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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즈코와 의논할 게 좀 있어." "뭔데요? 죽는 얘기라면 질색이예요."(P56)
너도 죽는 얘기라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겠지? 어떡하니? 앞으로 몇 번은 더 들어야할 텐데... 친구인 죄가 이렇게 크구나. 自殺이야말로 얼룩진 삶에의 가장 아름다운 회개가 아닐까. (자연사와 사고사를 제외한)깨져버린 양심의 앞잡이인 ‘사회’에 의한 타살은 그야말로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 말이야. 자살에 대해서 좀 구체적이다 싶을 정도로 생각해본 것이 중학교 때쯤인 것 같아. 때때로 조숙早熟이란 ‘발육상태에 걸 맞는’을 벗어난 시기상조에 벼락같이 찾아들어 한 인간에게 몹쓸 철학을 심어 물을 주고 햇빛을 쏴주곤 이상한 불량나무로 성장시키지. 초등학교 시절의 조숙은 다행인지 아님 조숙이 미처 방문하기 전 전조현상이었는지 ‘인간은 왜 살까? 왜 이렇게 우울하고 외롭지?’라는 생각에만 그쳤어. 그 요상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자, 조숙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란 걸 차차 알게 되었지. 특히 이 생生에선. 다자이 오사무가 그걸 다시금 일깨워주는구나.
“아무 일도 아냐. 어차피 장작은 태우기 위한 거니까.”(P42)
어머니는 눈 내리를 겨울하늘에 이 엷은 모란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지 분명히 알고 일부러 골라주었건만, 나는 바보처럼 뿌리쳤고 그래도 그걸 어린 내게 강요하는 일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놔 둔 어머니. 내가 이 색깔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 때까지 20여 년이나 이 색깔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이 묵묵히 모른 척 기다려 준 어머니.(P69)
장작 관리소홀로 허름한 산장 집마저 홀랑 태워먹을 뻔한 자신의 실수로 의기소침해져 있는 딸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 가즈코처럼 성정이 조용하고 지혜로운 어머니를 갖고 싶었어. 제법 많은 아이들이 가진 그런, 나의 진짜 어머니가 어딘가에 살아계실 것만 같았지. 혹 우리 어머닌 모든 면에서 월등한 딸을 기대하셨던 걸까? 영민하기가 이를 데 없고 애교가 철철 넘쳐흐르고 매사에 똑 부러지고 야무져서 결코 울거나 하는 등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런 딸. 어쨌든 어릴 땐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잖아. 그 시절엔 엄마까지도 부럽기만 한 남의 떡으로 여겼던 모양이야. 한 가닥 했던 옛 조상들의 이름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아버지도 없고 별 것도 없었던(어머닌 결코 그런 사실엔 아주 둔감하셨을 뿐더러 세 자매 모두 4년제 대학을 혼자 힘으로 가르치셨다는 데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셨지. 그런 우리 어머니의 위대함이야 세상도 다 알고 인정하는 바지만, 가난이라는 정의는 내게 있어 오직 심리적인 것에 한해서만 자애롭다 할 것이야)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날 생각해보건대, ‘사양斜陽’에 비유하자면 농부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귀족의 반대말. 열심히 산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구나, 를 느낀 순간, 난 기꺼이 백수가 되었어(무능력한 자의 변명이래도 어쩔 수 없어). 농부의 자식이니까 열심히 노력해야만 성공은 고사하고라도 살아지는 아주 곤란한 처지였는데도 말이지. 귀족들이야 자신들의 토지를 경작해줄 인부하나가 떨어져 나갔는지 어땠는지- 와 같은 하찮은 일 따위엔 자신의 아까운 목소리를 절대 낭비하지 않는 법이지. 그런 귀족의 자제분, 30채가 넘는 방이 있는 궁궐 같은 집 어느 도련님은 백수에 술주정뱅이에 약물 중독자에 자살한 문학인이 되었어.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인 나오지. 오사무의 역사에 대한 얘긴 [인간실격]에서도 대충 말했지만 진도 좀 더 나가볼까 해. 지루해도 조금만 더 버텨주면 고맙겠구나. 역시 난 대단한 이기주의자지?
논리는 결국, 논리에 대한 사랑이다.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돈과 여자. 논리는 얼굴을 붉히고 잽싸게 사라진다- 학문이란, 허영의 또 다른 이름. 인간이 인간답지 않으려는 노력이다.(P79)
인간이란 원래 쩨쩨하며, 영원히 쩨쩨한 것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도무지 성립이 안 되는 학문으로, 쩨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배의 문제건 뭐건 아예 흥미가 없는 것이다.(P136)
광대 짓거리 2탄. 이 노무 세상은 너무 유치 뽕이지 않니? 모두가 시시한 자포자기의 무덤 같잖아. 내가 ‘-척’ 하면 사람들은 모두 날 봐주다가도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면 재빨리 뒤통수를 보이며 달아나더라. 해서 난 그 광대 짓에 완전히 질려버렸어. 결국 자살하는 수밖에 도리없지 않은가라고 말한 나오지를 이해할 수 있었지. 무슨 자살클럽 회원모집 하는 글 같지? 그렇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 같은 그딴 것도 이젠 신경 안 써. 일일이 해명한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도 없거니와 그런 구차한 변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무 관심도 없거든. 또 모르겠다. 이건 ‘죽음’에 관한 얘기니까, 조금은 솔깃해할 수도. 한편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는 사람부터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니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고. 그치? 어쨌든 같잖아졌어, 모든 게. 바보처럼 멍청히 엄숙하게 앉아 입 닫고 열심히 감정만 굴리고 있는 중이야. 한때는 그 학문이란 허영 때문에 감정은 항상 뒷전이고 이성이 들쑤시고 다녔더랬지. 것 때문에 ‘만족’을 모르고 살았어.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해 자신의 몸까지 먹어치워야 했던 에리식톤처럼. 그렇게 지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며 살았던 삶이었지. 그런 잡다한 일 모두 인간답지 않으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헌데 어쩔거나? 내가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덕분에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당하고 있으니... 윽! 너무 비참하고 절망스러워.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으니. 그래서 갈 곳이 거기밖에 없는 거야.
-이런 편지를 만약 조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가 살아가는 노력을 조소하는 사람입니다. 여자의 목숨을 조소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항구의 숨막힐 듯 묵직한 공기가 견디기 힘들고, 항구 밖에 태풍이 분다 해도 돛을 올리고 싶습니다. 쉬고 있는 돛은 더럽기 마련. 저를 조소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쉬고 있는 돛입니다.(P118)
캬! 구구절절하지 않니? 딱 맞는 말이기도 하고. 임자 있는 어느 소설가를 향한 러브레터. 남자는 명예에 목숨을 걸고 여자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지? 가즈코는 유산한 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의심까지 받았던 스물아홉 이혼녀야. 여기까진 세상이 그녀에게 끼워준 색안경이고,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사랑할 자격이 충분한 한 여자가 용기를 내서 유부남에게 세 차례 편지를 썼지. 아무 답변이 없자, 답답했던 그녀는 그를 찾아나서. 그래서 이루어졌냐고? 알잖아? 세상이 그걸 용납하니? 그저 맘을 전달하고 소원대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그러고는 자살한 동생, 나오지가 유서에 자신의 짝사랑을 고백했는데 당사자였던 유부녀에게 나오지의 아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한번 안겨보고 싶단 편지를 남기지. 마치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의 바통을 잇는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니? 사랑은 오작교 역할을 한 거고. 죽는 날까지 사랑은 쉴 틈이 없어. 이를테면 보수는 없으면서 무기한 그리움이란 보너스만 받는 최장기근로가 아닐까 싶어. 감히 ‘더러움’이란 사랑 앞에서만큼은 설 자리가 없다고 장담해. 사랑에 불량이 있을 수 있니? 불륜... 이라며 조소하는 치들을 봐. 다 똑같아. 한번 뱉어낸 침을 맞고도 버텨낼 수 있는 게 사랑이잖아. 가장 아름다운 타령이지.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참 갖다 붙이기도 잘하지? 그동안 배웠던 허영도 이럴 땐 써먹을 만하네.
전, 놀면서도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쾌락의 불감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저, 귀족이라
는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며 놀고 황폐해졌습니다.(P188)
‘훌륭한 일’보다도, 목숨을 마다 않고 소위 타락한 생활을 지속해 가는 편이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도리어 감사받을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생자. 도덕적 과도기의 희생자. 당신도 나도 틀림
없이 그렇겠지요.(P204)
나오지의 유서에 적힌 진실이야. 딱 내가 그랬어. 오히려 쾌락이 무섭더라. 내 경우엔 귀족이라기
보다 두서없는 햇병아리 샌님에 불과한데, 아주 어설펐지. 하지만 나잇살 좀 먹으니까 그나마 덜
어설퍼졌는데 문젠 막가파가 돼버렸단 거야. 삐딱선을 제대로 타게 된 거지. 스릴 있더라. 좀더 타
락해야하는데 라는 없던 배짱도 생기고, 여차하면 ‘난 도덕적 과도기의 희생자예요!’라고 손나팔불
면서 ‘당신들도 그렇잖아요!’라는 동지애까지 끌어들이면 됐어. 아무리 사양辭讓하고 발뺌하고 싶
어도 다자이 오사무의 이 사양斜陽 앞에선 불가능한 일이야. 지는 해, 석양이라는 뜻과 상통하지
만 그 이면엔 분명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예리한 비수를 품고 있다 이 말이야. 혹 인생 다 산 사람
처럼 내가 지나치게 염세주의자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니? 그러거나 말거나가 된지 오래라니까. 이
삐딱선이 순풍에 얼마나 오래 항해할지는 나도 몰라. 돌 돌 돌풍을 맞으면 훨씬 더 곤란해지겠지?
그때가 다자이 오사무를 만날 적기이지 싶네. 그럴 리는 희박하겠지만, 행여라도 내가 안쓰럽겠거
들랑 노잣돈삼아 배船타령 이라도 좀 불러주련? 친구야! 붉게 이운 달빛이 너무나 처량하게도 아.
름.답.다.
서프라이즈! 놀랐지? 친구야.
삶이 이렇듯, 온통 진지한 장난 투성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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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빼어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원어로 읽을 수 없는 독자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면이 인상깊었다. 날씨와 정경에 대한 깔끔하면서 서정적인 묘사와 성격이 뚜렷한 등장인물들. 아름답고 고상하고 품위 있으면서 자유롭고 유머감각도 있고 섬세하고 소녀스러운 감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가정의 힘든 일과 가족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조용히 강한 의지로 포용하며 다가오는 죽음도 잔잔함으로 맞는 어머니. 자신이 귀족 출신인 것을 받아들이지도,벗어 던져버리지도 못하고 예민하고 나약한 감성으로 끝내 세상에 적응하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나오지. 경제학 책을 읽으며 자기 나름의 사랑의 이론을 세우고, 불륜마저도 자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우기고, 어머니와 남동생의 죽음을 겪고, 쓸쓸하고 천박하고 당해 내기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내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가즈코. 책을 읽는 동안 사람이 산다는 것과 현실에 적응하는 것,타협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많이 생각했지만 뭐라고 결론내릴 수 없는, 어느 것이 옳다는 확신을 절대 가질 수 없는 문제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어떡하든 끝까지 살아야 하는 거라면,이 사람들이 끝까지 살기 위한 모습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아닌가.살아 있다는 것.살아 있다는 것.아아,이 얼마나 버겁고 수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172쪽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입니까.남을 업신여기는 동시에 자신마저 업신여기고,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187쪽 |
| 다자이 오사무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특히 이 사양은 그의 정신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10번을 넘게 읽어왔고, 여러 출판사의 작품들 모두를 읽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역시 유숙자씨의 번역이 절대적으로 돋보였다. 허호 교수가 했던 번역도 나쁘지 않았지만 작품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글이기 때문에 교수 특유의 딱딱한 번역보다 유숙자씨의 감정이 넘치는 번역이 훨씬 좋았다. 그 외에 유숙자씨의 번역은 다른 작품도 좋아서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도 굉장히 좋았다. 만약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꼭 소화 출판사 것으로 봐두기를 원한다. 비록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서점에 가면 구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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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斜陽). 해가지는 모습처럼 점점 추락하듯 내려오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태평양 전쟁 직후,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제 나라처럼 몰락한 귀족 집안의 허전한 풍경을 화자 ‘가즈코’가 그려낸다. 하지만 태양이 지는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채 역경을 견디어 내는 모습에서, 선천적으로 나약한 여자답지 않은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곱게 자란 공주님이 하루아침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 어머니는 갈수록 병환이 짙어지시고, 하나 있는 남동생마저 마약에 혼이 팔려 방황 한다.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삶의 즐거움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가즈코’는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며, 세상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강인한 여성상이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라고 당당하게 외칠 만큼 강해지려 노력하지만, 슬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번쯤은 좌절의 고배를 마실 줄도 아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여자라고 볼 수 있다. 지극히 일본적인 사상과 지극히 일본적인 문체로 내게 다가온「사양」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어둡고 음습한 기질이 내게는 불행하지만은 않은 희망으로 언뜻 비춰졌다.
그 이유는 「사양」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 성격과 변화하는 내면의 실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함이 단순한 인간의 불행을 논함이 아닌, 저물어져 가는 태양 아래에 있을 아름다운 황혼 빛처럼 한 가닥의 순수와 아름다움을 겹쳐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즈코와 그녀의 어머니, 남동생, 우에하라의 캐릭터를 살펴본다면, 어설픈 자존심을 세우는 거짓과 스스로 삶을 허비하는 방탕함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마지막의 편지글이나 사소한 고백 등을 비추어 볼 때, 어쩐지 그들을 아주 어둡게만 그리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가장 주요한, 이 작품의 성질이 작용하고 있는 탓도 될 것이다.
스토리를 사근사근 이끌고 있는 작가의 매력을 흠뻑 맛볼 수 있었던 감동적인 작품이다. 소박한 밥상이나 다도의 풍경이 자주 등장하는 일본 고전 영화처럼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느끼지는 짙은 매력이 있다고 할까. 얇은 문고본 한 권에서 뿜어 나오는 힘이 제법 크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었던 점 한 가지는, 일본 문학에서 과연 ‘자살’이라는 테마가 등장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인의 몸속에 흐르는 피 자체가, 자살을 미화하며, 자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모든 죄가 씻기고,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할복역사의 문화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는데, 문화적인 차이 큰 탓인지 나는 아직 이 부분에 크게 공감 할 수가 없다.
유독 일본 문학에서는 지나치게 자살 자체를 가볍게(?) 다루는 점이 있는데, 아무리 민족적인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자살이라는 결론을 접할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무겁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행위, 그 무섭고 잔인한 행위를, 달랑 한 줄, ‘XX가 자살했다.’라고 명시해 두고 끝. 물론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생을 마감하게 된 작가의 이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런 점을 배제 하고, 문학 자체에서 느끼는 감동의 참맛이 어쩐지 그러한 점 때문에 깎여 들어가는 듯 했다. 자살에 따른 내적 고통과 불안들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그 무질서한 위태로움을 문학에서 너무 가벼이 다룬다는 점이 크게 공감가지 않았다.
사람 살아가는 풍경은 모두 똑같다. 하지만 제 각기 다른 사정이 있고, 다른 색채가 있다. 「사양」역시 그러한 명제에 주안점을 두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두 똑같은 방식 속에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캐치해서 그려 놓고 있는 듯 하다. 다 비슷하게 사는 듯 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어둡게 내려앉는 하늘을 멀리서 보면 모두 검은색으로 동일한 듯 보이지만, 실상 가까이서 바라보면 어느 한 곳 같은 색을 발하고 있지 않은 듯, 사람 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설령 인생이 지나치게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주어진 스스로의 살아갈 기회를 저버리지 말고, 소중히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상깊은구절] 아아, 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거야. 하지만 이 사람들도 내 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떡하든 끝까지 살아야 하는 거라면, 이 사람들이 끝까지 살기 위한 모습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아아 이 얼마나 버겁고 숨 넘어 가는 대사업인가. -17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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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름다웠습니다. 첫 장에서 가즈오가 어머니가 밥을 드시는 모습을 묘사한 것에서부터 저는 무척 아릅답다고 느꼈습니다. 뱀이 나올 때에도, 복선이나 상징, 특별한 장치로 읽었다기보다 그 부분도 예뻤어요.
책의 내용에 대해서 쓰자면, '재미있었다'라고 말하거나 '흥미로웠다' 말하기가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 상 맞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싫어요. 더 상냥하고 가지런히 말해야할 것 같은 거 있죠.
집에 불이 났었던 일, 가즈오가 전쟁 시에 산으로 가서 일을한 것과 그 때 받은 신에 대한 생각 부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우에하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 자신이 '영악한(?)' 수법을 쓴 것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 그 수법이 참 귀엽고 재미있었습니다.
내용은 가즈오가 어머니와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우에하라를 찾아갔을 때가 대조적입니다. 저는 앞 부분의 가즈오 가족의 이야기를 비현실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또 뒤의 우에하라를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를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싫었어요. 비겁합니다.
하지만 인물 중 누구를 비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딱지 붙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저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느꼈어요. 그 밖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될까봐 매우 조심하며 읽었습니다.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가슴에 노을처럼 선명하게 남은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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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주인공은 이미 산업화와 현대화가 진행중인 중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물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환상에 빠져 살아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과 그 가족들은 그 환상에서 벗어나기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이지유신의 혁혁한 공을 세웠던 집안에서 태어나 화족령에 의해서 귀족으로 대우를 받던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전쟁과 패전으로 패전국의 일반 서민과 똑같은 생활을 시작해야했다. 갑작스러운 직위격하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 빈곤을 저자는 세밀하고 감성적인 필체로 묘사한다. 주인공'가츠코'는 가족 중 유일하게 그러한 정신적빈곤을 채워나가는 어머니(어머니는 메이지시대의 귀족들이 갖추었던 예절과 관습따위를 철저히 무시한다.)와 술과 마약으로 정신적빈곤을 채워가는 자신과 동질감을 느낄수 있는 인물인 '우에하라 지로'라는 소설가에게 의존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동생인 '나오지'는 '우에하라 지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신적인 빈곤을 채우기 위해서 술과 마약에 빠져사는 인물이다. 이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던 나로써는 그의 자기파괴적이고 데카당스적인 문학이 이 책에도 그대로 드러날까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실격'과는 달랐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우에하라 지로'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를 통해서 자신을 짓누르던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시작을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에하라 지로'를 만나기위해 떠나는 부분의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서 살아간다'라는 구절은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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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면에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나의 소소한 일상'이라는 책을 사게됨으로써 알게 되었다. 솔직히 사양이라는 단어는 한자라서 한글로만 써져있는 상태에서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 '사양'이라는 것이 석양, 해질무렵의 노을(?)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의 내용과 매치를 시킬 수 있었다. 몰락한 귀족의 형상을 나타내기에는 딱 알맞은 타이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나는 다자이 오사무하고 알베르트 까뮈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삶의 부조리를 말한 까뮈와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삶의 고단함에 따른 자살을 말하곤 한 다자이... 이 둘의 연보를 보니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역시 전쟁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이책은 내용은 굿~인데 구성면에서 좀 불편했다. 주석이 마지막 장에 한꺼번에 올려놓은 이상한 편집상태여서 모르는 뜻의 단어의 주석을 찾아 읽느라 불편했다. |
| 류철균에 의하면, 다자이 오사무는 강은교, 최승자에게 영향을 준, 허무주의의 대가라고 한다. 해서, 찾아 읽어보니 『사양(斜陽)』은 제목 그대로 저무는 태양을 그려내고 있다. 몰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러고 보니, 장정일이 그의 독서일기에서 고급문학은 몰락의 정서를 다루고 통속문학은 신데렐라류의 얘기를 다룬다, 라는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난다.) 전후(戰後) 일본의 몰락 귀족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그 절망 안에, 또는 절망 곁에 예술과 퇴폐와 사랑과 혁명을 섞어 내거나 엮어내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성실히 읽지 않아서인지 자꾸만 다자이 오사무와 소설 속의 "그들"이 겹쳐 보인다. 특히 마약 중독으로 삶을 마감한 나오지의 유서는 차라리,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진심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다자이 오사무를 잘 모르는 나는, 나오지와 그의 삶이 자꾸 경계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귀족이란 자의식과 그에 따른 '민중의 벗'이 될 수 없는 괴로움. 이것은 나오지의 유서를 통해 직접적으로 진술되기도 하고, "당신 동생 나오지도 귀족치곤 꽤 괜찮은 남자지만, 가끔 어쩌다 도저히 상대해 줄 수 없을 만큼 건방진 데가 있지. 나는 시골 농부의 아들이라, 이런 개울가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어릴 적 고향 개울에서 붕어를 낚던 일이며 송사리를 잡던 기억들이 생각나 몹시 그리워지곤 해."(177쪽)라고 가즈코에게 말하는 소설가 우에하라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계급"은 확실히 인간을 질식시킨다. 민중에게 악수 받지 못한 슬픈 귀족이나,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귀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민중 모두에게. …허나,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뭐 중하랴. 실은,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 이 신기한 말은 민주주의와도, 또한 맑시즘과도 무관합니다. 그건 틀림없이 주막에서 못생긴 남자가 미남자를 향해 내뱉은 말입니다. 단순한 초조감입니다. 질투입니다. 사상이고 뭐고 있을 리 없습니다."(186쪽)라는 나오지가 쓴 유서의 한 대목! 이건 몰락 태양의 블랙유머이다, 최승자의 시에서도 발견되는. ("유사 유서"인) "죽음의 문학"은 무덤을 파두고 쓴 글이라 너무도 무거운 뼈저림이 느껴진다. 한편, 삶과 세상을 등진 예비-주검의 한없이 가벼운 한기(냉소)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게 사양의 미학? 이상, 독서 과제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