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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Murderer' by Franz Von Stuck
영화에는 사형집행장으로 가던 사형수 야첵의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마지막 까지 버리지 않는 삶에 대한 애착이 영상으로 아주 잘 표현되어 있었다. 당시엔 내가 인류애와 박애정신으로 피가 끓던(?) 20대 초반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한편은 단번에 나를 적극적 사형반대론자로 바꾸어놓았다. 법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것들 중에서 생명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핵심이므로, 인간 존엄을 위해 있는 법이 오히려 가장 그것을 위협하고 있는 사형제도야 말로 정의란 허울을 쓴 모순일뿐이다...라며 나름 열심히 토론수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10여년 넘는 시간이 흐르도록,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흉악범죄 소식을 접해오며, 지금은 나역시 다시 사형제도 찬성입장으로 되돌아가 있다.
얼마전에 나는 키에슬롭스키의 <십계 5 - 살인하지말라> 는 티비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이 영화화 되기 전에 키에슬롭스키가 성경에 나온 십계명을 주제로 만든 10편의 티비 시리즈중의 하나이다. 영화와 드라마와 주인공은 같은 배우들이다. 러닝타임의 길이만 틀릴뿐 극분위기와 내용에도 거의 차이가 없어서, 드라마는 그냥 <살인에 관한 '더' 짧은 필름>정도로 불러도 될만하다 . 그런데 예전에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다시 보았을 때는 이 감독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불공평함에 매우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작품말미의 죽으러 가는 사형수의 절절한 눈빛과 슬픔이 드러나는 장면은 여전히 마음에 와닿았지만, 그가 범죄를 저지를 때, 무참하게 살해당해야했던 사람의 억울함과 공포감은 야박하다 싶을정도로 잘 표현되지 않아서, 극의 전개에 빠져 무심히 보다보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죽는 사람이 죽어도 싸다란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아무리 추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생명의 권리가 타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지고있는데, 감독은 살인장면을 가축 도살하는 것 마냥 보여줄 뿐이고, 오히려 슬픈 가족사로 인해 자기감정과 분노를 조절 못하게되 살인을 저지르는 야첵의 슬픔을 더 강조하여 표현한 것은 분명히 불공평한 시선이라 생각된다. 이 영화는 개인의 살인을 죄라고 치부하며 사회적 정의란 명분으로 또 다른 살인이 저질러 지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원래의 작품주제 였던 성경의 십계명에 충실히 입각하여, 생명은 신의 권한이니 인간이 정의란 이름으로 집행하는 또다른 살인인 사형제도는 결국 신의 뜻에 반하는 것임을 은연 중에 강조한다. 내가 사형찬성론자로 되돌아갔다고해서 나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짚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가질 수 있으니까.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것이 더 옳으냐,그르냐를 가늠하기에는 이 영화가 매우 불공평한 저울이란 점은 분명히 하고싶다. 나는 이 인간미 넘치는 감독이 신의 말씀이라는 애초의 주제의식을 고려해서인지 지나치게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의 가혹함만을 강조하고, 개인의 살인으로 인해 무고한 죽음을 맞는 자의 억울함은 도외시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요사이 강호순이란 살인자로 하여금 세상이 시끄럽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사회에는 살인자의 인권보호 문제와 사형제도가 커다란 이슈가 되고있다. 각박한 세상탓인지 예전보다 살인자의 인권보호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이 더 커졌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찬성론이 더 우세해보인다. 나는 갑자기 만약 키에슬롭스키가 한국사회에서 근간에 일어난 사건을 영상으로 담아낸다면자신의 영화에서처럼 여전히 인간의 생명은 신의 권한이다라는 입장을 그대로 취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여전히, 한 개인과 생명과 가족의 행복을 무참히 뺏은 살인자에게 형벌을 가하기보다는 여전히 신의 심판에 맞기자는 입장을 담담히 보여줄 수 있을까? 요즘에는 지가 신인냥 자기 판단에 삶의 의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아무나 죽여대는 영화 <쏘우>의 미친 놈 직쏘가 공감이 간다 여겨질 때도 있으니, 내가 참으로 각박하고 숭악한 시대를 살고 있긴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신의 권능를 인정하고, 인간과 생명을 사랑하고, 더불어 정의도 지켜지길 원하지만, 나는 더이상 하나의 조화를 위한 부득이한 부조화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키에슬롭스키의 신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기에는 작금에 펼쳐지는 현실들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저 세상이 다시 평안해지고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아서, 키에슬롭스키와 같은 인간애가 듬뿍담긴 사형반대론자의 시선도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 'Murder' by Paul Cé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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