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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문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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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승원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다. 개인적으로 문학에 심취하는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대체로 문학에 친밀하고 문학을 좋아한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승원 작가를 이처럼 대단히 늦게야 알 게 된 사실은 어떤 이유로 설명하기가 정말 난감하다. 그래도 어렴풋이 내 머리를 스치는 원인을 한 가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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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승원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다. 개인적으로 문학에 심취하는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대체로 문학에 친밀하고 문학을 좋아한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승원 작가를 이처럼 대단히 늦게야 알 게 된 사실은 어떤 이유로 설명하기가 정말 난감하다. 그래도 어렴풋이 내 머리를 스치는 원인을 한 가지 지적하면, 중고등학생 시절에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기는 했으나 입시에 편중된 교육 여건과 현실 탓에, 정작 학생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정보나 내용보다는 입시 경향에 맞춘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에라도 한승원 작가의 중요한 작품들을 작가가 직접 선별하여 엮은 모음집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여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꼼꼼히 모두 정독하고 난 지금, 나는 참으로 소중한 문학적 경험을 했다는 뿌듯함에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 세계가 참으로 현실에 지독히 끈끈하게 발붙이고 있고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문학적 감성과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표현법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작가가 성장하고 지내온 환경의 영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래서 누군가가 실생활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알 수도 없는 감정과 사실들에 대한 서술이 매 작품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의미 없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는 바람도, 목적 없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갈매기도, 작가의 붓끝에서는 마치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처럼 상관된 것으로 묘사되고 소개된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런 표현들을 참으로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완벽하게 옮길 수만 있다면, 노벨 문학상이나 맨부커상은 따 놓은 당상인데....“라는 생각에 문뜩문뜩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가가 구사하는 문학적 감성이 탁월한 비유적 표현은 단순히 문학적인 기교와 현학을 과시하는 데 자신의 소설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문학 작품들을 읽다보면, 작가가 마치 표현의 심미성에 강박증이 있는 중증 환자인 양 현란한 묘사와 미사여구를 신나게 구사하지만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호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솔직히 이것은 문학을 전공했으나 평소에 문학 작품 읽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한승원 작가는 자신처럼 자신의 고향에서 생활한 경험이 전혀 없는 독자들이 마치 자신처럼 자신의 고향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해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비유법을 구사한다고 평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누구나 문학의 고전으로 인정하는 여러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 느끼는 똑같은 문학적 향취를 한승원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어서,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문학 작품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든다.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가을밤에 그 감수성을 마음껏 충족시키는 작품 세계의 향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승원 작가의 50년 창작 여정에서 탁월한 이정표로 공인된 작품들을 망라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우리의 발은 지독하리만치 굳게 현실에 묻혀 있으면서도 우리의 머리는 황홀한 문학적 세계를 마음껏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n******n 2016.10.27. 신고 공감 13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야만과 신화 -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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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작가에 대해서 알고, 느끼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승원 작가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한승원 작가가 올해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탄 한강 작가의 아버지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야만과 신화>는 그의 초기 작품인 목선(1968)을 포함하여 13편의 중단편 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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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름지기 작가에 대해서 알고, 느끼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승원 작가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한승원 작가가 올해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탄 한강 작가의 아버지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야만과 신화>는 그의 초기 작품인 목선(1968)을 포함하여 13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기에 한승원 작가에 대하여 알아보기에 좋은 시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이라고 하니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이 책에 실려있는 13편의 작품들로 한승원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그에 대한 무지에서의 탈피는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구성은 마치 한승원 작가의 글쓰기의 흐름을 시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1968년에 발표한 <목선>을 시작으로 2001년에 발표한 <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까지의 작품들이 시간순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큰 궤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승원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시간에 따른 그의 글의 변화하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무언가 공통으로 느껴지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 오히려 수월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두드러진 점은 이야기의 배경이 주로 그의 고향인 장흥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세밀하게 들어가보면 장흥군 회진면 덕도라는 실제 지명을 중심으로 쓰여진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야만과 신화>에 실린 작품들의 대부분의 배경은 바로 이러한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형식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1939년 덕도에서 태어난 그의 삶을 떠올린다면 그의 작품에 그의 삶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초기작인 <목선>에서 배를 둘러싼 묘한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오히려 배에 대한 절박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머니>에서는 막내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하여 차례대로 자식들을 방문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통하여 당시 섬사람들의 가난한 형편과 함께 애틋함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배경의 중첩과 반복은 언뜻 독자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 작가의 경험 또는 관찰이 더해지면서 비슷한 배경 속에서 좀더 묵직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광복과 6.25라는 역사적인 현실을 직접 경험한 그의 경험과 생각이 섬마을이라는 배경과 함께 꽤 자주 등장하고 있다. <폐촌>, <낙지같은 여자>와 같이 섬이라는 작은 일상이 역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작중에서 등장하는 '시국'이라는 단어로 함축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6.25를 전후로 하여 마을 사람 심지어 형제까지 사상적인 대립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들은 왠지 읽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제 6.25가 점점 사람들에게 역사의 한 장면으로 잊혀져 가는 상황이기에 <야만과 신화>속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마치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보여진다.


 <폐촌>은 그런 점에서 꽤 의미있어 보인다. 1976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잠깐 언급한 것처럼 6.25 전쟁에 의하여 밴강쉬와 미륵례의 집안은 형제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상황에 휘말린다. 밴강쉬는 미륵례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격동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의 힘은 부쳐보인다. <폐촌>은 밴강쉬와 미륵례라는 독특한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하여 마치 설화와 같은 느낌을 풍긴다. 분명 6.25라는 역사적인 사실로 할퀴어진 폐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밴강쉬와 미륵례에 대한 설정은 비현실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40년전에 쓰여진 이 작품이 오늘날 6.25를 머나먼 이야기로 느끼게 되는 것을 예견이라도 했는지 설화 내지는 구전과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승원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과 광복, 6.25 전쟁, 그리고, 월남전을 포함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묘하게 결합되면서 거대한 역사적인 상황 아래의 개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게 된다. 건강을 이유로 1996년에 장흥으로 낙향하여 지금까지 장흥에서 글쓰기에 매진하는 그의 최근의 모습은 <야만과 신화>의 마지막에 수록된 <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작품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발표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장환이라는 늙은 사진 작가의 예술에 대한 애환을 다루고 있기에 한승원 작가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여. 요즘은 컴퓨터로 사이버에 떠댕기는 것을 뽑아내기도 하고, 디지털 사진기 하나로 못 하는 것이 없다는디...... 아주 그렇게 발달하는 짐에, 오로라 현상을 찍어내대끼, 사람들 머릿속에 떠댕기는 생각이나 황홀한 기억, 슬픈 추억들도 찍어내는 것이 나왔으면은 좋겠어. 현실보다는 기억이나 추억이 훨씬 안 아름다운가? 물속이나 유리창에 비친 세상같이 말이여."

 - p. 536 -

 그렇다. 사진 작가 이장환이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나 역시 '현실보다는 기억이나 추억이 훨씬 안 아름다운가?'라는 이 문구가 가슴을 울린다. 결국 현실도 나중에는 기억 또는 추억으로 변모하기에 결국 이 말은 지금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라는 뜻의 반어적인 표현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야만과 신화>에 실린 한승원 작가의 글들이 모두 마음에 든다. 한강 작가가 이슈가 되어 그녀의 작품도 조금은 읽어보았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한승원 작가의 작품들이 더욱 잘 읽히는 느낌이다. 토속적이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깔난 표현과 함께 어느덧 이야기에 함께 빠지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 솜씨는 그 이야기 자체를 즐기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내면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책의 말미에 수록된 한승원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론과 같이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왠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씩 공감하면서 이해할 수 있기에 처음 접한 한승원 작가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호감이 형성이 되는 듯 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예담)의 도서 지원으로 읽고 쓴 글입니다. >

g*******7 2016.10.31. 신고 공감 8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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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50년 작가생활의 진수-야만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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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한승원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 중에서 직접 가려 뽑은 중․단편의 소설들이 <야만과 신화>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그것이 실제의 바다가 되었건, 여성으로 상징화된 바다가 되었건, 화엄의 바다가 되었건)’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와 ‘여성성’을 떠난 적도 없다. 그는 줄곧 이 주제들을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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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한승원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 중에서 직접 가려 뽑은 중․단편의 소설들이 <야만과 신화>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그것이 실제의 바다가 되었건, 여성으로 상징화된 바다가 되었건, 화엄의 바다가 되었건)’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와 ‘여성성’을 떠난 적도 없다. 그는 줄곧 이 주제들을 깊이 파고 넓게 확대하고 달리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광대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예외적인 작가다.(p558)라고 말하고 있다.

 

 단편 <어머니>는 197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바리데기 설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감옥에 있는 막동이에게 면회를 가기 위해 늙은 노구에 천식을 달고 사는 어머니가 미역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윗마을로 향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젠 ‘면’자만 들먹여도 큰아들 일현은 눈살을 으등카리같이 싸짊어지고 “그놈으 반디 그만저만 댕기씨요. 그라다가 길바닥에서 죽으면 어짜실라우” 하면서 휙 돌아앉아 곰방대에 써레기나 쑤셔 넣곤 하였고, 며느리란 년은 궁상스럽게 축 처진 볼을 흐물거리며 이쪽의 늙은 마음을 위로해준답시고 “아제도 아제제마는 어마니가 살어사 안 쓰겄소?” 할 뿐, 노비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 마련할 걱정 같은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내비칠 엄두마저 내지 않는 것이니 어이할 것인가. 개잡놈 같으니라고, 주둥이에 퍼 넣을 술 한잔 값 아끼고, 노름판엘 한 번만 안 가면 그만한 돈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p64)

 

 여기를 읽다가 웃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어린다. 옛날 어릴적 풍경이 생각났다. 옛날 할머니들은 걸지게 욕도 잘했다. 가난에 절고 절어 힘든 나날을 욕으로 풀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큰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널빤지 위에서 올골골 떨고 있는 막동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부모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고생하고 있는 막동이가 더 눈에 밟혔을 것이다. 형제들이야 부모 곁을 떠나면 제각각 사느라 바빠서 반은 남이 되는 것이나 진 배 없고...

쌀말 값이라도 얻으려고 큰 아들 일현이, 작은 아들 이현이, 바라대기 딸네 집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다. 목수노릇을 하는 둘째도 겨울이라 일이 없어서 봄 해가 길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에라, 내가 독살스럽고 모진 년이구나, 시상에 즈그들이 나이 서른을 넘었닥 해도, 남 모양으로 출중나게 배우기를 했는가, (중략) 그 위에 못된 창아지가 더 독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모진 년이다. 내가 독사다’(p68)

 

 그걸 마련 못해주겠다고 앙탈을 하는 자식들의 소행이 못내 섭섭하고 노여워, 늙은 어머니는 그 저수지 둑 밑에 주저앉아 다리를 죽 뻑도 통곡이라도 해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 심사를 억누르고, 부지런히 활갯짓을 하면서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옮겨놓았다.(p82)

 

 다행인지 딸네 집에 가서 그나마 착하고 곰살맞은 사위 덕에 돈푼도 얻어오고 애를 가져 배부른 딸이 미역을 얻어 김으로 다 바꾸어다 준 덕분에 바리바리 이고 지고 막동이를 만나러 간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된 그 보름달 같이 하얗고 예쁘던 딸. 야위고 거칠어진 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프지만, 그래도 차디찬 곳에서 떨고 있는 막동이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는 마음으로 딸의 도움을 뿌리치지 못한다. 보성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쇠고기국을 끓이고 따뜻한 우유를 사서 식을까봐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부르기를 기다린다. 제일먼저 접수했는데, 열두 명이나 부르도록 막동이는 보이지 않는다. 애가 닳고 닳아 있는데, 그제야 면회자를 찾는다. “목포로 갔단 말이오, 어제. 빨리 그리로 가보시오” 하는 퉁명스런 대답만...

 

어머니는 “어따 어메, 어째사 쓸꼬!” 탄식하며 쿨룩 쿠울룩 터져나오는 기침에 주저앉고...우유병 하나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낙지같은 여자>는 로렐라이 전설 설화를 차용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나’의 집에 아기업개로 들어와 살던 이름은 순한녜. 힘이 센 그녀는 두 살 먹은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거의 모든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다. 멱감는 것을 좋아하고 팔과 다리가 길고 키도 후리후리한 얼굴도 예쁜 그녀다. 그녀의 오빠는 ‘나’의 큰집에서 머슴살이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녀라고 했고 아버지는 상 장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중학교 생물 선생이 되고 바쁘고 지친 삶을 풀기 위해 술꾼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낙지같은 여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씻은 듯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친구로부터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

 

“가끔 말이시잉, 배를 타고 지내가면 배를 대라고 손을 이렇게 까부른닥 하드란께.”

“분명히 귀신이 들리기는 들린 모양인 것이 말이시, 순한녜가 손짓하는 데로 배를 댄 남자치고 썽썽하게 남어난 사람이 없다네. 참말로 도리섬에 배를 대고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는 없제마는, 모두가 그런 소리를 해쌓대.(p251)

 

"또 묘한 것은 말이시, 그 여자가 시방 서른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될 것인디, 가까운 디서 똑똑히 봤다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시방도 영락없이 처녀 같닥 하드란께.(중략)그러고 나도 금년 봄에 그물을 보러 갔다가 옴스롱 한번 봤는데 말이시, 이 예펜네가 바위 앞에서 따뜻한 볕을 받고 앉어 있데. 껌정 치마 하나만 허리에다 두르고, 위통을 활랑 벗고 말이시. 머리를 빗고 있등만. 참으로 이상스럽단 말이시. (중략)그런디 이 여자 살결은 꼭 백새 한가지여.(중략) 그 놈의 머리는 어찌께나 길다란지, 아마 거짓말을 보태면 한 발은 되겄데.“(p253)

 

그리고 마을에서는 순한녜를 도리섬에서 쫓아내자고 했다고. ‘나’는 순한녜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을 사가지고 도리섬으로 들어간다.

 

“뭣 하러 왔소? 죽일라면 얼릉 죽이씨요. 당신네 성은 술만 묵으면 칼로 찔러 죽일란다고 쫓아댕겼제, 당신은 내 팔자 망쳐놓기만 하고 한 번도 집에 얼씬을 안 해뿌렀제, 당신 어메 아부지는 애기 띠어뿔자고 독한 약이라고 생긴 것은 죄다 쓸어다 먹였제,(중략) 당신네 식구들은 모다 내 웬수여라우, 뭣 하러 왔소? 나 미쳤다는 소리 들은께 춤추겄습디여?(p261)

 

"낳아논께 낯바닥은 흰떡같이 이쁩디다마는, 병신이었어라우, 열 살이 넘도록 번듯이 눠서 일어나 앉을 줄도 모르고, 누운 채로 똥오줌 퍼싸고,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어메가 누군지도 모르고...“(p216~262)

 

"그래서 별수 없이 쥐약을 사다가 멕였지라우.“(p262)

 

순간,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두 다리로 내 아랫도리를 휘감아버렸다.

우리는 물속 깉이 가라앉아 들어갔다.(중략) 나는 거대한 낙지한테 휘감겨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마리의 문저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마씨요잉... 그때는 이 섬에서 한 발도 못 걸어 나가고 죽을 것인께.”(p265)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없앨 수가 있을까. 그것을 없애려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 밤중에 도리섬을 찾아간 사람. 자식을 죽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어 광기에 빠진 여자. 인간의 쾌락과 도덕성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다른 책도 그렇겠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듯 한 소설적 묘사의 진수를 보고 구수한 지방 사투리 속에서 촌민들의 삶 속을 엿볼 수 있었다. 해방 전후 시대에 살았던 민중들의 삶의 궁핍함, 동족끼리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화’적 배경이 들어있는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등 배경지식을 넓힌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울적할 때 한 권의 소설 속에 빠져 보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책은 위즈덤 하우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h*****7 2016.10.30.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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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결산] 내가 뽑은 올해의 책 - 1위 한승원 작가의 [야만과 신화]
"[2016 결산] 내가 뽑은 올해의 책 - 1위 한승원 작가의 [야만과 신화]" 내용보기
2016년 내가 뽑은 책 1위는 한승원 작가 등단 50년 기념작품인 [야만과 신화]라는 작품이다. 2016년도에 읽은 200여권의 책 중에 매우 주관적이지만, 116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1위로 뽑은 이유는 나름 여러 가지를 종합한 결과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좋은 책은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감동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읽을
"[2016 결산] 내가 뽑은 올해의 책 - 1위 한승원 작가의 [야만과 신화]" 내용보기

 

2016년 내가 뽑은 책 1위는 한승원 작가 등단 50년 기념작품인 [야만과 신화]라는 작품이다. 2016년도에 읽은 200여권의 책 중에 매우 주관적이지만, 116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1위로 뽑은 이유는 나름 여러 가지를 종합한 결과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좋은 책은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감동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읽을 때에는 크게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담백한 음식처럼 처음에는 별 맛이 안 나다가 씹으면 씹을수록 특유의 맛이 입안에 번지고, 그 여운이 길고 깊게 남는다. 그러기에 이런 작품의 경우는 초반에 조금 지루하게 읽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한 소설가의 여러 가지 작품을 모아 놓은 소설집의 경우는 모든 작품에서 그 맛을 고루 느낄 수는 없다. 어떤 작품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 하나하나에 깊은 감동과 여운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어느 작품 하나 외면할 수 없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소설들 속에는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전쟁, 전쟁 후의 보복성 학살 등으로 인해 민족적인 한(限)을 바닷가라는 토속적인 배경과 토속적인 언어로 구성지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바닷가를 배경으로 얽혀있는 민초들의 삶을 한국적인 미로 너무나도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바닷물은 부두를 넘을 만큼 가득 밀려들어 있었다. 껌껌한 먼 바다에서 밀려온 잔물결이 부두 끌과 부두 안의 수면은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거기 뜬 별 떨기들이 물속 궁전에 휘황하게 빛나는 등불들 같았다. 줄타기나 널뛰기를 하는 노랑 저고리들처럼 일렁거렸다. 아니, 어쩌면 바야흐로 무더운 이 여름의 어둠 발을 타고 내려온 별들과 해수와의 은밀한 혼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녀처럼 음탕한 바다였다. 시꺼먼 빛깔의 한없이 큰 입과 끝없는 넓고 깊고 부드러운 자궁을 가진 바다는 탐욕스럽게 별들을 품에 안아 쌀을 일듯 애무하고 있었다. 거무스레한 해무를, 머리카락처럼 산발한 밤바다의 찰싹거림은 어쩌면 별들을 핥고 빨고 입맛 다시는 소리였다." [야만과 신화] 중에 '낙지 같은 여자'에서 P242

이 책은 스토리나 묘사, 그리고 감동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가 않는다. 다만 읽는 내내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들이 너무 깊이 느껴져 가슴이 아픈 부분이 있었다. 이런 아픔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i*******3 2017.01.07.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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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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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접했다. 《키조개》 《멍텅구리배》와 같이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추사》 《초의》 《흑산도 하늘길》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엮은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읽은 《사람의 맨발》은 신격화된 존재에서 실재적 인간의 고뇌로 거듭나는 붓다의 삶을 잘 구성해 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주로 한승원 작가의 장편을 읽었던 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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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원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접했다. 《키조개》 《멍텅구리배》와 같이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추사》 《초의》 《흑산도 하늘길》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엮은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읽은 《사람의 맨발》은 신격화된 존재에서 실재적 인간의 고뇌로 거듭나는 붓다의 삶을 잘 구성해 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주로 한승원 작가의 장편을 읽었던 셈인데,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위기는 작가의 고향인 남도 바다를 배경으로 오고 가는 구수한 남도 말씨에 여성성을 자연스럽고 농밀하게 스케치하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당시로 돌아가 최대한의 상상력을 끌어와 집중적으로 인물과 당대의 사정을 교차식으로 엮어 내는 점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하겠다.

 

 한승원 작가의 등단(登壇) 50주년을 맞이하여 자전 소설집이 탄생했다. 모두 열 세 편으로 대부분 처음 접하는 소설들이다. 196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로 작가의 고향 장흥을 배경으로 바다의 내음이 물씬 묻어나고 누이이고 어머니와 같은 여성성을 농밀하게 그려냈다고 본다. 1960,70년대 지금과 같이 복닥거리지 않은 어촌의 풍경들로 당시의 기혼 남.녀 간의 삶과 사고방식에 지금과 같이 '딱' 떨어지는 이해타산보다는 이심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주고 받는 시절을 그려냈다. 그것은 내 유소년 시절의 분위기와 교차되기에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내 고향 작가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동향의식을 자아내곤 했다. 그 시절 내 고향 마을과 근동의 마을 사람들의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구름이 남으로 북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열 세 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니 한 세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시 껴안고 보듬는 듯한 느낌과 오묘하리만큼 비현실적이고 과감하리만큼 노출신이 예술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주저 앉어버리는 느낌 사이에서는 시대적 이념과 주류 이데올로기에 막혀 '쓰다가 만 편지'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극히 시대의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막혀 표현의 자유가 막혀 버리지는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승원 작가는 인간의 속성과 진보된 예술성 사이를 잘 묘사하고 소화해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여순 반란 사건)로 리얼감 있게 그려 내고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물,사건,배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 듣고 배우고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동물과 달리 사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승원 작가의 소설 열 세 편은 이 작품의 제목마냥 야먄과 신화가 뒤섞인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현실 고발, 자극성 있는 작품들을 추구하는 현 시대와 비교한다면 이번 작품은 한 세대 위 어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야만과 신화적인 관점에서 그려 놓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갖은 것 부족하고 배운 것 얄팍해도 늘 인정과 동병상련이 살아 있었던 따스한 시대의 이야기가 주마등과 같이 스쳐 지나간다. 그 안에는 여성성이 소리없이 뭇 남자들을 품어 주고 있는 것과 같다. 작가는 가까운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그려가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생각과 이념에 역주행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던 갑남을녀들이 모인 세상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지혜까지 습득하는 멋진 작품을 대해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j******6 2016.11.1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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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한승원/예담/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 매력적이다~
"야만과 신화/한승원/예담/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 매력적이다~" 내용보기
야만과 신화/한승원/예담/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 매력적이다~      야만과 신화. 야만이란 미개하고 문화수준이 낮다는 의미다. 신화란 고대로부터 내려온 사유와 표상이 반영된 영웅담이나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비로운 이야기다. 우리문학의 거목인 소설가 한승원의 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인 (야만과 신화)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과 통찰, 사유의 매력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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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신화/한승원/예담/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 매력적이다~

 

 

 

 

 

 

야만과 신화. 야만이란 미개하고 문화수준이 낮다는 의미다. 신화란 고대로부터 내려온 사유와 표상이 반영된 영웅담이나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비로운 이야기다. 우리문학의 거목인 소설가 한승원의 등단 50주년 자전 중단편집인 (야만과 신화)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과 통찰, 사유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저자는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소설가 김동리의 문학수업을 들었고. 1968년  《대한일보》신춘문예에 단편소설(목선)이 당선되면서 작가 생활을 했고 , 이후 50년의 세월동안 고향인 장흥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써왔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작품 중에서 뽑은 중단편소설 12편이 있다. 목선, 갈매기, 어머니, 폐촌, 낙지 같은 여자, 해신의 늪, 해변의 길손, 까치노을 등 모든 작품에 녹아든 일관된 주제가 책의 제목처럼 야만과 신화다.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성과 남자들의 권위적 태도, 낮은 의식의 성문화와 이기적인 사랑, 여자의 모성에 대한 신화, 삶의 터전이자 죽음의 장소이기도 한 바다의 양면성에 대한 서민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문장과 배경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야만과 신화의 주제는 현대사회에도 통하기에 뼈저린 공감을 하게 된다.

 처음에 나오는 〈목선〉에서는 김 채취선을 빌리고 빌려주는 과정에서 빚어진 변심, 기혼녀와 기혼남의 일탈, 이웃집 간의 성스캔들이 그려져 있다.

 

한데 이번에 채취선을 빌려 쓰기로 하고 머슴살이를 한 일도 꼭 여우한테 홀린 것만 같았다. 어쩌면 복님이 양산댁으로 둔갑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81쪽)

 

여우 같은 양산댁이 또 자기를 꾀고 있나 싶었다. 양산댁을 물속에 처넣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멍청히 양산댁이 바라보는 먼바다의 한 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먼바다에는 한가로운 잔물결의 이랑들이 햇빛을 받아 금빛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그 반짝거림 속에 오징어잡이 배들이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34쪽)

 

 

김 채취선을 가진 과부 양산댁과 그녀의 김 채취선을 빌리려고 그녀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머슴 노릇을 해왔던 김 채취 머슴 석주와의 약속 사건. 채취선을 빌리려는 날에 태수의 농간으로 채취선을 빌려주기를 거부하는 양산댁의 변심으로 희망이 무너진 석주의 절망감.   석주가 군대 다녀온 사이에 석주의 아내 복님이 김장수 백철두와 바람이 나고 석주의 채취선을 팔아버리고 도망간 과거사와 양산댁의 농간인 현대사가 겹치면서 깊어진 석주의 분노. 그런 분노 중에도 아름다운 대자연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인간 관계와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엔 인간의 야만성과 이기심이 깃들어 있음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미개함이 약자에게 주는 상처가 잘 그려져 있다.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기 전에 한강의 문학 스승이었을 저자의 작품을 읽으며 첨단과학이 발달한 지금에도 야만과 신화라는 주제는 여전히 통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야만의  세상을 보는 저자의 안목에 무릎을 쳤다고 할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야만성은 존재하기에.

 

요즘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국정농단사태를 보며 정치의 야만성을 생각한다. 지도자의 무능력이 미치는 여파,  최씨 일가의 미개함과 야만성, 공적 관계를 무시하고 사적 관계를 이용하는  지도자의 미개함을 생각한다. 비통한 심정이다. 이제 정계의 야만성을 벗어났으면 한다. 전 국민을 우롱해왔던 이들이 스스로 국민의 심판을 받고 모든 사태가 제대로 수습하기를 바란다.  탄핵이든 하야든, 재산몰수든 추방이든, 무기징역이든 사형이든 국정농단의 댓가를 스스로 치렀으면 한다. 더불어 그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주변의 모든 권력층들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한국사회가 이런 야만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개인적인 정과 의리보다 규칙과 법규를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우뚝 섰고 지금도 후학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거장의 건강을 기원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야겠다.

 

 

 

a******7 2016.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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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바다를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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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산 앞바다에 태풍이 몰아쳤을 때, 인터넷에 많은 사진과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 중에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파도가 방파제를 삼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아직도 이런 제목을 쓰는 기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오래 전에 읽었던 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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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산 앞바다에 태풍이 몰아쳤을 때, 인터넷에 많은 사진과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 중에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파도가 방파제를 삼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아직도 이런 제목을 쓰는 기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오래 전에 읽었던 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얼마 후 '한승원 등단 50주년 자선 중단편집'이 [야만과 신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역시 바다와 그 바다에 살던 우리네 부모들의 삶이 마치 신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한승원의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의 작품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그러나 그 바다는 파도가 치는 멋드러진 바다가 아니다. 그의 바다는 한(恨)이 서려져 있다. 그의 소설에서 그 한(恨)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것안지,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만 그는 그 한(恨)을 징글징글해서 띄어 버려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한(恨)을 바닷가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 보고 있다. 한승원의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그 한(恨)은 주로 해방전후와 6.25전쟁과 연관이 되어 있다.


이번 발간된 소설집은 [야만과 신화]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조금은 구세대적인 한(恨)이라는 단어보다는 작가의 소설에 바다와 함께 묘사되는 인간의 원시성과 토속적인 신화를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작가의 13편의 중단편 중에 이런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바로 [폐촌]이란 소설이다. 폐촌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바닷가 마을에 밴강쉬와 미륵례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밴강쉬라로 불리는 주인공은 덩치와 외모가 주변에 겁을 줄만큼 특이하다. 특히 그의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신체적 특성은 결혼한 여성들이 모두 도망을 갈 정도이다. 그렇게 홀아비로 40의 나이가 된 밴강쉬에게 눈이 번쩍 뜨일 소식이 들린다. 오래 전 마을을 떠났던 미륵례가 송아지만한 소를 가지고 폐허가 된 아랫마을에 살러 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소설은 밴강쉬와 미륵례가 겪어야 했을 가슴 아픈 과거로 흘러 들어간다.


밴강쉬는 어려서부터 미륵례를 좋아햇다. 미륵례의 아버지는 일제시대때부터 그 마을에서 배를 소유하고, 돈으로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악독한 사람이었다. 해방의 혼란과 여수반란사건 시기에 미륵례의 아버지는 젊은 청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곳에 앞장선 사람이 바로 밴강쉬의 형이었다. 후에 미륵례의 오빠들이 경찰이 되고, 보복이 두려워진 밴강쉬의 아버지는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6.25가 터지고 아버지는 빨간 완장을 타고 마을에 들어와 미륵례의 오빠들을 죽인다. 그렇게 마을을 떠났던 미륵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소설은 둘의 사이에, 그리고 바닷가 마을 곳곳에 배어 있는 아픔이 과연 둘의 원시적(야만성)인 성(性)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제목이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낙지 같은 여자] 역시 이런 한승원 작가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승원 작가의 작품에서 낙지나 문어, 채취선, 갯벌, 섬 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좋은 키워드이다. 그의 소설에서 낙지는 인간의 원시적인 고향이자, 바다와 연관된 여성성을 보여 주는 모티브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영훈은 어린시절부터 더부살이를 하는 순한녜라는 여성과 같이 자랐다. 순한녜의 오빠는 6.25때 공산당편에 가담해서 영훈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죽인다. 그로인해 사촌형은 술만 먹으면 순한녜를 죽이겠다고 찾아고 그녀를 때리고 협박한다. 영훈은 그런 순한녜를 보호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순한녜가 영훈의 아이를 배자, 그의 부모들은 순한녜를 먼 곳으로 시집을 보낸다. 나이가 들어 다시 바닷가를 찾아 온 영훈은 그 곳에서 순한녜를 만나고 순한녜와 우리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아픔을 만나다.


그 외에도 [어머니]라는 작품이나, [해신의 늪]등이 이런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작가의 주제의식과 함께 바닷가 마을의 풍경과 그 풍경으로 인한 인간의 내면의 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다.


"바닷물은 부두를 넘을 만큼 가득 밀려들어 있었따. 껌껌한 먼바다에서 밀려온 잔물결이 부두 끌과 부두 안의 수면은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거기 뜬 별 떨기들이 물속 궁전에 휘황하게 빛나는 등불들 같았다. 줄타기나 널뛰기를 하는 노랑 저고리들처럼 일렁거렸다. 아니, 어쩌면 바야흐로 무더운 이 여름의 어둠 발을 타고 내려온 별들과 해수와의 은밀한 혼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녀처럼 음탕한 바다였다. 시꺼먼 빛깔의 한없이 큰 입과 끝없는 넓고 깊고 부드러운 자궁을 가진 바다는 탐욕스럽게 별들을 품에 안아 쌀을 일듯 애무하고 있었다. 거무스레한 해무를, 머리카락처럼 산발한 밤바다의 찰싹거림은 어쩌면 별들을 핥고 빨고 입맛 다시는 소리였다." (P242)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며, 그 작품 속에 묘사된 바다와 사람들이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이 살아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였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하는 소설집이었다. 작가의 50년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한 권의 깔끔한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독자로서는 최고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i*******3 2016.10.2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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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성, 그리고 신화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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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는 의식 있는 독자들은 신화적•환상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나는 그들의 후진성이라고 생각한다. (7)  헤겔은 역사를 가리켜 말하길 '목적이 있는 절대의식의 발현과정'이라고 했다. 설명하자면, 역사를 추동하는 어떤 신(神)적인 존재가 있고 그것이 일정한 단계를 거쳐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 역사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서는 인간사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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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는 의식 있는 독자들은 신화적•환상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나는 그들의 후진성이라고 생각한다. (7)

 

헤겔은 역사를 가리켜 말하길 '목적이 있는 절대의식의 발현과정'이라고 했다. 설명하자면, 역사를 추동하는 어떤 신(神)적인 존재가 있고 그것이 일정한 단계를 거쳐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 역사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서는 인간사를 발전과정으로 파악한다. 원시-고대-중세-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헤겔의 역사방법론과 다를 바가 없다.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출발한 문학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근대소설, 현대소설로 탄생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문학사'다. 현대소설의 정점은 리얼리즘이며, 아이러니와 알레고리를 통해 변형되어진다. 그런 가운데 한승원 등단 50주년 기념작, <야만과 신화>가 출판됐다. 이 '사건'은 무엇을 뜻할까? 단순히 문학원류의 재출현일까, 아니면 야만으로의 회귀일까? 그것도 아니면 오래된 미래의 가능성일까.

 

2.

<야만과 신화>는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이라 불리는 한승원 작가가 50년의 작가 생활 동안 발표한 중단편 소설들을 가려뽑은 소설집이다. 50년 동안 글쟁이로 살아온 것도 대단하지만, 중단편 소설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소설들에서는 바다와 여성, 그리고 신화적 요소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소설집 내에서의) 첫 소설인 <목선>(1968)부터 마지막 소설인 <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2001)까지. 30년의 격차가 있는 소설들에 이토록 공통된 요소가 있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모두 똑같은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 혹은 한 가지 소재로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신화 속의 주인공이 끝에는 집으로 귀환하듯, 소설 또한 끊임없이 여성적 이미지를 보인다.

 

먼저 바다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모든 인류의 고향이라 불리우며 소설 속에서는 '생존'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목선>에서 '나'가 양산댁으로부터 채취선을 어떻게든 빌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어부,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상인, 양식업자 등인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성(性)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장면 또한 바다에서 주로 연출된다. 이처럼 한승원 소설에서 바다는 '삶'의 공간이다.

 

문득 주위가 바다인 데다 조그마한 채취선이라는 한정된 장소 안에서 단둘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게 했다. <목선>, 25

 

나는 짙은 남빛이 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월이를 농락한 것은 나였다. <갈매기>, 50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두 끝을 휘도는 밀물처럼, 피를 본 상어처럼 돌진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발버둥 치듯 물장구를 치면서, "나는 몰라, 모른대이, 몰라"하고 울어버렸다. <낙지 같은 여자>, 248

 

하지만 바다가 주는 이미지는 양가적이다. 삶의 공간이었던, 생을 이어나가는 공간이었던 바다는 어느새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다. 바다가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바다는 죽음과 연관된 형태로 나타난다. <폐촌>에서 밴강쇠가 미륵례를 겁탈하려다 그녀를 지키려는 개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는 하는 장면이나 <낙지같은 여자>에서 순한녜를 죽이려고 했던 '나'를 도리어 그녀가 물에서 구해주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처럼 한승원의 소설에서 바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이미지다. 이것은 바다의 '제의적' 성격을 강조한다.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바다 말이다. 바다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뿐인데 인간은 끊임없이 '바다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바다를 떠나 살려고' 한다. 그러나 바다는 영원히 인간을 잡아끈다. 바다 없이 살 수 없는 무력한 인간, 그것이 한승원의 보여주는 바다의 이미지다.

 

한편 여성이라는 주제로 넘어가 보자. 바다가 양가적인 성격을 보여준다면 여성은 아이러니의 성격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힘 있는 남성 혹은 '시국'에 착취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는 너무했다. 정월 어머니의 소망을 모두 짓뭉개버린 것이었다. 그 여자를 따라 약산도엘 가서 돈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정월이의 제사를 지내주지도 않았다. <갈매기>, 58

 

성만은 물에 떠내려가는 물건을 건져내서 가지듯 영님을 아내로 삼은 것이었다. <해신의 늪>, 283

 

남편은 자기가 속한 곳의 이야기를 절대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상하고 살고 있었다. 가면하고 살고 있었다. <까치노을>, 435

 

이처럼 여성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힘없는 존재, 약한 존재, 착취당하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한 여성들이 결국에 부활하여 소설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작동방식이 다름 아닌 '신화'다. 한승원은 신화적 요소를 소설 속에 도입함으로써 여성들을 곁가지로 남겨두지 않았다. 도리어 인간으로서 죽을 운명인 소설 속의 남자들과 달리, 소설 속의 여성들은 신화로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

 

예컨대 <갈매기>에서 '나'는 정월이를 농락하여 죽게 만들고 정월어머니의 부탁 또한 들어주지 않지만, 갈매기의 등장을 몽환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녀들의 환상적 귀환을 암시한다.

 

소주 한 모금을 다시 넘기는데 또 어디서 날아왔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끼룩끼으 하고 울면서 돌고 있었다. 나는 술병을 든 채 멍해졌다. 갈매기의 흰 날개가 노을빛에 젖어 있었다. 그 갈매기가 내 고향 덕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59)

 

<낙지 같은 여자> 또한 그렇다. '나'는 자신이 겁탈한 순한녜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한다. 그리고 순한녜는 '삶과 죽음의 공간'인 바다에 달라붙어 사는 낙지처럼 표현된다.

 

잿빛에 꽃자줏빛 섞인 곰솔숲 그늘 속으로 여자가 사라졌을 때, 내 흐릿한 눈에는 요염한 물귀신 같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뱃사공들을 흘려 죽게 했다는 어느 강 언덕의 인어 같기도 하고, 은빛의 신선 낙지 같기도 한 여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266)

 

한승원 소설에서, 여성은 신화를 통해 영원히 귀환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다, '영생'이 아닌 '영원한 회귀'다. 니체의 영원회귀 철학처럼, 그들은 형태를 달리하되 언제나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의 상징이 남성(Man)이라면, 무한한 바다의 상징은 여성과 닮았다. 바다, 여성, 신화.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같은 것이었다.

 

3.

 

우리 문학에서 한승원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여성주의적 소설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환상적 리얼리즘의 선도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인내심 많은 글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그렇지만 이 모든 표현에 덧붙여, 나는 그가 이룩한 작업의 결과가 곧 한승원이라는 작가의 의미이자 이미지라고 말하고 싶다. 무한히 귀환하는 여성의 이미지―그가 이룩한 작업의 결과물이 곧 그인 것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밝힌다.

 

내 문학은 인간과 역사의 폭력에 자유롭지 못했다. 인류 역사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갔듯이 내 문학도 늘 그러한 길을 걸어서 왔다. 야만은 인류 최첨단의 문명 속에서도 잠재해 있다가 고개를 들곤 한다. (...) 야만과 신화는 한 골목에 들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6~7)

 

소설들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시국'은 일제강점으로부터의 해방과 6.25사변으로 인한 좌우익의 대립이다. <폐촌>이나 <해변의 길손>은 그런 폭력의 기록을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한 가정이 무참히 학살되고, 형이 동생을 밀고하고, 한 마을 안에서 서로를 적으로 모는 등 시국은 인간을 야만으로 내몬다. 인간은 결코 야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야만과 신화는 인간의, 남성의 시점으로 바라봤을 때 후진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바다의, 여성의 시점에서 야만과 신화는 결코 후진적인 것, 곁가지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제거대상 또한 아니다. 야만과 신화를 인간의 역사 속으로 포함하는 힘. 결국 작가 한승원이 회복한 것은 한국 문학의 포용성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던 제의적 가치를 포함하는 그 포용성, 그것이 한승원이 한국 문단에서 가지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YES마니아 : 로얄 s********3 2016.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야만과 신화 /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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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 연륜속에 있는 깊음에 신뢰를 두고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신작들보다 좀 더 진중하게 읽게 된다고나 할까.. 한승원님의 작품집을 받아 들고 목차를 쭉 보니 내가 읽었던 단편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한승원님은 작품을 통해서라기 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명성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목차에 있는 작품들의 제목들부터가 뭔가 한승원
"야만과 신화 / 한승원" 내용보기

원로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 연륜속에 있는 깊음에 신뢰를 두고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신작들보다 좀 더 진중하게 읽게 된다고나 할까.. 한승원님의 작품집을 받아 들고 목차를 쭉 보니 내가 읽었던 단편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한승원님은 작품을 통해서라기 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명성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목차에 있는 작품들의 제목들부터가 뭔가 한승원이라는 이름과 함께 규정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았고 이번 기회에 작가가 직접 엄선한 수작들을 만날 수 있음에 설레었다.

왜 책의 제목이 <야만과 신화>였을까.. '야만'과 '신화'.. 그 이유를 작가의 말에서 찾아본다.

인류 역사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갔듯이 내 문학도 늘 그러한 길을 걸어서 걸어서 왔다. 야만은 인류 최첨단의 문명 속에서도 잠재해 있다가 고개를 들곤 한다. 부끄러운 기록들이지만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내 실제의 발자국들이다...

나는 파격을 좋아했다. 파격과 더불어 신화적인 향기는 싹터났으리라. 가령 <폐촌> <낚지 같은 여자< <해신의 늪> 같은 소설들은 파격이다. 그 파격은 오독함으로 인해 병이 날 요인을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야만과 신화는 한 골목에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7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야만이 고개를 들고 그것이 문명을 향해 한 걸을씩 떼어 놓는, 신화적인 향가기 물씬 나는 파격적인 작품 속에 침잠했던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작품들의 공통점은 공간적인 배경들과 등장하는 모티브들이다. 바닷가, 너른 갯벌, 그리고 그 하늘과 뻘을 수 놓는 붉은 노을.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민초들의 모습...

그 안의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들속에 우리네의 정서와 한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허름한 목선을 가지고 김을 채취하고 농사를 짓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웠고, 견뎌내야했고, 살아내야만 했던 그들은 어미였고 아들이었고 아내였고 남편이었다..

 

<목선><폐촌><해변의 길손>

봄부터 가을까지 재취선을 빌려 쓰기로 하고 겨울 동안 과부 양산댁의 김 재취 머슴을 살았던 석주..

어린 시절부터 미륵례와 혼인할 줄 할고 살아왔던 밴강쉬..

동생을 죽게했다는 식구들의 미움과 차별속에 살아가는 황두표..

이들은 나름대로의 화를 다독이기도 하고 분출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다.

<어머니> <앞산도 첩첨하고> <가을 찬바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감옥살이하는 막내 아들이 너무도 아프고, 하나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어 자신의 고부라진 허리는 생각하지 못하고 동분서주 하는 늙은 노모..

집 나간 딸을 찾아 다니다가 들어서게 된 처가 마을.. 그 마을을 바라보며 구성진 노랫자락과 함께 옛 시절을 회상하는 늙은 남자..

뒷산에 태어나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채 떠나 버린 아이를 묻으며 내려오는 어깨 처진 남자와 그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탓이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늙은 어머니..

이들의 모습속에서 가슴이 먹먹한 회한과 함께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갈매기><기찻굴><까치노을><검은댕기두루미>

고향 바다 근처로 낚시를 떠났다가 오래 전 바다에 몸을 던져 버린 정월을 떠 올리는 한 남자의 혼잣말..

자취를 감춘 매형을 찾아다니며 매형이 말했다는 구멍과 느낌이 비슷한 ,마당에 있는 개집의 거무스름한 입구와 한 남자가 투신자살을 한 기찻굴을 떠 올리며 상심에 잠기는 남자..

글을 쓰려고 고향으로 내려와 예전 자신을 반반씩 소유하고자했던, 지금은 모두 자살로 세상을 등진 두 남자와 남편을 생각하는 초로의 여인..

<낙지 같은 여자><해신의 늪>

로렐라이를 연상하게 하는 , 외딴섬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여자와의 섬에서의 하룻밤..

신화에서 처럼 바다의 해신의 자신을 부른다는 아내의 뒤를 쫒게 도는 남편..ㅣ

신화에서 등장하는 모티브들이 우리의 토속적인 색과 함께 어우러진 이야기들이다.

 

예전 테레비젼 프로그램중에 <TV문학관>, <베스트셀러 극장>이 있었다. 문학 단편들을 드라마로 만들어 일주일에 한 편씩  방영했었는데 언젠가 송옥숙이 주연으로 나왔던 <낙지 같은 여자>를 드라마로 본 기억이 났다. 그게 한승원 원작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송옥숙이 살아 있는 낙지를 한 입에 먹었던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지 그게 아직 생각이 난다.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남자 주인공은 이정길이였던 것 같고 두 남녀의 일반적이지 못한 애정라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매주 그 드라마를 챙겨봤었는데 이렇게 우리네 정서가 서려있는 완성도 높은 단편들이기에 드라마가 무척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꾸며지지 않은 날 것 과도 같은 삶의 모습속에서 한,설움등과 같은 애환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 우리 한국문학.. 이러한 문학은 여타 다른 문학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것이기에 소중하고 또한 영원히 잊히지 않고 읽혀야한다는 생각이다.

마치 현이 다른 현을 넘나들듯 그처럼 하나의 시간이 다른 시간들과 겹치는 일. 그것이 농현이다. 우리는 이미 장엄한 농현을 마주하고 있다. 50년 동안 한승원이 써 온 이야기들이 <야만과 신화>속에 모여 있다.

오달병이 호남가를 부르며 죽은 장례를 찾아 기찻굴 속으로 들어가는 세계, 밴강쉬가 죽었다가 물 아래 김 서방으로 환생하는 세계가 여전히 우리 눈앞에 있다. <목선>이 <해변의 길손>을 예비하고.50년 전의 문장이 50년 후의 문장들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세계. 그러니까 <야만과 신화>는 말하자면 영원한 농현의 책,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일종의 무한 텍스트다, (김현중의 작품해설 중..)

얼마전에 읽기를 마무리한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100년이 흐른 지금에 읽어도 우리네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이야기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오래된 문학속의 이야기들도 시대적인 배경을 달리할 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기에 언제건 다시 읽혀도 그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문학 작품에 대한 꾸준한 독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원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문학의 그 향연에 깊이 젖을 수 있어서 좋았던 깊은 가을날들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6.10.30.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의 토속성, 그리고 바다와 그 무엇
"한국의 토속성, 그리고 바다와 그 무엇"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한승원 작가의 글을 1980년대에 처음 읽어 본 거 같은데 벌써 팔순을 앞두고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이렇게 중단편선을 묶어낸 책을 쭉 읽어보니 한 눈에 작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맨 끝에 작품해설에서도 평생 바다, 신화, 역사, 여성성을 다루었다고 언급되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13편의 소설 중 대다수의 배경이 섬과 바닷가이며, 수절한 과부에서부터 당골 무당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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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승원 작가의 글을 1980년대에 처음 읽어 본 거 같은데 벌써 팔순을 앞두고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이렇게 중단편선을 묶어낸 책을 쭉 읽어보니 한 눈에 작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맨 끝에 작품해설에서도 평생 바다, 신화, 역사, 여성성을 다루었다고 언급되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13편의 소설 중 대다수의 배경이 섬과 바닷가이며, 수절한 과부에서부터 당골 무당까지 독특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진한 사투리와 함께 누가 누구의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던지,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청산, 남로당, 한국전쟁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적 배경도 다양하다. 너무 토속적이어서 특히 "폐촌"같은 경우 변강쇠 이야기를 각색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너무 한이 서려 있다. 산골짜기 눈밭에서 웅크리고 앉아 죽은 아버지부터 19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한 여인과 아버지, 어머니, 아내, 큰 아들, 작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독기를 품고 사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평생 수절하거나 평생 여자를 한번 품어 본 적이 없는 짐승같은 사내까지 그 인물 자체도 독특하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이를테면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문어를 바닷가에서 여인네들이 어떻게 잡는지 그 묘사가 그렇고, 낙지일수록 어린 것을 먹어야 한다면서 어린 낙지를 씹으면서 앳된 여자를 품어 녹이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 사방이 모두 어두워지는데 바다 건너 섬들 주위를 치자빛으로 변하게 만드는 노을을 까치노을이라 한다는 것 등이 그렇다. 1960년대부터 시대순으로 소설이 담겨 있어서 뒤에 몇 편은 바닷가나 섬을 떠나 도회지가 무대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영수, 상철, 종희의 삼각관계가 그려지는 "까치노을"과 할머니와 어린 소녀의 알몸사진이라는 쇼킹한 결말이 전개되는 "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는 평범함 속에서도 상당히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인듯 싶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 모두가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듯 싶었다. 특히 지난주에 합숙교육 갔다가 숙소에서 우연히 보게 된 "TV문학관"에 나오는 그러한 영상과 내용에 딱 맞을듯 싶었다. 이제와서 이렇게 한승원 작가의 소설들을 읽어 보니 정말 독특하고 토속적인 소설들로 머릿속에 남을듯 싶다.



d****o 2016.10.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