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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이] 가해자의 망각 피해자의 기억상실
"[책세이] 가해자의 망각 피해자의 기억상실" 내용보기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의 호위속에서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을 도륙했다. 이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바시르의 암살이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기독교 세력인 바시르를 레바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으나 취임 직전 살
"[책세이] 가해자의 망각 피해자의 기억상실" 내용보기
 

1982년 9월 14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 사브라와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의 호위속에서 팔랑헤당 민병대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을 도륙했다. 이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바시르의 암살이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기독교 세력인 바시르를 레바논 대통령으로 추대하였으나 취임 직전 살해당했다. 이에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당원들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색출을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양민 3000여명을 학살하였지만, 무장세력은 이미 2주전에 튀니지로 떠난 뒤였고 살육당한 사람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들이었다. 이것이 사브라 샤틸라 난민학살의 전모이다.


이 사실(무장세력이 이미 난민촌을 떠난 뒤라는)을 팔랑헤 당원들도 이스라엘 군수뇌부도 이미 인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책 화자들의 비극이자 망각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리 폴먼은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마리의“비열한”개가 자신을 물어뜯어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과 만난다. 스물여섯 마리라는 숫자는 20년 전 레바논에서의 일과 직결되어 있고, 이로 인해 아리는 자신이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아온 과거 20년 전의 기억이 파헤쳐 진 지점과 꼭지점을 그으며 직선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보아즈를 만나고 부옇게 이는 먼지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그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고 그 이미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친구 카미를 찾아 네덜란드로 간다. 카미는 누구나가 핵물리학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도가 촉망되는 천재소년이었으나, 그는 팔라펠을 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되어있었다. 핵물리학자를 포기한 이유를 묻는 아리에게 카미는 “하지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난 모든 게 끝나버렸어, 그 후로 난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살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 그 학살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는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 밖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세상을 버렸다. 그는 목숨을 버림으로써 망각하지 못한 과거가 아직까지 독기를 품어내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가래로 콱 막힌 답답한 목을 쏴한 맛으로 뻥 뚫어주는 박하사탕의 단맛처럼.

 

80년 광주에서 소녀를 죽인 군인 영호는 작전수행과정상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죽였고, 그 독한 기억은 여전히 20년이 지난 중년사내의 핏줄 깊숙이 퍼지는 현재진형행의 독극물이었다. 그는 가해자일까? 그는 피해자일까? 기억을 놓아버리지 못해 영호는 철교위에 서 절규해야 했고, 보아즈는 20년이 흐른 뒤 매일 개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카미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악몽과 도피 대신 망각이라는 방어기제 뒤로 숨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있었다.

 

 

 

영호가 소녀를 죽이던 그때 나는 10살 소녀였다. 내일부터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에 수지맞았다고 학교에서 돌아와 흙바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머리위로 분주히 비행기가 날았다. 벌써 며칠 전부터 어른들의 입에서는 유언비어, 데모, 전두환이라는 말이 숨죽인 듯 나왔고 평소답지 않은 잦은 비행기 출몰에 겁먹은 우리는 유언비어가 데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다 풀지 못한 조금은 공포스러운 수수께끼 인양 서둘러 귀가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5월 17일 이었을 테다.

 

광주사태와 폭도가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개벽하던 때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했다. 도청 지근거리에 살았던 당신은 중고등학생이던 아들딸이 행여나 의분에 뛰쳐나가 총에 칼에 찔려 주검이 되어,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를 횡사가 겁나 밤이면 빨래줄로 장성한 아들과 딸 손발을 묶어 당신 손과 발에 칭칭 동여맸던 이야기며, 밤이면 두두다다 콩볶아대는 소리에 귀를 막으며 옷에 오줌까지 절이던 나와 남동생을 부부 가운데로 놓고 솜이불을 이중삼중으로 덮어 밤을 나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5월26일 이었을 터- 확성기로 목놓아 “광주애국시민 여러분 마지막 항전입니다”라고 절규하던 여자의 목소리(어쩌면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박흥수의 딸로 분한 이요원이 역을 맡은 그녀일지도 모르겠다)를 들으며 양심의 가책과 절망의 눈물로 지새운 밤까지 소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남은 소주잔을 털어 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역사의 죄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라도 너희들을 지켜야 했다”고.

 


나의 충격은 사진속 살육당한 처참한 몰골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들이 폭도나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 열흘 동안의 그 밤을 그 낮을 그 총소리를 그 피비린내를 그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를 조금도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평소보다 빨리 학교에서 끝나 돌아왔고, 땅따먹기를 하던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분주히 날았고, 유언비어라는 뜻을 묻다가 간첩삐라를 만진 기분으로 우리들은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악을 쓰기도 전에 뿔뿔이 집으로 돌아간 사실뿐이다. 열흘간의 철저한 기억의 상실 기억의 부존재, 이것은 내가 입은 또 다른 상처일까?


아리는 프렌켈을 만난다. 파출리향수 애호가이자 주짓수 전국 챔피온 인 그는.

사브라 샤틸라 학살 직전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간의 교전시 마치 무아지경에 빠져 건물외벽에 커다랗게 내걸린 바시르의 얼굴 앞에서 마치 왈츠를 추듯 팔레스타인에 기관총을 난사하던 군인이었다. 그가 망각의 늪으로부터 아리를 핀셋으로 꼬집어 내었고, 그 자리에 아리가 있었음을 그리고 아리가 사브라 샤틸라 학살과 난도질당한 사체무더기와 가족을 잃은 양민들의 절규를 목도하였노라고 아리의 기억에 향불을 피워 그를 제단 앞에 앉혀놓았다.


지난 해 세밑, 팔레스타인에 또 다시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밤낮으로 신무기를 퍼부었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점심을 싸들고 팔레스타인의 전쟁쇼를 망원경으로 구경하며 이를 드러내 웃는 동안, 이스라엘의 포탄이 난민촌에 유엔학교에 부상자치료 병원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져 노인을 죽어나자빠지게 하였고, 청소년의 팔다리를 떨어뜨렸으며, 죽은 어미 곁에 목이 쉬고 배가 고파 더 울 수조차 없는 젖먹이들을 쇳소리 나는 목으로 울부짖게 하였다.


유엔학교에 폭격을 가하고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스라엘 군대변인은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들(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때로 민간인을 이용하여 테러한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을 한 집에 가두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유엔에서 진상조사차 마을로 들어왔다. 유엔 조사자들은 죽은 어미 곁에서 며칠동안 먹지도 치료받지도 못한 젖먹이들의 비극과 시체무더기속 사람들은 여자와 노인과 어린아이였다고 밝혔다.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저주의 광시곡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으며 그 반복의 왈츠 가운데 무수한 기억들이 망각되고 상실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아리 보아즈 카미는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박하사탕 그 단맛과 같은 첫사랑의 아릿한 순수함으로 이제는 되돌아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교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영호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유대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들을 깊이 연민한다. 그렇지만 샬롯 알데브론의 호소는 너무나 눈물겹다. 9.11사태로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13살 미국소년 알데브론은 찬찬히 오랫동안 저를 한번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가해자의 망각이 다소간 불편하다. 팔랑헤당 민병대가 바시르 살해와 무관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때 조명탄을 쏘며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며 팔랑헤당을 호위했던 이스라엘은 마치 용산참사때 불타는 망루에 물대포를 쏜 용역들은 혐의가 있고 그들을 방패로 막아 호위했던 경찰들은 무혐의라고 판단한 2009년 대한민국 검찰의 변론처럼 무참하다.

 

나는 전쟁에 그래서 반대한다.

전쟁에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사람을 살육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그들의 삶 밖으로 밀어내는 부도덕하고 잔인한 전쟁을 나는 반대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오토리버스 오디오처럼 기억의 상실과 기억의 존재없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망령난 그 전쟁을 깊이 혐오한다.

 

 


 

알데브론의 호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저/ 그린비 펴냄 ---에서 발췌 )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중략)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16일 바그다드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00명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순간 바그다드 어린이병원‘죽음의병실’에 있는 14살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겁니다. 알리는 91년 여러분이 터뜨린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중략)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중략)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간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빠를 가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중략)    


이건 액션영화도 아니고, 공상영화도 아니고,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아라크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후략)



 

b******0 2009.02.24. 신고 공감 3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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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하여 ★★★★★
"[만화]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하여 ★★★★★ " 내용보기
아리 폴먼,데이비드 폴론스키 공저/김한청 역 | 다른 | 원제 Waltz with bashir (2009) | 2009년 02월 | 페이지 128 | 432g | 정가 : 13,000원 [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
"[만화]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하여 ★★★★★ " 내용보기

아리 폴먼,데이비드 폴론스키 공저/김한청 역 | 다른 | 원제 Waltz with bashir (2009) | 2009년 02월 | 페이지 128 | 432g | 정가 : 13,000원


[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k******m 2009.02.09. 신고 공감 1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책의 정보를 살피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 책의 정보를 살피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용보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넘기면서 꽤 많이 놀랐고 아팠다. 한편의 다큐멘타리같은 이 만화책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82년 레바논 전쟁의 어느 순간이다. 사람들이 대량 학살당하던 그 때, 그 아픈 시절의 이야기다.이 책을 보면서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속절없이 아팠고, 대책없이 슬펐다.이 책의 판매지수를 봤다.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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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넘기면서 꽤 많이 놀랐고 아팠다. 한편의 다큐멘타리같은 이 만화책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82년 레바논 전쟁의 어느 순간이다. 사람들이 대량 학살당하던 그 때, 그 아픈 시절의 이야기다.

이 책을 보면서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속절없이 아팠고, 대책없이 슬펐다.

이 책의 판매지수를 봤다.
낮다.
판매가 많이 안 된 것 같다.

이 리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이 책의 정보를 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리뷰를 통해서라도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추악하지만 분명한 진실이, 지금도 진행 중인 그것이 여기 있다고, 그러니 읽어보시라, 고.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다.

b****n 2009.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용보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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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 질병의 주된 증상은 충격적인 사건의 재경험과 이와 관련된 상황 및 자극에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바시르와 왈츠를> (2009, 아리 폴먼 지음, 다른 펴냄)은 이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20년 전의 기억을 잃은 아리를 주인공으로,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며 조금씩 찾게 되는 기억 속에서 드러나는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을 주제로 한다.

1982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이 사건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지명하면서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협력은 거의 완성되는가 했는데, 바시르 제마엘이 대통령 취임 직전 암살당하면서 그 불똥은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 특히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의 노인과 여자들, 아이들에게 튀게 된다. 바시르가 이끌었던 기독교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 군의 호위 아래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대량학살로 대신한 것이다.
저자인 아리 폴먼은 이 레바논 침공에 군인으로서 참전했고, 학살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을, 2년 전부터 개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하나씩 찾아낸다. 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에게서, 옆에서 다른 작전을 수행했던 이에게서, 당시 종군 기자로 활약했던 저널리스트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기억은 완전해지고, 대량학살의 처참함은 선명해진다.
학살당한 시신들과 오열하는 여인의 사진을 통해 이것이 허구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2009년 깐느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답게, 그림들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다. 악몽 속을 뛰어가는 개들의 긴장된 근육과 광포한 눈매와 흩날리는 침, 사상자를 실으러 온 헬리콥터의 밝은 조명등과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시신을 덮은 하얀 천, 아라비아산 말 시체의 눈가에 달라붙은 파리와 눈동자에 비쳐 보이는 사진사의 모습,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학살의 장면들은 아주 생생하다. 과거는 현재의 총천연색과 대비되는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묘사되어, 절제된 느낌을 준다.
이 이스라엘 인의 양심고백을 통해, 현재도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이후의 영향에 관계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인식은 내가 이 책을 읽음을 통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y*****9 2009.02.15.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바시르와 왈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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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속이 너무 안좋아 결국은 일어나버렸다. 좀 괜찮을까 싶어 앉아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약을 챙겨먹고 잠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버렸다.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비상약. 생필품.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바시르와 왈츠를...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우연찮게 들은 라디오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가자지구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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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속이 너무 안좋아 결국은 일어나버렸다. 좀 괜찮을까 싶어 앉아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약을 챙겨먹고 잠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버렸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비상약. 생필품.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바시르와 왈츠를...

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우연찮게 들은 라디오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가자지구의 봉쇄를 풀고 어쩌구 하는 말이 들려왔다. 내용을 끝까지 듣지 못해 잠시 검색을 해 보니, 이스라엘이 잠시 봉쇄를 풀어주고 가자지구의 꽃 수출을 '허락'했다는 내용이다. 하! 무력으로 생필품까지 제한을 한 녀석들이 생색내기 쇼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인터넷에 뜬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무장정치세력하마스'...
이스라엘의 쇼를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하마스 앞에는 '무장'이라는 말이 당연 수식어처럼 들어가 있고, 어린시절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반공교육의 여파가 남아있는 내게는 무장이라는 말은 또한 당연히 무장공비 따위의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저 단순히 그런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 혹은 일부 무식한 내국인들도 포함해서 - 광주민주화운동의 장면을 보며 '무장 폭도들의 정치 세력화'운운 한다면 어이없어 무시하는 감정을 넘어서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이처럼 우리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 참상을 알지 못하면서 말을 쉽게 꺼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막연히 알고 있으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조금 더 '진실'에 다가서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이 어떠한 내용인가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부제가 암시하고 있듯이,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의 내용이다. 그 양심고백의 시작은 2006년 1월, 한 이스라엘인의 알 수 없는 악몽에서 시작하여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대학살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된다.

1982년, 수년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있던 북부지역을 이스라엘 방위군이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주둔한 지역의 미사일 저장고를 제거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계획은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점령 후, 어느 순간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인 아리엘 샤론에 의해 그의 기독교 동맹이자 레바논의 친이스라엘파인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극단적인 계획으로 변경된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미 튀니지로 피한 상태였고 이스라엘에 대한 침공 위협은 사라진 상태였다. 바시르 제마엘은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취임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만다. 그 폭탄 테러가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지금 현재도 여전히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모른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샤브라와 사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바시르의 사망에 대한 피의 복수를 원하는 기독교 민병대 - 아,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지는 학살의 역사가 부끄러울뿐이다 - 를 위해 이스라엘 군은 조명탄을 쏘아 올렸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이미 떠나버린 난민촌에 남아있는 노인들, 여자들, 아이들이 무차별하게 학살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80년대 당시 군복무를 했던 한 이스라엘 병사가 샤브라와 사틸라 대량학살의 사건을 겪은 후,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고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끔찍했던 사건을 알게 되면서, 특히 마지막에 실린 참사의 실제 사진을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 와중에도 문득 망각의 기억속에 찾은 불편한 진실,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이라고 하지만 어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조명탄을 쐈든,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조명탄을 쐈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지? 모두 학살자들을 도운거나 다름이 없는데"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네 지각능력으로 봤을 때 어떤 차이도 없어. 학살자나 학살자를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 모두 한통속이었던 거야. 아무런 차이도 없어. 네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행위가 자행되던 현장에 내던져졌어. 너는 거기에 있었고 조명탄을 쐈어, 하지만 네가 직접 대량학살에 가담한 것은 아니야"(131)

어쩌면 양심고백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량학살의 책임은 기독교인 팔랑헤당 민병대에 있고 이스라엘의 어린 병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된 또 다른 희생자인 것이라는 암시가 느껴져 조금 불편해졌다.

82년 대량학살의 배후 세력이었던 샤론은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될 수 없게 되었지만, 20년 후 그는 이스라엘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면 무수히 많이 쏟아져나온다. 바로 얼마전 2008년 12월 27일 그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22일간 계속된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1,300여명이 사망했고 5,3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중 어린이 사상자가 2,300여명이다.
가자지구의 학살은 1948년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후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린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으로 굳이 돌아가지 않고 2006년의 팔레스타인 총선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06년 총선에는 파타, 하마스, 인민전선, 인민당 등 여러정당이 참여하였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하마스가 132석 가운데 72석을 얻으며 집권당이 되었다. 선거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과격파라 하며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총선 결과 하마스의 집권이 확실시 되자 경제봉쇄, 군사공격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하마스 정권 무너뜨리기를 시도하였다.
이스라엘은 평소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로 일상적인 인권학살을 하고 있었지만 - 그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다면 역시 만화책으로 나온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어보시길. 2002년의 분리장벽 건설은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 2006년의 군사공격이후 가자지구 봉쇄는 갈수록 더 강화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은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들고 이스라엘의 허락 없이는 외부로 나갈수도 없어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성탄의 거룩한 분위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군사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은 2009년 1월 17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기본 생필품에 대한 봉쇄는 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도 필요없고, 군사행동으로 이미 죽일만큼 죽였으니 잠시 멈추겠다는 뜻일뿐인 것 아닌가.

'바시르와 왈츠를'을 읽으며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을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은 계속되고 있음이 무마될수는 없는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참상속에 그 누군가의 양심고백의 가치는 매우 클 것이다. 조금씩 이스라엘의 만행이 밝혀지고, 의무적인 군복무 생활에 대한 대체복무를 원하는 양심적인 이스라엘인이 조금씩 늘어가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한걸음씩 느끼게 되는 것이니.
지금도 고통속에 있는 가자지구의 모든이에게, 이유없이 학살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전세계의 모든이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뿐이다....






- 팔레스타인에 대한 최근의 자료는 교회와 인권 제 152호에 실린 팔레스타인평화연대WWW.pal.or.kr 미니님의 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참고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 가자에 띄운 편지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분리장벽에 대한 글은 어느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과 자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나면 덧붙이겠습니다. 제게 알려주셔도 좋겠구요.

r***2 2009.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학살'을 잊지 않는 밥법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학살'을 잊지 않는 밥법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내용보기
Ⅰ. '학살' 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   학살 1 / 김남주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학살'을 잊지 않는 밥법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내용보기

Ⅰ. '학살' 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

 

학살 1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실천문학사.

 

 

하마터면 결코 기억할 수도 없었을 그 시대의 일들이 이렇게 우리곁에 살아 있다.

1980년 5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학살'의 기억은 풍문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이같은 노래의 한 자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를 내동댕이 쳤다.

격동의 80년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 그날의 '비디오'를, 글들을,

찾아 읽으며, 나누고 또 나누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사람사는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새날은 오는 듯 하였다. 

20세기의 끝자락, 민주주의는, 온전한 정치적 자유는

사람들의 움켜잡은 손에 거의 다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Ⅱ. '학살', "홀로코스트" 

 

어느날 영화를 보러갔다.

2차 세계대전중 일어난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학살의 내용보다 독일인이 유대인을 구해낸 실화라는 사실에 솔깃하여

만나러 갔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적어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사람이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야마는건지..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학살'은 기억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흥분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으리라.

하지만 80년 5월, 이 땅의 학살도 쉬 잊혀지는데

더 오랜 남의나라 이야기가 어찌 기억속에 여태 남아 있으랴...

 

학살은 학살 그 자체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상까지 죽여버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Ⅲ. 그리고 이 '학살'을 보라,  [바시르와 왈츠를]

 

학살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쉬 말해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한 유대인들이

이제는 학살자가 되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철저히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다.

자신들이 그만큼 역사속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던 이들이 보여주는 만행을 보라.

글이 아닌 그림으로, 사진으로 생생히 전해지는 학살의 기억들.

 

지은이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한번 잊어보라고, 꽁꽁 숨겨두고 묻어두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라고....

과학이 더 발전되어 정말 기억을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다면

그들은 이 학살에 대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문득문득 솟아나 어떤 계기로 하여금 잊어버리고 묻어버렸던 그 기억들을 찾아내도록 만든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정말로 잊고 싶었던 아픈 학살의 진실들이다.

 

레바논 민병대의 학살을 방조하고 실질적으로 도운 이스라엘 병사들의 기억은

이 책에서처럼 결코 지워지지 앉는다. 다만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고 피냄새가 번지면 이윽고 기억속 장면들이 처참히 살아나

살아남은자들의 상처를 후벼판다.

우리는 이 책을 덮으려 하지만 덮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절규하는 난민의 모습과 총상에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이들의 사진이

마치 그날 오월의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제는 그만 잊고 살아도 될 것 같았던

'학살'의 기억들이 오롯이 살아나 밤을 지새우게 한다.

 

우리는 우리네 형제끼리...

저들은 저네들끼리....

게다가 주인공인 이스라엘인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서

드디어 가해자로! 변한 것이다.

 

정녕 '학살'의 피해자가  '학살'자가 되는 일이 생기고 만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몽땅 잊었단 말인가?

이 책은 제발 그러하지 말자고 조심스레 반성의 기색을 내보이는

이스라엘 자신의 목소리일까?

 

에니메이션이 원작인 이 다큐멘터리만으로는 조금은 기대를 걸어도 좋으리라. 

하지만 최근 '뉴스 속 세계'에는

다시 자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악화되는 것인가?

책 한 편이 던져주는 '학살'의 아픔과 충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리라.

 

끊이지 않는 국지전 속에 분단조국의 현실도 녹록치않게 악화되어가고 있다.

정녕 우리는, 사람들은 어디쯤에 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지....

묻고 또 묻는 시간들이다.

 

'학살'은 결코 잊혀지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이런....젠 장.

 

2009. 2. 12.  불어닿는 저 바람처럼 흔들리는 깊은 밤

 

들풀처럼
*2009-038-02-10

 

w******e 2009.02.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뾰족한 해결책 없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뾰족한 해결책 없을까" 내용보기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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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리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아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쟁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 마을의 주민이 무참히 학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특히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아니,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해 조명탄을 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아리는 그때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중간중간 장면이 급격히 바뀌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배경이 된 사건이 1982년이라니 불과 2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샤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몰랐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임시켰고 다시는 국방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오히려 더 힘이 있는 총리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국민의 속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일 테지만.) 그들이 자기네는 평화를 존중한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긴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들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자기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뽀죡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일의 발단이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문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결자의 힘이 약하니, 원. 만약 팔레스타인이 힘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동안 학대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다른 민족을 똑같이 응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대민족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그것마저도 괜히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생활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분명 옳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이 통하는 세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l*****8 2009.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시르와 왈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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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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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바람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1982년 9월 16일 벌어진 팔랑헤딩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한것은 이 학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인군대가 난민촌으로 들어가 피의 학살을 벌이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명령에 따라 난민촌 주위를 탱크로 봉쇄하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운 사실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의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노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애니로 진행되던 내용이 갑자기 사진으로 바꼈을때 느끼게 되는 사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큰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양측의 분쟁은 당분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휴전상태지만 이 전쟁의 끝은 양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도 많이 닮아있음에 서글픔이 더욱 느껴졌다.

k****7 2009.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의 왈츠
" 죽음의 왈츠" 내용보기
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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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l*******1 2009.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전쟁의 잔혹함을 만화로 담아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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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전쟁이 아닐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간 파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전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참혹한 일들, 그 중에서도 학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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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전쟁이 아닐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간 파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전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참혹한 일들, 그 중에서도 학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문명화된 이 지구상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버젓이 자행이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목이 어떠하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강제적으로 앗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중에 이스라엘과 공조한 기독교도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베이루트 난민촌에서 3,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참히 대량 학살한다. 이 책은 그 학살현장을 폭로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화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를 석권하며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구성을 벗어나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한 개인의 모습을 아주 독특한 어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아리 폴먼은 옛 친구의 계속되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직접 참전한 전쟁임에도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을 찾아 나서면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하나둘씩 재구성해 나간다. 지은이가 도착한 기억의 종착점에는 여자와 어린 아이, 노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난민 3,000여 명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사브라․샤틸라 대량학살’ 사건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 간직하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에 행한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 했고, 그와 같은 끔찍한 상황들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린 것이다. 


만화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든 이 작품은 짧은 글이지만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그림이 전쟁이 주는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작품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암울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이성이 빚어낸 이 찬란한 문명 속에서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 ‘하얀 전쟁’, ‘박하사탕’, ‘마지막 휴가’,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각종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전쟁에서 이긴 자는 은연중에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지은이도 바로 그 학살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후유증으로 당시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산물(?)이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공범자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뿐 만 아니라 많은 다른 공범자들을 보아왔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많은 선진국들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상을 자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을 정당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메아리로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c*****1 2009.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