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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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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착화된 분단에 평온감마저 느끼는 요즘이나 불과 50여 년 전에 이 땅엔 전쟁의 화염이 일었다. 딱히 누굴 승자라 꼬집을 수 없고, 굳이 순위를 매기기엔 양측의 피해가 너무나도 컸던 것이 지난 전쟁인데, 사실 이는 전쟁의 속성이기도 하다. 군인들 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도 숱하게 죽어나가는 전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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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착화된 분단에 평온감마저 느끼는 요즘이나 불과 50여 년 전에 이 땅엔 전쟁의 화염이 일었다. 딱히 누굴 승자라 꼬집을 수 없고, 굳이 순위를 매기기엔 양측의 피해가 너무나도 컸던 것이 지난 전쟁인데, 사실 이는 전쟁의 속성이기도 하다. 군인들 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도 숱하게 죽어나가는 전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점 지대라 할 수 있는 카슈미르는 대표적인 분쟁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두 나라의 역사만 놓고 보자면 어찌 하여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만 하더라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둘 아닌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두 국가가 섬기는 종교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다르긴 하다. 그렇지만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 언어마저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융합되어 긴긴 세기를 평화롭게 공존해왔음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일 때부터 시작하여 최근이라 할 수 있는 베나지르 부토의 피살, 파키스탄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 등까지 이 책은 다루고 있었다. 서양 중심적 시선에서 세계사를 바라보아 왔기에,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한 이 두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지했던 듯하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했으며, 그 과정에서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간디 가문이 인도 사회에서 보여주는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간디를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인도라는 나라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파키스탄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성인에 가까운 반열에 드는 이 인물 역시 한 시대를 살다간, 완벽하지 못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한계라면 자신의 신념만을 너무도 확고히 추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폭력이라는 그의 방법론은 찬양 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상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이 사회이다. 간디는 이 점을 간과했다. 국민회의가 자신과 다른 것을 추진하고, 무슬림연맹이 생각보다 강성해짐에 따라 그는 자연스레 고립되어 갔다. 분립이라는, 어쩌면 최악의 결과를 향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나아가기까지 간디가 발휘할 수 있었던 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네루는 또 어떠한가? 그의 사전에 타협은 없는 듯했다.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에게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민중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길을 걸어온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진나와의 대화조차도 그는 시도치 않았다. 처음에는 화합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진나가 어느 순간부터 파키스탄 분립의 기치를 높이기 시작한 데에는 네루의 고집스러움도 한몫 작용했을 듯 싶다.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도 헤쳐나가기 어려운 것이 바로 위기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오늘날까지도 계속 겪고 있는 혼란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더 유하면서도 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이 필요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경험해온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영국이 제공했단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영어 몰입 교육은 영어 능력이 곧 성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치하 인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영어 학습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랐다는 점이었다. 영어 능력 향상을 중시 여겼던 힌두교도들은 곧 정부의 관직에 등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이슬람교 인구가 더 많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힌두교도에 의한 이슬람교도의 지배로 나아갔다. 다민족, 다언어 사회에서는 오히려 평화롭던 이 땅이 영어라는 하나의 확고한 언어가 뿌리내리기 시작함에 따라 어지러워졌으니-다소 뜬금없는 결론일지도 모르나-영어라는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곧 영국이라는 국가에 어느 정도 열린 마음을 지녔는가의 차이가 민족 간의 지위 격차로 이어졌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슬픈 역사를 지닌 국가임이 분명하다. 영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주권국가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만이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질서유지를 가능케 해준다는 모순점이 존재했다. 물리쳐야 할 대상을 끌어안아야만 하는 서글픔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분립과정에서 탄생한 방글라데시 역시 이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명찰을 착용하고 있는, 사회의 발전 기반을 모두 파키스탄에 빼앗겨야만 했던 방글라데시에 비하면 파키스탄과 인도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q*****2 2010.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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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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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접할 때, 저는 스페인 옆에 붙은 포르투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기간 앙숙으로 살아 왔고, 같은 지역권 안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더 큰 이웃 때문에 외부로부터는 다소 무시당하는 느낌의, 약하지만 한때는 매서운 기상으로 국위를 크게 떨치기도 한, 오랜 정치적 불안을 딛고 현재는 차분히 제 갈 길을 가는, 다소 목가적인 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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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접할 때, 저는 스페인 옆에 붙은 포르투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기간 앙숙으로 살아 왔고, 같은 지역권 안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더 큰 이웃 때문에 외부로부터는 다소 무시당하는 느낌의, 약하지만 한때는 매서운 기상으로 국위를 크게 떨치기도 한, 오랜 정치적 불안을 딛고 현재는 차분히 제 갈 길을 가는, 다소 목가적인 나라.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이런 느낌은 객관적 정세랄까 사태의 진상과는 제법 먼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각성이 다시 들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에 보면, "오늘날의 인도에 인디아라는 이름 유래를 주었고, 인도가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는 문명 발상지 고유 부분을 자국 영토로 보유하면서도, 인도와는 생사를 건 분쟁 중에 있는 나라가 파키스탄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더스 강과 그 유역, 세계 최고 곡창 지대 중 하나인 펀잡은 인도보다 파키스탄에 더 많이 걸쳐 있습니다. 인도 대륙을 통치한 제국의 본산 역시 이 펀잡에 중심지를 둔 적이 많았습니다. 델리 술탄 시대를 거쳐, 한때의 영화를 뒤로 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무굴 제국을 플라시 전투, 그리고 세포이 항쟁 진압을 통해 꿀꺽한 대영 제국의 반 세기 가까운 통치기가 끝난 후, 이곳 남아시아에는 새로운 정세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무슬림이 페르시아와 아프간 고원을 거쳐 이곳 비옥한 곡창 지대로 침투해 오던 시절부터, 인도는 외부의 드센 기마 민족에 의해 피정복민의 신세로 떨어지다시피했습니다. 종교의 대립상으로 문화, 인종의 구획이 나뉘어지고 나서, 거의 내내 힌디인들은 펀잡 일대의 이슬람신도들에게 열위에 놓였고, 인더스 강 유역에 통치 센터를 마련한 그들도  이런 세력 관계와 위신에 대해 당연하다는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러던 것이, 정작  문명의 우위가 세계사적 대세를 점해가고서부터, 이 지역에서 수적(數的)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던 무슬림은 조만간 생존의 위협을 맞을 수 있다는 각성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이드 아흐마드 칸(이 책에서의 표기는 "사예드 아메드 칸"입니다)은 이미 19세기초부터 이런 선지적 발상(혹은 비상한 예감)을 갖고, 더 이상 지배 소수 종족으로 군림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판세에서 무슬림이 자기 정체성과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길이 무엇일지에 대해, 정돈된 주장을 설파해 왔습니다. 

그는 영국 본토 정부로부터 훈위도 수여 받았고, 특히 세포이 항쟁 당시에는 철저히 친영(親英)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식민지에서 소수파 종족이 흔히 취해 오는 스탠스가, 지배 세력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 비슷한 예로, 역시 펀잡에 근거를  두고 있던 시크교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의 특권적 위치는 인도가 독립하고 나서 철저히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생 공화국 안에서 탄압받는 위치로 전락하기까지 했죠. 아메드 칸은 어쩌면 이 모든 사태를 백 년 앞선 시점에 내다본 것입니다. 

1982년작 영화 <간디>에서 잠시 나오기도 하는 모하마드 알리 진나(연기는 파담시라는 이름의 배우가 맡았는데, 미묘하게도 이 사람은 파키스탄인이 아닌 인도 국적입니다)는 현재까지도 파키스탄의 국부로 추앙 받는 사람입니다. 나이로는 증조할아버지뻘인 아메드 칸처럼 그도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학식이 깊었으며(아메드 칸은 인문, 문예, 진나는 법학), 세계 정세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당시로서는) 글로벌 마인드라 불릴 만한 원칙 하에 정치 운동을 펴 나간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영국을 상대해서는 무슬림에 대한 독자적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시켰고, 인도인들을 향해서는 막판까지 통합과 화해의 가능성을 놓지 않은 채 대화와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카운터파트너였던 자와할랄 네루도 그러했지만, 진나는 외모나 매너, 분위기 역시 실로 신사적이고 기품이 넘치는 유형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양국 지도자들이 이들의 반만 닮았어도, 최근사가 그처럼 유혈로 얼룩지는 일은 없었을 텝니다.

독립 후 인도도 그리 자랑스러운 궤적을 유지해 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파키스탄의 현대사는 더욱 초라합니다. 우선 부존 자원이나 지정학적 위치, 심지어 인구수에 이르기까지 인도보다 나은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탓에, 국제적 분쟁이 발생만 하면 거의 언제나 인도에 굴욕을 당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그건 차라리 괜찮고, 이 나라는 독립 후(인도와는 별개 시기에 별개 절차를 밟았습니다) 거의 단 한 번도, 유능하거나 평화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한 정부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알리 부토나 그 딸 베나지르 부토가 국가원수로 재임하던 시기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이들 민간 정치인들 사이에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인들(예를 들면 한국에 국빈 방문한 적도 있는 지아 울 하크)은, 정통성도 부족한 터에 국가를 제 꼴로 추스리는 능력조차 보유하지 못했었습니다. 정국의 혼미가 끝을 보일 줄 모르자 다시 한번 장군 한 사람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지만, 그 역시 결국 국민들에게 심한 경멸과 반감을 사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현재 파키스탄 일부 지역은 탈레반이 사실상 실권을 잡고 있고, 경제는 총체적 파탄을 맞고 있습니다. 카라치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이 나라의 국민들이 현재 처한 상황이란 보는 이의 연민을 금할 수 없게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인도와 파키스탄, 대립의 역사>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상 문제의 본체와 본질은 파키스탄의 내부 모순 쪽에 더 치우친 중심이 놓여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v*****7 2016.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