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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의 베케트는 있습니다만 두 명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극은 계속될 것입니다.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상황극>은 사르트르가 연극(자신의 희곡을 포함하여 당대 화제가 된 거의 모든 연극ㅡ 외젠 이오네스코, 사무엘 베케트, 장 주네, 장 콕토, 알베르 카뮈, 유진 오닐, 아서 밀러,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테네시 윌리엄스 등등)에 대해 쓴 글과 강연, 대담을 모두 모은 700페이지 분량의 책이다. 철학서와 소설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의 희곡이 이상할 정도로 등한시되고 있지만 사실 사르트르도, 카뮈나 주네와 마찬가지로 생애에 커다란 열정을 쏟았던 분야가 연극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사르트르가 희곡과 연극에 관한 정열과 몰입을 애써 억누른 것은 정치적 의무를 위한 절박함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혔듯, '조절이 필요할 정도로' 그는 연극을 사랑했고 희곡 작품을 많이 남겼다. 물론 그 연극 또한 그의 정치적 의무감과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더 이상의 희곡 창작을 포기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플로베르 연구에 몰입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무덤 속에서 화들짝 큰 눈을 부릅뜨고 두 손을 내저으며 ‘하지마, 하지마!’를 외치고 있었을 플로베르가 상상된다.) 책의 2/3 분량은 연극 일반에 대한 사르트르의 견해다.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글도 멋지지만, 가감없이 그대로 녹취한 강연이나 대담, 토론은 정말 생생하다. 특히 당대 최고의 연출가 장 루이 바로와 장 빌라르, 극작가 아르망 살라크루, 그리고 카뮈와 장 콕토가 참여한 <연극의 문체에 관한 토론>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연극처럼 재미와 긴장이 있다. 잘난 그들은 발제를 끝낸 사르트르를 차례대로 신랄하게 제대로 씹어댄다. 사르트르는 그 와중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까칠한 장 콕토는 거의 저격수이며, 사르트르와 가까웠던 카뮈는 (사르트르는 은근히 카뮈가 자기를 편들어주기를 기대하지만) 예의바르면서도 지적해야 할 핵심을 예리하게, 결코 놓치지 않는다. 천재들의 진지한 논쟁에 즐거운 건 역시 관객(독자)이다. 그저 부러운 시대, 부러운 도시, 20세기 파리다. 수록된 모든 글이 즐겁지만 ‘연극 문체’나 ‘배우론’ 같은 것이 특히 흥미롭다. (여기 수록된 ‘배우론’은 사르트르가 플로베르에 관해 쓴 <집안의 백치>에 들어있는 글이라 한다. 드디어, 그 ‘문제의 <집안의 백치>’를 다만 몇 페이지라도 엿본 셈.)
나머지 1/3은 사르트르 자신의 희곡에 관한 대담이다. 12편의 희곡 중 <파리떼> <닫힌 문> <공손한 창녀> 같은 것을 읽고 싶었으나 모두 절판, 구할 수 있는 것은 공산주의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상국가의 정치 상황을 다룬 <더러운 손>뿐이다. 작가와 연출가의 ‘고급한’ 작품 설명을 읽으면서도 막상 그 ‘작품들 자체’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온다. 이 책의 옥의 티는 고유명사 오류다. 번역자는 ‘프랑스어의 정확한 발음은 *** 이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표기법으로 쓴다’는 강조를 주석마다 굉장히 자주 해놓았다. 그러나 ‘일반적 표기법’을 신경 쓰는 번역자가 ‘일반적이지 않게 해놓은’ 고유명사 표기는 책 전반에 걸쳐 왕왕 나온다. 인물 고유명사는 자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 번역자의 상식 아닌가. 아래의 예 이외도 더 있지만, 나중엔 내가 체크를 포기하게 되더라.
기본 단어를 <사전 풀이>해 준 주석들도 불필요하다. 대체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기만, 고갈, 각성, 역설’ 같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조차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프랑스어 원문 표기라면 모르지만, 쓸데없는 친절보다는 거슬리는 고유명사 오류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을 걸 그랬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야말로 작은 티일 뿐, 이 책은 보옥이다. 주말에 잠을 좀 자며 쉬고 싶다는 바람은 사르트르를 눈에서 떼지 못하여 어긋났다. 이 책과 함께 <더러운 손>을 읽고 나니 결국, 계획에도 없었던 <말>까지 연이어 읽게 되었다. 읽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힘센 책. |