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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이 강했던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뒷산에 자리한 절로 향할 때면 귀한 떡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때라 백설기와 인절미를 맛볼 수 있는 법회일은 음식으로 호사를 누리는 날이기도 했다. 고향 집을 찾을 때면 떠오르는 추억 속 풍경은 흰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머리에 공양물을 이고 산길을 걸어가는 풍경이이다. 생각한 대로 일이 안 풀리고, 돌연한 일들로 사는 게 힘들 때면 호젓한 산길 따라 절에 이르러 부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불자로 자리하였다. 초하루나 보름이 휴일이면 집 가까이 있는 절에 들러 그동안 잘못한 일을 뉘우치며 선업을 쌓으며 살아가는 불제자이기를 바라는 기도를 부처님께 올린다. 지나온 시간을 들추어 후회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당겨 걱정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마음은 지옥과 극락을 오가며 헹가래를 친다. 혈육을 잃고 상실의 아픔에 애끓는 한을 간직한 채 49재를 올리던 날 영가를 천도하는 스님의 불경 소리에 살아서 못다 한 한(恨)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었다. 생전에 쌓은 업의 크기와 됨됨이에 따라 내생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육도 윤회의 가르침은 베풀며 살아야할 이유를 각인시킨다. ‘금강경’에 전하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풂으로써 공덕을 받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선업은 쌓여갈 것이다. 20년 전 조계 총림(叢林)인 송광사에서 개최한 ‘짧은 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4박 5일 간의 사찰수련회에 동참하였다. 번뇌로 들끓는 마음을 제어하기 힘들어 찾은 송광사에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을 갖춘 종합 수행 도량으로 공부하는 승려들을 배출해내는 기관이다. 만물이 깨어나고 우주의 기운이 가장 맑은 시간대라는 인시에 대웅전으로 향하는 걸음은 새날을 시작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강원에서 수행 중인 학승들과 함께 하는 새벽 예불은 장엄한 법당을 울리는 법음은 열락에 깃든 환희를 주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정의 수련 시간은 감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문명의 이기와 거리를 둔 채 마음을 닦았던 짧은 시간이었다. 직책에 걸맞은 행동으로 공적을 쌓아왔지만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권력자의 탐심에 내팽개쳐진 절대 고독의 상황에서 난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생활한다. 더러워서 못살겠다는 말보다는 더러움의 무게를 견디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미를 되새긴다. 스스로 등불을 켜고 어둠의 실체를 걷어내는 일에 나설 때, ‘자등명법등명’ 이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실상임을 알아차리고 사물의 이면을 보는 안목으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도의 삶을 지향하며 현재에 충실한 생활을 이을 때 새로운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휴가도 반납한 채 직무를 수행하였던 일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찰나, 지금껏 푸대접을 받으려고 출근하면서 지냈나 싶을 때면 원망과 증오가 들끓어 오른다. 심호흡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랜 뒤 108염주를 돌리며 번뇌를 가라앉히고 해탈을 꿈꾸는 생활을 지향한다. 인간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고민의 총합인 108번뇌는 여섯 개의 감각을 6의 배수로 쌓아 올린 결과로 육근이 육진을 만나 일으키는 느낌이다. 정신적으로 만들어낸 생각에 짓눌려 살기보다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애로운 모습으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 손길 같은 관세음보살 앞에서 삼배의 예를 올린다. 좋은 인연을 맺은 이들과 화합하는 마음으로 살다 삶을 회향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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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 장웅연 저 | 니나킴 그림 | 담앤북스 | 2016-10
댐앤북스에서 출간된 정웅연의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이라는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글쓴이가 2015년 <불교신문>에 “불교, 묻고 답하다”란 문패로 1년간 연재했던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한 글이다. 꽤 긴 세월 불교계에 몸담았던 글쓴이가 그동안 쌓은 견문의 결과인 만큼 내용이 알차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본문에는 모두 마흔아홉 가지의 질문들이 나오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는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있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문답형식의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어서 참 좋았다. 가끔은 이렇게 자유로운 독서를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성이 자유롭다. 대부분이 생소한 이야기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는 유독 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것들의 질문을 모아보면, 일곱 번째 “목사는 목사이고, 신부는 신부인데, 왜 스님만 ‘님’자를 붙일까?”, 열 번째 “사리는 왜 생기나?”, 스물한 번째 “탑의 층수는 왜 다 홀수일까?”, 서른 번째 “먼지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스물아홉 번째 “스님들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이유는?”, 마흔한 번째 “팔만대장경 경판 수는 정말 8만 개인가?”, 마흔여섯 번째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나만 존귀하다는 뜻인가?”, 마흔일곱 번째 “부처님의 고향 인도에는 왜 불교 신자가 없을까?” 등이다. 이렇듯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에 흠뻑 젖는 시간이었다. 더 없이 신비로웠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는 마흔 번째 “군인 신분의 비구니 스님이 있다고?”라는 질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군종제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제도는 해방 후 군 창설과 함께 출발했으며 미군의 기독교적 군종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육군본부 인사국 안에 군승과軍僧科가 설치된 것이 시초이다. 여기서의 승僧은 스님이 아니라 성직자를 총칭하는 단어였다. 군승과란 명칭은 1952년 6월 개신교와 천주교의 요청으로 군목과軍牧科로 바뀌었다. 군목들이 급여를 받은 정식 장교로 인정받게 된 것도 이 시점이라고 한다. 한편 한국불교 제1종단인 조계종의 군포교는 2005년 군종특별교구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군종교구는 개신교 천주교와 함께 서울 용산 국방부 안에 있다. 현재 군종교구의 지휘 아래 130여 명의 군승들이 전후방 400여 곳의 군법당에서 장병들의 신심 고양과 정신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에는 창군 이래 최초로 비구니 군승(여군 군종장교)이 임관하면서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고 한다. 군승은 흔히 법사法師라고 부른다. 이러한 군승의 신분은 스님인 동시에 군인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속명을 쓴다. 군종장교로 정식 임관해 군 체계에 소속되며 나라로부터 녹봉을 받는다. <불교신문>에서는 군승의 이름을 표기할 때 법명을 앞에 붙이고 속명을 뒤에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또한 스님이 아니라 법사라 하는 게 관례이다. 재작년의 일이다. 천주교 신부의 자격을 갖춘 지인이 ‘군종사관 장교로 군에 입대’를 했었다. 이런 제도가 불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 대목이다. 게다가 비구니 군승이 있다는 것은 내 정서에 혁명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새로운 정보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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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심이 많은 상태이기에 불교의 애매한 지식들을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읽기를 택했다. 저자 장웅연은 불교신문 기자이기에 불교에대한 채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일반 대중이 애매모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49가지의 질문과 답을 나열하였는데,, 불교를 너무나 잘 아는 이의 입장이기에 일반인이 궁금해하고 불교를 조금 더 알았으면 하는 질문들과는 조금은 거리기 있는 내용들도 많이 있지만, 아주 새로운 불교에 대한 지식들을 접하게 되어서 책읽음이 뜻깊은 시간이었다. 일주문이나 대웅전 등에 그려진 벽화에 대한 조금은 자세한 설명.. 대웅전이나 명부전 등의 위치, 그리고 산신각 등을 꼭 놓는 이유, 지장보살, 관음보살, 약사여래불 등에 대한 설명,,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 등에 관한 이야기와 보통 대웅전에 한분만 모실 때와 3분 계신 경우 등등과 반야심경 해설 정도와 절과 부처님에 대한 설명 등등 일반 대중은 궁금하기도 한데 그것은 상식처럼 지나간 점은 아쉬움이다. 아무튼 불교에 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준 점에는 많은 박수를 보낸다.. 사소하다고 글이 내용이 가볍거나 하지 않고, 불교의 기르침의 내용을 알기 쉽게 나열한 점도 참 좋았다. 불교가 일반 종교와 다른 점은 불교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길이며,, 믿음의 길이 아니라 슬기를 깨우치는 길이다..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라는 깨우침에서 시작하는 종교는 분명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구신이 사는 집에서 하루밤을 묵으면서 귀신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는데, 실은 옆 집에 귀신이 산다는 소리에 잠을 푹이루었다는 것은 귀신이 무서움이 아니고, 귀신이 있다라는 나의 생각이 무서움이다.. 하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세상살이의 해법이 있다 하겠다. 이런 깨달음의 종교가 불교인데,, 부처님이 머리를 깍은 것은 카스트를 부정하는 만인 평등의 생각의 출발이라는 것과, 왜 우리나라 여자 불교신자들을 보살이라고 했을까에 대한 해설과 배불숭유 정책으로 여자들이 주로 믿는 종교가 된 불교의 실체,, 관세음보살이 우리나라 등동아시아는 여서적으로 표현되엇지만 인도 간다라 지역은 남성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 절에서 고기를 먹지 않지만 티베트 같은 곳은 오히려 야채가 귀하니 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성,, 절의 탑들이 홀수 인 이유, 장애인이 스님이 될 수 없었던 이유,, 미아리 등 불교에 관련된 지명 이름 등,, 인도에 불교신자가 없어진 이유는 13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비촉력의 불교가 무너졌다고 여겨진다.. 하는데,, 힌두교가 다신교의 입장이기에 불교가 힌두교에 녹아 들어갔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우리도 배불슝유 정책의 조선 시기가 있었듯이 인도나 기타 여러나라에도 불교의 세력이 너무나 커지다보면,, 교만해지는 사태가 벌어짐이 어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다.. 대중공사를 통해서 흑백 논리로 의견대립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자 하는 불교가 아닌 같이 살자.. 고 하는 대중을 이끄는 불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면서 책에서 얻은 지식에 덧붙임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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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독실한 불교신자라곤 할머니뿐.. 그런데 철저히 종교의 자유를 실천하는 하느라 집안 어느 누구에게도 본인 믿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한 집안에서 살고 있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믿음을 실천하는 중이다.. 결혼하면서 혼배성사도 올리고 얼마 전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한 마당에 갑자기 불교에 관련된 책을 본다는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왠지 철학에 가까운 듯 해서 ..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쭉~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했던 불교.. 억불숭유 정책으로 조선시대에 와서 철저히 망가지고 일제시대 대처승 등이 난립하다 해방 후 나름 열심히 자정 활동 중이나 얼마전까지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조계종 사건들을 보며 내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구나..싶었는데 책의 부제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이라하는 문구에 혹 했다. 비슷한 연배의 저자 장웅연은 스스로를 집필 노동자라 말하며 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부터 불교계에서 일하는 중이란다. 이 책은 2015년 불교신문에 '불교, 묻고 답하다'로 1년간 연재됐던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낸 것이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으로 소개하고 있는 49가지.. 01 불교에서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고? 불교에 관한 전혀 모르는 나도 제목만 보고 이것들이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었어? 라고 사뭇 놀라게 되는 부분이 꽤 있다.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인도에서는 유적으로만 남아있는 불교..전 세계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 꽤 많다길래 말도 안된다 했는데 사리가 무려 700kg이나 나왔단다. 우리나라에도 총 5군데 현진사리가 있는 곳이 있다는데 나중에 가 봐야겠다. 야단법석이 원래는 야외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법회를, 이판사판이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인 이판과 절의 행정을 맡는 스님인 사판을 총칭하는 것이며 아사리가 강사 스님을 가리키고, 화상은 본래 지혜와 덕망이 높은 큰 스님을 향한 존칭이었다는데 요즘 이 어휘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면 독실한 불교신자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할 듯.. 요즘은 아브라카다브라가 대세인 듯 하지만 아직도 수리수리 마수리가 더 친근한데 아마 아이도 익숙한 이 주문이 '수리 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에서 온 걸 안다면 깜짝 놀랐듯.. 어렵지 않게 우리 생활에 녹아있는 불교 이야기와 그 역사를 쉽게 설명하고 있어 꼭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한번쯤 재미있게 읽어봄 직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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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평소 불교에 관한 궁금증이 누구보다 많았기에 이 책을 접하고는 아,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명쾌한 해설을 보면서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궁금하면 언제든지 해결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총49가지 예를 들어 놓고 있는 데 그중 몇 가지만 언급한다. 우선 ‘공(空)하다’부터 살펴보자. ‘허무하다’, ‘비어있다’, ‘덧없다’등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 뜻은 ‘비어있다’가 아닌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성을 갖지 않기에(P.16), 제행무상 곧 원래 그런 것이 아닌 잠시 그런 것. 사정이 이러하니 눈앞의 현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삭발’ 관련해서는 분별망상을 끊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지의 표현(P.20)으로 마음 속에 들끓는 번뇌처럼 끊임없이 자라는 머리카락(무명초=잡초)을 잡초를 뽑는 심정으로 자른다(P.21). ‘새벽 3시 기상’은 하늘은 자시(밤11-1시), 땅은 축시(밤1시-3시), 사람은 인시(새벽3시-5시). 곧 모든 만물이 깨어나고 우주의 기운이 가장 맑은 시간대가 인시(P.27)라고 한다. 스님의 결혼, 대처승의 기원은 일제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사찰령과 대처식육에 의해 생겼다. 채식주의 식단은 불살생 계율을 지키기 위해(P.35) 시작된 것으로 오신채도 가린다. 오신채란 마늘, 파, 부추, 달래, 양파로 성욕을 유발하거나 자극성이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피한다. ‘스님’은 ‘스승님’ 혹은 ‘승님’이 변해 보통명사인 스님이 되었다. 곱슬머리 부처의 기원은 서구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아테네 신전의 신상을 본떠 제작(P.46)된 것이다. 간다라 지방이 바로 그리스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중도’의 뜻은 이것 저것에 현혹되지 않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거리를 두는 길(P.50)이다. ‘사리’는 부처님의 유골로 부처님의 완전무결한 지혜와 그 자취인 경전을 의미한다. ‘보살’은 조선시대 부처님을 극진히 믿고 사찰에 보시를 아끼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의 여성화’는 원래 인도지역 간다라 관음보살상이 수염을 단 건장한 남성의 모습이지만 동아시아,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여성화되었다. 도교 신선사상의 영향과 불교 티벳 유입에 따른 변이,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자비의 위력을 극대화하려는 민중의 감정이입이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달마도의 험악한 인상’은 영험함이 무섭고 괴이한 얼굴에서 나온다고 보았고 역대 최강의 카리스마에 의지해 잡귀, 액운을 쫓으려는 의도(P.76)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면 달마는 눈에 보이는 형상과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초연한 대자유인이었다. ‘야단법석’은 야외에서 열리는 대규모 법회를 뜻하는 불교용어다. ‘삼배’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맹세를 지극한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P.90)이다. 서유기의 삼장법사 실존 유무는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은 구법승인 현장 스님을 배경으로 다룬 실존 이야기다. ‘부처님 오신 날’은 북방불교는 음,양력 4월 8일을 기준으로, 남방불교는 음력 4월 15일을 기준으로 했다. 이는 아웃사이더인 부처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해주는 당대의 사가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 교단이 성장하면서 ‘대략 이때쯤’으로 탄생일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아주 흥미진진한 궁금증에 관해 속시원한 해설이 곁들여진 장웅연 작가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기꺼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특히 작가의 불교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불교 사랑이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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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의 종교가 불교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절에 가고 불공을 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가끔 갔던 절은 그저 오랫만에 나들이를 하는 하는 곳이었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이 항상 파란불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때로는 빨간불 앞에서 멈춰 서서 파란불을 기다리기도 하고 길을 잘못들어 헤매기도 하면서 길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무사히 앞으로 잘 나아가게 해 달라고 맘 속으로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 바라는 대상을 찾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의 종교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불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 때문에 절에 다니긴 했지만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교회처럼 매주 규칙적으로 절을 찾는 것도 아니고.. 의미도 모르는 불경을 따라 하기도 하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을 올리며 맘 속으로 바라는 것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일뿐 그러한 일련의 행동이나 절차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에 자신있게 스스로를 불자라도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에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정말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내 대신해 주고 있기에...
불교..하면 산속에 고즈넉하게 위치한 절과 그 절에서 들려 오는 풍경소리.부처님의 불상과 파르라니 머리를 깍고 회색빛 승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는 스님들이 먼저 떠 오른다. 절은 왜 산 속에 많은지, 부처님의 머리는 원래 곱슬머리였는지. 스님들은 왜 머리를 삭발을 하는지.'절'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어디서 온 것인지..등의 정말이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들부터 사리는 왜 생기는지. 무소유는 정말 아무것도 갖지 말아야하는 것인지, '달마'가 무섭게 생긴 까닭은 무엇인지, 중도(中道)는 중간을 뜻하는 것인지 '무아'를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 것인지.108번뇌라고 하는데 번뇌가 정말 108가지나 되는지.. 등등의 심오한 이야기까지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불교는 수행을 중요시하는 듯 하다. 내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 가르침을 깨달아 비로소 나를 완성해 가는.. 그렇기에 그 수행의 길은 고행의 길이 되는 듯 하다. 스스로 존귀하다는 것을 깨우치라고 질투심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이들에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번뇌를 회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한다. 생각이 막힐 때 기어이 그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을 해냄으로 위대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에 오히려 번뇌는 보리(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대해야하는지 ,그러한 것들의 지표를 밝혀주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종교든 그 종교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스스로 노력하다보면 좀 더 완전체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결국 종교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궁금한 것을 대댭해 주는 형식이었지만 결국은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를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무르익는 이 가을 고즈적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아마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그 소리를 듣고 절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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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온갖 질문과 궁금증 투성이로 결합된 삶이라면 아마도 많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순리적 법칙을 강구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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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다닌지 오래되었지만 불교나 절에 대해서 누가 질문을 하면 긴장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절에만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부분들도 확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장웅연 글/ 니나킴 그림 담앤북스
이 책의 저자는 내가 전에 읽었던 책 '그냥 살라' 를 집필하신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셨다. 2015년 불교신문에 '불교, 묻고 답하다' 로 1년간 연재했던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불교와 가까워지다보면 생길 수 있는 궁금증에 대해 해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단순히 지식의 채집이 아니라 지혜의 탐색이길 원한다는 말이 확 와닿았다.
책 속에서는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질문과 답들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더욱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절에서는 왜 여성을 보살님이라고 부를까? 사실 이 질문은 어떤 분께서 나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등 이렇게 큰 분의 이름뒤에 보살이란 호칭을 쓰는데 단지 여성불자라는 이유만으로 보살이라 하는가. 하는 날카롭고 난해한 질문이었다. 사실 나도 단지 여성불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도 보살님! 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절에서 마땅한 호칭이 없으니까 그리 부르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어깨가 무겁고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1950년대 왜색불교 척결과 청정비구승 전통의 복원을 내건 불교정화운동에서 여성 신도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보사 保寺 (사찰을 보호하다) 님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었다고 하는데 보사님이 보살님으로 통용되었다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부처님을 극진히 믿고 사찰에 보시를 해준 감사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보살은, 엄마다 라는 저자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를 통해서 불교에 관한 지식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불교의 흐름과 가르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믿으라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수제자 아난의 탄식에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믿으라 며 가르침을 전하셨다고 한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많이 들어본 말씀일 것이다.
여러 질문들을 통해서 불교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을 시원시원하게 명쾌하게 알려준 장웅연님의 글을 통해서 앎의 재미도 느꼈고 내가 아는 부분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고 불자라면 자신이 궁금했던 부분을 알게 되어 속시원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마조 도일, 임제 의현 처럼 어떤 스님들은 법명이 왜 네글자인가. 이건 나도 궁금했던 부분인데 의문을 풀 수 있었고 스님들에게 왜 삼배를 하나를 통해서 스님께는 삼배를 하되 절을 받는 스님이 그만할 것을 권하면 그만둬야하는 구절이 사미율의에 나와있으며 절을 받는 스님의 의향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사리는 왜 생기나에서는 사리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부처님의 사리가 무려 8섬하고도 4말이 나왔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쌀 한 섬의 무게는 80킬로 말은 8킬로이니 700킬로에 가까운 사리!
불교사상과 문화에 대해서 두루 알 수 있었고 어디에 묻지 못했던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 책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예스24 담앤북스이벤트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한 느낌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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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神을 믿지 않는다고? 첫장부터 세게 나온다. 불교는 종교다. 그런데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에는 언뜻 듣기에 모순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自燈明 法燈明'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는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구하고 깨달음에 따라 행동하라고 했다. 神은 원래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主客이 전도된 昨今의 실태를 보라.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틈새를 파고 들어 너무도 깊게 뿌리를 내려버린 종교라는 허상! 그래서인지 나는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그리하여 나로부터 비롯되어진 모든 것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좋아서 불교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관한 것을 알고 싶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각설하고, 나처럼 불교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이라는 책의 제목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불교가 처음 들어올 때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을 받아들였던 까닭에 불교를 말하면 당연히 무속적인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무속과 불교는 엄연히 다르다. 재미있는 질문들이 보인다. 스님들은 왜 삭발을 하나?, 부처님은 원래부터 곱슬머리였나?, 절에서는 왜 여성을 '보살님'이라고 부를까?, 관세음보살은 여성인가, 남성인가?, '수리수리마수리' 는 무슨 뜻일까?, 비슷하게 생긴 나치 문양과 만(卍) 자, 히틀러는 불교를 믿었나? 와 같이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했을지도 모를 질문들은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하지만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가 실존인물이었다는 것, 禪宗에는 왜 6조까지만 있는지, 탑의 층수가 모두 홀수인 까닭에 관하여, '天上天下唯我獨尊' 이란 말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처럼 진지한 질문도 역사를 통해 혹은 선사들의 말을 통해 답을 하고 있다. 법정스님을 통해 유명해진 말 '무소유'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듯이 무언가를 피상적으로 알기보다는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편견이라는 무서운 울타리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올해부터 시행되기 시작된 도로명주소의 피해를 고스란히 불교계에서 당하고 있다는 뜬금없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의 문화는 예로부터 이미 불교적인 색채를 지녔다는 걸 이해한다면 그런 결정들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토록이나 많은 지명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때 고양시 식사동에 살았었다. 그곳에 살면서도 동네이름이 식사동이 뭐냐? 라고만 생각했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일가에게 몰래 밥을 지어다 바친 절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건 전혀 몰랐다. 堂자가 들어가면 그곳에 당집이 있었다고, 立石이란 말이 들어가면 그곳에 큰 돌이나 석상이 서 있었을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미아리에는 미아사라는 절이 있었고, 청량리에는 청량사가 있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불광동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비추는 곳이며, 은평구 신사동은 새로운 절이 들어선 곳이라는 이름이다. 불교 관련 지명이 전국에 550여개라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지명속에 불교적인 의미가 들어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그야말로 불교의 나라였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하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고유지명은 일제에 의해 한번 훼손되었었다. 그후로 나름의 뜻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는데 그 동네의 속성을 기억하게 해 줄 원래의 이름들이 도로명이라는 어설픈 말로 인해 다시한번 사장되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 또한 서글픈 일이 아닐수가 없다. 하기사 편리성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모습들은 어딜가나 있으니...
우리가 흔히 쓰는 '야단법석'이나 '이판사판'이라는 말도 사실은 불교에서 온 말이다. 불교는 종교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어찌되었든 정말 사소한 질문이었으나 결정적이었던 질문을 통해 불교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불교의 역사를 말하는 책은 많다. 사찰의 장신구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은 바로 이런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은 딱히 불교신자가 아니라해도 한번쯤은 읽어볼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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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먼저 밝히(?!)자면 나는 종교가 불교가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 역사를 알다보면 궁금해질 수 있는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