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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인기코너 중에 두가지 인생을 가상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휘재씨가 "그래! 선택했어"하고 A인생을 살 경우, B인생을 살아볼 경우 이 두가지 모두의 삶을 상상해보는 내용이었는데, 그 코너를 보면서 선택의 기로에서 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생각하면서 봤던 기억이 남아 있다. 보고 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은 남겠지 하는 것과 인간에겐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행불행이 바뀌지 않으려나. 아니면 선택으로 행불행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일까.
'바베트의 만찬'은 금욕과 절제된 삶을 살고 있는 두 자매가 등장한다.마르티나와 필리파 두 자매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선행과 기도에 힘쓰며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무채색의 옷에, 소금을 넣지 않은 음식을 먹었고, 이성과 교제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일체의 세속적인 쾌락과 욕망을 멀리했다. 이들의 삶은 경건하고 차분했지만 그만큼 즐거움이나 활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19세기 중후반 이 두 자매가 살고 있는 덴마크 서부 해안가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은 전체적으로 금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베트라는 중년의 여인이 마을에 나타나 이 두자매의 무보수 가정부가 된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가족을 잃은 바베트가 프랑스를 떠나 이곳으로 피신을 온 것이었다. 그리고 14년을 함께 지낸 뒤,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이 되는데, 그 금액이 만프랑이었다. 두 자매는 바베트와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짐작했다. 바베트가 만프랑을 갖고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바베트는 두 자매의 부친인 목사의 100주년 탄산 추도 만찬을 자산이 주도해서 베풀겠다고 한다. 마을 주민 등을 초대해서 프랑스 정식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데 두 자매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접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이 금욕적이고 절제하는 생활이 무너질까 내심 염려가 됐던 것이었다. 이런 두 자매의 뜻을 헤아려 마을 사람들은 약속을 한다. 당일 만찬에 참석은 하겠지만 음식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바베트은 프랑스에서 음식 재료를 조달해서 성찬을 차려낸다. 메추리 파이를 비롯한 프랑스 정식, 이 자리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이 만찬에 자리하게 된다. 그는 35년전 마르티나에게 구애하다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는 금욕적인 분위기에 지쳐 포기하고 떠난 로렌조였는데 지금은 장군이 돼 있었다. 로렌조는 끊임없이 음식의 맛을 상찬하고 요리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애써 그의 칭찬을 무심하게 넘긴다. 사실 귀를 종긋하며 새겨 듣고 있었고, 장군이 먹는 모습을 보며 따라 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하면서도 애써 목사를 추도하는 말로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다. '바베트의 만찬'의 압권은 부엌에서 행복하게 만찬을 준비하는 바베트의 모습이었다. 싹 비워진 접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바베트의 모습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하나씩 나오는 음식들은 만찬의 맛과 풍미를 한껏 상상하게 만든다. 접시에서 퐄 나이프로 고기를 자르는 소리나, 포도주 따르는 소리,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그런데,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만찬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풀어 주었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거나 껄끄러웠던 사람들과 화해하고 서로를 용서하게 된 것이다. 로렌즈 장군도 떠나면서 마르티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인생의 매순간을 당신과 함께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당신과 함께 할 것이고, 영혼으로 매일 당신과 저녁을 함께 하겠다"는 그말은 마르티나가 여생을 살아가는데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타인에 대한 봉사와 기도가 아닌 한 남자의 사랑, 그 속세적인 감정도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임을 인정하게 됐을 것이다. 이 만찬으로 행복해하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베트. 만찬이 끝난 뒤 주방에 걸터앉아 있는 그녀는 지쳐있는 표정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사람이 보여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최고 카페의 요리사였던 바베트로선 실로 14년만에 솜씨를 발휘해 만찬을 차린 것이니 감개무량했던 것일까. 그녀는 결국 덴마크에 남아 여전히 두 자매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복권 당첨금 만프랑을 만찬 차리는데 다 쓰느라 수중에 돈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바베트가 한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이 지점에서 예술과 종교의 긴장이 발생하는 것일까. 예술이 인간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종교는 욕망보다는 선과 구원을 좇는 것이니. 그런데 바베트에게 프랑스 정식은 마치 종교적인 의례처럼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녀의 만찬상은 갈등이라기 보다는 금욕적인 삶에서 현실의 욕망을 조화시키는 시도처럼 보여졌다. 이로써 욕망을 억누르며 속세적인 행복을 애써 외면했던 두 자매는 이제 마음의 빗장을 조금은 풀지 않을까. 바베트가 차린 만찬에서 이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누려도 된다는 마음을 일깨웠길 소망했다. 자신 안에서 욕망이 고개를 들 때면 그 욕망에 무릎꿇을까봐,사랑도 꿈도 포기하고 욕망을 억누르는데 급급했던 두 자매. 그녀들이 젊은 시절 찾아왔던 사랑과 꿈을 선택했다면 이들의 삶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불행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됐을까.
이들에겐 이제 남은 생이 얼마되지 않았다.그 남은 생애에선 지난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워해도 된다고,얼마든지 행복해해도 된다고. 신의 가호를 구하면서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울고 웃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의 남은 나날동안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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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가 이른 유럽 대륙이라고는 해도 스칸디나비아반도로부터 도착한 영화들에서는 도서관에서 먼지 가득 내려앉은 채 발견된 조선시대 역사서를 펼쳤을 때와 비슷한 내음이 맡아진다. 가난하고 어둡고 또 억압되어 있다. 모습은 다채롭지만 문화의 보편성까진 어쩌지 못하는 걸까. 검소, 소박, 청렴이라는 잘짜인 프로테스탄티즘을 내세워도 이상하게 자꾸 남자와 세상에 의해 지위가 결정지어지던 조선시대 여자들이 떠오른다. 한평생 절제하며 살아가는 일이 전부인 문화권. 신앙의 실천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삶. 원하든 그렇지 않든 생활 깊숙이 스며든 청교도 윤리는 마을 사람의 모두의 행동과 태도를 지배하고 있다. 맡은 바 역할을 다해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원리는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우리 속담처럼 아시아 대륙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가부장제의 또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억압과 수용의 측면에서 다른 순서를 보일 뿐. 19세기 후반 고립과 절제의 황폐한 이미지는 북쪽 특유의 무겁고 습한 공기에 씻겨나간다. 사랑과 꿈은 부질없는 것. 현재에 머무는 것 역시 소중한 일.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거부당하고, 재능을 펼치기는커녕 꿈을 입밖에 꺼내보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당연함. 부서지는 파도와 깎아지른 절벽이 고립과 절제의 가운데쯤 존재하는 세월의 신비를 꽁꽁 숨긴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목사 아버지 아래 자란 마티나와 필리파 자매는 조금만 욕심냈으면 움켜쥘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절제와 금욕을 실천하며 오직 기도와 봉사, 바느질과 요리로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희미한 억압과 강렬한 수긍의 흔적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강요당하기 쉬웠던 성질의 것임에도 본인들이 스스로 택한 인생이란 점에서 놀랍도록 신성하기까지 한 것이다. 필리파의 재능을 알아봤던 성악가가 파리의 무대로 가서 재능을 펼치자는 말에 겁먹고 불안해하는 필리파를 뒤로한 채 파리로 돌아간 지 35년째 되던 해, 자매의 집으로 바베트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의 손에 들린 편지는 또다른 실천의 시간이 왔음을, 한 사람의 고귀한 영혼을 온전히 받드는 일이었다. 내전이 발발한 파리에서 가족을 잃은 바베트를 거둬달라는 그의 부탁은 되도록 낮은 곳으로 손을 뻗으며 살아가던 자매에게 거절할 수 없는 목소리였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필요로 하는 바베트에게도 꺼진 촛불을 새로 켜는 것과 같이 설레고 간절한 일이었다. 바베트는 자기를 받아준 자매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복권으로 받은 만 프랑을 온전히 돌아가신 목사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자매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만찬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가진 것을 베푸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아는 이라면 마을을 떠나 파리로 돌아갈 때 사용할 수도 있었을 충분한 돈을 한 끼의 식사준비에 아낌없이 사용한 바베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보이는 것에만 목매단 결과 이웃 사이의 친밀과 위로를 잃은 현대인에게 이 오래된 영화가 줄 수 있는 청량감이란 맥주의 마개를 따는 것과는 또다른 종류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가진 정성을 다하여 차린 한 끼의 식사가 갖는 의미. 바베트로서는 더이상 기댈 곳 없을 때 자신을 받아준 감사와 친절을 갚고 싶었고, 자매는 오래 전 인연을 맺은 성악가의 부탁을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호의에 보답하는 또다른 선물로 여겼다. 세월을 거슬러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현장에서 한 끼의 잘 차려진 식사가 무엇을 대신하는지 볼 수 있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선물이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값비싼 호의와 원치않는 위로보다는 백만배 소중한 이 선물을 잘 받아드는 자와 친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