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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멍 때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쓰던 말이 있다. "너 안드로메다 인간이지? 너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여행갔냐? 왠만하면 지구로 귀환하지... ㅋㅋ" 솔직히 왜 안드로메다를 언급했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그러면 좀 멀리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과 시간이란 생각에 시작된 농담은 스스럼 없이 입에 익숙해졌고 그렇게 유머로 변신했다.
세상과의 소통. 매일 사람들과 만나고 언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대화하고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것이 사회다.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있고 서로의 의사를 알기 위해 다른 언어들을 공부하고 배운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 하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가들 조차도 옹알이라는 것을 통해 엄마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숙부는 달랐다...
어린 시절의 말더듬이었던 습관은 어른이 되어 고쳐졌지만 혼자만의 언어를 주절거리는 통에 속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 많은 았았다. 어느 날 숙부가 사라졌고 행방불명된 숙부의 세권의 일기로 과거의 숙부를 따라가 보는 나를 그린 『안드로메다 남자』역시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있었다.
<퐁파!><타퐁튜~><체리파하> 어느나라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수 없는 단어들을 숙부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말한다. 프랑스어같기도 하고 인디언 말 같기도 한 이 단어들을 내 뱉을 때 주변의 당황하는 모습들이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만의 언어세계에 빠져들어가는 숙부의 태도와 일상들이 담긴 일기를 쫒아 가는 화자가 점점 안드로메다에 동화되어 가는 것 또한 잘 짜여진 플롯속에서 신선하다 못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의미있는 언어는 약속이다. 그 약속은 인간이 만든다. 요즘은 세대간의 언어가 다르고 매일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며 인터넷으로 인해 뜻조차도 의미가 없는 마구잡이식 단어들의 조합과 배열과 나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모두 존재감있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말도 안되는 단어지만 그로 인해 동지애가 느껴지고 공감을 느끼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사회속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 거다.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안드로메다 남자』는 정형화되고 반듯한 생활을 하기 위한 언어들에 반기를 든다. 숙부가 어릴 적부터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한 단어들이지만 모두 뜻깊은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알게 되면 이제 숙부와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때론 나 혼자만의 공간이나 시간이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탈을 하고 싶어진다. 아마 숙부가 부러운 이유는 내게 없었던 일상을 벗어날 용기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한 줄에 남긴 여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숙부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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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은 충분히 메말랐다. 이 책을 대하면서 내 눈에는 이슬하나 맺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슴은 충분히 굶주리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속이 이렇게 갈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드로메다를 추구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그렇게 강한 충격을 준 책이다. 이 책은 바로 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인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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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남자. 제목부터 왠지 심상치가 않다. 평소 친구들과 이야기 할때 가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친구들에게 쓰던 말이 '안드로메다에서 왔나' 였다. 그래서 안드로메다 남자라는 제목이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어느날 갑자기 숙부가 사라진다. 숙부의 방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숙부의 일기 3권을 통해 숙부의 지나간 시간을 알게 된다. 어릴적 말더듬이였던 숙부는 어른이 되어 어느순간 그 증세가 사라진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증세가 사라진 후에도 숙부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 오히려 또 다른세계로 빠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때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퐁파!' '타퐁튜' '체리파하'...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의 세계로 빠져버린 숙부. 그런 숙부를 진작 이해하였더라면 지금같은 결과는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보통사람들과 다른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지 사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책 <안드로메다 남자>를 읽으며 숙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숙부가 아니어도 우리주변에는 알게모르게 안드로메다 남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조금씩 안드로메다 남자들이다. 어떤 표현방법으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느냐의 차이일뿐... 누구나 마음속에는 안드로메다 남자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숙부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공간에 빠져있지 않고 함께 있을뿐... 가끔은 자신만의 세계로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
조금 특이한 구성의 조금 특이한 내용의 글이지만 천천히 곱씹으며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책 부피와 상관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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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어디서많이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은하의 이름이 였다 맞다 옛날 만화 영화중 은하철도999라는 영화에서 나온것 같았다 그래서 공상 과학쪽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린 생각이 였다 그런쪽의 책이아니였다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문학상 수상작이 였다 두가지의 상을 동시에 탔다는데 흥미가 더욱더 일어났다 조카가 행방불명된 숙부를 집을 정리하고 거기서나온 일기등을 바탕으로 쓰여진책 어려서 내성적이고 말을 더듬었던 숙부 어느날 갑짜기 말 더듬는것이 고쳐지고 그 불안한 마음을 막기위해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숙부 결혼4년은 안정적이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인을 잃고는 다시 자기 만의 세계에 빠지며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온 숙부 우리가 사는 은하가 아닌 다른 은하인 안드로메다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세계의 바깥쪽에서 살아가는 숙부 그만의 언어-퐁팟, 체리파하, 호에먀우, 타퐁튜.... 9년반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일들 재밌으면서도 생각하게끔 만드는 글솜씨 결코 가볍게 재미삼아 읽을 책은 아니었다 한번보다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였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을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책을 읽고 보니 이해를 할수 있겠다 물론 다 이해하는건 아니지만 오랫만에 무게있는 책을 읽었다 나자신을 많이 돌아보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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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 열두 번째 책이다.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집어 든 이유다.
일단 이 책을 선택하고 나서 책 소개를 읽다보니, 수상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무라카미 류 이후 30년 만에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문학상을 동시 수상하며 스와 데쓰시라는 대형 신인의 탄생을 알린 바로 그 소설!' 어떤 소설일지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은, '안드로메다적'이다. 소설 구성도 다소 그런 면이 있고,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 숙부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다분히 '안드로메다적'이다. 읽본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내게만 이런 느낌을 주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무척 신선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퐁팟" 소리내어 발음해봤다. '퐁팟'은 사라진 숙부가 자주 내뱉던 정체불명의 언어이다. ('안드로메다 어'일까?) 어려서부터 심하게 말을 더듬던 숙부는 스무 살 어느 겨울, 갑자기 말 더듬는 현상이 사라졌다. 그때까지 그를 힘들게 하던 '키츠츠키(딱따구리)'라는 발음을 "키,츠츠키"가 아닌 "키츠츠키"라고 제대로 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하지만 말 더듬는 현상만 사라졌을 뿐, 숙부의 괴상한 언어 습관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퐁파" "타퐁튜" "체리파하"...듣는 이를 멍하게 만들지만, "그러니까 그건 즉 타퐁튜야." "말을 바꾸자면 그건 체리파하......야."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숙부의 그 '안드로메다적' 언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또 그 말들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건 숙부와 같은 '안드로메다 남자'들 만이 아는 걸지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과 소통 불가능한 우리만의 '안드로메다 어'가 있는 걸지도.
"퐁팟카퐁파, 퐁팟카퐁파. ...헤에~, 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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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남자>라는 책의 제목 만큼이나 색다른 시작이었다. 에필로그 형식으로 시작되는 첫장을 읽으면서 조금 헷갈리는 면도 없지않아 있었다. 소설의 형식이기는 하나, 숙부의 일기를 인용하여 소설과 일기 형식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 <안드로메다 남자>의 필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초반부에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필자의 ‘작위적’인 첫머리와 전형적인 ‘전위’ 흉내가 아닐까 라는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궁금증을 자아 냈다.)
첫 장면은 필자가 버스를 타고 인적이 한적한 숙부의 아파트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숙부는 공동주택 아파트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필자가 사라진 숙부의 흔적이나마 찾기 위해서 아파트로 들어 서지만, 전혀 깨끗함을 찾아볼 수 없는 숙부의 집에서 숙부가 직접 적은 일기장을 발견한다.
숙부는 성실한 직장인 이었으며, 빌딩 엔지니어 직업으로 인해 야근이 잦았다. 그리고 그런 숙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숙부의 아내인 ‘도모코’씨는 남편 ‘아키라’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이들의 신혼 생활은 여느 신혼 부부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러던 중 숙부의 아내인 도모코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로 인해 숙부는 메모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다.
어린시절 숙부는 말더듬이였으며, 어른이 되어서 고쳐지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심각하게 된다. 책 제목처럼 안드로메다에서나 쓰일 법한 언어들을 구사하게 된다. 이를 처음 듣게 된 아내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지만, 끝내 대답으르 해주지 않는 남편(숙부) 때문에 그 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 숙부가 하는 말들은 <퐁파>, <체리파하>, <호에먀우>, <타퐁튜> 등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내 뱉는다. 숙부가 왜 저런 단어들을 말하며 불규칙적으로 내뱉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지 못한다.
결국, 숙부는 일반인이 알수 없는 단어들을 말함으로서 안드로메다 성향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 진다. 또한 이 책의 마지막까지 숙부의 행방은 묘연하다.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스토리 소재가 새로워 책을 놓지 못하고 단어들의 궁금증으로 그리고 스토리의 궁금증으로 계속 읽어가는 아니, 읽을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몰입의 정도 역시 강하게 보이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드로메다로 간 숙부가 궁금해 지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그 사이를 점점더 멀어지게 하는 언어의 모습을 보았다. 다른 차원의 언어를 말하는 숙부를 보며, 세상과의 단절을 원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읽는 동안 기존 소설이 아닌 색다른 소설 한권을 읽은 느낌이 들 정도로 독특하다.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지만, 평범한 소설의 탈출을 원한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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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 상을 수여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소설의 구조와 작가의 의도로 보이는 숙부만의 언어가 내 마음을 조금은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 읽는 내내 그것은 오히려 읽는 재미를 안겨 주는 요소가 되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며 불평하면서 읽고 있어도 어느 순간엔 나 자신도 모르게 숙부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고 “왜 또 나오지 않지” 하면서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어쩌면 요구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상상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은 다른 말로 말해 숙부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들. 흔히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낯설거나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모습과 작가가 구축한 소설 안에서 어쩌면 독자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하고 소설 안으로 이끌려는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까. 읽어 갈수록 소설 안으로 빠져들었다. 어쩌면 확신에 가까웠다. 소설은 숙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과 다른, 매우 부적응, 부적용에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회와 단절된 모습은 사회의 통념 속에서 얼마나 고통 받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가슴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이 더해져 고립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숙부의 모습은 이 소설의 백미이며 얼마나 거대한 세계 속 다양한 이면의 모습인지 그 다양한 삶의 한 부분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가지게 했다. 숙부는 다른 사람의 이목은 그다지 그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소설의 모티브가 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만의 언어와 행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숙부에게는 다른 사람의 모습들이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들로 보일 뿐이다. 숙부의 눈엔 다른 사람의 모습이 현실의 모순을 살고 있는 인물들일 뿐이다. 다른 사람과 특이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을 둘러싸고 구경을 하거나 관심의 정도가 지나쳐 그, 한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그 분위기를 몰고 가는 현실처럼 소설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모습을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그려내어 거대한 세계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보다도 작은 모습으로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작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행동으로 옮기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우연한 기회에 본 많은 것들이 숙부의 삶을 전부 이해하고 만든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는 것을 또한 느끼게 한다. 무언가를 보고 전부를 본 것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 이상한 행동을 보고 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다수의 생각은 그저 한 순간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숙부의 행동들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들의 자랑거리이며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살기 위해 애쓰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특이하지만 그 나름대로 자신의 방해요소들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의 한 일원임을 떳떳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별에서는 없는 아니, 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그런 부분들을 건들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이 보여주고자 한 여러 가지 배경 묘사와 상황의 전개는 극히 소설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측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유연한 삶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중 최대의 수혜자로서 숙부의 삶이 기록 되어지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소통의 방식내지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낯선 언어와 말을 더듬는 행동들을 극복하기 위해 숙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한히 많은 언어들이 쏟아지는 지금,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목소리와 언어들을 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과 행동을 보여 주어야겠다고 느꼈다. 숙부의 기록과 행동은 어쩌면 우리가 평소 느끼는 감정의 주체로 주체할 수 없었던 시기에 느끼는 감정의 또 다른 표현의 표출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흥미꺼리가 되는 요즘 사회의 구성원 한 사람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낯선 삶이 세상에 던져져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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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사람의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녹색 바탕에 도무지 무슨 그림인지 알수 없는 표지는 아마도 책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되 쉽지만은 않은 내용임을 암시 하는듯 하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잇는 우주에서온 사람이라하면 슈퍼맨이 전부엿다. 이 책을 접하면서 또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을 알게 된것은 아닐런지..
어려서 부터 말을 더듬는 저자의 숙부, 그 숙부가 숙모가 세상을 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다.그야말로 실종되었던 것이다. 숙부의 집을 정리하게된 작가는 숙부의 집을 정리 하던중 숙모와 숙부의 일기를 발견한다
숙모의 일기에서는 가정에서의 소소한 일상의 삶을 그리고 잇다 . 그 일상에서 숙부의 퐁팟이나 타퐁튜 ,체리파하 ,우에야마같은 말들의 외침을 보여준다. 숙모 도모코의 친구가 그들의 집을 방문햇을때 또한 그런 말들은 어김없이 외쳐지고 말앗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의 외침을 들엇을때의 당혹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수 있을지..
숙부의 일기에서는 직장 생활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퐁파 타퐁튜,체리파하 같은 말들은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잇다 언어란 쓰는 사람이 하기 좋고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 쉬워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인데. 숙부가 하는 그런 말들은 전혀 그런 매개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말더듬이라는 언아 장애가 다른 사람과의 언어 단절의 말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말 더듬이로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혼자만의 언어들은 그 시간 동안의 고통을 느낄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다른 책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준다. 어렵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집중력을 발휘해야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수 잇다 그렇지 않고 대충 대충 책을 읽다보면 정말 낭패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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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 "체리파하", "타퐁튜" 왜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단어들을 굳이 사람들에게 말하려 했을까? 누가 알아 듣기를 바라지 않으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 우리는 그를 비정상이라 볼 것이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라 했다. 그런 명제로 보자면 그는 분명 비정상이다. 언어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나를 표현하여 듣는 이가 이해하길 바라는 서로간의 교류이다. 또한 인간은 무리 속에 섞이길 바란다. 그 무리와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소속되길 바란다. 외톨이가 되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만의 세계를 만들고 오히려 세상을 따돌렸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숙부와 숙모의 일기장을 발견하며, 독특했던 숙부를 소설로 옮기는 과정의 기록이다. 어려서 말을 더듬었던 숙부는 어느날 갑자기 더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 있던 말더듬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언어가 갖는 법칙이 그를 옭아매고 가둬버리는 것처럼 그는 불편해했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언어적인 회의에 빠지고 통념적인 것의 이면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반골정신을 으뜸으로 삼으며 <안드로메다 남자>로 거듭 난 것이다.
그렇다면 안드로메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가 말하려는 '안드로메다'는 비정상도, 특이함도 아닌 그저 세계의 바깥쪽, 저 안드로메다 방향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회에 무언가를 끼치려는 것이 아닌 그저 어딘가 무중력의 장소에서 한숨 쉬어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숙부는 숙모의 죽음 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가 <안드로메다>로 간 것은 아닐까?
화자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과정을 일기를 인용하며 보여주고있다. 소설이 체 완성되기 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어딘가 모순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특징이다. 아직 소설이 되지 않은 소설. 독특하다 할 수 있지만, 정리 되지 않는 생소함은 남는다.
누구에게나 안드로메다를 향하고픈 열망이 있지 않을까? 혼자 남겨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던 [튤립 남자]처럼 바깥쪽 어딘가를 향해 나만의 표현으로 현실의 무게를 잊고 무중력 상태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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