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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쯤이었던가...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말씀을 놓고, ’과연 이 말씀 대로 살 수 있단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회의했던 적이 있었다. 될듯 될듯하면서도 낙심하고 넘어질 때면 산상수훈의 말씀은 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말씀 처럼 느껴졌고, ’주님께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명령을 주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낙심한 자들을 향해 오스왈드 챔버스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력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결국 어떤 역경을 만나 우리의 무지로 인해 어리석음의 목이 부러질 때에야 우리는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와 그 분께 손을 벌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소유가 아니라 가난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럴듯한 결단들에 앞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철저히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시작도 할 수 없어요... 이런 고백을 한 이후에야 주께서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가난함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영적 전방에 도착한 것이다." (21-22p) 너무도 놀랍다! 책의 표지에서 이 책을 설명하는 영적표약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산상수훈 앞에서 얼마나 낙심하고 또 좌절했는가? 챔버스의 영적인 해석처럼... 바로 이러한 낙심과 좌절으로 철저히 가난한 심령이 된 자에게 주님의 위로와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에 철저히 무너진 자아를 성령님께 온전히 위탁할 때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첫 걸음을 떼는 것이다. 이 책은 산상수훈의 내용을 자세히 강해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산상수훈의 말씀 안에 담겨진 영적인 메시지들을 직접 삶으로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힘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강력추천!! 또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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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보는 책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당시에 예수님은 많은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전했지만 그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그 뜻대로 따랐을까? 이 산상수훈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해석되어지기까지는 너무나 큰 수고가 담겨져야 하는 것 같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문자적인 가르침만을 전달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글로서만 전달 될 수 있는 것을 떠나 예수님과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주고 글속에 담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훈련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가르침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은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믿는다는 말과 응답한다는 말을 따로 사용한다. 그것은 믿는 다는 말과 응답한다는 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믿는 다는 말은 단순히 생각이나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하며, 응답한다는 말은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믿고 깨달았으면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은 짧은 잠언과 같이 소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간결하며, 명확하며, 그러면서도 강하게 선포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깨달아지는 깊은 감동으로 인해 내 맘에서 스스로 울리는 자성의 소리 때문이다.
그 자성의 소리는 아마도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외쳤던 곳곳에서 일어났던 자성의 소리와도 같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음성.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음성. 죄악 속에 살아간 사람들에게 천국이 다가왔음을 전하신 전도자의 음성을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는 듣고 있다. 이천 년 전의 감동의 소리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을 통해 이천 년 전의 메시지가 아닌 지금 현재 나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도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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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네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간절이 소망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말뿐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씀하실 뿐인데 지레 겁을 내고 몰라요.. 아니에요 하는 일이 부지기 수인거 같습니다...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애를 섰습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저는 어느순간에 내가 찾으려는 메시지를 찾고 있었지 정작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힘들어요... 나만 힘든거 같아요.. 왜 이렇죠??? 수없이 질문하면서 이질문들의 답을 찾아 헤메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강요도 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나를 존중해주시면서 그래 니생각이 그것이냐 하시며 지켜봐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치만 가끔 내가 쓰러져서 울고 있을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시는 정도만 하시는 분이였습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위해선 정말 내안의 기질을 예수님으로 바꾸어야 하는것을 압니다... 온전히 모든걸 내려놓고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살아야 하는데 나의 성품이 너무도 강해 주님이 설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책을 통해 주님께서도 그걸 안타까워 하시며 제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내 입에서 내가 현재 이곳이 아닌 다른 환경에 처해 있었더라면 진짜 잘했을텐데.... 라는 생각을 저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이고 이곳에서도 잘하지 못했으면서 어디서 다른곳을 쳐다 보느냐 말씀하시더라구요...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좁은 문일지라도 가겠습니다 해놓고선 주님의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을때 주님 아직 제 처지가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어떻게 아무 대책없이 하라 하시나요 불평했습니다... 그건 나의 때였을 뿐이였고 주님의 때는 나의 생각과 천지 차이라는 것이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조금만더요.... 자꾸 나의 때만 얘기한다면 주님의 때는 더이상 내게 찾아 오지 않을꺼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온전히 주님과 대화를 원해요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묵상하지 않은 저였습니다.. 또 주님과의 교제가 조금이라도 된다면 어느새 나의 교만이 고개를 들고 웃고 있었습니다.. 감히 건방지게 말이죠.... 그러면서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구 있어... 그런데 저사람은 왜그렇치? 주님의 사랑을 바로 알기나 하는것일까??? 이렇게 누군가를 정죄하고 있더라구요.. 남의 눈에 티를 보지전에 내눈의 들보를 먼저 빼라 하셨는데... 남을 정죄할때 그것이 내것임을 깨달으라 하셨는데 미쳐 깨닫지 못해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 이책 산상수훈의 말씀들이 정말 내삶을 지적해주는 채찍과도 같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누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내자신을 갈아 엎는 연습을 해야 겠습니다... 정말 귀한 시간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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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챔버스란 이름은 많은 목사님들 설교의 예화로.. 그리고 또 여러 신앙서적들의 인용문으로 인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작 그분의 책을 읽어보았는가를 생각해볼 때 한권도 읽지 않았었다. 물론 그분이 직접 쓰신 책은 한권 뿐이라지만 그 부인에 의해 그분의 설교가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말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스펄전의 아래서 10대에 회심하고 여러나라를 돌며 복음을 전한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 [산상수훈]은 그의 이름에 걸맞게 성경적이면서도 쉽게 쓰여진 책이다.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의 8복을 시작으로 7장의 반석위에 지은집까지 각 장은 아예 성경본문을 가져와 먼저 본문을 묵상하게 해주어서 먼저 산상수훈에 흠뻑 젖어들고서 오스왈드챔버스의 글을 읽게 되어 더 좋은 것 같았고 각 장마다 소주제를 붙여서 본문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한글성경에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산상수훈에서 팔복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 팔복이 산상수훈의 전부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것이 팔복의 시작이자 일부분이며 예수님의 또다른 말씀들이 많음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너무도 성경에 무지했었나 보다
이 말씀들은 2000년전에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전부 인간들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이자 영적인 내용들이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들인 것 같다.
구약은 율법.. 그리고 신약은 은혜로 이분하여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신약이라해도 구분짓는 건 잘못된 생각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2000년전의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그리고 1세기전의 영적 스승인 오스왈드챔버스의 살아있는 음성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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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 오스왈드 챔버스 저, 스데반 황 역, 토기장이 “너는 구제 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는 말의 뜻이 단순히 선을 행할 때 타인에게 알리지 말고 살며시 행하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뛰어 넘어 남을 구제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되어 스스로 착한 일을 하고 있음을 모를 만큼 계속 구제하라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내 자신의 무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이와 같이 주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며 칭찬하시는 선행은 사람들이 그 일을 행하고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선행들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금 내 자신이 베풀고 있다고 여기는 선행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산상수훈」에 관한 책들은 나름대로 많이 접해보았고 여겼다. 그러던 중 이름도 조금은 생소한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자를 소개하는 글 가운데 ‘자기 스스로는 절대로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서 힘과 평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자신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셨음을 깨달았을 때, 엄청난 변화를 체험케 되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자유 함을 얻는 순간이었다는 말은, 매우 당연한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복음의 진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총 5부 17장으로 구성된 내용들은 산상수훈의 내용들을 단순히 분해한 수준이라기보다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으로 깨닫고 행함으로 옳길 수 있도록 돕는 귀한 내용이었다. 산상수훈을 소개한 수많은 책들을 접해보았지만 이 책을 통해 산상수훈의 오묘함과 설득력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연약하고 죄인 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할 수 없지’ 하며 약을 올리기 위함의 산상수훈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는 지킬 수 없는 가르침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님을 닮은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는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가르침임을 우리에게 알려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기쁘게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주님이 도우심을 바라며 살기로 다짐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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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립니다-My utmost for his Highest. 오스왈드 챔버스의 가장 유명한 책의 이 타이틀은, 역시나 내 영혼을 뒤흔드는 ‘산상수훈’이라는 폭탄과 같은 이 책에도 그 철학적 느낌이 어김없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삶, 나의 목숨을 걸고 그분을 위해 살고자 하는 그 열정 말이다.
솔직히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시작하는 산상수훈은 그동안 피하고 싶은 말씀이었다. ‘오른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 ‘5리를 같이 가고자 하거든 10를 동행하라’, ‘속옷을 취하거든 겉옷도 주라’…아무리 진리와 선을 사수하며 살아가고자하는 그리스도인이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세상이지만, 이런 류의 말씀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때문에 나는 그동안 이 말씀이 나의 영혼에 말하고자 하는 그 진의를 넘겨짚고, 아니 일부러 외면하고,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는 갈라디아서 말씀을 이용하여, 산상수훈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하려는 말씀이다, 혹은 율법주의자나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한 말씀이다 정도로만 치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로부터 시작하는 산상수훈은 분명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가..’ 이런 생각과 함께 산상수훈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산상수훈은 분명 불신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임을 나의 양심은 부인할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나의 영혼을 뒤흔드는 이 폭탄과 같은 ‘오스왈드챔버스의 산상수훈’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나에게 지키라고 주신 말씀임을 이 책은 명백하게 제시하여주고 있다. 물론 때때로 문자 그대로의 적용 보다는, 성령이 보여주시는 그 깨달음으로 진의를 보게될 때-가령 오른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는 말씀은 내가 수치를 당할 때 분노하지 말고 나의 예수의 제자됨을 보일수 있는 기회를 삼으라는 깊은 뜻과 같이- 산상수훈이 나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가르침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수 있다. 하지만 그 전체에 흐르는 원리는 분명 그 말씀의 나의 삶에의 적용인 것이다. 내가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써 내 안에 거룩한 성령이 계시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내 삶에 적용할때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이 진리의 정수를 외면하고, 겉으로만 말씀을 이해하는데 만족하며 역시 똑 같은 바리새파적인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영적인 폭탄이었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였던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입으로만 말하면서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던가?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나의 최선을 그분에게 바치며 살아야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밤잠도 설쳤으면서도 그분의 면전에 다가가기 위해 밤잠을 설쳤던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이 모든 나의 삶을 참으로 회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초상화에 보이는 40대의 나이에 소천한 오스왈드 챔버스는 여위고 갸냘픈 모습을 띠고 있건만, 이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은 예수님에 대한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자했던 오스왈드 챔버스의 그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바로 최고의 하나님을 향해 나의 최선을 드리고자 했던 그의 폭탄 같은 열정의 또 하나의 정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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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3년 동안의 사역 가운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는 말씀은 단연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1절~12절)일 것이다. 이 산상수훈이 오랫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책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은 오스왈드 챔버스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산상수훈의 속 깊은 메시지를 들어볼 수 있다. 저자의 깊은 주를 향한 사랑과 통찰력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띠지에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산상수훈의 메시지-그러나 주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써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저자는 지킬 수 없는 산상수훈에 대해 어떠한 메시지를 담아낼까? 정말 인간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킬 수 없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성령’이었다. 내 의지로는 지킬 수 없고 오로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메시지는 산상수훈 안에서 발견한 성령님에게 사로잡히는 방법이다. “그분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변함없는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이다.(19p)"에서 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기본 줄기로 책을 써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깊이 있는 말씀에 대한 통찰을 볼 수 있다. 산상수훈에 대한 설명보다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될것이다. 저자가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주님의 산상수훈의 처음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이다. 이것은 나를 낮추고 나를 버림으로서 오로지 주님께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가난한 심령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실 주님께서 이것을 원하시고 계시지만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애초 인간의 삶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한번이 아닌 우리의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산상수훈을 지키면서 살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저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을 때 산상수훈이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은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야만 성령님에 사로잡힌 삶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은 “성도의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순함이다.(30p)" 이 것 저 것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을 믿는 단순한 믿음의 삶을 원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깊이 있는 통찰의 메시지가 기도와 말씀의 필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나 또한 그 요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라갈 준비가 되었다. 이제 가난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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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20세기의 뛰어난 목사이자 교사였던 사람. 43세의 나이로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를 나는 44세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산상수훈]이라는 책을 통해 그를 만난 나는 그토록 잘 알고 있던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내가 얼마나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가슴 아프게 느끼고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주장은 단호하다. 우리가 산상수훈대로 살 수 있으려면 먼저 중생의 기적이 일어나야 하고,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내면의 세계를 바꾸시도록 해야 하며 곧 나의 유전형질이 예수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 내가 온전히 죽어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씀 속에서 내 자신의 믿음 없음이, 세상과 타협하는 위선이, 온전히 내려놓지 못함이 절망스러울 때, 그는 또 말한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된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거룩하게 할 수도 없으며 내 자신에게 성령을 줄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특히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4부의 1장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한다"였다. 비판하지 말라는 마태복음 7장의 말씀에 대한 설교인데, 그 부분은 바로 내가 올 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구였기에 더욱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성령께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그것은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지, 비판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옳게 만들어놓으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위해 기도할 책임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를 제거하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나는 진실로 회심했는가. 나는 진짜인가. [산상수훈]은 절망과 좌절만 안겨주는 메세지가 아니다. 내가 거듭나고 성령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메세지다. 인간의 도덕성과 의지로는 절대로 되어질 수 없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완전히 부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유전형질을 받을 때 능히 지켜낼 수 있는 메세지다. 내 안에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깨달아 예수의 기질로 바뀐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지...
귀한 책을 펴내신 토기장이와 이 귀한 메세지를 번역해주신 스데반 황 목사님. 감사합니다.^^ |
|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선포해 주신 산상수훈, 사실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는 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군인들이 억지로 아무나 잡아서 짐을 지고 오리를 가게 하면 누구든지 그 말에 복종해야 하는 법이 있는 줄을 어찌 알았으리요. 그러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더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머리로, 지식으로, 경험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데는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스왈드 챔버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산상수훈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어떻게 사람의 경험과 이해력,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느냐?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말씀이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오스왈드 챔버스는 산상수훈에 접근하고 있다. 사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견해에 나도 찬성하는 바이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해가 잘안되기는하지만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인간적으로 많은 노력들을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설사 사람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할지라도, 사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오스왈드 챔버스는 산상수훈을 최고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힘들고 어렵게 이해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알고 나면 기쁜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풀리지 않던 자물통의 비밀 열쇠를 발견한 것처럼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설교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오스왈드 챔버스가 명확하게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5리를 가야 되는 상황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손을 끊어내고, 눈을 파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문자적인 것은 아닐텐데, 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다른 어떤 책보다도 실제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어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책이다.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 산상수훈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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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는 제목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 줄로 요약하는 그러한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고 술술 나가는 것을 누구나 원할 것이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은 먼저 책을 대했을 때에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책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서서히 읽으면서 넘길때에는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내용이 만만치 않다. 일단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압박감이 기독교인들의 목을 옥 죄다시피한다.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그 만큼 쉽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청교도 신학의 최종주자라고 하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쓰신 산상수훈은 이 책의 약 3배 가까운 분량을 할애해서 정리하셨다. 그런데, 챔버스 목사님은 이것을 한 권으로 약 200 페이지 정도의 내용으로 기록하셨다.
그러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쉬운 것인가? 먼저 깊이 있게 읽고,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맛을 서서히 음미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자의 바른 해석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바로 전달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느낀점은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꿔어야 보배라고 하였다.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다.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먼저 읽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묵상하고, 그 가운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을 통하여 깨달음을 더하여 준다. 그리고, 새로운 감동을 주면서 신선하게 다가옴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말씀을 깨달음으로만 끝나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실천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주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거룩한 부담감을 갖지 아니하고 지식적으로만 이해하고, 떨쳐 버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그 분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는 그 부담감에 응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자가 제시한 바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혹자는 이야기 한다. “‘산상수훈’은 평범한 신앙인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부분을 담고 있다고” 물로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하여 동의 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역시 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말씀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게 될 때에,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힘을 더해 주실줄로 믿는다.
우리 주님이 산위에서 선포하신 산상수훈에 대한 부분이 부담되고,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다가와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가? 이 책을 대면하라! 그리고, 읽고,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라, 그 말씀에 응답하기를 작정하였을 때에, 이미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는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며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루게 하실 줄로 믿는다.
실패하더라도, 미리 자포자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가 중간에 실패하고 중단하더라도,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가게 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줄로 믿는다.
오늘 산상수훈을 실천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자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