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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저 아래에서]
갈대밭 저 아래엣 내 사랑과 나 만났네.
그녀는 조그맣고 하얀 발로 갈대밭을 거닐었지.
그녀는 내게 사랑을 쉬이 여기라고, 마치 나무에 잎사귀가 자라나는 것처럼 받아들이라 했지.
그러나 나, 어리고 바보스러워,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네.
강가의 들판에서 내 사랑과 나 서 있었네.
내 기울어지는 어깨에 그녀는 그 눈처럼 하얀 손을 얹었지.
그녀는 내게 인생을 쉬이 여기라고, 마치 둑 위에 풀이 자라나는 것처럼 받아들이라 했지.
그러나 나는 어리고 바보였지. 그리고 지금 눈물로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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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문학가들중 예이츠는 프로스트와 더불어 영시에 있어선 어느정도 스탠더드로 인식되는 시인이다. 그런
연유에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예이츠는 감성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텍스트적인 의미로 다가온다는 의견들도 더러 적지 않다.
그때문이었을까? 영문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예이츠는 오랜냄새가 나는 화석화된 텍스트로 다가왔었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예이츠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과오도 있었던 탓이다.
위에 시는 '예이츠 시선'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시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신선함이었고, 산뜻함이었다. 이런 생각,
사소하면서도 매일 죽고 못하는 감정에 대한 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 시는 그 감각 자체가 매우 새로웠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시인 스스로가 사제적 권위를 버리고 본인역시 괴로운 청춘이었음을 선언하며
청자와 대등해진것에 대한 효과였다. 물론 예이츠가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련하게 던지는 시선에는 20대의 사랑 모르곤이 존재한다.
그런 이유때문에 이러한 감정은 어느시기에 어느 누군가로 쉽게 한정이 되겠지만, 이것을 읽는 독자들은 동시에 어느 시기의 예이츠였던
본인을 만난다.
늘 벅차는 마음으로 매워왔던 청춘과 좌절의 시기는 예이츠에게 늘 그리움이었던 모양이다. 그 단초가 모르곤에게 한정이 되었다
하여도, 예이츠의 청춘이 지나온 시간과 함께 해온 격동적 역사와 현재에는 늘 그리움이 수반되어 있음을 느낀다. 자칫하면
현실문제참여에 대한 회피로 보여질지도 모르지만, 날카로운 판단과 참여 의지대신 현실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속에 등장하는 아련함은
되려 중심을 잃을지도 모를 현실문제에 객관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곧 자국에 대한 애국심과 민족애로 이어지며, 이것에 영향을 받은
김억과 김소월로 연결된다.
대다수 문학가들을 따라다니는 참여의식은 현재에 대한 대안제시로 큰 부담을 부여한다. 그 부담탓에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균형붕괴는
문학성과 현실성사이에 크나큰 딜레마를 불러일으켜왔다.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한국의 퇴폐주의와 경향문학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시기에 등장한 김소월은 당시에는 비주류였을지라도 역사는 그를 기억하며 빛낸다. 이것은 외면할수 없는 현실문제에 대해 어떤 감성적
체계와 정서를 부여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탁월하게 해결한 결과였다. 곧 예이츠의 적절한 균형유지에 대한 영향을 받은 김소월의
결과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이츠의 시에는 시절과 사실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더욱이 그것이 청춘시절 예이츠의 일반적이자,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립된 정서가 그가 역사를 대하는 시각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와 현실, 사랑, 예술,
문학 등등의 주제는 한결같은 예이츠의 그리움으로 귀결되었다. 객관성을 부여시킨 예이츠의 그러한 인식이 그의 작품을 대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에 예이츠는 역사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그의 작품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만지의 '시선'은 예이츠의 시기를 효과적으로 정리시켜 순차적인 농익음을 만날수 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번역에 있어서도 다소 우리 정서와 밀접히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보여 읽는가운데 막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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