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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피리트 렌츠 저 | 박종대 옮김 | 사계절
"[청소년소설]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피리트 렌츠 저 | 박종대 옮김 | 사계절" 내용보기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피리트 렌츠 저 | 박종대 옮김 | 사계절             “사람들은 내게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어느새 한 달이 꼬박 지나가 있었다. 당혹스러움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보낸 시간이었다. (5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스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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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피리트 렌츠 저 | 박종대 옮김 | 사계절

 

 

 

 

 

 

“사람들은 내게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어느새 한 달이 꼬박 지나가 있었다. 당혹스러움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보낸 시간이었다. (5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스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아르네의 가족 역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빚이 있었고, 결국 그 빚 때문에 가족 모두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아르네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말이다. 이제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아르네에게 또 다른 고통이고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살아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해서 남은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직 어린 아르네에게 말이다.

 

아버지의 친구인 한스 아버지에게 맡겨진 아르네는 심성이 여리고 착하며, 항상 정직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그랬다.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아르네를 따돌리고 놀아주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르네가 자신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섰고 이로 많은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착한 아르네가 말이다. 또 한 가지 아르네의 가족사에 대해서 알게 된 아이들은 그것을 약점 잡아서 아르네를 점점 더 힘들게 하였다. 한스의 동생 라르와 비프케조차도 아르네를 힘들게 하였다. 특히 비프케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르네가 비프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따돌렸기 때문이다. 

 

아르네는 그렇게 외로운 소년이었다. 교실에서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친구들로부터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한 아이 말이다. 친구들에게 잘못한 일도 없고, 피해를 입힌 일도 없는데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단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르네에게 유일한 친구는 폐선처리장에서 일하는 칼룩씨였다. 하지만 아르네는 또래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 기꺼이 받아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손에 쥐면 아르네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르네의 입장에서는 매번 이용만 당한 꼴이다. 그래도 싫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친구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아르네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따돌림을 시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로인해 스스로 삶을 접는 경우도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인다는 뉴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의 유형은 대체로 서너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그 중에서 아르네처럼 공부를 잘해도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목록이 포함된다. 이 책에서도 아르네가 친구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아르네는 강으로 배를 타고 나아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설은 여기까지 끝이다. 열린 결말이다. 아르네의 운명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아르네는 다시 우리들 곁으로 분명 돌아온다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기에 나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2016.7.30. ⓒ 포스트모던

 

 

 


m****0 2016.07.30.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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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아르네가 있진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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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아르네는 비상한 언어재능과 글솜씨, 순수함과 따스한 감성을 지닌 열두 살 소년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노력을 하지만 결국 불행으로 치닫아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다. 가족들의 자살처럼 말이다. 솔직히 난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에게 놀랐다. 어떻게 이 시대의 문제점을 끄집어 냈을까 하고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지 몇년이 흘렀지만 내 학창시절에도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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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아르네는 비상한 언어재능과 글솜씨, 순수함과 따스한 감성을 지닌 열두 살 소년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노력을 하지만 결국 불행으로 치닫아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다. 가족들의 자살처럼 말이다. 솔직히 난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에게 놀랐다. 어떻게 이 시대의 문제점을 끄집어 냈을까 하고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지 몇년이 흘렀지만 내 학창시절에도 분명 왕따는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면모, 뭔가 다른 감성, 혹은 뛰어난 재능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르네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솔직히 나는 아르네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와 연관된 것도 아니고 내게 어떠한 이점이나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무시했었다. 아니, 어쩌면 하나의 집단에서 나역시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아르네에게 등을 돌렸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이 솔직한 그때의 내 심정일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끝내는 홀로 거룻배에 몸을 싣는 아르네에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나도 라르스와 비프케처럼 후회를 하는가 보다. 세상엔 끊임없이 닫혀진 문을 두드리는 아르네와 마음의 빗장까지 걸어잠근 라르스와 비프케가 있고 그리고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스가 있다. 나는 어느쪽일까.....
j****9 2003.1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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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프리트 렌츠 -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 - 아르네가 남긴 것-" 내용보기
책 읽는 내내 잔잔했다.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는 한스의 말에 귀를 기울리면서..완독 몇 장을 남겨두고 시계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고요한 방에 내 숨소리가 거칠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아르네가 한스가족을 남겨두고 떠났나보다..우릴 두고 갔다는 한스 아버지의 말에, 그래 멀리 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 첫 부분에 한스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한다는게 스쳤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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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내내 잔잔했다.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는 한스의 말에 귀를 기울리면서..

완독 몇 장을 남겨두고 시계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고요한 방에 내 숨소리가 거칠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르네가 한스가족을 남겨두고 떠났나보다..우릴 두고 갔다는 한스 아버지의 말에, 그래 멀리 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 첫 부분에 한스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한다는게 스쳤다. 그래. 유품..
아르네가 배를 타고 강속으로 갔구나.

자신들의 무리와 '왠지 다르다'는 이유로 아르네를 소외시켰던 사람들.

강속으로 잠기는 아르네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들과 '왠지 다르지' 않기 위해 안쓰럽게 노력했던 아르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아르네가 있다면 난 한스가 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아르네..

비쩍마른 말라깽이 아르네..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사랑한다. 아르네.

 

2003/05/08

b****n 2007.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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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용보기
온 가족의 자살시도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르네. 아르네는 아빠 친구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같이 방을 쓰게 되는 장남 한스와는 친한 친구가 되지만, 정작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철저하게 따돌림을 받게 된다. 친구들이 아르네를 자기 무리에 끼어 주지 않는 것은 단지 아르네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다. 아르네는 갸날프고 소심한 아이다. 아르네는 언어에 뛰어난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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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의 자살시도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르네. 아르네는 아빠 친구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같이 방을 쓰게 되는 장남 한스와는 친한 친구가 되지만, 정작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철저하게 따돌림을 받게 된다. 친구들이 아르네를 자기 무리에 끼어 주지 않는 것은 단지 아르네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다. 아르네는 갸날프고 소심한 아이다. 아르네는 언어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아이다. 친구들은 이런 아르네를 싫어하고 경멸하고 무시한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가슴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르네의 외로움을 알 것 같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
a*****0 2005.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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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츠의 '아르네가 남긴 것'
"렌츠의 '아르네가 남긴 것'" 내용보기
아래 인용이 이 소설과 관련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킬 인용이 되지 않을까. '아르네'라는 유약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을 뿐이지, 이 소설은 '왕따'에 대한 내용이며, '무책임한 아이들'에 대한 초상화이다.    어린이의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은 도덕적 천함을 나타내줄 뿐이다. 보쉬에는 단호하다: "어린이는 짐승의 삶이다." 베륄은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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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이 이 소설과 관련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킬 인용이 되지 않을까. '아르네'라는 유약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을 뿐이지, 이 소설은 '왕따'에 대한 내용이며, '무책임한 아이들'에 대한 초상화이다.
 

 

어린이의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은 도덕적 천함을 나타내줄 뿐이다. 보쉬에는 단호하다: "어린이는 짐승의 삶이다." 베륄은 가능한 더 멀리 간다. : "어린이의 상태는 죽음 다음으로 인간 본성의 가장 상스럽고 천한 상태이다." 파스칼로 말하자면, 그는 추론에 의하여 - 섬세한 정신인가 기하학적 정신인가? - 어린이의 상태의 끔찍함을 정당화한다. "신의 정의에서 볼 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죄인들을 전혀 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린아이들은 매일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그들은 필연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어야만 하며, 그것은 타고난 죄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현세에서 받는 벌은 원죄의 벌이다."
-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이은주(옮김), 현대문학, 49쪽~50쪽



 

미셸 투르니에가 인용한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동의 시기가 아르네, 그리고 아르네 주변 아이들이 포함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어린 시절은 지금의 내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불가해하면서도 슬픈 시절이었다. 그래서 앙시앙 레짐 이전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어린이 시절을 그렇게 여겼는지도 모른다.(다른 사회학적 요인들이 더 많긴 했지만)



내가 아르네라면, 도리어 침묵과 고독을 택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편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자유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네는 비프케와 어울리고 싶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라진 자는 아무런 말이 없고 남겨진 자들의 미래가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아르네 탓으로만 여길 것이다. 실은 그 아이들은 아르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성장의 과정이란 남과 어떻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은 각자의 몫이고 각자가 헤쳐나가야 할 곳이다. 그 점에서 아르네는 너무 유약했으며 그것을 다른 아이들은 낯설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예외적인 아르네가 속할 곳은 그 곳이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렌츠의 이 흥미로운 소설은 현대적 성장소설의 유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담담히 인물과 사건들을 보여줄 뿐이고 아르네가 속하지 않았던 곳에 아르네를 위치시킴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조금은 잔인해 보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겠는가. 작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할 뿐이다(소설을 다 읽고 난 뒤, 위 인용문이 계속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싶다).



 

아, 아르네! 나는 네가 사무실에서 나와 바로 집으로 오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너는 창문에 서 있던 내 모습을 보았고, 내 손짓을 틀림없이 이해했어. 너는 내게 올 작정이었지. 그때 갑자기 폐선 처리장 가장자리에 라르스와 비프케가 나타났어. 순간 너는 방향을 바꾸어 그 애들에게 갔어. 그 애들과 몇 발짝 사이를 두고 멈춰 섰지만, 그 애들은 너를 본체만체 지나쳤어. 마치 기둥이나 돛대를 피해 가듯 그렇게 무관심하게 양쪽으로 갈라져서 너를 지나쳐갔어. 너는 땅에 뿌리박힌 듯 서서 그 애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어. 도저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애들의 냉정한 태도와 거부하는 못짓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듯했다. (222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s***s 2011.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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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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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고아 소년 아르네가 한스네 집에 왔습니다. 한스의 아버지는 아르네의 아버지와 젊었을 때 동료였습니다. 지금은 폐선을 해체하는 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한스에게 아르네의 짐을 정리하라고 하여 하나씩 정리하면서 그 때마다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아르네는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또래집단에 들어가고자 하는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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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고아 소년 아르네가 한스네 집에 왔습니다. 한스의 아버지는 아르네의 아버지와 젊었을 때 동료였습니다. 지금은 폐선을 해체하는 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한스에게 아르네의 짐을 정리하라고 하여 하나씩 정리하면서 그 때마다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아르네는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또래집단에 들어가고자 하는데 한스는 이미 나이 차가 나서 그 대상이 아닙니다. 한스의 동생들이 대상인데 그들은 아르네를 이용은 하지만 진정으로 또래집단에 넣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르네는 사라집니다. 표현된 사실로는 배를 타고 만을 떠나서 항구 근처에 배를 묶어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마지막에 라르센(이름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가물거립니다.)이 물건들을 도로 끄집어 내어 자기 자리에 정확하게 배치하는 게 압권입니다. 사실 이건 의외입니다. 불과 몇 시간전에는 아르네의 통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거든요.

 

제가 보기엔 의도된 실수로 보입니다.

 

제목은 글자 그대로의 뜻입니다. 아르네는 죽은 게 아니라 사라진 것이므로 그의 물건(가져온 것, 쓰던 것, 수집한 것 등등)과 그에 얽힌 추억을 말합니다.

k****8 2009.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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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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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가슴 속에 밀려 드는 먹먹함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온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이 느낌을 어찌해야 하는 걸까. 아, 아르네! 책을 읽는 내내 이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르네의 이름을 부를 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옮긴이 박종대님도 저며 오는 슬픔을 달랠길이 없다고 했다. 우리들의 편견과 아집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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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고 나니 가슴 속에 밀려 드는 먹먹함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온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이 느낌을 어찌해야 하는 걸까. 아, 아르네! 책을 읽는 내내 이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르네의 이름을 부를 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옮긴이 박종대님도 저며 오는 슬픔을 달랠길이 없다고 했다. 우리들의 편견과 아집 속에 스러져간 소년 아르네 때문이라고 했다. 도대체 아르네에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이 책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유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르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데, 책을 읽을 수록 아르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은 깔리지 않고, 아르네와의 추억을 더듬어가는 한스의 시각을 비춰 줄 뿐이다. 직접적인 아르네의 죽음의 언급은 피한 채, 유품을 정리하는 현재와 유품을 통한 아르네의 추억이 얽혀 12살 소년 아르네를 드러 낸다. 아르네는 여리고 상처가 있는 소년이다. 가족이 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아르네 뿐이다. 아르네와 친구였던 한스의 아빠가 아르네의 양육을 맡게 되어 한스네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한스는 그런 아르네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며, 늘 아르네의 편이 되어 주었다. 아르네가 고통의 기억에서 몸을 떨 때도, 친구들이 아르네를 따돌릴 때도 말이다.

 

  아르네는 뛰어난 아이였다. 공부를 잘 했고, 글도 잘 썼으며 월반을 할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였다. 그러나 아르네가 어떻게 해서 한스네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된 친구들은 아르네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르네가 어떻게 살아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내세워서가 아니라, 자신 보다 뛰어난 아르네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다름의 이유였다. 한스의 동생 라르스와 비프케 조차도 아르네에게 살갑게 굴지 않았고, 비프케에게 남다른 애정을 품었던 아르네의 마음을 알면서도 비프케는 아르네를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아르네는 뛰어난 학생이였기에 특별한 관심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다는 사실이 아르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한 따돌림은 아르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가족들의 생사 속에서 살아난 것도 아르네의 의지가 아니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또래의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다는 것은 12살의 아르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기 충분했다.

 

  아르네가 살던 곳은 폐선 처리장이였으므로 사내 아이들에게는 호기심과 놀이거리가 제공 되는 장소였다. 실로 책 속에 등장하는 모험과 놀이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쏟아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혹적인 것이였다. 아르네 또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보아왔던 바다의 풍경과 배에 관한 지식들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지만, 새로운 곳에서는 철저히 배척 당하고 만다. 오히려 자신의 뛰어남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생각했으니 아르네의 고충은 켜켜이 쌓여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르네에게 한스 외에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자신을 놀이에 끼워 줄 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철석같이 그 아이들을 믿었다. 늘 혼자 생활 하는 칼룩씨와 친구가 되는 것보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모르고 아이들은 아르네를 이용했다. 여행을 핑계로 도둑질을 했고, 나쁜 일에 아르네를 포함 시켰기에 칼룩씨가 다쳤고, 물건들이 사라졌다. 아르네는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잃어 버렸지만, 그 일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공모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아르네를 모른체 한다. 괴로움에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아르네는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르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르네와 같은 방을 썼던 한스가 아르네의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그 물건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려진다. 한스는 그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아르네의 표정, 몸짓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르네가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대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 얽혀 애절함을 더해 갔다. 한스도 아르네의 가족들도 아르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르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책은 끝이 난다. 이러한 결말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르네를 따돌린 아이들을 과연 내가 비난 할 수 있을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르네를 다그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르네 같은 아이를 쉽게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네와 닮았던 아이들을 따돌렸던 내 자신도. 아르네의 스러짐 앞에서 깊이 반성해 본다. 내가 아르네를 그렇게 만든 것이고, 우리가 아르네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아르네 같은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조금 다르다고 다른 세상으로 밀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s****m 2008.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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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 '아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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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 ‘아르네’ <독일어 시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크프리트 렌츠의 작품이다. 독일어 시간만큼 크게 다가온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이 ‘아르네’와 같은 순수한 영혼을 지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내가 어릴 적에도 분명 ‘왕따’가 있었다. 지금처럼 ‘왕따’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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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 ‘아르네’


<독일어 시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크프리트 렌츠의 작품이다. 독일어 시간만큼 크게 다가온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이 ‘아르네’와 같은 순수한 영혼을 지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내가 어릴 적에도 분명 ‘왕따’가 있었다. 지금처럼 ‘왕따’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를 향한 배척의 강도가 세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을 갖다보니 이 문제를 그냥 아이들의 호기심, 장난으로 넘기기에는 당한 쪽의 상처가 너무 큼을 느낀다. 더 깊게 생각을 해본다면 가해 학생들 또한 이 사회의 피해자기도 하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문화에 쉽게 빠져드는 아이들.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형제가 없다보니 아이들은 가정에서부터 나누고 배려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들. 우리 어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음을 느낀다. 얼마 전 <못된 장난>이란 책을 읽고 가슴이 아팠던 생각이 든다. 주인공 자신의 가족에 감사하고, 뭐든지 열심히 하던 스베트라나가 왕따를 당하면서 변해가는 모습들.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려 했던 그 아이의 다친 영혼을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아르네가 남긴 것> 제목 그대로 아르네가 남긴 것(유품)을 정리하면서 한스의 가족이 그와 함께 생활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를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한다. ‘아르네’라는 이름만 들어도 맑고 둥근 눈동자를 가진 아이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족이 모두 자살을 시도했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르네를 한스의 집에서 양육하게 된다. 아르네의 아버지와 친구였던 한스의 아버지는 함께 바다를 누비던 사람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한스는 아르네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만 한스의 동생들인 라르스와 비스케는 아르네를 경계한다. 그리고 아르네가 그들의 세계에 함께 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몰차게 그를 경계선 밖으로 몰아낸다. 그들에게 아르네는 이해할 수 없고, 그냥 재수없는 아이, 우리랑 다른 아이일 뿐이다.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파도와 바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 영혼이 눈처럼 흰 아이의 마음을 살인자인 칼룩씨와 룽비츠 선생님은 알지만 또래 아이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르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자신이 꾸준히 모아온 100마르크의 돈을 아낌없이 폐선을 고치는데 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작은 실수로 그 배가 가라앉은 사건으로 아이들을 아르네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터가 달린 다른 배를 사기 위해 물건을 훔치는데 아르네를 끌어들인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큰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아르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뛰어넘지 못하는 영혼이 아픈 아이 아르네가 곁에 자신을 믿어주는 한스라는 존재가 있었음에도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나이에만 가능한 또래집단의 의미는 크다. 그 시기에는 또래집단이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자리 잡는다는 것을 어른들이 이해해야한다. 급식실에 갈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에도 아이들은 함께 한다. 그런 아이들의 행동이 우스워 보이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독일 전체의 상처를 다루면서도 주인공들이 극에 다르는 파멸을 당하지 않게 배려하는 지크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에서와 달리 아르네는 죽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독일어 시간>에서 최대 피해자는 경찰관 예프젠도, 화가 난젠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른이 아니라 예프젠의 아들 지기 예프젠이었다는 것. 항상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것을.

YES마니아 : 플래티넘 a****q 2010.05.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