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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묘하고 환상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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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수 없는 이상한 기분과 그러면서도 알수없는 그무엇인가에 홀려, 정말이지 책   읽는 내내 홀린 기분이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과는   깊이가 다른,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태어나서 책리뷰라는거 처음 써보지만   오래된 이 책이 좀 더 마니 알려졌음 좋겠다. 오래전의 책이지만 명작이 늘 그렇듯   전혀 고루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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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수 없는 이상한 기분과 그러면서도 알수없는 그무엇인가에 홀려, 정말이지 책

 

읽는 내내 홀린 기분이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과는

 

깊이가 다른,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태어나서 책리뷰라는거 처음 써보지만

 

오래된 이 책이 좀 더 마니 알려졌음 좋겠다. 오래전의 책이지만 명작이 늘 그렇듯

 

전혀 고루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해리포터를 능가하는 환타지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정말 판타스틱한 책이다.

c******0 2009.03.0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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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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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보는 내내 웃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웃은 경험은 거의 없는데요.. 이게 아마 세상 비꼬기의 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가 품위까지 갖추었으니 해학이라 하는게 맞을까요...? 사람 이름이 좀 헷갈려서 골치아프긴 했습니다만.. 혹시 작가가 백년동안 이 책을 쓴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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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보는 내내 웃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웃은 경험은 거의 없는데요..

이게 아마 세상 비꼬기의 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가 품위까지 갖추었으니 해학이라 하는게 맞을까요...?

사람 이름이 좀 헷갈려서 골치아프긴 했습니다만..

혹시 작가가 백년동안 이 책을 쓴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s******i 2010.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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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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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 책이 소개되던 때가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나도 꽤나 문학소녀로 나름 통했던지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던 이 책에 대해 듣고 읽어보겠다고 설쳤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까마귀 고기를 잡수셨던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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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 책이 소개되던 때가 그 즈음이 아니었을까. 나도 꽤나 문학소녀로 나름 통했던지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던 이 책에 대해 듣고 읽어보겠다고 설쳤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까마귀 고기를 잡수셨던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에는 그럴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시작이었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미를 더한 작품이다. 얼마 전 읽었던 천명관씨의 <고래>와 아주 흡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제3자 그것도 전지전능한 시점, <고래>가 변사의 어조라하면 <백년동안의 고독>은 주술사의 어조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방식하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결국에는 죄다 죽어버리는 것 하며, 대를 이어오는 한 집안에 얽힌 이야기라는 점 하며..비슷한 점이 아주 많아 보였다. 실제로도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어조"였다고 하니, 이 어조가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어조라면 작가의 머리에 떠오르는 아무거나 이야기해도 된다고 믿었던 마르케스는 자신의 할머니가 터무니 없는 일들을 아주 자연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투로 작품을 풀어나갔다고 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이구아랑으로 시작되는 부엔디아 일가의 이야기는 사실 16세기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했을 때 우르술라 이구아랑의 증조모가 경종과 포성에 놀라 불을 지피던 아궁이 위에 주저앉은 사건이 발단이 된다. 우르술라가 두고 두고 저주하고 싶은 이 3세기 전의 사건이 이 이야기의 결말에 가서 아우렐리아노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해독하면서 다시 한번 언급이 된다.

 

"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결국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 상대를 탐색해 가계를 끊을 운명을 짊어진 괴물을 낳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다." (p475)

 

즉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결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러니 재미로 읽어야 한다. 즉 소설은 소설로 읽힐 때 그 가치가 있다. 일단 기본은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되, 콜롬비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유파와 보수파의 싸움이나 바나나 플랜테이션, 노동자 학살 사건 등은 실제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 기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상적인 사건들의 기술과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적 경계가 바로 작가가 이 작품을 역사 소설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실적이지 않고 두리 뭉실한 환상적 내용들이 바로 이야기들을 실제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리로 정의하게 만드는 속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배 세력에 의해 감추어졌던 진실이 드러나고 도덕적으로 금기시되어 왔던 가치들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표현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했던 마콘도 초기 시대와 반대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등장, 죽은 자의 부활이나 산 자의 승천 같은 사건들이 서로 뒤섞여 지속적인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삶과 세상의 복잡다난한 일들과 역사는 결국 하나로 엮이는 관계일 수 밖에 없다는 보편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엔디아 일족이 100년동안 숙명처럼 안고가는 고독 역시 우리 인류가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게 될 고독일 수 밖에 없으며  돼지꼬리 달린 아우렐리아노의 탄생이 비극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돼지꼬리 달린 아우렐리아노의 탄생이 100년동안 안고 살아오던 고독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랑에 의해 삶을 받은 자는 돼지꼬리 달린 아우렐리아노 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인간의 제한된 시각으로는 돼지꼬리 달린 아우렐리아노의 탄생이 비극으로 보이나 자신을 개미밥으로 희생시킴으로써 가문의 비극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점에서 구세주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이 집안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게 될 것이요,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될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단 한줄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위해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기꺼이 집어든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만족하리라 확신한다.

l********d 2009.06.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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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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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거의 리뷰를 쓰지 않는다. 그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두 경우의 공통점은, 그 메시지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역시 뭐라고 정리를 해야 좋을지 막막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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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거의 리뷰를 쓰지 않는다. 그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두 경우의 공통점은, 그 메시지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역시 뭐라고 정리를 해야 좋을지 막막한 책이다.

 

500페이지에 약간 못미치는 '백년동안의 고독'은 온갖 장르를 혼합한 책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사촌인 우르슬라 이구아랑의 결혼으로 그 기원이 시작되는데, 결투에서 친구의 목에 창을 꽂아 죽이고 죄책감에 남미의 한 지방에 정착하여 '마콘도'라는 마을을 세워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들로부터 약 7대의 자손들이 살아가면서 태어나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스토리 전개 중심의 대하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집시 멜키아데스, 죽었는데에도 우르슬라 눈에만 자주 나타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홑이불을 널었던 화창한 날 하늘로 승천하는 미녀 레메디오스 등등 정상적인 세계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수도 없고 일어날수도 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또 대를 반복하면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아버지나 조부모의 이름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그 운명도 거의 비슷하게 되물림받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기이함에서는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이를 문학계에선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특히 남녀관계를 철저한 작가의 시점(관찰자, 또는 적당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리는 것과, 너무 깊이 그 심리를 파헤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기법을 보면 로맨스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많이 부족하니, 일일 드라마 같은 기분도 적당히 안겨준다. 모든 장르를 혼합한 기분을 독자에게 안겨준다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이 소설은 그 자체로 기묘한 분위기를 낳는다.

 

적도와 가까운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 중 하나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G.G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1960년대에 썼다. 그가 상상하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준 마을 마콘도는 실제로 있었다고 하지만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전설적 존재라고 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한 마을에 외국 자본 회사가 들어와 무자비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에 반항하는 노동자들을 전부 학살하면서도 정부 당국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쉬쉬하는 것에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탈을 말한다. 또 남미의 근친상간적 결혼 때문에 결국 자멸하는 일족의 모습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소설에 환타지성을 더하는 것 중 하나는 주요 인물들의 나이인데, 우르슬라도 100살을 넘게 살았던 것으로 묘사되고, 피네르 역시 150살 가량을 살다 가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 일족의 흥망성쇠를 그린 이야기지만, 이 두 여인 특히 우르슬라가 거대한 축을 단단히 잡으며 스토리의 핵심 역할을 한다. 우르슬라로부터 시작하여 부엔디아 가족 마지막 아이를 낳은 아마란타 우르슬라로 끝나는 이 이야기의 구조만 보더라도 우르슬라가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이 가족이 굳건하게 생각했던 가치관, '과거는 결국 반복된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너무 급변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과거는 반복된다는 식의 숙명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미신적 믿음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사람이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도 어느 정도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느낄때가 종종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만약 이것이라면 분명 사양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메시지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등장인물, 많은 스토리가 있는 만큼 다양한 메시지를 곳곳에 뿌리고 있고,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독자를 가장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작가로서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덤덤히 서술하였다는 것이며,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근친상간을 통해 멸망하는 부엔디아 가족의 몰락이 환상적 기법으로 인해 화려하고도 쓸쓸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100여년이나 일가족의 둥지가 되어준 집이 폭풍에 의해 쓰러져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전설로 남는 모습을 영화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가르시아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제일 마지막 부분은 특히 독자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한 영상을 통해 작품의 여운을 오래토록 남게 한다.

h******0 2009.06.09.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