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수많은 역사책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역사바로잡기 정책 이후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증가하는 역사책들은 대부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내용을 훑는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역사를 시간 순으로 단순히 개괄하거나 소개하는 수준에서 마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역사책의 양적 증가와 함께 많은 좋은 책들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과거의 역사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책도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영석 교수가 쓴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영국의 근대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관련된 주제를 중심으로 다민족으로 구성된 영국의 과거 모습, 축구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근대 영국의 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1부인 삶으로서의 근대에서는 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영국 시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미시사 쪽에 가까운 부분이다. 때로는 영국 상인의 모습이나 산업혁명 당시의 런던의 풍경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톰슨의 이론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 노동자 계급의 변화를 살펴보기도 한다. 반면 2부 체제로서의 근대는 좀 더 딱딱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도 하고, 기존의 영국 산업혁명과 관련된 이론을 반박하며 ‘신사적 자본주의’란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기도 한다. 물론 2부에도 영국의 대불황 상황이나 당시 교육의 모습 등 미시사적인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은 근대 영국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부분 등을 자세하게 뜯어보면서 ‘근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위에서 언급했듯, 당시 영국의 모습을 다양한 분야의 검토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나 정치 분야에 한정되어 영국 근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영국 근대가 소개되지만 이 책은 축구나 교육 같은 문화적 부분도 충분히 살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 상황을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위험에서 피할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사실을 통해 한 역사에 다양한 성격이 중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당시 런던의 빈부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표적 부유층 지역인 ‘웨스트엔드’와 최악의 빈곤층 지역으로 알려진 ‘이스트엔드’의 빈부격차가 다른 런던의 격차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최저생계비 이상 수준의 임금을 받던 노동자도 절반 이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간단히 산업혁명 당시 모든 노동자는 고생하고 자본가는 악독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한다. 또한 이 책은 내용이 깊이가 있다. 즉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다시 되풀이 하는 수준의 역사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기존에 알려져 있던 사실을 반박하는 자료를 보여주거나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을 부수기도 한다. 자연히 책의 내용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가 브리튼이 형성되던 당시 적극적으로 브리튼 문화를 창조해 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무력에 의해 영국에 통합됐다고 알려진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축구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축구가 민중 문화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 명문 사학들의 문화에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부문 등 다양한 새로운 사실을 제공해준다. 책이 제시하는 방대한 자료와 통계 역시 책이 지닌 강점이다. 책이 훨씬 구체성을 지니게 된다. 동시에 저자는 책의 일부 장을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딱딱한 기존의 역사서의 형식을 벗어난 것이다. 단순한 스케치를 통해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영국 근대를 재현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장점이 많은 만큼 아쉬움도 있다. 우선 이 책은 저자가 예전에 썼던 논문들이 모여 출판됐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의 유기성이 부족하다. 일부 장은 톰슨의 저서를 읽었어야만 좀 더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장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윌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알아야만 전체적 내용이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즉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에 부담스런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스케치 형식으로 쓰인 부분은 가볍게 읽힌다. 각각의 장들이 독립적이란 느낌이 들기 때문에 각 장의 난이도가 들쭉날쭉 한 것으로 고려된다. 이는 저자가 서문에서 인정했듯, 다양한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일부 논문은 그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쓴 글인 듯 하다. 책이란 것이 보통 독자를 예상하고 쓰여 지기 때문에,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조금 불친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좀 더 영국의 근대를 전문적으로 알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은 매우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역사책을 많이 읽었던 독자라면 이 책이 흥미롭게 여겨질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출판사가 푸른 역사다. 이 곳에서 나온 역사책이라면 일단 믿고 읽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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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은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학위를 마친 사학 전공 교수다. 한가지만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한 나라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27쪽 주를 보라. "(잉글랜드가)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를 합병한다."고 했다. 난 깜놀했다. 역사로만 학사 석사 박사를 한 사람이 이런 수준이구나. 史實은 잉글런드가 쓰깟런드를 합병(annexation)한 것이 아니라, 잉글런드와 쓰깟런드가 왕실통합에 이어 의회를 통일한 것이다. 난 더이상 책을 볼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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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근대 시대에 들어와 생긴 변화를 총칭한다는 것'쯤으로 정의하는 데 반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것이다.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은 '근대란 이런 것이다!'라고 일갈하고 있지는 않다. 근대 사회의 변화를 모두 담아낸다고 호언하지도 않고, 여러 나라의 여러 분야를 아울러 통찰하고 있지도 않다. 1900년을 전후한 수십 년 동안의 영국만을 조망하고 있을 따름이다. 얼핏 보면 소박하다 못해 밋밋하게까지 느껴지는 스케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19세기 말의 영국을 말 그대로 생생하게 담아낸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요한 시대적 변화와 시대상 몇 가지를 심도있게 나열한 것이 사회 전반의 요인을 거창하고 장황하게 열거한 것보다 훨씬 생생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역량일까, 아니면 미시사의 힘인가. 아마 후자보다 전자 쪽이 훨씬 절대적이겠지만.
19세기 말의 영국이라고 해서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이 펼쳐지고, 익숙한 갈등구조가 보이고는 한다. 특히 맨 마지막 소단원인 '시험' 부분에서는 21세기 한국의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숫제 데자뷔 현상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성적을 위한 공부가 만연하다느니, 집안환경과 빈부 수준이 학교진학을 좌우하느니... 이름과 연도를 바꿔서 21세기 한국 교육의 병폐를 서술한 글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다.
물론 도시화가 보편적이고 규격화된 환경을 낳은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그뿐만일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하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건 규격화되어 나타나는 근대화, 도시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나타난 문제를 제대로 고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그 문제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다. 역사는 거울이라고들 하지만, 비단 조국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말도 아닌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건, 이런 대비가 저자가 작정하고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아마 의도했다면 도식적인 비교나 도상화된 양식이 대거 나왔을 것이고, 그만큼 19세기 시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생동감이 떨어졌으리라.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던 부분이,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은 묘한 역설이다. 동시에 설익은 의도가 정선되지 않은 형태를 이루면 과연 어떤 반작용을 부를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준다. |
| 그 동안 모더니즘은 많은 담론과 논란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영국의 근대는 모더니즘, 즉 근대성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근대성’은 매우 느리고 모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즉 영국 근대 사회에는 어떤 급진성이나 근본적인 단절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근대성’은 다양하고 흐릿한 모습으로, 변화와 지속이 혼재한 가운데 드러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근대를 어떤 체제나 구조로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당대인들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단단한’ 구조보다도 그 구조 내부의 '부드러운’ 부분을 응시함으로서 모호하고 흐릿한 근대의 본질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근대의 풍경’은 주로 18-19세기 영국사에서 나타난 근대성에서의 체현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국민정체성, 산업화, 노동계급, 자본주의, 축구의 재탄생, 시험의 사회사 등 다양한 근대의 모습들을 재조명하고 있는데 각각의 주제들은 영국 근대 사회를 한폭의 풍경화처럼 재현하고 있다. '근대의 풍경'은 결코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전문 역사서답게 그 깊이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기존의 지루한 개설서와는 차별화된 방식과 새로운 시각으로 근대에 접근하고 있어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도 매우 좋은 책일 듯 하다. 더불어 다양한 사진자료와 그림 등을 통해 독자들은 영국 근대사회에 더욱 생생하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