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우 예순 한 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데츠카 오사무의 영향력은 단지 일본 만화/영화계에 머물지 않는다. 놀랄 만큼 부지런하고 다양한 분야의 만화를 그려 댄 그는, SF, 모험물, 순정만화, 로봇, 성별이 바뀐 주인공들, 인간만큼이나 복잡한 생활을 하는 동물들, 의학물(그의 원래 직업은 의사였다.), 스포츠물 등에서 끝없이 작품을 쏟아냈다. 설령 그의 이름이 낯설다 하더라도 [밀림의 왕자 레오], [허리케인 조], [아톰]같은 만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셈이다. 동그란 눈에 어린이다운 신체비례, 표정이나 말투 하나하나까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로봇 아톰도 알고 보면 우울하고 비극적이기까지 한 만화의 주인공인 것처럼(근래 [플루토]로 리메이크 중인 이 시리즈를 보면 그 끝없는 비관주의는 섬뜩할 정도다.) 데츠카 오사무는 원래 사랑과 우정 타령이나 해 대는 어린이 만화나 그리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가 그린 사무라이 만화를 영화화한 [도로로]도 신나는 판타지물이라기에는 폭력적이고 음침하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야심과 탐욕에 눈이 멀어 기꺼이 타인을 희생시키고자 한다. 친구도 가족도 예외는 될 수 없다. 주인공 햐키마루(츠마부키 사토시)를 쫓아다니는 요괴보다 오히려 그를 둘러싼 인간들이 훨씬 잔혹하고 혐오스럽다. 신기하게도 [도로로]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이자 뛰어난 무사, 고결한 태생의 햐키마루는 분명히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지만 ‘도로로’는 남장 여자 떠돌이, 근본도 알 수 없는 하층계급의 여주인공(시바사키 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도로로’는 사람의 이름도 아닌 바로 그렇게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바보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다. [도로로]는 비범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 아니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부인당하고 감춰야만 했던 자신의 가치와 여성성을 발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이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 또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관계를 성립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특수효과가 어설퍼서 현실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화면은 언제나 황홀하게 아름답고 배우들도 매력적이다. 햐키마루가 자신의 흩어진 신체를 하나로 모으는 것과 일본의 통일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일본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독특하다. 하지만 중반부에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은 각오해 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