는 기발한 발명품들이 이 책을 채우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한 편으로는 공대생이 이렇게 시적으로 글도 잘 쓰다니, 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배경 덕에 더 다채로운 색상이 책을 가득 채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통통 튀는 발상에 신기한 기계들과 다채로운 색이 이 작품을 가득 채웠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무드 인디고> 속 장면 하나는 구름 같이 생긴 비행체를 타고 있는 콜랭과 클로에의 모습이다. 작가가 다른 배경에서 왔다면 책에서 이토록 다양한 감각과 색채를 발견하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오른쪽 폐에 수련이 핀다는 말을 정말 말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사실 이게 암이나 폐렴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임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굉장히 충격이었다. 마냥 판타지는 아니었구나 싶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왜 이런 은유적 표현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문득 내가 소설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계속 표현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현실주의 작품임을 알면서도, 내가 아는 소설의 틀에 이 책을 억지로 끼워넣으려 노력하다 보니 이 책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다시 읽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규격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 만약 이 책을 처음 접한 나와 같이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자꾸만 표현에 집착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부디 가지고 있는 소설의 틀을 잠시 내려놓길 바란다. 첫 장에서 여드름이 알아서 피부 속으로 숨어버릴 때 우리는 그 틀을 내려놓았어야 한다. 작품 해설에 적혀있듯, 이 책의 주인공은 콜랭이다. 칵테일 피아노로 돈을 벌고, 재즈를 즐기며 살던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노동까지 하게 되는 이야기, 전적으로 콜랭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이야기는 ‘클로에를 위한’ 콜랭의 이야기다. 클로에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가장 혐오했던 노동 안에 자신을 집어넣을 정도로 짙다. 작품 해설을 읽다 깨달은 것은 클로에가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비앙이 실제로 의도하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대 프랑스 문학의 흐름을 따라 읽다보면 클로에는 수많은 이중적 가치를 상징한다. 그런 가치를 탐닉하는 콜랭의 모습은 마치 낭만을 꿈꾸는 평범한 인간 같다. 통통 튀는 비극 연애소설 정도로만 생각했던 책이 가진 색다른 뜻에 주목하며 책을 곱씹으니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책이 훨씬 좋았다. 아마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영화를 보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콜랭의 헌신에 감동했고, 까만 활자 속에서 다채로운 색과 통통 튀는 분위기, 그리고 아름다운 재즈를 발견했다. <무드 인디고>를 본 사람이라면, 혹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꼭 작품 해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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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 그리고 무드인디고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해냈기 때문레 완전히 사실이라는 점부터 그 온갖 힘을 끄집어낸다.-보리스 비앙 내가 상상해냈으니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니, 이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말인지. 무드인디고를 너무 좋아해서 우연찮게 원작이 있단 것을 알게 되어 구매한 책인데, 책 역시 영화 못지 않게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럽다. 너무 사랑스러워 슬프지만 슬프지않은, 우울하지만 또 우울하지만은 않은 이야기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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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보리스 비앙)
간단하게 말하면 유산으로 풍요롭게 살아가던 콜랭이 클로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이상한 병에 걸린 클로에를 위해 자신의 유산을 모두 쓰고 노동까지 하지만 클로에는 결국 사망하고 콜랭도 자살을 한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생쥐 등 동물을 의인화하는 등 놀랍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잘 드러난다.
의사나 맹목적으로 파르트르를 추종하는 시크에 대한 풍자 등과 가벼운 글쓰기를 통해 소소한 웃음을 준다.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는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한다. 교회 마저 돈을 추구하고 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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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을 보고 화려한 색채의 영화가 가진 매력에 빠진 나는 자연스럽게 <무드 인디고>를 선택했다. 이미 포스터부터 형형색색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색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삶을 아주 빠른 속도로 전개하면서. 영화를 본 지 시간이 훨씬 지나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다. 영화의 장면은 머릿속에서 잊힌지 오래여서일까. 원작 소설 《세월의 거품》 속 콜랭의 삶은 새롭게 다가왔다. 보리스 비앙은 평생 살 정도로 부유한 돈을 가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콜랭의 삶에 단 한 가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의 삶에 유일하게 없는 것은 ‘사랑’. 친구 시크가 괜찮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이야기하자마자 콜랭은 자신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는다. 과연, 그는 화려했던 자신의 삶처럼 아름다운 색채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난 사랑을 하고 싶어. 넌 사랑을 하고 싶어 해. 그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들도, 당신들도 그러고 싶어 해. 그들 역시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지…….” 《세월의 거품》 p. 42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재즈와 쾌락 속에 살아가지만 어딘가 공허한 삶을 살고 있던 콜랭은 친구 시크를 따라 간 파티에서 매력적인 클로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와 데이트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설레는 첫 데이트를 한 콜랭과 클로에는 결혼을 하게 되고,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눈이 쌓인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클로에는 이내 폐에서 수련이 자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콜랭은 자신의 사랑 클로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다. 《세월의 거품》은 여느 연애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보리스 비앙만의 비유적인 묘사들은 소설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콜랭은 클로에를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삶 속 가장 중심에 그녀를 놓는다. 모든 감각은 클로에를 향해 있다. 그래서 클로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콜랭의 설레는 첫 데이트는 그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첫 데이트에서 만나 인도를 따라 걷던 그들의 앞에 작은 장밋빛 구름 한 조각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따뜻하고 계피 향을 넣은 설탕 냄새가 나는 구름 안. 두근거리는 첫 데이트를 보리스 비앙은 초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고 상상하던 그 설렘을 보리스 비앙은 자연스럽게 소설 안에 배치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만 있는 이 느낌을.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사랑의 끝은 그리 좋지 않은 결말을 보여준다. 찬란한 색을 가지고 있던 클로에와 콜랭의 사랑은 조금씩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클로에의 병과 그녀를 지키기 위한 콜랭의 노력. 보리스 비앙은 클로에의 병을 낫기 위한 처방으로 그녀 주변에 형형색색의 꽃들을 배치한다. 꽃에 둘러싸인 클로에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은은하게 암시한다. 나는 늘 그녀의 베개를 가지리라. 우리는 저녁에 베개를 갖고 서로 장난치리라. 그녀는 내 베개에 속을 너무 많이 집어넣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베개는 그녀의 머리 밑에서 늘 둥근 모양을 유지한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그 베개를 가지고, 베개에서는 그녀의 머리칼 향기가 풍긴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이제 더 이상 느끼지 못하리라. 《세월의 거품》 p. 131 오로지 클로에만을 위한 콜랭만의 사랑의 색. 그 농도가 짙었던 만큼 소설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색이 궁금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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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의 영화 <무드 인디고>는 원작을 읽고 싶게 만든다. 기괴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섬뜩한 장면들이 어디서부터 공드리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보리스 비앙의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 이 경계를 알아내서 이 영화를 위해 누가누가 잘했는지 짚어내보고 싶은, 다소 고약한 마음에서다. 그런데 보리스 비앙의 원작 <세월의 거품>을 읽고 보니 판가름하기가 난감해졌다. <무드 인디고>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진작에 공드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만큼 공드리의 공이 더 클 줄 알았는데, 어지간한 상상은 죄다 보리스 비앙이 해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리스 비앙 승!을 외치면 될 것 아니냐 싶겠지만 그러기엔 찜찜하다. 그의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어둡고 잔혹하기까지 해서 영화의 로맨틱하고 귀여운 부분들은 공드리의 재주라고 봐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달콤한 음악으로 솜사탕 같은 영상이 인상적인 <무드 인디고>와 달리, <세월의 거품>은 시종일관 냉소적이다. 영화 속의 달콤한 장면들이 없지 않지만 엄청나게 디테일한 장면 묘사와 수시로 사람을 처치하는 단호한 모습에서 말랑한 기분 같은 걸 느낄 새가 없다. 콜랭은 영화 속에서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파티에 참석한 후 클로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책 속에서는 알리즈를 보고 반하지만 친구 시크의 연인이라 포기하고 난 후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클로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클로에가 죽어갈 때 알리즈를 매만지며 감탄하는 콜랭의 모습이 책에는 등장하지만 영화에선 빠져있다. 책에서도 콜랭은 이제 클로에를 더 사랑한다고 알리즈에게 말하며 클로에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드러내긴 하지만, 원작 속에서 콜랭의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보이기는 한다. 단면이긴 하나, 공드리가 더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중면에 있어서도 콜랭과 클로에의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가 공드리의 영화에 더 많고, 추가로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비극적인 순간은 더 줄이고 행복한 순간은 가득 늘리고 심혈을 기울여 꾸며준 공드리. 그는 어쩌면 보리스 비앙의 소설을 읽으며 비극적 결말을 맞은 콜랭과 클로에를 안쓰럽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보리스 비앙의 글에서는 당연히 행복한 순간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적다. 감정 배제된 문체 덕도 있는지, 부패한 교회와 종교의 무의미함, 의사의 무능함, 일과 실존의 문제, 시크의 광기 등 비극의 연인 주변의 온갖 현상들은 영화에서보다 몇 배는 더 부정적으로 부각되어 보인다. 시크의 죽음과 알리즈의 살해 장면도 더 구체적이고 설명적인데, 덕분에 영화에서는 상징적으로 추측 가능했던 부분들을 책을 읽으면서 의미를 더 곱씹어 볼 수 있었다. 1940년대의 프랑스 사회에서 느낀 문제를 201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공감한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이 괴상한 소설에서 함께 느낀다는 건 즐거운 일 같다. 너무 괴상해서 책장을 넘기다 멈칫 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공감하게 되고,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을 듯한 행동 흐름을 이해하곤 했다. 낯섦에서 익숙해져 있던 것을 새로이 보고 새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보리스 비앙의 소설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의 소설은 그간 잠들어 있었다고 보아도 될 법한 상상의 구석진 곳까지 깨워준다. 공드리의 영화 때문에 상상의 여지가 많은 부분 줄어버리긴 해서, 이점에서는 참 아쉽다. 만약 책과 영화 모두를 접해볼 생각이라면, 이 책을 먼저 읽고 공드리 버전의 영화를 보길 권한다. 온 방 안은 콜랭이 고른 흰 꽃들로 가득 차 있었고, 흐트러진 침대의 베개 위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꽃향기와 처녀들의 향기가 서로 뒤섞이자 시크는 자기가 꿀벌 통에 있는 꿀벌처럼 느껴졌다. 알리즈는 머리에 보라색 난초꽃 한송이를, 이시스는 진홍색 장미꽃 한 송이를, 클로에는 굵은 흰 색 동백꽃 한 송이를 꽂고 있었다. 클로에는 백합꽃 다발을 들고 있었으며, 이제 막 만들어 유약을 갓 칠해 놓은 두릅나무 잎사귀 모양의 팔찌가 굵은 푸른색 금팔찌 옆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약혼반지는 모르스 부호로 콜랭의 이름을 그려놓은 사각형 또는 장방형의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덮여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크랭크를 돌리고 있는 촬영기사의 머리 꼭대기가 한쪽 모퉁이의 꽃다발 밑으로 나타났다. (87~88쪽) "'일을 한다는 건 좋은 것이다.' 라는 말은 그들도 들었겠지.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습관적으로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것뿐이지." (102쪽) "난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러겠지요. 안 그러면 당신이 일을 하려고 할 까닭이 없을 테니까. 당신이 할 일을 가르쳐주리다. 아래층으로 갑시다." (220쪽) "당신은 내가 실존의 수단을 잃게 하려는 거로군요. 내가 죽으면 작가로서의 내 권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거야 당신 문제지요. 전 무엇보다도 당신을 죽이고 싶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다 고려할 수는 없어요." (238쪽) 클로에는 더 편안해진 듯 이제는 비교적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콜랭은 그녀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는 그녀가 힘에 부칠 정도로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는데 이제는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릴까 봐 두려워서 살그머니 어루만지기만 했다. 그는 일을 하느라고 상처투성이가 된 볼품없는 손으로 검은 머리를 매끈하게 가다듬어주었다. (2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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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연애 소설인 듯 하다가, 반전이 있다. 갑자기 마술적리얼리즘적 형태를 띤다. 헤세의 '황야의 이리'의 느낌도 들면서 몽환적인 구도로 간다. 카프카 느낌도 든다. 꼭 '변신'같은. 많은 것을 까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모습을. 그런데, 뭐 하나 제대로 비판하고 있지 못하다. 그냥 유희적인 수준으로 풍자하고 있다. 현실과는 조금 먼 주인공들의 삶. 그리고 장폴 샤르트르를 연상케 하는 장 솔 파르트르. 샤르트르는 보리스 비앙을 밀어줬다 하는데, 작가는 실존주의자를 죽여 버린다. 그 역시 희화화. 단순 연애 소설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세월의 거품'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많은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소설은 그저 픽션으로 남는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작품이긴 한데, 파격적인 수준이지만 그 메세지 전달은 그리 강력하지 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