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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켄드 켐페인 8월 리뷰2- 허균, 최후의 19일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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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골랐을까. 많이 후회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허균의 최후의 날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가슴이 조여지는  것 같아서. 결과를 빤히 알고 있지만 그의 최후를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에 끝까지 읽을 것인가 말가를 두고 한참 갈등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허균의 최후와 맞대면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운아 허균. 그의 죽음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게 아니다. 그가 새로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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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골랐을까. 많이 후회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허균의 최후의 날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가슴이 조여지는  것 같아서. 결과를 빤히 알고 있지만 그의 최후를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에 끝까지 읽을 것인가 말가를 두고 한참 갈등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허균의 최후와 맞대면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운아 허균. 그의 죽음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게 아니다. 그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역모를 꾀했는지, 모함이었는지를 두고.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지만, 그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건 분명했다. 김탁환이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한 허균의 최후 19일간의 행적 속에는 그가 살아왔던 삶의 이적과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허균의 일거수 일투족은 흥미로웠고, 허균 같은 인물은 조선에서 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만큼 쉽게 만날 수 없는 개성적이었고,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사림으로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학문적으로나, 행동에서나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유람했고, 유교, 천주교, 불교, 선도를 아우르는 사상적 편력 또한 대단했다.  걸출한 사림은 물론으로 서자, 중인 등 교유의 폭 또한 신분을 망라할 만큼 넓어서 거칠 것이 없었다.

탄핵 받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등용됐다 하기도 여러 차례였고,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들며 나누었던 기생 매창과의 교유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그 외에도 그의 애정 행각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공맹을 읇조리며, 사대부로서의 체통을 지키며 살기에는, 조선시대 사대부라는  틀안에 갇혀 있기에는 피가 많이 뜨거웠고,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양천 허씨 명문가 자손에 뛰어난 학문과 시문 실력이 있었으니, 마음만 먹었다면 탄탄대로의 길이 보장돼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질 못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데다 전란을 겪으면서, 처와 자식을 잃고 난 뒤 세상을 보는 허균의 눈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계축옥사를 겪고 난 뒤 허균은 이이첨과 손을 잡게 됐지만  결국은 조선 최고의 풍운아답게 그는 범상치 않은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허균 외 다른 인물들의 욕망들도 눈에 들어왔다. 완벽한 시인이 되기를 꿈꾸며, 자신의 시가 후세에 전해지기를 갈구했던 이재영, 귀양간 아버지를 대신해 가문을 일으키고자  허균에게 복수의 칼을 가는 한때 허균의 제자였던  기준격, 변하지 않은 권력욕을  지닌 이이첨 등, 저마다의 욕망들 때문에 결국 허균의 꿈은 좌초하고 말았다.  세상은 그런 거다. 결코 대의 명분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거.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능지처참 당하는 그의 최후가 길게 묘사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마지막 날 그의 행적을 읽을 때는 혹여 그의 최후에 연민을 느끼면 어쩌나 눈물 흘리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의외로 담담하게 그의 최후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편하게  읽었다.

 

지은이 김탁환은 허균에게 1980년대 386세대가 꿈꿨던 체제 변혁의 꿈을 대입시켰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그 꿈이 멀어져 버렸다는 것을 감지하고 허균의 실패를 담담하게 서술한 감도 든다.  한 시대의 가운데에 서 있는 지식인도 있지만, 시대와 반목하며 불화하고 저항하며 새 시대를 열고자 갈망하는 지식인도 있는 법이다. 역사 속에 그런 인물들이 많았던  것에 우리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실패한 역사로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뒷장을 확인해보니 이 책 첫판 1쇄가 나왔던 때가 공교롭게도 1999년 12월이다. 밀레니엄 운운하며 새로운 세기를 넘어 새로운 천년이 열린다는 기대감-상업성도 적지 않게 깔려 있었던 밀레니엄 열풍이었지만-으로 뜨거웠던 시기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 밀레니엄 열기에서 다시 10년이 흘렀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시도가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조선이 아닌 세상을 꿈꿨던 불온했던 풍운아, 허균이란 존재가 갖는 무게감은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e****0 2009.08.11. 신고 공감 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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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400년 전 혁명을 꿈꾼 사나이 [허균, 최후의 19일]
"[서평] 400년 전 혁명을 꿈꾼 사나이 [허균, 최후의 19일]" 내용보기
[서평] 김탁환 저 <허균, 최후의 19일 上,下>를 읽고 / 2009. 01., 399/439쪽, 민음사김탁환은 소설에 문외한인 나에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팩션 소설'을 처음 알게해 준 작가였다.7년 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푹 빠져들어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을 내리 읽었고, 그 이후 <혜초>, <나, 황진이>, <파리의 조선
"[서평] 400년 전 혁명을 꿈꾼 사나이 [허균, 최후의 19일]" 내용보기
[서평] 김탁환 저 <허균, 최후의 19일 上,下>를 읽고 / 2009. 01., 399/439쪽, 민음사

김탁환은 소설에 문외한인 나에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팩션 소설'을 처음 알게해 준 작가였다.
7년 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푹 빠져들어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을 내리 읽었고, 그 이후 <혜초>, <나, 황진이>,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노서아가비>, <눈먼 시계공> 등 과거 작품뿐 아니라 신작이 출간대로 연속하여 읽었다.
이 작품 <허균, 최후의 19일>은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힘들었는데, 우연히 후배 사무실 책꽂이에 꽂혀있는 걸 발견하여 기회가 된 것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교산 허균에 대해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으로만 유명한 교산(蛟山) 허균(許筠)... 국사책에는 광해군 재위 때 반역을 도모하다가 적발되어 능지처참(凌遲處斬)되었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었다.
위키백과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1569년생,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1594년(선조 27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년)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공주 목사를 거쳤으나 반대자에게 탄핵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당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불교를 신봉하여 논란을 야기(惹起)하기도 했다. 벼슬은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대북에 가담하여 실세로 활동하였으나 1617년(광해군 10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으로 가담하였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항거하려고 서자와 불만하는 계층을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이를 비판하던 기자헌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기준격의 밀고로 능지처참되었다"는 정도이다.

반란(혁명)에 착수하여 실패하는 날까지 19일간의 이야기를 작가는 허균이 참수되는 순간부터 거꾸로 풀어낸다.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이야기의 맥을 잡기가 여의치 않았으나 금새 작가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작품 속 허균은 "임금 없는 사회체제"를 꿈꾸는 것으로 그려진다. 현대사회로 보면 '공화국'을 꿈꾼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 역사기록으로는 허균이 어느 정도까지 이상사회를 꿈꾸고 혁명의 목표가 왕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나 자신의 동지가 왕이 되려고 했는지 분명치 않다.
위키백과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설명에 민본사상과 국방 강화 정책 추진, 신분계급의 타파와 평등한 인재등용과 붕당배척론을 주장하였다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그 당시에는 '혁명'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적 사실도 임진왜란 당시는 조선 건국 후 200년 만에 정치는 기득권 파당이 심하고 지배계층은 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한데다가 나라와 백성의 안위에 무책임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신분제가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전쟁 후과에 더해 삼정(전정 田政, 군정 軍政, 환정 還政)이 문란하여 백성들의 삶이 극에 달하는 등 조선이라는 체제 자체가 명분도 실리도 잃은 상황이었기에 객관적인 조건은 '혁명적 상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역사 이래로 당시 사회의 '상식'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고수하려는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기며 인민들의 삶과 처지를 악화시키고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을 때, 항상 혁명 또는 혁명에 준하는 개혁을 통해 변해 왔던 흐름이 있었는데,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조선왕조 500년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왜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주인인 민중(인민)들의 삶과 처지를 갈수록 악화시키고 사회 진보를 가로막는 '상식'과 '제도'는 무엇인지, 그것을 고수하려는 국내외 세력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시대에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잠깐만 생각해 보더라도 분단체제와 종북이데올로기, 승자독식과 무한경쟁 이데올로기, 세계화와 민영화 프레임, 친일/종미 사대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그런 '구체제' 또는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이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생각해보니 허균은 내가 얼핏 알았던 역사적 인물의 수준이 아니라 조선 중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상가이자 혁명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도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 박지원, 박제가 등 소위 '실학파' 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봉건 신분제도와 서얼 제도를 혁파하려한 선각자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성리학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등 끊임없이 지리를 탐구한 사상가이자 철학가, 사회운동가이자 문인,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그가 창작한 <홍길동전>이 마냥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허균 선생이 꿈꾸던 이상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균에 대한 더욱 풍부하고 근접한 평가는 이이화의 <허균의 생각>등 인물평전을 읽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허균과 혁명세력들의 혁명의 실패원인이 '칠서의 변'에 이어 다시 한 번 측근에 의한 배신이었다는 설정(역사적 현실이기도 함)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와 방송 등 영상매체 속 작품들이 떠올랐다. 영상매체 관련 종사자들이 최근 지상파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기황후>나 <정도전>처럼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광해군이나 다른 왕, 관료 등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학생들과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시청률'에 목매다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작품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현대의 그릇된 정치사회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함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작품'도 아니고 '예술'도 아닐 뿐더러 후손들에게 그냥 권력자나 자본가의 '선전 도구'라고 평가될 뿐이다.

작가의 소설 속 혁명 이야기는 긴장이 넘친다. 500년 전에 꿈꾸었던 선각자가 있듯이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선각자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비록 혁명에 실패하여 허균처럼 능지처참을 당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 나타나며, 그런 이들로 인하여 사회가 진보하고 인민들의 삶이 개선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2014년 1월 30일 ]

 

c****n 2014.02.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 인간이 바라던 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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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할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겨울의 모진 칼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허물을 벗듯 자라나는 새싹들과 그와 더불어 왕성해지는 입맛을 선사하는 봄. 지표면을 녹일 듯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한 여름. 풍성함과 가득함을 주는 가을. 그리고 쉬어가야 할 때를 온 몸으로 가르쳐 주는 겨울. 그러나 역사를 등에 짊어지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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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할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겨울의 모진 칼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허물을 벗듯 자라나는 새싹들과 그와 더불어 왕성해지는 입맛을 선사하는 봄. 지표면을 녹일 듯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한 여름. 풍성함과 가득함을 주는 가을. 그리고 쉬어가야 할 때를 온 몸으로 가르쳐 주는 겨울. 그러나 역사를 등에 짊어지며 살아온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시간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유를 만끽할 여유도 없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들은 1365, 하루 24시간동안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한국의 블랙프라이데이라고 방송매체에서 광고해 본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며, 계절의 색동옷을 구경 간다는 그 말들도 가진 자들의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오르지 않는 월급위에 널뛰듯이 무자비하게 상승하는 물가는 무능력과 자괴감만을 남긴다. 오늘도 한 푼의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에 몸을 싣는 모습. 기뻐해 주어야 할 결혼식 날 가벼워지는 지갑을 걱정해야하는 모습. 열심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언제나 제자리이다.

 

 전쟁과 기아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던 조선의 백성들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다. 굶어 죽은 아이, 얼어 죽은 노인, 돌림병에 걸려 몰사한 가족이 부지기수였네. 한데 이 나라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어. 군왕과 대신들은 의주까지 도망을 쳤고, 고을의 수령들도 왜군의 조총이 미치지 않는 산골로 몸을 피해 버렸지. p.369 2 임진왜란의 참담한 모습.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위정자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그들. 그 속에서 변화를 꿈꾸는 자. 뛰어난 문장력과 날카로운 판단력 그리고 예지력을 가진 자. 그럼에도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자. 김탁환교수의 책에 묘사된 허균의 모습이다. 오십 평생 나는 인간이라는 족속에게 실망만 하며 살아왔네. 왜란을 겪은 이십 대, 이리저리 외직을 떠돈 삼심 대, 그리고 다시 도성으로 돌아와 관송(이이첨)의 개로 지낸 사십 대까지, 모조리 실망뿐이었네. 나는 마지막으로 인간이라는 족속을, 그리하여 나 자신을 믿어보고 싶어.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욕하고 죽이기 위하여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는 인간을 보고 싶으이. p.269-270 2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나 낮은 데를 볼 줄 알고 태어난 신분, 가진 재산과 힘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을 마주하기를 바라던 허균. 17세기 그가 꿈꾸던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풍경이 떠오르는 군. 서당에서 함께 서책을 읽고, 그 서책에 적힌 대로 이 세상이 살아 볼 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아이들! 동틀 무렵 들판으로 나가 황혼이 찾아들 때까지 땀 흘려 일하는 어른들! 죄수를 가두는 감옥은 텅 비었으되 곡식을 쌓아 두는 곳간은 차고 넘치는 나라! 누구나 창고로 들어가서 원하는 만큼의 곡식을 꺼내 올 수 있으며, 태어난 곳이 북삼도나 전라도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첩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나라!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외침을 받기 전에 군법을 철저히 시행하는 나라! 밤에는 들일에 지친 몸을 편히 누이고 휘영청 둥근 달을 바라보거나, 청주 한잔을 곁들인 노랫가락에 시간을 빼앗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나라! p. 371-372 2 허균이 꿈꾸던 나라, 현대의 우리가 꿈꾸는 나라. 똑같은 무릉도원을 꿈꾸지만 언제나 현실과의 간격은 멀기만 하다.

l*******g 2015.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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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시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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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나의 기억을 혼란 시킨다. 분명 책 표지에 '허균, 최후의 19일'이라고 써 있건만 그 제목을 읽는 나의 뇌 속에서는 '홍길동 최후의 19일'로 해석 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홍길동 전의 결말을 떠 올리고 있었다.   홍길동은 알았지만 정작 허균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에 허균과 홍길동을 동일시하고 있었나 보다.   이 소설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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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나의 기억을 혼란 시킨다. 분명 책 표지에 '허균, 최후의 19일'이라고 써 있건만 그 제목을 읽는 나의 뇌 속에서는 '홍길동 최후의 19일'로 해석 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홍길동 전의 결말을 떠 올리고 있었다.

 

홍길동은 알았지만 정작 허균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에 허균과 홍길동을 동일시하고 있었나 보다.

 

이 소설의 구성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적 서술 방식 대문이다.  프롤로그에서 허균이 사형 당한다. 그 다음부터는 사형 당하기 1일전, 2일 전으로 사건의 추이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다 읽으면 허균이 사형당하기 까지의 전체 얼개가 나타나지만 짦은 기억력 때문에 앞에 읽은 내용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예 하권부터 사건의 순서대로 읽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구성을 취한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기로 했다. 예전에 보았던 '모멘토'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은 허균과 광해군, 이이첨 세 사람의 정치 행태를 묘사한 소설이다. 역사적으로 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사람이고 광해군은 폭군이어서 이름조차 '종'으로 끝나지 못했고 이이첨은 간신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허균은 혁명가로, 광해군은 주도 면밀한 군주로 이이첨은 정략가로 묘사된다. 광해군과 친밀했고 충성을 다했지만 나이 50을 넘어 주군을 죽이고 국가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꿈꾸는 허균. 세상과 타협하기 힘들었던 천재의 쓸쓸한 모습을 보게 된다.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와는 달리 유교라는 정치 이념으로 꽉 짜여 진 조선이 내부의 힘으로 왕조가 갈리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한다.

e******s 2009.05.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