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리너의 지휘는 아주 모차르트답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로 난 "으헤헤" 웃으면서 들었다. 너무 좋아서. 그는 언제나 모차르트의 아기자기하고 달착지근한, 섬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면을 잘 표현한다. 가끔씩 템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선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세 반 담의 피가로라니, 왠지 불안하지 않은가? 하지만 의외로 이 녹음에 참여한 가수들 중에서 그가 가장 돋보인다. 그의 대머리에 키스를 퍼부어 주고 싶을 정도다. 제목은 "피가로의 결혼"이지만 실제로 피가로보단 수잔나가 주인공같은 오페라이고, 시니컬한 피가로 역을 오버하지 않으면서 훌륭하게 불러내는 가수도 많지 않다. 그런데 반 담은 남자답고 재기발랄한, 목소리만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피가로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론 "최고의 피가로" 리스트에 추가했다. 문제는 하염없이 구슬픈 목소리의 헨드릭스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엾은 수잔나. 헨드릭스가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Via resti servita"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재밌다기 보단 가슴이 아프다. 가장 실망스러운 건 라이몬디다. 대본은 이탈리아 어로 되어 있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의 통념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가수 라이몬디는 너무나 김빠지고 진부하고 매력 없는 백작이 되었다.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준 이하다. 루치아 폽의 백작부인이야말로 평범하다. 발차의 케루비노는 오버하는 느낌이다. 다른 배역들도 특별히 빠지진 않지만 동시에 특별히 주목할만하지도 않다. 장점으로 시작해서 단점으로 끝났는데, 어차피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피가로의 결혼" 음반은 없다. 라이몬디만 제외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녹음이다. 컴팩트 오페라 시리즈이니만큼 공간을 조금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음반사가 리브레토를 처음부터 따로 판매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러 개의 "피가로의 결혼" 녹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클릿이 중복되는 게 전혀 반갑지 않다. 리브레토가 별매된다면 음반 가격도 낮아질테고, 따라서 오페라 애호가들이 3장짜리 오페라 음반을 사는 데 부담이 덜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