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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 마음 편히 책 한 장 읽지 못할 만큼 뭔가 일이 많고 분주했다. 이번 주 들어 비로소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정말로 읽고 싶었던 책을 찬찬히 읽었다.
뭐랄까? ‘너는 너무 진지해. 좀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어.’라는 말을 자주 듣고, 그래서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려고 주문처럼 ‘가볍게 살자’를 되내이지만,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벼운 것은... 쉽게 질린다.
그냥 같이 웃어주고, 같이 손뼉쳐주고, 같이 장단을 맞춰줄 수는 있지만...
나는 안다.
그게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걸.
말하자면 그게 내 태생이니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유쾌하고 즐거운 척하지만, 돌아서면 기진맥진해진다. 뭔가 에너지를 많이 소진한 느낌. 마음이 불편하다. 진정으로 즐겁지도 자유하지도 않다.
40대가 되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지표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데도 불구하고 뭔가 헛헛하다고 느끼는 건 그런 까닭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고마웠다.
이 책이 던지는 진지한 문제의식과 문제제기가......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스스로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치열하게. 이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사는 거지..
서경식씨가 말하는 루쉰의 '희망'도, 그런 절망과 희망도……
그걸 이야기한 루쉰이나, 그걸
설명하는 서경식씨나 또 그걸 현재 시점에서 읽고 있는 나나…… 시대를 초월하여 함께 있는 느낌, 시대를 거슬러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설사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평생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그게 내 천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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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당시 수많은 부랑자들과 구두닦이 소년들이 계엄군에게 희생당했다.그들의 주검은 어딘가 버려졌고 아직도 발견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들은 가족도 친척도 없으니 어느 누구도 애써 그들의 주검을 찾아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듣고부터,도청 앞 광장이나 금남로에 설 때면 나의 눈은 무심결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돼 버린 그들의 모습을 찾아 헤맨다.(중략) 이러한 부재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자신들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두려움을 느껴 보는 것 그것이 멋들어진 기념비 앞에서 헌화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영화'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서 울고 말았다.그런데 그 울음이 어떤 눈물이었던가를 생각 해 본다.부인 할 수 없는 것은 그 눈물 속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 안쓰러움 등이 있었을 것이다.이렇게 어설픈 자기 연민에 빠져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서경식님의 이 책<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서 충고한다. 어설픈 동정과 눈물보다는 그들을 진정으로 마주 할 수 있는 마음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함을,그러니까 눈물이란 것이 일회성으로 끝나게 된다면,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 수 도 있다는 것일게다.최근 한 독립영화 작품이 히트를 쳤다고 하나,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독립영화라는 장르에 관한 애정이 없다면 이 영화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와 비슷한 비유가 될 수 있을까? 이 두꺼운 책을 어떻게 다 읽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가 저절로 몰입을 하게 되는 바람에 단숨에 읽어내고 말았다.물론 단숨에 읽어 낼 수 있는 쉬운 이야기는 아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의 특징이 청중들에게 '강의'한 형식의 이야기였기때문에,나는 선생님의 환청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그 강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책을 마주 한 느낌이었다. 어설프게나마 재일조선인이란 문제를 알고 있었다.그러나 늘 무언가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이 번 책을 통해 마주한 강의를 통해 무언가 더 분명하게 확인 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 나온 할머니가 그러셨다."일본의 금전적인 배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전쟁의 참혹성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고..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것을 너무 모른다고..' 저자의 강의를 통해서도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독도문제,혹은 일본 위안부문제등에 대해 나는 얼마나 그들에게 다가가려 노력 했던가? 타자와 타자로서의 관계로 얼마나 마주 했던 것인가? 독도문제도 우린 거품처럼 흥분했지만,근본적인 역사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이 말하고 싶었던 시작은 재일조선인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물론 재일조선인의 문제가 핵심적인 주제이긴 했지만,재일 조선인을 포함한 소수자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당신은 얼마나 그들의 고통과 함께 했는가?를 같이 묻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만 보면 쉽게 읽지 못할 책은 아닐까 생각 할 수 있겠다.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부터 눈을 띄지 못할것이다.(재일조선인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 더...) 재일조선인 역사와 함께 유대인의 이야기,보너스처럼 전쟁의 고통을 증명하려 노력한 화가들의 이야기까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서 어쩔수 없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고말았다.그러나 할머니에게 진정한 눈물이란,당신을 응원한다는 마음이 담긴 편지가 아닐까? 혹은 당신의 이야기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결코 그 아픈과거사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함을 그래서 전쟁이란 것이 왜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인가를 말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를 읽으면서 다짐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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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의 우리말 강연록이다. 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들, 신문 칼럼들, 그리고 신간 <고뇌의 원근법>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강연하는 말투라 더 쉽게 (내용은 절대 쉬이 넘길 수는 없지만) 읽힌다. 그런데 강연 속 저자의 주장하는 바는 더 강한 표현을 쓰면서 독자인 나를 강하게 다구쳤다.
저자는 '순진한' 그리고 '단순한' 자기 합리화, 내지 정당화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우리'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민족정신, 또 그것이 동의어로 연결시키는 국민정신이라고 했다. 일본의 예는 읽기가 내내 불편하고 또 두려운 마음도 드는데, 이 비슷한 일이 우리(!)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나는 뉴스를 보지 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서경식 선생의 날카롭고 민감한 "지식인" 성격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아, 이런 무책임하고 위험한 '자기비하'도 이미 저자는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다.) 주어진 것을 그저 받아들이고 주위의 의견에 떠밀려 가고,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차별하고 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그런데, 정말 그가 말하는 정의로운 민주사회는 ....가능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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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한 외국티비드라마에서 병원에 실려온 죄수에게 "왜 자살하려헀는가?'하고 의사가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자라면서 여태까지 내 뜻대로 해본적이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아니면 이렇게 하라고 배워서 그런줄 알고 살아왔지요. 그런데 이제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내 죽음만큼은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말에요.."
그냥 지나가는 대사였는데 그것을 듣고 있자니 며칠전 읽었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서경식선생님의 책이 퍼뜩 생각이 났다. 전체 312페이지짜리 제법 두꺼운 책을 며칠에 걸쳐서 끙끙대고 읽어낸 후였지만 내가 정말 무엇을 알고 읽었는가?하는 생각이었는데 그 죄수의 말을 듣자마자 아, 그거였구나.하고 그제서야 서경식선생님의 이야기의 뜻을 조금은 알것같았다.
'디아스포라'라는 말로 자신을 지칭하며 어쩌면 애써 모르는척하고 싶었던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자신의 이야기, 나아가서 우리 한국의 이야기를 폭넓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않게 풀어낸 책이었다.
그래, 이분이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네가 나이 마흔이나 먹었다면 그 시간들 만큼의 고뇌와 반성과 성찰을 통해 너만의 가치를 세우고 너만의 관점을 만들어야할것아니냐? 언제까지 주어진 것들에 편하게 끌려다니며 정작 너 자신을 내팽겨쳐둘 것이냐?"하고 꾸짖음이 아닐까한다.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가능하겠어?하고 그냥 나 이렇게 편한대로 살래..하다가도 책꽂이에 다소곳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는 이 책과 시선이 마주치면 외면하지 못할 것같다.
[나]라는 개인이 똑똑 떨어지는 블럭조각이 아니라 수많은 실로 연결된 존재라는것. 그리고 그게 설령 엉키고 설킨 실타래라도 포기하지말고 한가닥 한가닥 제대로 풀고 볼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거다. 서경식선생님이 인용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 - "지식인의 역할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하여 잘못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항하는 것 - 이란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말미에 부록으로 달린 '재일조선인역사'와 '팔레스타인 분쟁사' 또한 그것들을 다룬 관련책들을 읽을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늘 하는 이야기말고 좀 색다른 시각으로 나를 깨워줄 책은 어디 없을까?하고 두리번 거리시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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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생각과 관념에 지지를 얻고 싶어서일까. 또는 기존의 관념이 뒤집히는 희열을 얻기 위해서일까. 언뜻 보면 반대말 같은 데 사실 반대말이 아니다. 기존의 생각과 관념과 너무나 다른 전복적인 것을 보고 오래 생각해온 하나의 가치관이 단박에 뒤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내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하면서도 다른 면을 보여주고 다른 말을 걸어주는 책을 만나야 책 읽기의 기쁨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경식 교수의 글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자주 만났지만 직접 그가 쓴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을 읽고 참 오랜만에 많은 구절을 베껴적었고 많은 구절을 음미했다. 더 좋은 책이 나타나기 전까지 올해의 책은 이책으로 정해두어야겠다. 재일 조선인에 관한 이야기 윤동주나 유대인같은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야기, 죽음에 관한 이야기, 루쉰에 관한 이야기, 미술에 관한 이야기 현재의 한국사회에 대한 대담까지 어느 하나 빠뜨릴 것이 없이 모두가 새롭고 모두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인간과 사회의 복잡함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흑백론으로 재빨리 단정짓고 마는 것처럼 안이하고 위험한 태도는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전제를 다시 한 번 의심하고, 보다 근원적인 곳까지 내려가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간단히 답을 얻을 수 없는 답답함을 견디며 끊임없이 묻는 것, 자신을 기존 관념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기어이 정신적 독립을 얻어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적인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 머리말에서 읽은 이 말이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과 같아 기뻐했는 데 책을 읽다보니 이 말이 단순히 내가 생각한 편협한 가치관에 대한 문제가 아닌 보다 근원적이고 커다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이나 국가, 가족에 대해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 루쉰의 말을 인용한 부분. 그저 요즘 널리 인용되는 이 말이 단순히 길이 안보이더라도 희망에 차서 용감하게 나가면 길이 된다는 그런 단순한 말이 아니라 끝없는 허무주의와 절망 속에서 실낱같이 내뱉은 어쩔 수 없는 한마디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희망은 거의 안보이는 것, 거의 없는 것,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는 것을.
「 지식인의 역할은 지배층의 서사에 대항해 억압받는 자의 서사를 대치시키는 것이다.」 이말은 곧이 곧대로 풀어도 내 생각과 꼭 맞았다. 생산직에서 일하는 노동자, 택시운전사, 농부, 할머니, 주부들이 하는 자신의 이야기들이 정치가나 기업가, 교수들이 하는 이야기만큼이나 많아져야 세상이 좀 더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했기 때문이다. 정의를 정의로써 이야기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 자신을 소시민으로 규정하면서 실은 가장 권력 중심에 가 있는 시라케 세대의 모습은 꼭 이중적인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했다. 그랬다. 우리들은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민하고 독특한 사유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타자, 소수자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승, 서준식이라는 장기수의 동생으로서 암울한 사회를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처지가 만들어낸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대학 때 생각했던 내 삶의 자세를 돌아보았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 끊임없이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분의 책을 더 많이 읽어봐야겠다. 아울러 책에 나온 루쉰의 책들도 꼼꼼히 살펴 읽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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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역사 쪽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실이 많았다. 재일조선인이란 명칭 문제와 국민, 국가 문제, 유대인에 대한 것에서도 수박겉껍질 핥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에 새삼 부끄러워졌고 숙연해졌다. 정확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동안 끼적거렸던 글들에서도 얕은 지식이 묻어나왔을 텐데 부끄럽다. 역사 쪽은 파고들수록 어렵다.
3부 저항하는 예술 증언하는 예술에선 내가 얼마나 고흐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오해의 가장 큰 원인은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을 양성하기에 쓸모 있는 것만 가르쳐주는 교육이었다. 단순히 그가 그 시대에 있어서 얼마나 새로운 그림을 그린 사람이었는지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그가 그런 그림을 그렸던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준 미술 선생님은 없었다. 4부는 `한국판 시라케 시대가 열리고 있다`라는 장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저항할 힘을 가진 지식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전문가만 가득 들어찬 시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어쩌면 `국가`, `국민`, `민족`이란 틀을 넘어서서, 박해당하는 사람들이 연대할 길을 열어줄 사람은 서경식과 같은 `국가`의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인상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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