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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상고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편년체식의 년대순으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법도 있고, 역사적 한획을 장식한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역사상고방식에서 특히 역사인물의 발자취를 따라잡는 방법은 한 인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상고하는 방법이라 그 재미가 솔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는 이이화선생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의 대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저작은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 라이벌 관계의 인물을 고찰함으로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이들 인물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성향에서 정치적 입장까지 두루걸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곡해하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면들때문에 역사의 주역이 사람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지 않을까 한다. 이번 책에 나오는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보면 한국사에서 이들을 빼놓고선 역사를 논단할 수 없을 만큼의 비중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각자의 개인적인 신념과 정치적인 노선의 색깔이 아주 강렬한 이들로 자기방식대로 시대에 순응하였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 인물들이다. 그러다보니 때론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적을 만들고 때론 죽음까지 같이 가는 영원한 동반자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자기신념이 강한 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추구하는 노선이외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논리로도 그들을 승복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결국 라이벌관계에 있는 당사자 사이를 극한의 관계로 이르게 한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도전과 정몽주일 것이다. 또한 김춘추와 김유신같이 이와 잇몸의 형국을 가지고 한 시대를 이끌어갔던 이들도 있다. 눈빛만 봐도 그 뜻을 알 수 있을 만큼 그들은 공통된 목표를 향해서 그 뜻을 같이 하여 역사에 길이 남게 된 경우이다. 이렇듯 역사는 양극단의 라이벌들을 양산해 놓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제는 수정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극히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어떤이가 正이고 어떤이가 不라는 식의 역사적 시각은 역사자체 내지는 그 인물에 대한 인식에 왜곡을 가할 소지가 많은 것이다. 결국 이들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점,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자칫하면 이러한 시각은 역사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시각과 왜곡된 사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종직과 유자광, 이순신과 원균이지 않을까 한다. 조선성릭학이 대부격인 김종직과 간신의 대명사인 유자광,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 그리고 그의 전과를 폄하하고 방해했던 원균이라는 극한적인 평가가 사실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과연 진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김종직이나 이순신을 폄하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점,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의 조절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인물을 통해서 바라보는 역사가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주입된 역사관은 권력층의 지배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의 경우 성리학의 대부인 김종직에 대한 평가가 과대포장 되었던 것이고 근현대에 이르러 독립투쟁과정과 군사정권하에서 이순신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각이 지금까지도 지배적인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가 역사인물에 대한 접근은 이렇듯 편협되고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면 항상 제자리 걸음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고 후세에 그 영향을 끼친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이기 이전에 그들 또한 우리가 다르지 않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고 이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인물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부정적이었던가를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시각에서 그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 그이면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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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괴테와 한국(동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다산 정약용을 비교한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괴테와 다산,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 익숙한 이름이지만, 둘을 붙여놓으면 낯설 뿐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동시대인인 두 사람의 역동적인 삶과 방대한 사유체계, 학문, 철학 등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것 같던 두 인물이 동서양의 지리적 조건을 뛰어넘고 시간을 초월하여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살아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만약 둘이 만났더라면 사상과 학문이 잘 통하는 동지적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대결을 벌여야하는 라이벌, 혹은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정적 관계의 인물들을 각기 2명씩 대비시켜놓고 있다. 일전에 읽었던 다산과 괴테를 다룬 책 만큼 흥미롭고 신선하다. 70명의 인물을 소개하는 이 책에는 조선 시대 인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인물이 대부분이나 예전의 맹목적인 기준이나 판단을 버리고 저자 나름의 가치판단에 따라 인물을 재조명하고 있는 점이 다른책과 구별된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대정신에 따라 충신이 간신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충신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충신으로 추앙받았던 성삼문이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충신이고 역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와 변절자로 알려져 있는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선후배로 같은 길을 걷다가 끝내 정적이 되어 갈라선 정몽주와 정도전을 심도 있게 다루며 임금 한 사람이나 한 왕조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그 왕조에서 기릴 수 있으나 역사에서는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는 말한다. 누가 진정 백성을 위하고 봉사했느냐를 가지고 충신이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하는데 우리의 평가 방식은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에 의하면 권력의 암투라는 사실을 감춘 채 정몽주의 충절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정도전에 대한 지나친 헐뜯음은 개혁의지마저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정몽주와 정도전 외에 조선의 대표적 충신과 변절자를 찾으라면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성삼문과 신숙주를 말할 것이다. 출신 배경과 입신 과정, 실력까지 비슷했던 두 사람은 두터운 친구 지간이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로 갈림길에 서고 맞수가 된다. 역사는 성삼문을 청사에 빛나는 충신의 표본으로, 신숙주는 변절자의 표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성삼문을 좋아하는 나도 수긍이 가는 견해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일리 있으나 성삼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처음이라 그런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성삼문과 신숙주와는 정반대로 평생지기로 남은 김인후와 유희춘, 임진왜란 속에서 남다른 우정으로 서로를 격려한 유성룡과 김성일의 향기로운 우정도 이야기 한다.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손곡 이달과 개화파의 선구자 강위는 술을 매개로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로 승화시켰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인물로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으로 꼽히는 신사임당과 황진이를 남존여비 사회의 두 희생양이자,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 맞수로 대비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신사임당과 황진이가 왜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가? 두 여인의 판이하게 다른 삶을 현대의 시각에 의해 재조명한 부분은 진정한 여자의 행복을 묻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름 뒤에 한과 불행을 감추고 산 여인이다. 영원한 어머니 상으로 추앙되는 여인도 평가의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애처롭고 불행한 여인이 될 수 있고, 서녀 출신의 기생 황진이는 개성과 정열을 불태우며 여성 해방, 인간 해방을 구가한 여인이 될 수 있다. 두 여인은 자신들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이이화 선생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인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만나고 갈라서고, 적이 되고 동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유기적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이 웃고 울었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삶을 오래된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을 듯싶다. 강산이 바뀌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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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명장면을 연출한 영원한 라이벌과 동반자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수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동지도 있을것이고 나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줄 적과 같은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거 같다. 가급적이면 다른사람들과 안좋은 모습으로 마주하는걸 피하려고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싫어한다거나 나를 싫어하는 적과 같은 사람은 있는거 같다. 하긴 사람 사는게 맘대로 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과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던거 같다. 원래 뛰어난 사람곁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도 있고 시기와 질투를 가진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 동지였고 적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역사과 관련된 책을 읽을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인데 역사라는게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것이기에 왜곡되는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므로 평가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그 시대에는 충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지금 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여전히 충신일수도 있겠지만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은거 같다. 이 책에서도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순신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군 장군으로 추앙받고 있고 그에 비해 원균은 평가절하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 원균에 대한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듯하다. 그동안에 자세한 것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순신이 진정한 영웅이었는지 말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분명히 결점이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인간 이순신은 그동안의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와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역사라는게 주관이 들어갈수밖에 없는 것이고 난중일기에 대적할 원균의 글이 없기에 어쩔수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순신과 원균의 이야기 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을 대비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몽주와 정도전의 이야기였다. 일반적으로 정몽주는 충신의 표상으로 자리잡아있고 정도전은 역적으로 몰려있다. 이것 역시 태종 이방원의 입장을 고려해 판단된것인거 같다. 사실 정몽주는 이성계와 더불어 양대 계파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몽주 역시 권력에 욕심이 있었고 이성계를 제거하려 하였지만 결국 패배한것이다. 이러한 정몽주가 충신으로 추앙받을 정도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할거 같다. 그리고 지나치게 저평가 되어있는 정도전은 그 당시 훌륭한 개혁가라고 할 수가 있었다. 만약 왕자의 난이 일어나지 않았고 이성계가 보위를 물려주려했었던 막내 아들 방석이 왕위를 물려받아서 나라를 이끌어 갔다면 아마도 정도전은 대개혁가이자 충신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외에도 이 책에는 더많은 친일행각을하려고 노력했던 친일파 라이벌 송병준과 이용구의 이야기라든지 수양대군과 김종서, 김부식과 정지상, 김춘추와 김유신, 원효와 의상 등 많은 라이벌 관계, 동지 관계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를 통해 더 나아지기는 커녕 왜 반복되는 것인지 의문시 된다. 분명 그것은 잘못이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결국 같은 행동을 하게 되니 말이다. 과거시절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결국 매한가지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것을 느끼게 해주는거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우리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는 미래에 쓰여질 역사가 판단해줄거라 생각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 책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 책이 인물로 읽는 한국사 9편이라고 하는데 1편부터 8편까지의 이야기도 빠른시일내에 접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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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참으로 책의 제목을 잘 붙인 책이다. 사극을 봐도 일반 역사서들을 봐도 늘 견제하는 인물들이 있고 사상이 달라, 혹은 어쩔 수 없이 반대파에 설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 귀인도 아니 시대의 원수도 아니다.
1부의 권력욕과 질시인가에서 끝내 피를 부른 김부식과 정지상, 권력이 갈라놓은 정몽주와 정도전, 왕위찬탈을 둘러싼 수양대군과 김종서, 사화의 불씨를 당긴 김종직과 유자광, 당파갈등의 정인홍과 이귀, 영원한 명장과 졸장 이순신과 원균, 저자는 어쩌면 이리도 잘 대조하여 인물의 성장과 갈등을 잘 써 놓았을까? 우리들도 이렇게 생각들이 다른 사람들 틈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삶이 무척 힘에 겹고 답답하다.
2부에서 같은 하늘 아래살 수 없는 허균과 기자헌, 허목과 송시열, 정약용과 서용보, 대원군과 민비, 김옥균과 민영소, 송병준과 이용구, 경쟁하고 싸우고 갈등하는 사람들 그리고 끝내 죽이고 마는 사람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이런 순탄치 못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후세에 있는 우리는 슬프다.
3부 내 뜻이 네 뜻이라, ‘휴~ 그래, 그래도 사람이 사는 낙은 있어야지’ 김춘추와 김유신, 원효와 의상, 김인후와 유희춘, 이이와 이지함, 유성룡과 김성일, 김우웅과 정구, 박지원과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나철과 오혁. 난 이들 인물들의 이야기 중에 박지원과 홍대용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박지원과 홍대용이 사(士)는 농공상의 윗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士)의 역할을 다하여 농공상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같았고 홍대용이 먼저 죽자 박지원은 직접 묘지명을 써서 위로한 것을 보니 참으로 마음 애리하다.
4부 시대를 맞든 맞수 성삼문과 신숙주, 이황과 조식, 민영환과 송병선, 문일평과 현상윤, 김구와 여운형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 혹은 벗으로 혹은 같은 뜻을 지녔으나 화합하지 못한 사람들, 여기서는 성삼문과 신숙주가 참 가슴 아팠다. 같은 동문이요 벗이었으나 한 사람은 새 임금을 용납지 못하여 순절하고 한 사람은 새로운 임금을 위해 충성으로 벗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
5부 세상 굴레를 벗으려는 이달과 강위, 신사임당과 황진이, 서양갑과 칠서, 허준은 마지막 을 장식하고 있다. 누구나 세속을 떠나고 싶어 한다. 또 세속을 이겨내려 노력한다.
끝으로 역사의 인물들의 영원한 라이벌과 동반자를 잘 엮어놓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읽어 볼만하다며 권해 주고 싶다. 하지만 인물로 본다면 개개인들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지만 비교한다고 많이 축소되어 나온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역사는 쓰는 사람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 이이화 선생님께서 새롭게 쓴 역사책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에는 아직도 해석되어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이화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속적인 연구를 하여 더 좋은 책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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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은 작가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을 한다. 특히 역사를 다룬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운 이이화 선생과 김영사의 역작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중에서 9번째 책이다. 작년 1월에 1권을 시작으로 해서 올해 2월까지 모두 10권의 책이 나왔다. 이이화 선생의 책과는 첫 만남이었는데 우선 읽기 쉬운 역사책의 출간이라는 대의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이이화 선생은 머리말에서 역사의 주역은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태적인 영웅사관에는 반대하지만, 또 지나온 유구한 역사가 특정 인물들에 의해서 진행되어져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민초들의 삶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기록은 사서에 실려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가장 가까운 조선의 역사만 하더라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1차 사료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이이화 선생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경쟁관계에 놓여져 있었거나, 혹은 목숨은 건 사투를 벌였던 또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격려와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던 다양한 인물군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인물들의 선정한 이유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 처음부터 책을 읽는데 <그대는 동지인가 적인가>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송병준과 이용구>였다. 구한말 대한제국을 일제에게 팔아넘기는데 있어서 가장 앞장섰던 이 두 인물에게 이이화 선생은 가차 없이 “매국노와 민족반역자”라는 레테르를 붙여 주었다. 작가의 서릿발 같은 재단이 그들에게 가해졌는데, 과연 이 친일주구들이 살아 있다면 어떤 변명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조선 초에 극렬하게 대립했던 수양대군(훗날 세조)과 김종서의 충돌은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숙부가 어린 조카의 제위를 찬탈한 쿠데타로 그 어떤 명분도 설 수가 없는 명백한 반역이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군권과 신권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보게 된다면, 일방적으로 수양대군의 전횡만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이런 이이화 선생의 문제 제기는 계유정난 이후, 단종 복위를 꿈꾸는 성삼문과 신숙주와의 관계에서도 재현된다. 조선 최고의 명군이었던 세종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성삼문과 신숙주의 관계는 계유정난을 계기로 갈라지게 된다. 국가/국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유가의 도의 차원에서는 성삼문의 충절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문화와 학문에 대한 기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숙주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과 이상에서의 괴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칼의 노래>에서 작가 김훈 선생은 일방적으로 원균에 비해, 이순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아무리 선조가 전후에 편파적인 논공행상을 했다고 하더라도 원균도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일등공신에 올랐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만약에 선조가 터무니없이 은상을 베풀었다면 조선조의 그 깐깐한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이화 선생이 밝힌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이순신과 원균 간의 갈등의 소지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순신이 자초했다고 한다. 그런데 후세의 평가는 한 사람은 성웅(聖雄)으로 추앙을 받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간웅(奸雄)으로 지탄을 받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가 있겠다. 작가가 대중적인 역사 읽기를 염두에 두고 저술을 해서 그런지 책 읽기에는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사를 전공해서 그런진 몰라도, 등장인물들을 좀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깊이 있는 역사의 라이벌들을 조명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라이벌 구조가 조선이라는 특정시대에 편중되어 있는 것도 옥의 티라고 할 수가 있겠다. 여러 유형의 라이벌들이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데, 특히 국난의 위기 중에 서로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들이 국가를 위해 간담상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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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이 책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역사서적이다. 그러나 그 접근부터가 여타의 역사서적과는 다르다. 소위말하는 '역사 뒤집기'방식의 접근이 가장 큰 특색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나에게 적이 누구인지 동지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나 이외의 후손들이 기술해 놓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동지와 적을 구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는 이야기가 되고, 재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 수양대군과 김종서,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조식...과 같은 수없이 많은 위인들의 역사서는 숱하게 봐왔다. 어릴적, 그러니까 한글을 깨치고부터 봐왔으니 그 횟수가 30년이 훌쩍 넘는다. 어릴때는 제일 먼저 줄 긋기를 배운 것 같다. 정몽주는 착한편, 정도전은 나쁜편과 같은 단편적 편가르기가 그것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다르다. 역사의 승자 또는 역사서 기술자에 의해 치우친 시각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뒤집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누가 좋은편인지, 누가 나쁜편인지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한발짝 물러서서 관조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묻는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이것이 이 책을 보는 이의 자세는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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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인구가 사는 지구, 그런 만큼 다양한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이미 만났던, 지금 만나고 있는,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 중엔 내게 득이 되는 사람도 있고 실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중엔 내 목숨을 노리는 적도 있고 나와 평생 뜻을 같이 하는 친구도 있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적과 동지의 관점에서 역사인물들을 살펴본 역사서이다. 저자는 역사인물을 접근하는데 있어 한 개인의 전기로는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물의 활동 영역 안에 등장하는 맞수나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역사 인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해 글을 썼다. 역사적 인물들이 적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왕위찬탈과 권력의 문제이다. 수양대군과 김종서, 김종직과 유자광, 정인홍과 이귀, 허목과 송시열 등등... 너무도 많다. 나와 뜻을 달리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그를 만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위의 인물들은 서로를 모략하고 죽이는 일로 문제를 해결했다. 역사 인물들이 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적대했던 것은 아니다. 내 뜻이 네 뜻이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던 경우도 있었다. 삼국통일의 유업을 달성한 너무도 유명한 김춘추와 김유신. 친구인 김인후가 죽자 그의 묘가 있는 담양에서 만년을 보냈던 유희춘. 대신과 야인의 차이를 초월한 이이와 이지함, 전쟁 중에 친구 김성일이 죽자 ‘평생 동안 지우는 오직 그 한 사람 뿐 이었다’며 통곡한 유성룡 등이 있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항상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정몽주와 정도전처럼 같은 뜻을 품었다가도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김우옹과 정구는 평생 동안 늘 같은 의견이었고 작은 마찰도 없이 지냈다고 한다. 살면서 이런 지기를 한 사람이라도 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항상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실상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만난다. 그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적으로 배척해선 안 된다. 그가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황과 조식의 관계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생관과 현실관이 달랐던 그들은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다. 서로를 압제하지도 죽이지도 않았다. 상대를 죽이는 일이 문제해결방식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제자들은 서로 분쟁을 일삼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의 역사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경쟁시대 살고 있다.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내가 올라갈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친구보단 적을 많이 만들게 되고 자신 또한 누군가의 적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경쟁하며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친구가 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볼 일이다. 물론 승부에서 졌을 땐 깨끗이 승복해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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