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장난 시계도 2번은 맞는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게 이뤄질 수 없죠. 좋은 장면을 만드는 것은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맞춰 이 책은 한 번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른 분의 추천으로 구매했는데 읽어볼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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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코드들이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저자가 20가지의 시각코드에 하필이면 영화라는 특정한 예술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영화 속 시각코드는 특별한 조건들(영화의 줄거리, 사운드, 연기, 미장센 등)과 맞아떨어지는 한정된 상황 속에서만 그 의미가 유효하다는 것. 이는 마치 훌륭한 건축물이 주변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빛을 발하는 것처럼, 시각코드 또한 영화 속 모든 조건들과 완벽히 조화를 이룰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각코드를 앞세워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에는, 주변경관을 배재한 채 건축물만의 가치를 판단할 때와 같은 비약의 위험성이 뒤따른다. 자연스레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0개의 시각코드에 사로잡혀 (영화 맥락에서) 보다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를 들어보자. ‘사각형’이란 시각코드가 있다. 활용에 따라 사각형을 무궁무진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책 속에서 저자가 주목한 사각형의 의미는 ‘단절’이었다. 가령 어릴 적 두려운 가상의 존재로부터 숨기 위해 네모난 이불로 몸을 감쌌던 경험은 ‘공포로부터의 단절’ 즉 ‘안전감’을 상징하며,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네모난 감옥의 이미지는 ‘소통과의 단절’ 즉 ‘고립감’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납득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절’이란 연상이미지가 ‘그저 사각형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것일까?’ 본질을 향해 한번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우리가 ‘사각형’을 통해서 느끼는 단절감은, ‘사각형’이라서가 아니라, 사각형 모양의 ‘폐쇄된 프레임’ 속에 대상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불이라는 테두리 안에 우리의 몸이 위치하기에 안전함을 느끼고, 감옥이라는 프레임 안에 수감되기에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폐쇄된 프레임(테두리 속 닫힌 공간)’이 보다 본질에 가까우며 ‘사각형’은 그저 부차적인 모양일 뿐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폐쇄된 프레임을 적시에만 활용한다면 그 모양이 어떠하든 동일한 단절감을 전달할 수 있으리란 것을 의미한다. 네모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어린 아이의 이미지와, 동그란 우물 속에 빠진 어린 아이의 이미지에서 동일한 고립감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각형을 ‘단절’로, 그와 대비되는 원형을 ‘포용’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해석 방식에 무작정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사각형뿐만이 아니었다. 수평선과 수직선, 곡선과 대칭, 통일, 색상 등의 시각코드들에서도 비약적 해석들이 등장했다. 본질과 주변경관은 간과한 채, 그저 독립적인 건축 요소 하나하나만을 분석했기에 뒤따르는 비약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음을 움직이는 건축요소 20’에 집어넣고, 그 근거를 ‘스테인드글라스가 전주 전동성당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격이다. 정작 전동성당에서 몇 걸음 떨어진 한옥마을의 한옥 건축물들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며 시각코드의 비밀을 위풍당당하게 제시하는 제목과 서문에서의 포부와는 달리, 책의 전반을 이루는 논리적인 근거는 포부에 미치지 못한 채 희미해져가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희미해져가는 이 책의 인상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나에게, 보다 나은 영화 감상법을 기대했던 독자인 나에게 유독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