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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제2의 사하라는 없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모두 사하라의 품에서 태어나길 빌어준다.
싼마로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봤던 것은 <친구>라는 책에서 였다. 그 당시에는 그냥 훑어 넘겼는데, <사하라 이야기> 라는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평이 너무나 좋았다. <사하라 이야기>를 읽고 그녀의 글에 빠져들었다, 너무나 재미있다 라는 독자들의 글을 보면서 그녀의 책을 꼭 만나봐야지 했었다. 그녀는 중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현대 중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 이라는 조사에서 6위에 오르며 중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이 책에는 8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흐느끼는 낙타> 역시 책 속에 담겨있는 글 중 하나이다. 스페인 남자 호세와 결혼한 중국인 싼마오는 일년내내 광풍이 몰아치는 척박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 살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교통 수단이 되어줄 작은 차가 생기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재미난다. 차를 신기해 하는 동네 아이들을 태우고 몇시간씩 사막을 드라이브하다가 차를 더럽히고 오는 호세.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사람들을 태우고 보는 싼마오. 심지어 양도 함께 태우고, 길위의 사람들만 지나가면 지나치지 못해 지긋지긋하다고 자신이 느낄 정도로 사람에 대한 정이 많은 부부였다. 척박하고 더운 사하라 사막 이야기가 재미나게 펼쳐 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점점 따뜻하면서도 나를 슬프게 했다. 8편의 이야기 중에서 "벙어리 노예", "이름 없는 중사", "흐느끼는 낙타", "어느 낯선사람의 죽음" 을 읽을 때에는 슬픔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싼마오는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이 부는 그 자체의 사하라사막을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이면에는 정치적 문제와 인종 문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여기가 좋아요." "사막의 어떤 게 당신을 그렇게 사로잡았어요?" 샤이다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게 나를 사로 잡았냐고요? 높은 사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 고적한 생활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이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느끼고 원망도 느끼고요, 뒤죽박죽 헷갈리네요. 에이! 나도 분명히 모르겠어요."
가장 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벙어리 노예" 에서는 사하라 갑부집에 초대 받아 만난 어린 노예를 만난다. 사막에 사는 흑인을 잡아와 대대손손 노예로 부리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바라보는 싼마오. 그녀는 정이 많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아주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린 노예의 아버지는 벙어리 노예였고, 사람들은 그를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오로지 호세와 싼마오를 제외하고 서는.. 싼마오 부부와 벙어리 노예는 그렇게 서로를 대하는 법을 배우고 각자가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어 갔다. 싼마오는 그런 여자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옳지 않은 것에는 맞설 줄 알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
사하라 사막의 사람들은 부부의 새로운 문명에 낯설어 하기도 했지만, 싼마오와 호세는 이해와 따뜻함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사하라의 모습이 침범을 받기 시작한다. 북쪽의 모로코와 남쪽의 모리타니가 서사하라 사막을 양분해 차지하려고 들고, 이에 서사하라 사람들은 유격대를 조직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기간 서사하라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스페인이 철수를 결정하고 모로코가 진격해 오면서 정세는 더욱 불안해졌다.
사하라 사람들과 교류를 하던 부부를 이웃 주민들은 못 마땅해 했고, 전쟁으로 인해, 그들은 가깝게 지내던 사하라 사람들이 죽어가는것을 보아야 했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보고서는 은은한 표지에 조금은 익살스런 낙타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왜 제목이 흐느끼는 낙타였는지 글을 읽고 나니 슬픔이 밀려났다.
그렇게 호세와 싼마오는 너무나 사랑하는 사하라 사막을 떠나 스페인령에 있는 카나리아 제도로 옮겨야 했다.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른 채 하고 있는 어려움 상황에 쳐해 있는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고 자신의 일처럼 보살피는 두 부부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사하라 사막의 모습이나 다른 이야기들도 재미를 주었지만, 글을 읽는 동안 호세와 싼마오라는 사람은 참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털보와 나"에서 호세와 싼마오 부부의 이야기로 유쾌하게 맺고 있다. 자유로움 좋아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이 너무 슬프고 짧게 끝날 수 밖에 없었고, 싼마오 역시 48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녀가 쓴 책이 대만에서 27권이나 출간되어 있다고 하지만은 <흐느끼는 낙타>를 읽고 나니 더 오랜 시간 그녀가 써내는 글을 읽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책을 읽은 중국의 독자들 중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음에도 그녀를 '소설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설로 느낄 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슬픔과 감동도 있게 이야기를 적어가는 그녀의 작가로서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하라 이야기>를 읽고 그녀의 글에 매력을 느꼈다는 독자의 글들이 충분히 공감가는 책이었다. 유쾌함과 따뜻함, 슬픔과 생각 해 볼 것도 많았던 너무나 좋았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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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의 이름과 책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재미있다는 평도 많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대만드라마 첫화에서 여주인공이 읽고 있던 <사하라 이야기>에 눈길이 가게 됐고, 흥미가 일어서 나도 덩달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순서에 따르면 <사하라 이야기>부터 읽어봐야 할테지만 어쩌다 보니 <흐느끼는 낙타>를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어차피 옴니버스식의 이야기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은 없을테지만.
작가인 싼마오는 스물네살 때 부터 세계 각국을 떠돌기 시작했고, 1973년 북아프리카의 서사하라에서 스페인 남자 호세와 결혼해 정착 했다.
이 책 역시 사막인 사하라에서의 삶들, 정확히 말하면 그곳에서 살며 만나게 된 다양한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자동차로 아스팔트 길을 달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두지 못해 차에 태우고 가는 이야기들부터 남편 호세와 함께한 카나리아 제도 유람기까지~유쾌한 유람기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가진 그곳에 빠져들었고, 카나리아 제도는 나중에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벙어리 노예'편과 '흐느끼는 낙타'편이였다. 70년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노예를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에 조금은 분노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싼마오가 보여 준 인간적인 대우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호의에 보답하기라도 하려는듯 작은 성의들을 보여주던 그. 가족을 위하는 그의 마음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마음은 자유롭다던 그의 손짓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었던,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 같았던 '흐느끼는 낙타'편.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혼자 가슴을 졸이기도 하면서 읽었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낙타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리는 사막의 풍경들이 생각나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아마 서사사하라는 곳이 독립을 바라며 스페인이나 알제리와 대치하는 그 불안한 정세들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막이라는 특정적인 지역 때문에 이웃들도 이야기들도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았다.(물론 평범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오히려 신선했고 슬프거나 분명 유쾌하지 만은 않은 이야기들도 섞여있는데 문체나 읽는데서 오는 무거움은 없다.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지루하지도 않고 오히려 술술 잘 읽혀서 다음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다려졌다. 이야기 속의 풍경들이 인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그녀의 생생한 이야기들. 참 정도 많고 어려운 이웃 지나치지 못하고, 사람 사귀기 좋아하는 '좋은 사람' 싼마오, 이제 그녀는 없다는 게 그녀의 글을 더는 볼 수 없다는게 참 안타깝다. 이미 나와있는 책들도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앞으로도 계속해서 읽을 수 있는 싼마오의 책들을 찬찬히 읽어나갈 생각이다.
- 황야에 나 있는 단 하나의 아스팔트 길을 나는 날마다 지나간다. 죽은 듯 고요한, 생명도 없고 슬픔이나 즐거움도 없는 듯한 길이지만, 사실 그 길도 세상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로, 좁은길이나 굽은 길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손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느릿느릿 흐르는 세월을 오고 간다. 내가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은 세상 어느길에서도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다. 특별한 의미도 없고 기록해 둘 만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백년 인연이 쌓이면 배를 같이 타고,천년 인연이 쌓이면 부부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와 악수를 나눈 손 하나하나, 찬란한 미소 하나하나, 평범한 말 하나하나를, 어떻게 옷깃을 스치는 바람처럼 무심히 흘려보내고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p31
- 부부사이는 시기도 하고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때로는 더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마셔 본 사람이 그 물맛을 아는 법. 이 세상 속에는 온갖 일로 가득한 인생이 있는 법이니 내가 뭐라고 알려 줄 수가 없다. 저 호수가 얼마나 깊은지 겉으로 보아서는 그렇게 간단히 알 수 없지 않은가. 아마 당신 역시 당신의 호수 안에 뭐가 숨겨져 있다고 내게 말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각자의 희로애락은 각자의 몫이니까!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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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샀는데, 이제야 다 읽게 됐다. 지난여름 막내집게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싼마오 아줌마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사막의 모래 한 알까지 사랑해서 모국인 대만을 떠나 사하라 사막에까지 흘러든 싼마오 아줌마의 이야기가 어느 샌가,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흐느끼는 낙타>에서는 <사하라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싼마오와 그의 평생의 파트너 시멘트 머리 털보 호세가 사막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한 8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네 보통의 삶과는 전혀 동질성 없는 그런 환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관심이 갔을까? 그건 아마도 싼마오와 호세의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과 박애 그리고 휴머니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핍박받는 사하라위 여성들과 벙어리 노예, 그리고 나중에 사하라 독립운동으로 인해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를 해서 알게 된 스웨덴 이웃 카를을 보살피려는 싼마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의 지고한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혹자의 눈에는 오지랖 넓은 여인네의 지나친 간섭으로도 보일 수가 있겠지만, 휴머니즘이라는 인류 본성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백만 가지로 이유로 실천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보다 용기 있는 그녀의 실천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아주 어려서 중앙아시아 일대를 탐험한 헤딘의 전기를 읽고서 언젠가 꼭 한 번 광활한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그런데 왜 다른 곳도 아니고 사막을 꿈꾸었을까? 마치 절대고독을 담보하고 일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그 도도함 때문에? 도대체 사막의 무엇이 싼마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마력 같이 작용하는지 궁금해졌다.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면서 싼마오가 기술한 글에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해답을 본 것 같다. 사하라는 단지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낸다고 했던가(125쪽). 이 얼마나 매력적인 선언이던가. 싼마오의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영혼을 담는 기계>는 사진을 찍는 이로써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개인적인 욕심만 앞세웠더라면, 어렵게 찍은 사하라위 여인네들의 사진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자신들의 영혼을 싼마오에게 빼앗기고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한 그들을 위해 조금의 주저 없이 필름을 뽑아내 버린다. 이 이야기는 초반에 등장하는 <벙어리 노예>에서는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주의자로서 싼마오의 면모와 은은한 공명을 이루고 있었다. 튼튼한 시멘트 머리를 한 호세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싼마오의 기술 역시 솔직 담백하면서도 근 40년 전의 진보적인 그녀의 결혼관을 엿볼 수가 있었다. 상대방을 구속하려다 보면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그녀의 말은 명언이었다(216쪽). 카나리아 군도 고메라 섬의 휘파람 말에 얽힌 이야기도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흐느끼는 낙타>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바로 타이틀로 정한 <흐느끼는 낙타>였다. 1970년대 중반, 사하라의 독립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비화되는 동안 싼마오는 현지에서 예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다. 폴리사리오 민족해방전선(책에서는 유격대로 표현한다), 인근의 모로코와 모리타니 그리고 알제리까지 개입이 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분쟁이 시작된다. 7만 명 남짓 하는 사하라위 인들은 민족자결을 주장하면서 독자적인 국가 건설을 꿈꾼다. 이 와중에 스페인 본국에서 유학한 파시리와 그의 아내 샤이다 그리고 오피뤼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사막을 사랑한 이방인에게도 정치적 분쟁과 그에 수반된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읽어본 듯한 기시감이 전율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어느 순간 깨닫게 됐는데, 어려서 죽어라 모으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췌돼서 실린 글에서 이미 <흐느끼는 낙타>를 읽었던 것이다. 정말 놀라웠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이달의 명작다이제스트’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들에서 알짜배기만을 뽑아서 실어 주곤 했던 것이다. 아마 근 이십년 전의 일이라 제목도 그 저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막을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 비극적 로맨스는 어린 나이에도 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감동과 재회하는 그 순간의 감동이란…….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흐느끼는 낙타>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싼마오는 언제나 사막인으로 살고 싶어 했었지만, 그녀도 결국 진짜 사막사람들인 사하라위 사람들에겐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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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접하는 매혹적인 감정이나 향기 혹은 맛을 잊을 수 없어 가끔 떠올리게 되는 기억 하나쯤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작년 여름 '현대 중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에 포함된다는 한 작가를 만났었다. 톡톡 튀는 발랄함과 엉뚱함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가득 담긴 그의 글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칠 새 없이 키득거리게 되고 배시시 웃게 만드는 그의 글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 그 감정이 가끔 그리워 그의 책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던 때, 나는 그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이 책 <흐느끼는 낙타>이다.
내가 싼마오에게 끌리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막이 내가 동경하는 사막과 다르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사막을 사랑하기에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그녀를 나는 우러러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사막을 동경하지만 내 삶을 사막에서 시작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는 없기 때문이다. 사막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두려움도 동시에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하라 이야기>에서는 싼마오가 남편 호세와 함께 사막이란 새로운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면, <흐느끼는 낙타>에서는 사막에서 생활하면서 접한 그곳의 문화와 서사하라의 안타까운 현실을 싼마오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흐느끼는 낙타>에는 총 8편의 다른 제목을 가진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따뜻하고 다정한 심성이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싼마오는 단지 사막이 좋아서 모든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곳에서의 정착을 결심한다. 그리고 사막과 그곳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커질수록 그곳 사람들의 무지와 그곳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무겁게 느껴져 안타까움 또한 커져만 갔다. 그녀는 자신의 위험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즉시 행동하는 열정을 가진 여인이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싼마오의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열정과 자유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든지 행복하다고 느끼든지 그것은 바로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싼마오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삶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를 평범한 일상생활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또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만 같다. 그녀와의 한바탕 유쾌한 소동을 겪고 나면 더욱 더 그녀가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만큼 즐거움은 그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숨죽여 기다릴 것이다. 싼마오의 또 다른 책을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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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라는 이름을 작년부터 듣고 있었다. 그의 전작 <사하라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전작은 만나지 못했지만 <흐느끼는 낙타> (2009, 싼마오 지음, 막내집게 펴냄)를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는 충만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싼마오 산문집 <흐느끼는 낙타>에는 여덟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의 서사하라 이야기가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로 초반 세 편에 실려 있다. 그런 다음에는 서사하라의 불안한 정세를 담고 있는 '이름 없는 중사'가 실렸고, 바로 이어 모로코의 침략에 대한한 이야기이자 산문집의 표제작인 '흐느끼는 낙타'가 따른다. 뒤의 두 편은 서사하라를 떠나 정착한 카나리아 제도에 대한 이야기였고, 마지막은 그의 남편인 털보 호세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흔하지 않던 자가용을 몰고 다니면서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는 길 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평범하고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들을 특별하고 귀하고 사랑스럽게 읽어내는 저자의 눈길이 따뜻하다. 벙어리 노예의 이야기에서는 사하라의 계급제와 더불어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영혼을 담는 기계'(사진기)에서는 영혼에 대한 오래된 믿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하라위에서의 생활은 더이상 안전하고 평화롭지 않았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서사하라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웃나라인 모로코가 사하라를 침략하게 된 것. 스페인 군대와 사하라 유격대의 전투에서 생겨난 피해자가 '이름 없는 중사'였다면, 스페인 군대는 철수하고 모로코 군대가 들어오기까지의 혼란과 격동은 '흐느끼는 낙타'에 묘사되었으니, 해방 이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였으리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립군 대장이었던 파시리, 그의 아름다운 아내 샤이다, 샤이다를 차지하려 했지만 안 되자 모로코의 앞잡이가 되어 파시리와 샤이다를 위협하는 아지비, 형수인 샤이다를 사랑하면서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오피뤼아. 이들의 상황이 서사하라의 위기를 대변하며 숨가쁘게 펼쳐진다. 책 앞면에 실린 서사하라의 지도를 보았다. 서양 열강들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 1976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모로코와 모리타니의 침략을 받았고, 1979년 모리타니가 철수한 후에도 모로코에게 점령 당한 상태라고 한다.
비극적인 결말을 읽어낸 후 그 먹먹함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곧바로 '카나리아 제도 유람기'가 나와서 약간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비극에서 희극으로 장면 전환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없이 우울에 젖어 있을 수는 없는 것. 그들이 서사하라에서 나와 정착한 카나리아 제도의 각 섬들은 유쾌했고 평화롭고 개인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호세의 이야기도 보기 좋았다. 정말 다른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함께 산다는 것, 그야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번 책으로 싼마오를 처음 만났다. 대만의 출판사에서 27권의 전집이 출간되어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싼마오의 책은 25권이나 남았다.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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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인 남편 호세와의 기상천외한 신혼기를 그린 싼마오가 두 번째 산문집 『흐느끼는 낙타』를 펴냈다. 뒤늦게 『사하라 이야기』의 독자평을 보고 서둘러 읽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던 참에 『흐느끼는 낙타』를 만나 반가웠다. 표지 속 낙타의 표정은 참 포근해 보이는데, 저 낙타를 흐느끼게 만드는 사연은 무엇일까?
싼마오, 사막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흐느낌을 달래주다! 스페인인 호세와 결혼한 싼마오는 서사하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곳은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만났던 사하라 사막처럼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라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서사하라의 정세는 불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인 사하라위족과 스페인인 사이가 당연히 좋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싼마오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광산으로 출근하는 남편 호세를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 더위가 작열하는 사막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태워준다. 다른 사람들은 돼지라며 가까이하는 것조차 꺼리는 벙어리 노예에게 잠시동안 더위를 피하게 해주고, 소박한 음식을 건네준다. 사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담고 싶어 찍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는 기계로 오해받자 서슴없이 필름을 태양으로 태워버린다. 모로코의 진군으로 자신 또한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게 됐을 때도 쫓기는 자들을 도와주려 했다. 남편과 이웃들의 걱정에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싼마오, 한마디로 그녀는 오지랖이 너무 넓은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그 넓은 오지랖으로 그녀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안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하라에 머물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하게 되자 싼마오와 호세는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로 옮기게 된다. 카나리아새의 원산지이자 아름다운 화산섬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싼마오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고,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남편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유랑 생활을 마치고 고국 대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생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여러 편의 책과 노랫말, 임청하와 장만옥 주연의 영화 《곤곤홍진》의 각본 등을 쓰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91년 4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너무나도 멋진 흑백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자살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자살로 알려져있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도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서 생활하려면 낙타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과거 농경생활에서의 소처럼, 혹은 유목생활에서의 말처럼 말이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이동수단이 되기도 하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낙타는 곧 사막 사람들이며, 낙타의 흐느낌은 바로 그들의 흐느낌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서사하라에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로 시작된 그들의 흐느낌을 하루 빨리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09-25. 『흐느끼는 낙타』 2009/03/05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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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자그마한게 참 예쁘다. 표지엔 별이 총총히 떠 있는 하늘이 붉은 밤에 낙타 한마리가 고개를 꼬고 서있다. 낙타는 웃고 있다. 내가 보기에 낙타는 분명 웃고있다. 웃고있는 낙타를 보니 내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이 돈다. 책을 읽기도 전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싼마오는 스물 네살부터 세계각지를 돌다 스페인 남자 호세를 만나 결혼하고 북아프리카의 서사하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당시의 서사하라는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꿈꾸지만 이웃나라인 모로코와 모리타니의 영유권 주장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를 싼마오는 꾸밈없이 담백한 문체로 써내려가고 있다. 모처럼 장만한 차를 몰고 사막길을 횡단하다보면 만나게되는 외면할 수 없는 사막을 걷는 사람들, 고단한 삶 속에서 싼마오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게 되는 벙어리 노예, 싼마오가 들이댄 카메라를 영혼을 뺏는 기계라 믿고 마구 화를 냈던 사람들, 싼마오가 지키고 싶어 했지만 잃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감정을 넘치게 표현하지 않는 소탈하고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영유권 다툼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혼란스러움이 팽배하고 폭탄이 터지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그녀의 넉넉함이 대단해 보인다. 결국 그녀는 사하라를 떠나 인근의 카나리아 제도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 유람기도 글로 남겨놓았는데 벌써 30여 년 전의 여행기지만 읽고 있자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그녀의 남편 호세는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 후로 그녀는 대만으로 돌아와 강의와 집필활동을 하다 48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책을 썼을 당시에는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거라 생각지 못했을텐데... 종종 호세가 바다를 사랑한다는 얘기나 잠수를 한다는 얘기가 등장하면 괜시리 내 마음이 아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녀는 혼자서 얼마나 쓸쓸했을까.
대단한 이야기도, 거창한 이야기도 아닌데 왜이리 내 마음을 흔드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 따뜻한 가슴이 내게도 전해져 그런가보다. 그녀의 또 다른 책 <사하라 이야기>도 얼른 읽어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려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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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는 싼마오의 이야기.. 처음 <사하라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참 좋았었다. 젊은 새댁의 거침없는 생활이 너무 멋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가감없이 써내려갔던 그녀의 문체가 좋았을게다. 꾸미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다가서기 좋은 느낌을 전해줄 때가 있다. 물론 꾸며야 할 상황이라면 꾸며야하겠지만 말이다. 뜨거운 사막을 사랑하는 여자.. <사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 여자를 이토록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는가 궁금했었다. 그토록 힘겹다는 타지에서 그것도 뜨거운 햇빛과 모래뿐인 사막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토록이나 그녀에게 당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가가 궁금했었다는 말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 하나만을 믿고 거기에 갔을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한 그 어떤 것들이 틀림없이 작용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무리일까? 하지만 이 책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속에는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담겨져 있었다. 누구나 겪으며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도 들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삶의 절망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해와 싸움과 화해와 이해도 들어 있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았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이뻐보이는 순수함과 같은 것들이 느껴져 참 좋았다. 이 책, <흐느끼는 낙타> 속에는 그녀에 관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속세의 인연) 이야기들이 작가의 말로 담겨져 있다. 겨우 6년이라는 결혼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이나 거침없이 사막속에 뛰어들어야 했던 배경과 같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조금은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어린시절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게 아니었을까? 어버이날에 쓴 그녀의 글속에는 그녀가 살아왔던 짧은 생의 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베일을 벗으며 나를 맞이했다. 싼마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작 <사하라 이야기>와 같이 독특한 사하라 이웃들과 엉키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흐느끼는 낙타>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슴 찡한 느낌은 나를 찾아왔다. 서사하라의 정세가 날로 불안해져 가는 와중에 이웃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는 싼마오에게 사하라는 그저 사하라일뿐이다. 그녀의 남편 호세와 그녀 싼마오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절망으로, 때로는 더이상 없을것 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정갈하게 그려져 있다. 결국 이상속에서만 맴돌던 서사하라 주민들의 문맹앞에서 그녀가 사하라를 떠나야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하라는 또하나의 고향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이야기속에서 '벙어리 노예'나 '영혼을 담는 기계'를 통하여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조건들은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영혼이 살아 있어 사랑을 가슴에 품을 줄 알았던 벙어리 노예,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유격대장의 아내였기에 처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샤이다라는 여인의 죽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서사하라의 자주 독립을 외치며 투쟁하는 유격대의 모습속에서 철없는 욕망과 이상만을 보아야 했던 싼마오의 가슴은 서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웠으리라.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현재를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막 사하라를 떠나 화산섬 카나리아 제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의 장례를 치뤄주는 그들 부부에게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고 멀어져가던 카나리아 제도의 이웃들은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담한 삶의 이야기는 몇번을 마주친다해도 식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따뜻한 그녀의 마음은 자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돈을 얼마나 버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책속 이야기 '털보와 나'를 통해서 보여준 그녀 부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정겹다. 그리고 소박하다. 번듯한 청혼 한번없이 그냥 결혼해 버려서 돌이켜보면 유감스럽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들 부부의 매력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무슨 반쪽?" "당신의 반쪽이니까 당연히 나지!" "나는 반쪽이 아니라 하난데" '그래, 사실 나도 반쪽이 아냐. 나도 완전한 하나라고'... 가정 같지가 않고 남녀가 같이 사는 기숙사같다고 했지만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인정해주었고 또다른 하나로써 받아들였다.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던 그들 부부.. 그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찾으려 했을 뿐이라던 그들 부부.. 특별할 것 없는 그들 부부의 특별한 이야기속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삶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녀, 싼마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또다시 그녀의 이야기속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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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낮이면 뜨겁게 내리쬐는 직사광선에, 밤이면 이를 딱딱거리게 만드는 추위에 몸을 맡겨야 하는 곳. 매일 모습을 바꾸어가는 모래언덕에 쉽사리 길을 찾기도 힘든 곳. 그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서사하라, 어쩌면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할 그곳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늘 그렇듯 희로애락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