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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중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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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적으로 중국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기를 꼽자면 후한으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후한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삼국지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온갖 계략이 난무하고 왕조의 흥망성쇠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자치통감은 왕망의 '신'나라를 들춰준다. 전공자들이야 각종 논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시중 책에서 이렇듯 상세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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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적으로 중국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기를 꼽자면 후한으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후한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삼국지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온갖 계략이 난무하고 왕조의 흥망성쇠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자치통감은 왕망의 '신'나라를 들춰준다. 전공자들이야 각종 논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시중 책에서 이렇듯 상세한 이야기를 그것도 번역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8 2016.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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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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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권이 전한시대를 다룬 마지막 책입니다. 5권부터는 광무제 유수의 활약상이 본격 다뤄지더군요. 고제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왕망의 전횡과 황위 찬탈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하는데, 다만 유수가 혈통이 분명한 종실의 일원이며, 거병의 명분이 복벽에 있었고, 지난 시대의 바람직한 전통과 풍습, 시대정신을 가감 없이 계승하는 정책을 확고히 표방했기에 대체로 그 동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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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권이 전한시대를 다룬 마지막 책입니다. 5권부터는 광무제 유수의 활약상이 본격 다뤄지더군요. 고제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왕망의 전횡과 황위 찬탈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하는데, 다만 유수가 혈통이 분명한 종실의 일원이며, 거병의 명분이 복벽에 있었고, 지난 시대의 바람직한 전통과 풍습, 시대정신을 가감 없이 계승하는 정책을 확고히 표방했기에 대체로 그 동일성, 연속성(정통성은 물론)은 긍인됩니다. 사실 이 정도면 굳이 전/후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하나의 "한"으로 계산하면 그만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남송의 경우는 지리적 기반, 체제가 표방한 경제 정책, 정권의 구성 성분까지 전대와 확연히 차이가 났기에 동일성까지 인정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르고, 5호 16국의 그 숱한 전/후, 남/북 왕조들이야 이름(국호)만 같을 뿐 도저히 연속성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도중의 "신(新)"은 그저 무시하고, 대가 끊겨 방계 종친이 난국을 수습하고 적통을 이었다고 여기면 충분하죠. 다만 구태여 구조적 차별성을 찾자면 관중을 벗어나 낙양으로 천도를 했다는 점에서 지배계층, 경제 정책 면에서 불가피한 변모를 겪었다는 점 정도겠습니다.

여튼 후한의 볼 만한 치적은 5권에서부터 살필 수 있고, 이 4권은 갖은 시련과 도전 속에서도 용케 명맥을 잇던 유씨의 천하가 비로소 황혼을 맞는 처연한 과정이 기록됩니다. 중국인들은 최근 산업화에 성공하며 <대국굴기>라는 기획을 통해 "왜 각 시대의 패권국은 영구히 헤게모니를 유지하지 못하고 미래권력에 이를 내 주어야 했는가?"를 집요히 탐구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거기서 시원한 답이 나왔다고 보기 힘든데, 중원의 민중과 실력자들이 한 마음으로 "유씨가 다스리는 질서에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겠다"고 맹세한 바 있는 이 안정적인 시스템이 몰락의 길을 걷는 과정을 살피면, 오히려 더 실용적이고 체감이 잘 되는 답이 나올 수도 있겠어요.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은 법이니 말이죠.

왕망은 패륜의 역적으로 중화 사관에서 많은 비난을 받는 사람입니다. "망탁조의"의 첫손에 꼽히는 배덕의 화신으로 유취만년의 표본처럼 인식되지만, 저는 그의 초기 행적에 주목하고 싶더군요. 이 사람은 명문 거족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외척으로 크나큰 권세를 이미 누렸으며(느닷 출세한 업스타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학식이 높아 일각에서 성인 군자라는 평까지 들었던 출발이었습니다. 중국은 본디 어리고 사려 분별이 떨어지는 군주를 보좌하여 명재상이 살림을 보는 풍토가 일반화한 나라입니다. 심지어 군주더러 "재상직에 바른 인재를 등용하여 넉넉히 권한을 위임함"이 중요한 덕목임을 명시적으로 상기시키기까지 합니다. 제가 며칠 전 읽은 추리소설 <쇠종 살인자>에서도, 외부 액자로 인트로를 삼는 1인칭 화자가 자신을 명나라때 지식인으로 밝히면서 "태평성대"임을 자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진주인공 적인걸[=디 공]은 당나라 때 사람). 명나라에 그토록 암군들이 많이 출현했음에도 경제생산량이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북로남왜의 침공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토목의 변, 경술의 변(타타르 알탄 칸의 북경 siege) 등을 빼곤 체제 차원의 위기가 없었다는 점은, 중국이 얼마나 세련된 관료제의 덕을 크게 본 문명인지 넉넉히 실증하는 예입니다.

기본만 해도 어차피 부귀영화를 누릴 만큼 누리고 평판은 평판대로 지킬 수 있던 사람이 왜 무리수를 뒀을까요? 예컨대 히틀러가 체코 합병, 폴란드 정복, 파리 함락 등 연이은 대박의 성과를 잘 지키지 않고 막무가내 행보를 보이다 망한 건, 그가 본디 배운 것 없고 실력이 부족하며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비천한 밑바닥 출신이었던 탓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망은 황실만큼이나 존귀한 대 화족의 혈통인데, 왜 "부자 몸조심"의 신중한 선택을 하지 않고 이런 예측 불허의 악수를 연발했는지는 참으로 의문입니다. 육조 시대에 명문 거족들은 황위를 무장 가문에 넘겨 주고 자신들은 예술과 학문에 탐닉, 몰두하거나 명예를 지키는 데로 기울었습니다. 이게 어쩌면 이 시절 왕망의 행보를 지나친 반면교사로 인식한 탓은 아닌지 독자로서 저 혼자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v*****7 2016.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