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읽은 트로이와 관련된 전설을 사실로 믿고, 그 꿈을 현실로 증명해보인 위대한 인물, 하인리히 슐리만. 트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트로이 목마와 함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트로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의 손길을 거쳐갔으며, 고고학계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어린시절 나는 그를 이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트로이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그 진실성에 대하여, 발견에 있어서의 오류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문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고립된 섬에서 일어난, 하나의 문명을 완벽하게 파괴해버린 트로이 전쟁. 이를 말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이 책을 폈을 때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원전 13세기 에게해와 근동의 지도였다. 미케네, 히타이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고 이집트. 그 당시 강성했던 제국들의 지도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떠한 맥락에서 이루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트로이를 말함에 있어서 이들 국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날 한 나라의 정치, 경제를 평가함에 있어서 그 나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역사 역시도 그러한 점을 고려해야 된다는 면에서 이러한 분석틀을 갖춘 것은 탁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고학은 인류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며, 이는 지금껏 인류가 이루어왔던 문명의 찬란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단순히 인류가 이러한 역사를 이루었구나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끈질긴 집념은 분명 베일속에 가려져있던 지난 날의 트로이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인간은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탐욕에 대해서는 그다지 다루지 않은 듯 하다. 아마도 서구 위주의 역사 속에서 그의 장점만이 강하게 부각되어 온 듯 싶다. 오늘날 영국의 박물관을 비롯,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집트, 그리스 유물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제국주의적 역사 때문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맥을 같이한 인물로도 평가할 수 있을 듯 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도 정교했기 때문에 성곽을 파괴했다는 부분에서부터 발굴한 유물들을 유럽으로 옮기고 많은 부분은 자신의 개인소장품으로 변질시켜버린 그의 모습은, 지난 날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을 깨기에 충분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발전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문화유적마저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역사는 트로이의 발굴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히타이트와 아시리아의 권력관계 속에서 트로이가 왜 멸망의 길에 이를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고찰하는 과정 속에서 작가의 노고가 느껴진다. 이러한 그의 트로이에 대한 해석은 지금껏 부각되어 온 아가멤논과 호메로스 등의 특정인에 입각한 역사로부터 벗어나, 그 시대를 살아간 개개인의 대중으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는 역사의 주체를 소수의 영웅 아닌 다수의 사람들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트로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명확해진 듯 하다. 여전히 모든 문자가 해독되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트로이의 역사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을 통해 지금과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복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기대는 시간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