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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향수를 쫓아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의 흥미진진한 활기와 감동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쩍해지고 말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본래 이런 모습이었던가? 아니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다음엔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를 따로 읽어보자. 그것도 안되면 로마사를 읽고, 그걸로도 안되면, 안되면 다음엔 어쩌지? 안될리가 없는데 왜 안될 때를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는 걸까 난. 푸흡.
한가지 새롭게 눈에 띈 것이 있다. 신화의 해석과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의문 : "이런 이야기는 어디에서 유랳나 것인가? 그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혹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토머스 불핀치는 네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성서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 일치되는 것이 많기는 하지만 억지 짜맞추기 만으로는 무리가 되는 부분이 있다.
둘째는 역사설에 의한 것으로 등장인물은 실재 인물이고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덧붙여졌다는 주장. 뭐,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우리 나라 신화도 대부분 실존 인물을 신격화한 것이고.
셋째는 우화설에 의한 것으로 고대인의 모든 신화는 우화적이고 상징적이며 우화의 형식 속에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사실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 그것도 그럴 수 있겠어. 비유와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안될 것 없겠지. 싶고.
넷째는 물리설에 의한 것으로 공기, 불, 물과 같은 원소는 원래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고, 주요한 신들은 자연력의 의인화라는 주장. 토템이라는 것이구만, 그것도 그럴 수 있겠네. 싶다.
결국 토머스 불핀치는 어느 한가지 주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지가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신화가 발생했을 것이라가고 보는 것이 옳은 견해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많은 신이 등장하고 또 신화적인 영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해 낸 것도 사실 신화의 네가지 기원이라는 범주안에 포함되는 것 같다.
첫번째로 발견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신들은 무소부재의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은 신도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이나 여러가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들, 뒤늦은 후 사후 처리의 형태로 마무리 되는 일화들. 그 모든 것이 그들이 지닌 인간적 한계를 보여준다.
두번째로 발견한 것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이성적으로 미숙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신들은 보통 허영에 빠져있거나, 질투의 화신이 되고 욕망이나 욕구에 무척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찬사를 즐기고 보석과 귀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두드러지게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참정권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인격적으로 이성적으로 미숙한 존재로 치부되었고, 강력한 가부장적인 제도 안에서 순종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여신들의 모성애는 신들 또한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는 것 조차 주저하지 않는 열렬한 애정은 가슴 뭉클하게도 했다.
신화는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기 쉽지만 간단히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고대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사랑과 낭만까지를 한꺼번에 만나고 싶다면 이제 신화를 읽을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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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아직 이윤기 님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지 못했다. 내 게으름의 탓이다. 살면서 참 자주 느끼는 건데, 내가 정녕 무지하다는 것이다. 당최 무지하고 무지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아직 희미하기만 하고, 철도 들지 않아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곧 후회한다. 그 수많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른 바 남들 다 읽는 책을 안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치면 뭐 난 죽을 때까지 인간되긴 글렀다. 책장에 고이 무셔두었던 이 책을 꺼낸 것은 그런 자책과 회의감에 몸부림 칠 때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 나이 먹도록 그리스로마 신화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책장을 펼쳤다. 이 광대한 신들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읽은 후의 소감은? 음….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최근 샘 워싱턴 주연의 〈타이탄〉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직 2편까진 못 봤고, 1편만 봤다. 내용은 제우스와 다나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하데스에 맞써 싸우는 이야기다. 메두사를 죽이고, 결국 크라켄까지 죽인다. 하지만 책과 영화는 조금 다르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인 것은 맞지만, 크라켄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크라켄과 비슷한 괴물이 등장하지만,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그리스로마 신화는 아직까지 영화화될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한 재미있다. 우리나라도 조금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유럽이나 서구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르면 바로 무식한 녀석으로 찍혀버린다. 이른 바 필독서이다. 허무맹랑하고 때론 너무 유치찬란하기까지 한 그리스로마 신화가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야 뭐 워낙 사대주의에 찌들어, 그리스로마 신화를 지적 허영심의 발로나 좀 아는 척 할 때 쓰는 인간들이 많지만, 분명 서구는 그렇지 않단 말이지. 그들은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든단 말이다. 내가 감히 책 한 권 읽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많은 시간을 거쳐 내려오며 각 세대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한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울러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더 이상 씨알도 만 먹히는 판타지가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과 같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즐겨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출판되거나 소개되고 있는 영화, 문학 등이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SF 분야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적잖이 차용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는 단지 그리스와 로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들의 상상력이 담겨,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하나의 공통 판타지는 아닐까. 때문에 그들의 신화만이 우수하다거나 우리는 왜 그런 것이 없냐고 궁시렁 거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따지지 말고, 그냥 보약처럼 챙길 책일 뿐이니. 그리고 이야기일 뿐이니. 이윤기 선생님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제대로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일단 그 목표가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