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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폴먼,데이비드 폴론스키 공저/김한청 역 | 다른 | 원제 Waltz with bashir (2009) | 2009년 02월 | 페이지 128 | 432g | 정가 : 13,000원 [드니로 게임]이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 곧바로 내 손에 도착한 책이 이 책이다. 운명같은 공교로움이다. 같은 레바논 이야기라니. [드니로 게임]은 기독교 민병대원의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이스라엘군으로 레바논에 갔던 '나'의 이야기다. 이 에니메이션을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 갈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 책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했다. 물론, 책을 본 후에는 더욱 에니가 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옛 친구 보아즈와 술집에 들른 나(아리)는 반복되는 보아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된다. 사건을 겪은지 20년이 지난 후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은 2년 동안 매일 밤 26마리의 사나운 개가 나타나는 꿈이었다. 보아즈는 어느 마을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들어갔다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도망갈까봐 개를 쏘아죽이게 된다. 딱 26마리. 꿈 이야기에 이어 레바논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밀을 밝혀 낼수록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맙소사! 책에서는 사진으로 보여주어 함께 실감하도록 도와준다. 톡 쏘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그림체는 책에 집중하게 했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때로는 말로 지시만 내리는 사람들은 전쟁 속의 일을 대단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치 게임하듯 장기 두듯이 이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낼테니까. 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당하는 사람이나 상처 입지 않았겠냐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책임 회피용 에니메이션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에니를 만든 사람이 국가적 임무를 띄고 이 에니를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개인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이런식으로라도 밝히고, 작전에 투입된 개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더러운 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서 같은 남쪽 땅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에 내 머리속이 전쟁판이다. 전쟁. 정말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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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넘기면서 꽤 많이 놀랐고 아팠다. 한편의 다큐멘타리같은 이 만화책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82년 레바논 전쟁의 어느 순간이다. 사람들이 대량 학살당하던 그 때, 그 아픈 시절의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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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 질병의 주된 증상은 충격적인 사건의 재경험과 이와 관련된 상황 및 자극에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바시르와 왈츠를> (2009, 아리 폴먼 지음, 다른 펴냄)은 이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20년 전의 기억을 잃은 아리를 주인공으로,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며 조금씩 찾게 되는 기억 속에서 드러나는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을 주제로 한다. 1982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이 사건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지명하면서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협력은 거의 완성되는가 했는데, 바시르 제마엘이 대통령 취임 직전 암살당하면서 그 불똥은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 특히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의 노인과 여자들, 아이들에게 튀게 된다. 바시르가 이끌었던 기독교 팔랑헤당 민병대는 이스라엘 군의 호위 아래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대량학살로 대신한 것이다. 저자인 아리 폴먼은 이 레바논 침공에 군인으로서 참전했고, 학살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을, 2년 전부터 개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하나씩 찾아낸다. 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에게서, 옆에서 다른 작전을 수행했던 이에게서, 당시 종군 기자로 활약했던 저널리스트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기억은 완전해지고, 대량학살의 처참함은 선명해진다. 학살당한 시신들과 오열하는 여인의 사진을 통해 이것이 허구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2009년 깐느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답게, 그림들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다. 악몽 속을 뛰어가는 개들의 긴장된 근육과 광포한 눈매와 흩날리는 침, 사상자를 실으러 온 헬리콥터의 밝은 조명등과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시신을 덮은 하얀 천, 아라비아산 말 시체의 눈가에 달라붙은 파리와 눈동자에 비쳐 보이는 사진사의 모습,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학살의 장면들은 아주 생생하다. 과거는 현재의 총천연색과 대비되는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묘사되어, 절제된 느낌을 준다. 이 이스라엘 인의 양심고백을 통해, 현재도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 이후의 영향에 관계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인식은 내가 이 책을 읽음을 통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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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속이 너무 안좋아 결국은 일어나버렸다. 좀 괜찮을까 싶어 앉아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약을 챙겨먹고 잠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버렸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비상약. 생필품.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바시르와 왈츠를... 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우연찮게 들은 라디오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가자지구의 봉쇄를 풀고 어쩌구 하는 말이 들려왔다. 내용을 끝까지 듣지 못해 잠시 검색을 해 보니, 이스라엘이 잠시 봉쇄를 풀어주고 가자지구의 꽃 수출을 '허락'했다는 내용이다. 하! 무력으로 생필품까지 제한을 한 녀석들이 생색내기 쇼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인터넷에 뜬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무장정치세력하마스'... 이스라엘의 쇼를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하마스 앞에는 '무장'이라는 말이 당연 수식어처럼 들어가 있고, 어린시절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반공교육의 여파가 남아있는 내게는 무장이라는 말은 또한 당연히 무장공비 따위의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저 단순히 그런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 혹은 일부 무식한 내국인들도 포함해서 - 광주민주화운동의 장면을 보며 '무장 폭도들의 정치 세력화'운운 한다면 어이없어 무시하는 감정을 넘어서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이처럼 우리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 참상을 알지 못하면서 말을 쉽게 꺼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막연히 알고 있으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조금 더 '진실'에 다가서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이 어떠한 내용인가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부제가 암시하고 있듯이,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의 내용이다. 그 양심고백의 시작은 2006년 1월, 한 이스라엘인의 알 수 없는 악몽에서 시작하여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대학살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된다. 1982년, 수년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있던 북부지역을 이스라엘 방위군이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주둔한 지역의 미사일 저장고를 제거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계획은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점령 후, 어느 순간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인 아리엘 샤론에 의해 그의 기독교 동맹이자 레바논의 친이스라엘파인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극단적인 계획으로 변경된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미 튀니지로 피한 상태였고 이스라엘에 대한 침공 위협은 사라진 상태였다. 바시르 제마엘은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취임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만다. 그 폭탄 테러가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지금 현재도 여전히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모른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서부 베이루트 지역에 있는 샤브라와 사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했다. 바시르의 사망에 대한 피의 복수를 원하는 기독교 민병대 - 아,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지는 학살의 역사가 부끄러울뿐이다 - 를 위해 이스라엘 군은 조명탄을 쏘아 올렸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이미 떠나버린 난민촌에 남아있는 노인들, 여자들, 아이들이 무차별하게 학살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80년대 당시 군복무를 했던 한 이스라엘 병사가 샤브라와 사틸라 대량학살의 사건을 겪은 후,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고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끔찍했던 사건을 알게 되면서, 특히 마지막에 실린 참사의 실제 사진을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 와중에도 문득 망각의 기억속에 찾은 불편한 진실,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이라고 하지만 어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조명탄을 쐈든,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조명탄을 쐈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지? 모두 학살자들을 도운거나 다름이 없는데"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네 지각능력으로 봤을 때 어떤 차이도 없어. 학살자나 학살자를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 모두 한통속이었던 거야. 아무런 차이도 없어. 네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행위가 자행되던 현장에 내던져졌어. 너는 거기에 있었고 조명탄을 쐈어, 하지만 네가 직접 대량학살에 가담한 것은 아니야"(131) 어쩌면 양심고백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량학살의 책임은 기독교인 팔랑헤당 민병대에 있고 이스라엘의 어린 병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된 또 다른 희생자인 것이라는 암시가 느껴져 조금 불편해졌다. 82년 대량학살의 배후 세력이었던 샤론은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될 수 없게 되었지만, 20년 후 그는 이스라엘의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면 무수히 많이 쏟아져나온다. 바로 얼마전 2008년 12월 27일 그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22일간 계속된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1,300여명이 사망했고 5,3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중 어린이 사상자가 2,300여명이다. 가자지구의 학살은 1948년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후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린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으로 굳이 돌아가지 않고 2006년의 팔레스타인 총선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06년 총선에는 파타, 하마스, 인민전선, 인민당 등 여러정당이 참여하였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하마스가 132석 가운데 72석을 얻으며 집권당이 되었다. 선거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과격파라 하며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총선 결과 하마스의 집권이 확실시 되자 경제봉쇄, 군사공격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하마스 정권 무너뜨리기를 시도하였다. 이스라엘은 평소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로 일상적인 인권학살을 하고 있었지만 - 그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다면 역시 만화책으로 나온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어보시길. 2002년의 분리장벽 건설은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 2006년의 군사공격이후 가자지구 봉쇄는 갈수록 더 강화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은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들고 이스라엘의 허락 없이는 외부로 나갈수도 없어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성탄의 거룩한 분위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군사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은 2009년 1월 17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기본 생필품에 대한 봉쇄는 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도 필요없고, 군사행동으로 이미 죽일만큼 죽였으니 잠시 멈추겠다는 뜻일뿐인 것 아닌가. '바시르와 왈츠를'을 읽으며 한 이스라엘인의 양심고백을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은 계속되고 있음이 무마될수는 없는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참상속에 그 누군가의 양심고백의 가치는 매우 클 것이다. 조금씩 이스라엘의 만행이 밝혀지고, 의무적인 군복무 생활에 대한 대체복무를 원하는 양심적인 이스라엘인이 조금씩 늘어가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한걸음씩 느끼게 되는 것이니. 지금도 고통속에 있는 가자지구의 모든이에게, 이유없이 학살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전세계의 모든이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뿐이다.... - 팔레스타인에 대한 최근의 자료는 교회와 인권 제 152호에 실린 팔레스타인평화연대WWW.pal.or.kr 미니님의 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참고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 가자에 띄운 편지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분리장벽에 대한 글은 어느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과 자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나면 덧붙이겠습니다. 제게 알려주셔도 좋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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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참여해서 아주 일부의 기억만을 잃어버린 아리 폴먼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아리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잊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아리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아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쟁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 마을의 주민이 무참히 학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특히 난민촌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아니,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위해 조명탄을 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아리는 그때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책으로 펴낸 것이라 중간중간 장면이 급격히 바뀌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배경이 된 사건이 1982년이라니 불과 2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샤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몰랐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이 그 사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임시켰고 다시는 국방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오히려 더 힘이 있는 총리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국민의 속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리도 오십 보 백 보일 테지만.) 그들이 자기네는 평화를 존중한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긴 지금도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을 할 사람들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자기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뽀죡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그 일의 발단이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문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결자의 힘이 약하니, 원. 만약 팔레스타인이 힘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은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동안 학대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다른 민족을 똑같이 응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대민족의 생활방식과 교육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그것마저도 괜히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생활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분명 옳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남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이 통하는 세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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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화약고 중동'의 핵심문제는 비단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항시 불안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곧 난민사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바람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1982년 9월 16일 벌어진 팔랑헤딩 민병대의 소행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일생을 짓눌러 왔던 전쟁의 참화가 한 인간의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로 정체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명한것은 이 학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부분은 살인군대가 난민촌으로 들어가 피의 학살을 벌이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명령에 따라 난민촌 주위를 탱크로 봉쇄하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올리며 학살을 도운 사실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의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노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애니로 진행되던 내용이 갑자기 사진으로 바꼈을때 느끼게 되는 사실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유대, 팔레스타인,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이름들이 많기도 하다, 이 명칭의 근원처럼 이스라엘 전쟁의 근원도 제대로 파악할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날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지역이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큰 인명 손실을 보는 등 양측의 분쟁은 당분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휴전상태지만 이 전쟁의 끝은 양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피비린내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도 많이 닮아있음에 서글픔이 더욱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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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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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전쟁이 아닐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인간 파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전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각종 참혹한 일들, 그 중에서도 학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문명화된 이 지구상에서 그와 같은 학살이 버젓이 자행이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목이 어떠하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강제적으로 앗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중에 이스라엘과 공조한 기독교도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베이루트 난민촌에서 3,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참히 대량 학살한다. 이 책은 그 학살현장을 폭로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화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를 석권하며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구성을 벗어나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한 개인의 모습을 아주 독특한 어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아리 폴먼은 옛 친구의 계속되는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직접 참전한 전쟁임에도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시 함께했던 전우들을 찾아 나서면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하나둘씩 재구성해 나간다. 지은이가 도착한 기억의 종착점에는 여자와 어린 아이, 노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난민 3,000여 명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사브라․샤틸라 대량학살’ 사건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 간직하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에 행한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 했고, 그와 같은 끔찍한 상황들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린 것이다. 만화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든 이 작품은 짧은 글이지만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그림이 전쟁이 주는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작품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암울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이성이 빚어낸 이 찬란한 문명 속에서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 ‘하얀 전쟁’, ‘박하사탕’, ‘마지막 휴가’,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 각종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전쟁에서 이긴 자는 은연중에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거나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지은이도 바로 그 학살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후유증으로 당시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산물(?)이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공범자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뿐 만 아니라 많은 다른 공범자들을 보아왔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많은 선진국들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상을 자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을 정당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전두환 군부정권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광주민주화 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메아리로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